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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향기(詩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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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 스크랩 앵콜-글로 최영옥 시집 작품해설
이제민 추천 0 조회 18 07.10.22 11: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글로 최영옥 시인의『사람아 사람아』의 시론(詩論)


아픔의 강(江)을 건너 희원(希願)의 창조적상상(創造的想像)

             이미지네이션(Imagination)으로 승화된 시학(詩學)


                 김우영(장편소설“월드컵”저자. 계간 문학세상 편집주간.)


․여는 시


목 뺀

기다림은 아니었지만

추운 날들 내내

몹시도 그리웠어요


겨우내 언 가슴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녹여주고 싶어

온 몸 신열 올랐어요


살구 빛 나른함으로

그대 몸 부려오면

취한 눈 차마 뜨지 못하고

행복감에 소름 돋았지요


그대 나의 세포마다

입김 불어 줄 때면

간지럼 타는 아기처럼

마냥 웃었지요


사랑하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이 봄 지독히도

몸살 앓을 거예요


                            - ‘봄 그대’ 全文




․아픔과 고통을 살 속에 박듯 살아온 ‘글로’ 최영옥 시인


 고대 희랍의 신화에는 3명의 여신(女神)이 있다고 한다. 세 여신은 우리 인간에게 운명의 줄을 만들어 준다. 첫 번째 여신은 우리 각자의 생명의 줄을 짜고, 두 번째 여신은 생명의 길이를 정하며, 세 번째 여신은 가위로 우리 각자의 생명의 줄을 자른다. 마음 같아선 이 세 여신이 운명의 줄을 짤 때 생명을 길게 짜주어 행복한 삶을 살게만 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 말처럼 수월하게만 이루어지랴?

희망이 있으면 절망이 있고, 웃음이 있으면 슬픔이 따르고,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찾아오는 게 우리네 삶, 치환(置換)의 이치인 것을.... 

요컨대  상대적등가성원리개념(相對的等價成原理槪念)인 것이다. 이런 희노애락(喜怒哀樂)속에서 우리는 나름대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으며,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살며 여명의 내일을 맞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물질의 풍요 속에서 행복을 구가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평생 불행을 살 속에 박고 살듯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나는 평소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착하고 성실하며 어진 사람한테는 가급적 아픔과 절망을 주지 않았으면...”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 생활여건도 버겁지만, 거기에 건강이나 마음의 아픔이 보태어 지면 아픔의 생채기를 평생 보듬으며 살아야하는 처연함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태초에 사람은 누구나 축복을 받고 태어나 행복하게 살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철학자 루소가 ‘에밀’에서 말 한 것처럼 ‘모든 산물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선(善) 하지만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타락한다.’는 것인가? 결국 인간의 손에 의해 불행으로 전이되고 마는지를 묻고 싶다. 슬픔과 불행으로 이어지는 가련한 삶을 누군들 살고 싶어 할까?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아픔과 고통의 끈으로 이어지는 버거운 삶의 연속이다. 대체적으로 아픔과 고통은 착하고 어진 사람한테 더 많이 생기는 것을 주변에서 더러 보게 된다.

이번에 시집을 내는 경기도 일산의 ‘글로’ 라는 아호를 지닌  최영옥 시인의 경우가 그러하다.

 나와는 계간 문학세상(발행인 윤원희 시인)을 통하여 문학적 인연을 맺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갈하며 바른 시어로 시를 이끌어가고 있는 ‘글로’ 최영옥 시인은 참으로 보기만 해도 곱고 아련한 그런 여인이었다.

 꽃과도 같이 싱그럽던 이십 대 청춘시절 ‘글로’시인은 치료가 매우 어려운 중추신경계 질환을 앓게 되었다. 3년여의 투병생활 후 약간의 후유증을 안은 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고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주며 너무나 성실하던 남편은 짧은 결혼 생활을 끝으로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 버린 것이다. 인간이란 한(恨)이 있는 인생으로 한(恨)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자니 위태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인가?

세계적인 연극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그 유명한 햄릿의 독백을 들어 보자.

 “살아야 할 것이냐, 죽어야 할 것이냐!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또 고대 로마인들은 말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말지어다.(Dum sporo sporo.)”


 ‘글로’ 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살아 호흡할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지니고 현실의 아픔과 시련을 잘 극복해내고 있다. 그것은 독실한 신앙심과 시인으로의 길을 올 곧게 걷고 있기 때문일지라.

시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내 인생은 왜 이리도 꼬이는 걸까 한탄하며 잔인한 하느님이라 원망도 많이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며 아픔과 고통과 외로움의 세월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하면서요.”



․창조적 상상(創造的想像) 이미지네이션(Imagination)으로 승화시킨 시학(詩學)


우리들의 가슴을 저리게 하고 아파하며 읽어야 할 ‘글로’ 시인의 시편들을 만나보자.


빗방울이 홀로 떨어지듯

나는 홀로 서 있다

허공 여행 마치고

한 몸 대지위에 부서지며

산산이 흩어지는 고뇌


지금 비 내리고 심장은 안으로

또 안으로 옥죄어 드는데

마흔의 나이테가 두꺼워

울지도 못하고

지난날 곱던 추억은

한 꺼풀 한 꺼풀

내장을 드러낸 채

온 몸으로 타고 있다


너나 

나나

우리 모두

홀로인 것을

                           - 시 ‘누구나 홀로인 것을’ 全文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이다. 우리는 혼자 태어나 잠시 누구와 어우러져 살다가 결국 홀로인 채로 이승을 하직하고 떠나는 나그네인 셈이다. 그저 잠시 부대끼며 웃고 울다가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 시에서 ‘너나 나나 우리 모두 홀로인 것을’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허공 여행 마치고 / 한 몸 대지위에 부서지며 / 산산이 흩어지는 고뇌/.....

 이 부분에서 절묘하게 시적(詩的) 메타포(metaphor)로 승화하고 있다. 시인은 이미 홀로이며, 홀로가 아니라는 이분법(二分法)의 등가논리(等價論理)로 분화하고 있다.

본래 시인은 외로운 법이다. 고독하고 슬프고 허무하고 더러는 죽음의 문턱까지 오가는 깊은 시름의 강물에서 인생을 얘기하고 삶을 논하곤 한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쓴다. 외롭고 적적하여 저 시린 가슴 밑둥치로부터 올라오는 처연(凄然)의 미로(迷路)에서 한 올, 또 한 올 시어(詩語)를 건져 시로 형상화한다. 고달프고 힘들 때면 눈물 하염없이 쏟을 수밖에 없던 아린 삶, 외로울 수밖에 없는 그 삶의 공간이 그녀를 시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자조적 공간이 문학이라는 항아리 학문으로 접어들도록 하였는지 모른다. 이래서 시인은 하늘이 내리고 환경이 시를 만든다고 했을까.

저 유명한 기도와 고독의 시인 릴케는 그의 명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우리는 고독하다. 우리는 잘못 알고 마치 고독하지 않는 듯이 행동한다. 그것이 전부다.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살아가는 존재로써의 자리는 절실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고독과 니힐의 늪에서 어떤 구원자를 갈망하면서도 또한 그 신을 부정하려는 면이 있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근원적 불안과 고독의 위기의식을 깨우쳐 주었지만 거기에 대응할 처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것이 약점이다. 인간은 결코 목적을 ?아 행동하는 사색인일 뿐, 필요는 있을지언정 결코 노예의 도구가 아니라는 자각 때문에 고독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사람 냄새 그리워

당신 품에 안기던 날

사랑이 아냐 이건

마음 배겨

서럽게 울었었지


떠난 후

이 통증은

당신을 사랑했나 봐


당신 없는 빈자리에서

내 할 수 있는 건

황소처럼 우는 일 뿐이네


새벽여명 어둠을 밀어내듯

옛 기억 하얗게 비워내고

과분한 향유였던 그댈 놓으며

난 다시 살기로 했어


                            -시 ‘그대 떠난 후’ 全文


 그리움을 겪은 사람은 그리움에 젖을 줄 알고, 외로움을 겪은 사람은 외로움을 알며, 사람 내음을 맡을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한다고 했다.

.....내 할 수 있는 건 / 황소처럼 우는 일 뿐이네/ 새벽 여명 어둠을 밀어내듯 / 옛 기억 하얗게 비워내고 / 과분한 향유였던 그댈 놓으며 / 난 다시 살기로 했어/

이처럼 비록 처연하지만 환희의 세계로 회생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선연하다. 시의 특징은 이처럼 표현의 레토릭(Rhetoric)의 기교에 따라 반전(反轉)의 미학(美學)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오, 신이시여! 참으로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지노니. 이 땅 위에 중견작가랍시고 살아가는 무기력한 나 자신이 이토록 답답할 수 가 있는가?


밤 새 바람결이 부드러워졌다


가려운 몸의 때를 벗기기 위해

아침을 거른 채 목욕탕을 갔다

“정기휴일”이란다

기분이 좋지 않다

목욕탕이 나를 밀어 내는구나


(中略)



감기 기운이 있어 동네 의원에 들렀다

진료를 기다리며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다가

반도 안 마신 커피 잔을 엎질렀다

커피마저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구나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넘어질 뻔

설움의 눈물 몇 방울

기어이 흘리고 말았다


고달픈 인생

고단한 나의 하루

하나님. 다 보셨죠?


                                    -  ‘우울한 날’ 중에서


아파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 아픈 이의 고통을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해도 마음만으로 알 뿐, 바닥을 기거나 온통 방안에 뒹굴어 보아야 그 참담함을 안다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육체적인 아픔이 있는 사람보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해 앓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지독한 아픔과 고통과 서러움의 산실을 겪어낸 ‘글로’ 최영옥 시인은 인동초(忍冬草)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아픔으로만 삭이지 아니하고 내일 희원(希願)의 들판으로 나서러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것이 시적 표현의 미학(美學)이다.


방파제에 몸 부딪고 돌아서며 통곡하던

철썩이는 그 소리는 인생들을 비웃는데

막소주 한 잔에 쏟아지는 마른기침


하늘까지 닿으려다 추락하는 파도는

부서지는 꿈이 슬퍼 하얗게 분노하고

그물 깁던 노인장은

먼 바다로 시선을 던진다


파도가 할퀴고 간 모래톱 그 자리에

뒹굴며 몸살 앓던 몽돌 한 쌍 보았지

내 상심 한 웅큼도 물살에 헹구고 싶다


너의 얼굴 모래톱에 이제는 묻으려 해

다시는 서성이지 마라

슬픈 흔적도 그리지 마라

하얀 여백으로 비어 있게 해 줘

더 이상 아프지 않게


                              - 시 ‘감포에서’ 全文


 위 시는 시인의 고향인 경주 근처의 감포 앞바다에서 쓴 시이다. 그녀의 깊은 슬픔이 가슴 저리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너의 얼굴 모래톱에 이제는 묻으려 해/ 다시는 서성이지 마라 / 슬픈 흔적도 그리지 마라 / 하얀 여백으로 비어 있게 해 줘 / 더 이상 아프지 않게 /

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별은 만남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그리움은 시인 자신이나 그를 위해서도 유익하지 않으니 비워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것도 어렸을 적 유년의 정과 애틋한 추억이 서린 고향 바닷가에서 말이다.



한 겨울 추위 속에

아버지 홀로 계신 시골집을 찾았다

걸음도 위태하신 팔순의 늙은 아버지는

딸에 대한 세모의 정을 삼겹살로 표현하신다


하루 세 번 다니는 완행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신 아버지의 장바구니엔

삼겹살 두 근

옥수수 식빵

순대 이 천 원 어치

당면 한 봉지

당신이 끼실 목장갑 한 켤레가 들어 있다


괴기 구워서 실컷 묵어라

다정한 목소리에 눈앞이 흐려오고

누런 벽지의 꽃무늬들은

통증처럼 흐느적거린다.


밤 깊은 시골 집

가랑잎 구르는 스산한 소리

간헐적인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할퀴는데

아버지의 나무껍질 같은 손을 만지며

코끝이 맵다


태어나고 늙고 죽는 인생의 이치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는

이다지고 냉혹한 것인가


                           -시 ‘아버지 2’ 全文


 고향 그리워 아버지 계신 시골집을 찾아 간 시인의 애틋한 부정(父情)을 정겹고 눈물겹게 담아낸 시이다. ‘글로’의 시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시편들이 여러 편 나온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녀가 예고도 없이 들이 닥친 질병으로 자리에 누웠을 때, 죽음 같은 딸의 절망과 아픔을 함께 한 분들이 바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팔순의 아버지시다. 지금도 늙으신 아버지를 뵐 때마다 불효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그녀는 울먹인다.

 저녁을 드시고 동네 사랑방으로 마실을 가셨던 시인의 아버지는 ‘어험’하는 기침 소리와 함께 붉게 취기가 오른 얼굴로 들어와 늘 누워만 있는 ‘글로’ 시인을 우두커니 내려다보곤 하셨단다. 한참을 그렇게 서 계시다가 털썩 주저앉으며 딸의 얼굴에 당신의 구릿빛 얼굴을 들이대고는 절규하셨다고 한다.


  "이눔아. 니는 언제쯤이나 일어나 걸어 볼래? 응 ? 이눔아...."


떨리던 아버지의 음성은 이내 흐느낌으로 이어 지셨고 기어이 산 같은 울음을 토해내고 마셨단다. 딸의 창백한 얼굴 위로 아버지의 굵은 눈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부정(父情)의 구곡간장 애 끓이는 아픔을 뉘라서 알랴만...... 

서산마루 

핏빛 노을은 언제나

슬픔의 전령이다


어둠의 코트자락 밀어내며

서둘러 창을 닫고

내 하루 마감하자

만삭된 그리움은

詩 하나 낳는다


                             -가 오다’ 全文




너 떠난 그 겨울 후

하늘색 변하더니

나른한 봄기운이

야산자락에 졸며 누웠다


진달래 망울 곰실거리는

산기슭 훈풍은

떠난 사람 못 잊는

여인에게 속삭인다


한 계절이 열리고 있다고


                                 - ‘또 다른 시작’ 全文


 위의 시 앞부분은 ‘가 오다’라는 작품이다. 서산마루 핏빛 노을은 언제나 슬픔의 전령이었지만 만삭된 그리움을 이제 시로써 토해낸다. 이 처럼 시인으로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 나가기를 간구하고 있다.

 ‘글로’ 시인은 시를 쓸 줄 안다. 그리고 시어를 고를 줄 하는 안목을 지닌 것 같다. 비유와 인유를 적절히 구사 할 줄 아는 메타포의 기교도 갖추었다.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아 계간 문학세상 신인응모작에서 당당히 경쟁을 물리치고 당선된 준족이다. 심사 때 서울대학교 구인환 교수(심사위원장)님과  윤원희 발행인이 공감대를 형성하며 최종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싹수(?)가 있어 보이는 시인이니 최영옥의 작품으로 결정합시다.”

 “예, 그러지요.”


 전원일치 합의제를 채택하는 문학세상 심사위원 일동은 최영옥 시인의 작품을 뽑아놓고 흡족해 했다. 시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어둡고 슬프기는 하지만 이를 희원(希願)의 샘으로 용해 할 수 있는 재치와 잠재력을 지닌 신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뒤의 시편 ‘또 다른 시작’을 보자.


 너 떠난 그 겨울 후 / 하늘색 변하더니 / 나른한 봄기운이 / 야산 자락에 졸며 누웠다/..... 여인에게 속삭인다 / 한 계절이 열리고 있다고 /


 그렇다. 아픔이여! 슬픔이여! 부디 나에게서 멀어져 가 다오.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시인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 나가는 ‘글로’시인의 행로에서 꿈틀대는 삶에의 희망을 느꼈다. 위에서 언급한 심사위원들의 추천의 변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인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작품에서 서정성을 바탕에 깔고 시를 이끌어가는 힘과 치환(置換)의 묘미를 살리며 상승시키고 있다.

재능이 농후해 보이는 신인이었다. ‘글로’최영옥 시인은 아픔과 시련을 신앙과 문학이라는 두 행로에서 시적(詩的) 델리카시(Delicacy)로 살려내고 있다. 이것은 ‘글로’ 시인이 시어(詩語)와 시재(詩才)의 적절한 압운(押韻)을 살려낼 줄 아는 기교의 메타포 시인이라는데 우리는 주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말라르메 시인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말했다. 또한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쇼도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 맛을 모른다.’ 고 말하지 않았는가. 아픔과 시련의 체험을 통한 현실에의 부합요소가 ‘글로’ 최영옥 시인의 시적詩的) 이미지네이션(Imagination)을 살려내고 있다.

또한 삶의 경험에서 얻은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하여 만들어내는 창조적상상(創造的想像)으로 말미암아 예술적 이미지네이션의 승화로 문장을 아름답게 소묘하고 있다. 예술은 어떠한 사실적 작품이라 하여도 현실 그대로의 재현이 어렵기 때문에 이미지네이션의 상호작용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늘 생성(生成)되고 또 멸실(滅失)되는 것

사실 우리 인간을 비롯하여 우주의 삼라만상은 생성(生成)이 있어 멸실(滅失)이 있고, 멸실이 있어 탄생이 있는 것이다. 야산의 하찮아 보이는 잡초나 나무도 가을이면 낙엽으로 떨어져 거름으로 변했다가 돌아오는 봄이면 다시 새싹으로 흙발을 헤집고 나와 푸르디푸른 잎으로 자라는 것이다. 지난 가을의 낙엽을 자양분 삼아 자연으로 힘차게 일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알진데 우리는 슬픔을 너무 과하게 느낄 필요도 기쁨을 크게 느낄 필요도 없다. 근심과 행복은 바람 같아서 수시로 들고 나는 것이다. 대저 세상사담여수(世上事潭濾水)와 같이 있는 듯 없는 듯 담담하게 대해야 한다.

슬픔과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최시인은 시를 써 왔고, 문학의 항아리에 그 아픔을 오롯이 고백함으로서 조금은 위안 삼지 않았을까? 또 어쩌면 내재적인 작은 행복감도 맛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글로’ 최영옥 시인에게서 봄날의 새순 같은 희망을 보았다. 희망은 불행한 이의 두 번째 영혼이다. 희망은 가능성에의 막을 길 없는 열정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은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직 사람의 마음가짐에 있어 화복은 사람이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눈물로 그려 진 시인의 삶! 좋은 글로 피어나리라!


나에게 보내온 시편들은 총 75편이었다. 그 시편들을 틈틈이 읽어보며 눈물을 찍어내곤 했다. 물론 내가 감성이 예민하고 정에 약한 위인인 탓이기도 하겠지만 ‘글로’ 최영옥 시인이 쓴 작품들은 가히 한 점 한 점 눈물로 그려낸 아련한 시편들이다. 어느 누가 이 시를 보고 난해한 시요, 감정의 이입이 결여된 시라고 할 것인가?

현실의 아픔은 위안의 편안한 강물로 이어지고 오늘의 고통은 내일의 환한 웃음 꽃으로 피어나 희원(希願)의 들판에 보무도 당당하게 걸으리라. 그녀는 시인의 말에서 “아파할 일 아직도 많으리라.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삶이지만 웃으리라. 두 눈에 눈물 그렁그렁 담고서 웃으리라.”고 썼다. 예쁜 볼우물이 깊이 패도록 애써 활짝 웃으며 시인의 삶을 당당하게 열어 갈 것이다. 아름다운 시편들을 만들어 가면서 말이다.

이제 ‘글로’ 최영옥 시인은 독실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시인으로 성장하여 아픔과 시련을 딛고 시적(詩的) 이미지네이션(Imagination)으로 승화되어 피어나고 있다. 아픔의 경험에서 얻은 여러 가지 요소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상상(創造的想像)에서 예술적 이미지네이션으로 성공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걸어야 할 길..... 시인의 길이다.

노동자는 일로써 산업사회에 이바지하고 학자는 연구로써 사회에 공헌하듯이 최영옥 시인은 이 사회의 양지 뜸에 아름다운 글로써 피어나리라.

다 같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글로’ 시인이여. 글로써 답하자. 우리 함께 잠시 소풍 길 나온 이 땅 위에 아름다운 글로써 시화원(詩花園)을 피우자!




                        정해 년 정월에


                              대한민국 중원 땅 문인산방에서

                                    영원한 보헤미안 ‘나은 길벗’ 김우영 쓰다.



 “천 사람이 한 번 읽는 시 보다, 한 사람이 천 번 읽는 시를 쓰자!”

                                  -나은 길벗의 어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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