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빈 교장선생님 명복을 빌며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 창작반 이송일
사람은 한 번 세상에 태어났다가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한이치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래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했느냐가 중요하다. 사회활동을 할 때 어떤 모습으로 활동했는가에 따라 그 평가는 달라진다.
임정빈 교장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와 함께 근무하면서 존경하고 따르던 교장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고창 출신으로 오랫동안 교육계에 종사하시다가 정년퇴임하셨다. 임정빈 교장선생님은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시고 초임에 고창에서 근무하셨다. 도내 여러 학교를 거쳐 전라북도교육청에서 근무하시다가 말년에 타향인 임실 오수중학교에서 근무하셨다. 나는 3년 동안 교장선생님으로 모셨는데 전주에서 자가용으로 함께 출퇴근을 했었다.
나는 교직생활 중 오수중학교 시절이 제일 행복했다. 교장선생님은 학생, 교사, 지역사회를 위하여 열정을 다 쏟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정성들여 심고 가꾸던 모습, 자기 집 화단에 있던 나무를 교정으로 옮겨와 학교를 아름답게 꾸미고 학생을 위한 헌신적인 모습이 멋지게 보였다.
오수중학교에 부임하셔서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자 교문에 화단을 조성하고 귀감이 되는 글을 새겨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 주시던 모습…. 학생을 사랑하고 교사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며 지역사회를 위하여 열심히 활동하시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교장선생님 같은 분이 계셨기에 교육계가 더욱 든든히 세워가는 것 같았다.
오수중학교에서 만 65 세로 정년퇴직하시던 모습이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 정년퇴직을 하신 그날 교장선생님의 품성을 느낄 수 있었다. 헌신적으로 본을 보여 살아오셨기에 많은 축하객이 찾아와 정녕퇴직을 축하 해주니 나 자신도 매우 기뻤다. 사람은 덕을 쌓고 살아야 한다는 산 교훈을 얻었다. 6학급인 학교에서 체육대회 때 고싸움, 민속놀이와 부채춤을 연출하게 하는 정렬을 보여 주기도 하셨다. 체육교사인 내가 운동장 정리 작업을 하면 항상 고맙다고 격려해 주셔서 많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교장선생님의 식사대접을 11번이나 받은 기억이 떠오른다. 정년을 맞이하시고 고창에 계실 때 찾아뵙고, 온천탕에서 등을 밀어드린 추억이 새롭다.
교장선생님은 효자이셨다. 가족 경사에 참석하시다가 교통사고로 아버님과 친척과 친구가 운명하는 사고를 당할 때 크게 상처를 입어 다리가 불편한 생활을 하셨다. 아버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에 공덕비를 세우고, 4방을 유리로 주변을 볼 수 있는 휴게실을 설계 하시여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게 하신 모습을 보고 효성스러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사시는 동네 어귀에 느티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있었는데, 그 나무에 이상이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산림조합에서 근무하던 내 친구를 소개하여 그 느티나무의 병충해를 구재해준 일이 있었다. 그 답례로 고창수박을 친구에게 선물 하면서, 나한테 까지 보내주신 분이었다.
2016년 8월 6일 장례식장에 도착해 보니 수많은 제자가 보낸 조화가 두 줄로 마주 보면서 고인의 은덕을 기리고 있었다. 자신을 낮추고 주위를 위해서 헌신적인 삶을 사노라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장선생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자들과 주민들이 교장선생님을 그리워하시는 모습에서 스승의 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지며, 자랑스러운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임정빈 교장선생님 이제 평안히 영면하십시오.
(2016. 8. 7.)
첫댓글 글의 오타가 있어서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정이 넘치는 이송일 선생님, 내가보고 느낀 체육교사는 강하고, 무섭고, 사나움만 있었는데 선생님은 체육교사와의 거리감이 너무 멀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