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배려는 타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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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해 드릴 노선은 지선으로 양시선(남시~안동), 개천선(신안주~개천), 박천선(박천~맹중리), 평남선(평양~진남포), 황해선(사리원~하성) 입니다.
양시선은 1939년에 다사도철도주식회사 다사도선으로 개업했던 노선의 일부인데요, 신의주의 외항인 다사도를 개발하기 위해 부설되었다가 전쟁 중에 국유화되었습니다. 지금은 평의선(평양~신의주)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개천선은 신안주와 개천을 잇는 철도로 1915년에 개통되었습니다. 만포선이 개통되기 이전까지는 이 철도로 평안북도의 석탄이나 목재를 실어날랐습니다. 당초에는 협궤(765mm)였지만 광복 이후 표준궤(1435mm)로 개궤되었고 전철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박천선은 경의선의 지선역할을 하는 노선으로 맹중리와 박천 약 9km를 잇는 노선입니다. 전쟁 이전까지는 1시간에 한 대꼴로 운행하고 있었지만 전쟁 이후 운행횟수가 줄었습니다.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북한의 최신 열차시간표(2002년)에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여객영업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평남선은 원래 경인선(1899년 개통)보다 오래된 노선으로 1894년 청-일 전쟁 당시 일본군이 남포항과 평양 사이에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개설한 진평선(鎭平線)이 그 시초입니다. 물론 진평선은 협궤로 부설되었고 청-일 전쟁 종료 이후 철거되었습니다만, 이후 1911년에 표준궤로 재부설하여 평남선이 되었습니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과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1945년 이전까지만 해도 평남선과 경인선은 열차운행 횟수가 비슷했지만, 경인선은 이후 전철화되어 1호선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반면 평남선은 하루 운행횟수가 3회 미만인 로컬선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평양과 남포, 서울과 인천 간의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통일 이후에는 복선화하여 평양지하철과 직결운행이 가능해지면 좋겠습니다.
황해선은 원래 조선철도주식회사의 사철이었지만 국유화되어 총독부 관할이 되었습니다. 원래 사리원-해주를 잇는 철도선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협궤라는 한계상 사리원~은파~하성~신원 구간을 신설, 표준궤로 재부설을 하다가 2차대전 종전 이후 공사가 중단되었고, 이후 북한 정권이 하성~신원 구간을 개통시켜 '황해청년선' 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에 전철화가 이루어진 북한의 중요 노선 중 하나입니다.
옹진선은 해주~옹진을 잇는 협궤 철도선으로 1936년에 해주~취야간 개통이 되고, 이후 1939년 말에 개통되었습니다. 이 노선은 자료가 없어 잘 모릅니다만 열차시간표(북한)에 나타나지 않는 걸로 보아 여객영업은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해선은 동해주와 해주항을 잇는 철도노선으로 현재도 전철화된 채 남아 있습니다만 여객영업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평양탄광선은 1911년에 대동강~승호리 구간이 평양탄광선으로 개업하고 이후 사철인 서선중앙철도주식회사가 승호리~북창간을 개업하였습니다. 전시에 승호리~신성천 구간은 국유화되어 평양탄광선으로 편입되었고, 신성천~북창 구간은 이후 사철로 남다가 해방 이후 북창~구장간이 개통되어 평덕선이 되었습니다. 이 철도로 인해 평안남도 일대의 탄전과 공업지역이 크게 발달하였고 탄광을 연결하기 위해 많은 지선들이 설치되었습니다.
장연선은 사리원~장연을 잇는 조선철도주식회사의 협궤철도로 황해선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국유화되었고 개궤가 이루어졌으며, 지금은 은파선(銀波線)으로 바뀌었습니다.
사해선은 원래는 황해선의 일부였습니다. 모두 협궤선로였고 황해도의 개발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리원~하성 구간이 개통된 이후에는 구 황해선은 사해선으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사이사이에는 지선인 내토선(화산~내토), 하성선(신원~구하성) 등이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 표준궤로 바뀌고 신원~해주간은 황해청년선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나머지 노선은 6.25 이후 폐선된 것 같습니다.
토해선은 토성(現 개풍)과 해주를 잇는 협궤철도로 조선철도주식회사가 경영하던 노선을 총독부에서 국유화한 노선입니다. 곡창 지대인 배천, 연안, 청단 등지를 이어주던 노선으로 해방 이후 토성~청단간을 남한측에서 관리해 오다 6.25 이후 토성~배천 간의 노반이 유실되고 대신 배천~은빛간 신선이 개통되어 배천선으로 바뀌었습니다.
경원선과 함경선입니다. 경원선은 1914년 일제의 의해 부설된 노선으로 함경선과 함께 한반도의 X자형 축 철도망을 형성하는 주요 간선 중 하나입니다. 이후 대륙 진출을 위해 일본 의회는 1938년 경원선과 함경선의 복선화를 결정하였고, 구간구간 복선화가 이루어집니다. 한편 1941년에 만주철도주식회사가 관할하던 청진~상삼봉 구간이 총독부 철도국으로 이관되었고 청진~고무산~무산간의 복선화가 이루어집니다. 무산은 철 생산의 중심지로 북한에 다녀오셨던 저희 학교 교수님 말에 따르면 철 성분이 많아 산이 매우 빨갛다고 합니다. 이 구간이 산악지형임에도 불구하고 복선화를 한 이유는 무산의 철을 청진항을 통해 빠르고 많이 수송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 구간은 복선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북한포함) 처음 전철화가 이루어진 구간은 태백선이 아니라 경원선의 복계~고산 구간이었습니다. 1944년에 이루어졌으니 20년 이상 앞선 셈이죠.
첫댓글 당시에는 일본 영토였던 만주의 무단장(牧丹江), 자무쓰(佳木斯)로 가는 열차도 존재했군요.
만주는 형식상으로는 일본땅이 아니었습니다. 일본과 일본의 식민지, 그리고 일본의 정치적 입장에 동조하는 동맹국들은 만주를 만주국의 땅으로 인정했습니다. UN이나 미국, 중국(당시는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 하의 중화민국) 등은 만주국을 인정하지 않았고, 중국 영토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만주의 '실질적' 영유권은 물론 일본에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형식적'으로는 일본의 입장들 따르든 UN의 입장을 따르든 일본의 영토가 아닙니다.
물론 형식상으로 만주국이라는 독립 국가가 존재했지만 만주국은 실질적으로 일제의 통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일본 영토였다고 보아야겠죠. 일제는 만주국의 황제로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추대했지만 허수아비 노릇만 시켰을 뿐입니다.
만주국은 별개의 국가였습니다. 사실상 일본군 산하의 파견군인 관동군에서 관할하였지만요. 그리고 현빈:안암급행님의 글에서 수정... 1930년대 당시에는 UN은 없었으며 만국평화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된 그곳이죠)
다만, 만주국 내에서도 만주국의 행정권이 미치지 않는 일본국의 치외법권지역인 '조계지'가 있었는데, 공식 표현으로는 '만주철도주식회사조차지'라고 합니다. 만주철도의 소유지에서는 한동안 일본법령이 적용되었던 시절이 있습니다만 1934년이었던가 이곳의 관할권도 만주국으로 반환되었습니다. 그 외에 만주국 내의 공식적인 일본영토로는 '관동주'가 있습니다. 요동반도 끝의 여순항은 1905년 러일전쟁 이후 1945년까지 일본국의 영토였습니다...
이 여순항 주변의 요동반도를 '관동주'라 하여 조선/대만/화태와 함께 일본의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관동주에는 총독부는 따로 없었으며 파병나온 일본군인 관동군이 직접 통치했습니다. 역시 총독에 해당되는 '관동도독'도 관동군의 최고사령관이 맡았지요.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관동주는 중국으로 반환됩니다 ㄳ
별개의 국가라고 하기엔 너무도 낯뜨거운 괴뢰국가였죠. 일본이 패망때까지 제 집같이 드나들던 나라였으니 일본이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별개라고 하기엔 워낙 허수아비 국가이니 제대로 정의하기가 곤란하군요. 어쨌든 국제연맹은 만주국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추축동맹과 바티칸 시국.. 정도? 만주국을 인정한 나라는 아주 극소수였습니다
하성선은 협궤로 해방 직전에 개통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