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암송을 잘 하기 위해서는 성경 암송의 목적과 함께 그 유익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상한 목적과 함께 자신이 하는 일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유익이 많을수록 하는 일에 자극을 받습니다. 열심을 가지고 그 일을 하게 됩니다.
고상한 목적과 유익이 함께 만날 때 열정이 불탄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묵상하는 중에 그가 골리앗 장군을 쓰러뜨리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받을 수 있는 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26절에 보면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죽이면 어떤 대우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골리앗을 향해 의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마음속에 두가지가 함께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골리앗과 싸우는 고상한 목적과 그 일을 이루면 자신이 누리게 될 유익을 함께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상한 목적과 유익이 함께 만날 때 우리가 하는 일은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게 됩니다. 열정에 불을 붙여주는 기름이 바로 고상한 목적과 우리가 누리게 될 축복입니다. 어떤 일은 당장에는 유익이 되지 않지만 두고두고 유익이 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에 관심을 갖기를 원합니다.
교육이 그렇습니다. 교육이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개발하는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개발에 투자하는 것은 정말 소중한 투자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개발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더욱 잘 할 수 있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기초를 다지는 성경 암송을 하면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저의 구주로 영접했던 고등학교 일학년 때 시작한 성경 암송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축복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 암송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1. 깊은 묵상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경 암송은 우리를 깊은 묵상의 세계로 인도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깊은 묵상은 성경 암송에서 시작됩니다. 암송한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려면 우리 내면에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 말씀을 담는 것이 성경 암송입니다. 말씀을 생각에 심고, 마음에 심으려면 성경을 읽고 암송해야 합니다.
묵상이란 '반추'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소가 풀을 먹은 다음에 꺼내어 다시 씹어 먹는 것을 반추라고 합니다. 말씀묵상을 하려면 먼저 소가 풀을 먹는 것처럼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우리 내면에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꺼내어 소가 다시 씹어 먹듯이 반추하는 과정을 거칠 때 말씀을 소화할 수 있게 됩니다.
음식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음식을 소화하는 것입니다. 음식 자체가 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이 소화될 때 우리 안에서 능력이 됩니다. 에너지가 됩니다. 기운이 됩니다. 생명이 됩니다. 소화된 음식이 피를 만들어 내고, 피가 곧 생명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말씀을 소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성경 암송을 많이 하면 할수록 깊은 묵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씨에 비유하셨습니다(눅 8:11). 말씀은 작은 씨처럼 역사 합니다. 씨앗은 가능성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잠재력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생명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씨앗 속에는 풍성한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작은 사과 씨앗 속에는 수천 그루의 사과나무가 담겨있습니다. 작은 호박 씨앗 속에 담긴 수천 개의 호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호박 하나 속에 담긴 수많은 씨앗을 생각해 보십시오. 생명의 신비는 씨앗 속에 담겨 있습니다.
씨앗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씨앗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씨앗을 생명처럼 여깁니다. 씨앗을 소유한 자는 미래를 소유한 자입니다. 말씀을 암송한다는 것은 미래를 위해, 충만한 씨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부요는 말씀의 부요함에 있습니다. 그 내면에 얼마나 많은 말씀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하나님의 사람의 영적 부요를 결정합니다.
말씀으로 양을 먹이는 목자의 풍성함은 소유한 말씀의 풍성함에 있습니다. 양의 행복은 풍성한 말씀을 소유한 목자 곁에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양을 먹일 수 있으며, 양들을 얼마나 건강하게 양육할 수 있느냐는 목자가 얼마나 풍성한 말씀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는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충만해 지는 길은 말씀의 씨를 많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씨를 소유하는 것이 성경 암송입니다. 성경 암송은 씨앗을 우리의 마음 밭에 심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는 심은 것을 거둡니다. 심은 종류대로 거둡니다. 농부는 심지 않은 것은 거둘 수 없습니다. 또한 심은 것보다 많은 것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농작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미래는 그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얼마나 많이 심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많이 심을수록 많이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농부는 씨앗을 심고 가꾼 후에 우리에게 열매를 줍니다. 씨앗을 심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 깊은 묵상입니다. 소는 풀을 먹은 후에 사람들에게 젖을 줍니다. 풀이 젖이 되는 과정이 깊은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소가 풀을 먹는 것과 같이 성경 말씀을 암송하고 소가 반추하듯이 깊은 묵상을 통해 젖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때 말씀은 신령한 젖이 되는 것입니다(벧전 2:2). 딱딱한 씨와 같은 말씀이 깊은 묵상으로 풍성한 열매가 되고, 깊은 묵상을 통해 순전한 젖이 되는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와 신령한 젖을 주는 묵상의 시작은 성경암송임을 기억하십시오.
2. 말씀의 꿀맛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 암송을 꾸준히 하게 되면 말씀의 꿀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시편 119편 131절에 보면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말씀을 사모하되 입을 열고 헐떡이듯이 사모했던 것은 그가 말씀의 맛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젖을 먹기 위해 입을 열고 헐떡이듯이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린 새들이 어미 새가 가져다 준 먹이를 먹기 위해 입을 열고 소리를 지르며 받아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음식의 맛을 알고, 식욕이 강렬해지면 음식을 사모하게 됩니다.
말씀의 맛을 아는 사람은 말씀을 강렬하게 사모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며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9, 10).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니이다"(시 119:103).
저는 성경 암송을 통해서 말씀의 꿀맛을 경험했습니다. 성경 암송을 처음 시작할 때는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말씀의 맛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계속해서 암송하는 중에 말씀의 맛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암송한 후에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말씀의 깊은 세계를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깨달음과 함께 진리의 세계가 열리면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둔함이 점점 사라지고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이 고상한 낙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고 말씀했습니다. 어느덧 다윗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 것처럼 말씀도 많이 암송하고 묵상할수록 더욱 잘 먹게 됩니다. 말씀의 맛은 어느 경지에 오르면 더욱 맛이 있습니다. 갈비탕이나 곰탕의 맛은 오랫동안 삶은 국물에서 제 맛이 납니다. 그와 같이 성경 암송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오랫동안 마음에 묵상하게 되면 진국처럼 제 맛이 납니다. 또한 오래 씹을수록 음식의 맛을 더욱 느끼는 것과 같은 은혜를 성경암송을 통해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누리는 축복은 말씀의 맛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고 말씀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말씀이 마음에 가득찬 사람은 설교를 들을 때 더욱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의 지식이 증가하면 말씀에 대한 흥미도 증가합니다. 그리고 보다 더 깊이 알고 싶어집니다. 똑같은 설교를 한자리에서 듣는 다 할지라도, 말씀을 많이 암송하고 있는 사람과 말씀을 조금 암송하는 사람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 그런 고백을 하게 됩니까? 보통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할 때는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입니다. 말씀을 알긴 알지만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될 때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설교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에 대해 분명한 체계를 잡아주거나,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줄 때 은혜를 받습니다. 또한 설교를 통해 새롭게 기억하고 싶은 진리를, 성령님이 생각나게 해 줄 때 은혜를 받습니다. 성경 암송은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을 잘 깨닫도록 우리의 영적 감각을 개발시켜주는 은총의 도구입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깊은 깨달음의 낙을 누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꿀, 곧 송이 꿀보다 더 맛이 있습니다.
3. 성경통달의 기초를 쌓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경 말씀을 통달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는 성경 전체를 통달하고, 때를 따라 적절하게 말씀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하고 통달한 성경 교사와 영적 안내자를 존경하고 따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 통달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경 통달이란 성경 전체를 연결시키는 능력입니다. 성경의 짝을 찾아 연결시키고, 성경의 금맥을 찾아 주제별로 연결시키는 것이 성경 통달입니다. 성경의 맥을 잡고, 흐름을 발견하는 작업이 성경 통달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경은 쪼개는 것이 아니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연결할 때 기적이 나타나고, 관련을 지을 때 말씀이 살아 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부딪쳐 오게 됩니다.
깨달음이란 성경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산발적으로 알았던 진리가 구슬을 꿰듯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을 관통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는 성경을 통달한 설교의 모델입니다. 스데반은 평신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통달했습니다. 그는 구약의 핵심 되는 말씀을 다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성경의 맥을 알았고, 흐름을 알았습니다. 스데반은 그가 암송한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구속의 역사를 증거했습니다. 스데반은 바울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람입니다. 바울에게 끼친 영향력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을 연결시키는 성경 통달의 원리였습니다.
성경 통달은 성경의 주제인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을 통달한 사람은 모든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보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통달한 사람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사람입니다(고후 10:5).
성경 통달이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이십니다(골 1:27). 하나님의 비밀은 복음입니다(엡 6:19).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실 때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마 13:34, 35). 하나님의 비밀은 교회입니다(엡 5:32).
성경 통달이란 성경의 점진적인 계시를 깨닫는 것입니다(히 1:1, 2). 구약의 말씀이 신약에 어떻게 점진적으로 계시되는 것인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 통달이란 구약에서 신약을 신약에서 구약을, 전체로 부분을 부분에서 전체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경 통달의 뿌리는 성경 암송에 있었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통달하셨고, 구속사적으로 연결시키셨습니다. 성경 통달이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하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는 성경 암송을 위해 대가를 지불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인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성경 통달은 하나님의 사람의 목표입니다.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이 성경 암송인 것입니다.
4. 성경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인격은 그의 가치관에 의해 평가될 수 있습니다. 가치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즐거워하고, 가장 많이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정직하게 점검할 수 있습니다. 한 주간을 돌아보면서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무슨 책을 읽었으며, 무엇을 즐거워했는가를 점검해 보십시오. 누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어디에 가장 많은 물질을 투자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원리는 변화하지 않지만 가치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교육가들은 사람이 가치관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는 어린 시절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모태에서부터 5살까지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일찍 손을 쓰지 않으면 자녀들은 세상적인 가치관속에 살게 됩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을 일찍부터 심어 주는 것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선물입니다.
자녀들에게 성경 암송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의 일평생에 축복이 됩니다. 성경 암송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가치란 모범을 통해 전수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를 두고,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여 줄 때 자녀들은 말씀을 존귀히 여기게 됩니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말씀이 그들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들의 안내자가 되게 됩니다.
성경 암송은 자녀들의 영혼 깊은 곳에 성경적인 가치관을 심어줍니다. 그런 면에서 유태인의 자녀 교육은 훌륭합니다. 그들은 일찍부터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을 그들의 마음에 새겨 주었습니다. 잠언 22장 6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민족은 고난의 민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 형통, 성장, 성취 그리고 축복에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안전에 대한 보장 때문입니다. 그것이 결코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거나 정당치 않은 방법으로 쟁취될 때 대단히 위험하게 됩니다.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민족이 성서 한국, 선교 한국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가치관을 형성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이란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한 말씀과 영원한 인간의 영혼에 최상의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세계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나라에 두어야 합니다. 애미 카미이클은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가를 살피라. 그것이 곧 자신의 참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적인 것보다는 천국의 것에, 일시적인 것보다는 영원한 것에,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 성경적인 가치관입니다. 물론 우리는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일상적인 삶속에서 깊은 영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데 필요한 성공이나 성취를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성경적인 가치관을 형성하십시오. 화려한 꽃과 같은 인기보다는 예수님을 닮은 인격을 사모하십시오. 성공을 넘어서 섬김을, 성장을 넘어서 성숙을 추구하십시오.
5. 말씀으로 연단된 지성을 갖게 됩니다.
뿌리깊은 영성은 지성에 기초합니다. 영성개발은 지성개발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앎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아는 것만큼 느끼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지성이 감성에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의 감정은 생각에 영향을 받습니다. 또한 지성이 의지에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도 우리의 지성에 근거합니다.
지성이란 안다는 것 이상입니다. 안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알고, 온 몸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앎이 몸으로 체득될 때 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된 지식의 지평을 넓혀갈 때 우리 인생의 지평은 넓어져 갑니다. 지식의 지평을 넓혀 가는 일이 지성개발입니다.
지성은 단순히 지식의 소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성은 의식능력입니다. 지성은 깨어있는 능력이며, 세심한 주의력입니다. 지성은 깊이 보고, 본질을 보는 능력입니다. 지성은 영적인 민감성입니다. 훌륭한 지성은 사물을 마음의 창으로 보고, 영혼의 창으로 봅니다.
켄 가이어의 말처럼 영적인 민감성을 개발하는 훈련은 가장 혹독한 훈련중에 하나입니다. 영적인 민감성은 지각을 개발함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지각은 딱딱한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함으로 분별력을 키우고 예민함을 키울 때 개발됩니다. 성숙과 미숙의 차이는 바로 지각개발에 달려 있습니다. 히브리서 5장 14절을 보면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미숙한 사람은 지각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하고 또한 훈련합니다.
지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훈련해야 합니다. 생각을 길들여야 합니다. 생각을 날카롭게 다듬어야 합니다. 생각을 훈련하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 성경 암송의 훈련입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말씀을 생각에 새기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훈련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풍성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지각이 개발되면 지성의 감각이 발달하게 됩니다. 지성의 감각이 발달할 때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깊이 있게 보게 됩니다.
세상은 언제나 같습니다. 다만 보는 눈이 다를 뿐입니다. 보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지성이 개발된 사람은 작은 들풀 하나가 떨어질 때 우주가 떨리는 것을 봅니다. 작은 씨앗 속에서 수많은 열매를 보고, 씨앗 하나를 심으면서 거대한 숲을 봅니다. 작은 물방울에서 대양을 보고, 모래 한 알속에서 영원을 봅니다.
지성이 개발된 사람은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그 사람의 세계는 누구의 세계보다 풍부합니다. 그의 경험은 누구의 경험보다 인상적이고 매력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세계는 우리 각자가 만드는 것입니다. 그 세계의 풍요함과 생명력은 우리 지성의 풍요함과 생명력에 달려 있습니다.
지성 개발은 언어 개발로부터 시작됩니다. 언어를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지성지수가 높습니다. 그러므로 지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단어를 많이 익혀야 하고, 다양한 언어를 소유해야 합니다. 모든 언어의 뒤에는 언어가 담고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언어를 많이 알고, 지성이 개발되면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을 많이 암송하고 있는 사람은 다양한 언어를 소유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지성이 점점 개발됩니다. 깊이 생각하고 분별력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 됩니다. 성경 암송은 지성 개발의 열쇠입니다.
6. 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누리는 축복은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저의 가장 행복한 시간은 성경 암송을 통해 제 마음에 품은 말씀을 꺼내어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만 해도 제게 기쁨입니다. 그런데 그 묵상 중에 지혜까지 얻게 되면 최상의 환희를 맛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최고의 낙은 지혜를 통해 얻게 됩니다.
우리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거나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고상하고 고고한 낙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낙이 바로 지혜의 낙입니다. 잠언 10장 23절은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지혜로 낙을 삼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은 지혜의 원천입니다. 말씀을 내면에 많이 소유한 사람은 지혜의 저수지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지혜의 저수지에서 지혜를 끌어올리는 작업이 말씀묵상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 속에 모든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지혜는 세상에 어떤 축복과도 비교할 수 없음을 성경은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언 3장 15-17절에 보면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명철한 자요, 강한 자입니다. 잠언 24장 3-5절을 보면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모습속에서 지혜의 중요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예수님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골 2:3). 바울도 고린도교인들에게 지혜에 장성한 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
지혜는 세상의 꾀와 다릅니다. 지혜는 수직적입니다. 꾀는 수평적입니다.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꾀는 마귀적입니다. 지혜는 영적이며, 꾀는 육적입니다. 지혜는 원시적인 안목을 가졌다면 꾀는 근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의 핵심은 분별력입니다. 선악을 분별하고, 때를 분별하고, 장소를 분별하고, 위치를 분별하고, 언어를 분별하고, 사람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층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변함이 없는 삶의 원리입니다. 지혜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문제의 핵심을 보고, 문제 속에서 해결책의 씨앗을 보는 것입니다. 위기를 맞이할 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순발력입니다. 순발력을 키우는 것이 바로 성경 암송입니다. 암송으로 훈련된 지성과 묵상으로 소유하게 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해도 지혜롭게 대처합니다. 올바로 분별하고, 선택하고, 결단하게 됩니다.
지혜는 환경을 초월해서 승리할 수 있는 형통의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승리의 비결도 지혜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했을 때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했습니다(신 34:9). 성령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여호수아속에 담겨 있는 말씀을 통해 지혜를 주심으로 그를 형통케 하셨던 것입니다.
7. 지혜의 우물인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인생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살았던 현인들과 위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세계를 탐구했고, 마음을 사용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고, 인간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는 것이 성경 암송입니다. 신명기 6장 6절에 보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기우려야 할 명령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길 때 우리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읽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의도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눈을 갖고, 하나님의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의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가장 소중한 것을 감추어 두셨습니다.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을 마음에 담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활동 무대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모략이 있습니다. 마음속에는 지혜의 우물이 들어 있습니다. 잠언 20장 5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가장 강한 자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다스리는 자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탁월한 인물들은 마음의 세계, 의식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했습니다. 특별히 의식아래 있는 무의식 즉 잠재의식의 세계를 연구했습니다. 또한 잠재의식을 넘어선 초의식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잠재의식이 우리 내면에 깊이 감추어진 의식이라면 초의식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의식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초의식이란 영감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초의식은 하나님의 지혜, 우주적 지혜를 담고 있는 의식입니다. 잠재의식보다 더 탁월한 의식이 초의식입니다. 초의식은 신비로운 영감의 세계입니다. 영감의 세계로부터 세상의 꾀가 아닌 지혜를 얻게 됩니다.
영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침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집착을 버리고 회개함으로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고 짧은 말씀을 집중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초연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창세로부터 내려오는 무한한 하나님의 지성과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지혜와 만나게 됩니다. 영감과 무한한 지혜는 침묵과 명상과 묵상의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입니다.
마음의 세계는 신비로운 세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는 순간, 예수님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골 2:3). 또한 예수님을 모시는 순간, 지혜의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게 됩니다(사 11:2). 우리가 말씀을 읽고 암송하는 순간, 지혜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지혜의 우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물은 사용하지 않으면 말라버립니다. 우물은 좋은 땅의 수맥으로부터 물을 끌어 드리는 것입니다. 우물을 많이 길러내면 수맥이 점점 열리고 커져서 우물이 더욱 풍성해 집니다. 우물은 사용함으로 마르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음으로 마르게 됩니다.
지혜의 우물이 차고 넘치게 하는 길은 성경을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암송하게 되면 우리 내면의 우물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내면에 있는 지혜와 암송한 말씀의 지혜가 만나면서 또 다른 지혜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 지혜는 말씀을 묵상할 때 더욱 깊어집니다. 그 깊어진 지혜를 길러내는 두레박이 묵상입니다. 성경 암송을 하면 할수록 지혜의 우물은 깊어집니다. 지혜의 우물은 더욱 풍성해 집니다. 성경 암송과 묵상을 통해 지혜의 우물인 마음에서 모든 지혜를 길러내시는 지혜자가 되시길 빕니다.
8. 감성지수(EQ)가 개발됩니다.
성경 암송은 지각을 연단 함으로 지성을 개발시켜 줄뿐만 아니라 감성을 개발시켜 줍니다. 감성개발은 우리의 내면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좋은 감정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좋은 감정은 좋은 관계를 맺는 열쇠입니다. 감성 개발은 마음을 개발하고, 마음의 정원을 잘 가꾸는 것입니다. 성경 암송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신 6:6).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마음의 세계속에 말씀의 씨앗을 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암송에 깊이 들어가면 마음의 세계를 이해하게 됩니다. 마음의 세계를 이해할 때 감성을 잘 개발할 수 있습니다.
하버드의 심리학 교수 대니엘 골맨은 "감성의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는 감성의 지능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인생에서 승리하는 것은 지성지수보다 감성지수가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일을 성취한 사람들을 연구하다가 그들은 아이큐가 높기보다는 감성지수가 높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감성지수의 구성 요소를 자기 절제, 동정심, 사랑, 인내, 부지런함, 양보, 정직성, 창조력 등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감성을 잘 사용하면 지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깨달음의 세계는 지성의 세계라기 보다는 감성의 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깨달음의 세계는 성화된 감각의 세계입니다. 영감의 세계이며, 지혜의 세계입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연결되고 이해되는 세계가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한 순간에 이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달음은 마음을 잘 가꾼 사람들이 경험하는 신비로운 경험입니다.
깨달음이란 마음이 청정하고 고요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맑아지면 그 마음에 온 우주가 한 순간에 비추이게 됩니다. 산발적으로 알았던 진리가 한 순간에 연결되어 마음에 들어오게 됩니다. 깨달음은 조용한 명상과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입니다. 깨달음은 특정한 사람만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갈망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습니다(시 107:9)
감성지수가 높다는 것은 내면세계에 질서가 잡혀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담겨 있는 마음을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소유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언 4:23에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키고, 마음의 감정을 개발하는 것은 지혜 중에 지혜입니다.
감성지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는 능력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분별하고, 다스리는 것은 감정지수의 핵심입니다. 감성이 개발되면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게 됩니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도 잘 이해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의 승리는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이기는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앞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앞서는 데 있습니다. 세상을 정복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정복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있습니다.
인생의 승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고(잠 16:32),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있습니다. 성경 암송은 바로 감정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의 기술입니다. 모든 감정의 뿌리는 생각에 있습니다. 성경 암송은 감정에 영향을 주는 생각을 다스림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말씀을 통해 긍정적인 감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감성을 개발하는 가운데 승리자가 되십시오.
9. 염려를 극복하게 됩니다.
인생은 무엇에 사로잡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성경 암송은 우리를 말씀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성경 암송은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에 하나가 선택의 축복입니다. 선택의 능력을 잘 사용할 때 우리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생각 중에 하나는 염려하는 마음입니다. 염려는 두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염려는 잘못 선택한 생각으로 부터옵니다. 염려하는 생각을 극복하고 정복할 수 있는 영성 훈련은 성경 암송입니다.
깊은 영성은 충만한 현재 속에 사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Here and Now)"가 영성 생활의 본질입니다. 영성 생활의 핵심은 과거의 노예가 되지 않고, 다가오는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충만한 현재 속에 산다는 것은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뿐만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위해 오늘을 잘 가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과거로부터 온전히 자유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전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과거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억력을 주신 것은 과거를 회상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충만한 현재를 산다는 것은 과거의 교훈을 배워서 오늘을 지혜롭게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다가올 미래를 위해 오늘을 잘 가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래를 걱정하는 것과 미래를 위해 오늘을 가꾸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충만한 현재를 살도록 방해하는 것이 염려입니다. 염려는 현재의 문제가 아닌 과거의 문제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문제를 생각하며 걱정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꿈꾸는 자의 장애물입니다. 염려가 많은 사람은 꿈을 성취하지 못합니다. 꿈을 성취한다는 것은 모험하는 것입니다. 도전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염려가 많으면 진취적인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염려에 사로잡히면 인간은 약해집니다.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도전하고 모험하는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염려는 건강을 해칩니다. 많은 질병이 염려에서 옵니다. 질병보다 더 해로운 것은 질병에 대한 염려입니다. 염려는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행복은 감정입니다. 행복감을 통해 우리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염려는 행복감을 빼앗아 가고 인간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듭니다. 행복은 내면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염려는 내면에 어두움을 던져 줍니다.
염려가 심각해지면 습관이 됩니다. 염려는 잘못된 마음의 습관입니다. 염려의 습관이 반복이 되면 나중에는 염려에 중독 되게 됩니다. 염려는 거대한 고목을 쓰러뜨리는 벌레와 같이 거인을 쓰러뜨릴 수가 있습니다. 염려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성경 암송을 통해 생각의 흐름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심층에 염려의 문제가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마 6:25).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염려는 비생산적이며, 비신앙적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암송함으로 염려하는 생각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염려의 뿌리는 생각에 있습니다. 염려하는 생각을 물리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말씀은 마태복음 6장 25-34절, 요한복음 14장 1절, 그리고 빌립보서 4장 6-7절의 말씀입니다. 사단이 염려로 공격할 때 오히려 염려를 지치게 하고, 염려를 무력하게 만드는 말씀으로 공격해야 합니다. 날카로운 말씀의 검으로 염려를 물리쳐야 합니다. 염려는 말씀으로 능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10. 마음의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성경 암송을 하면 평강의 복을 받게 됩니다. 마음의 평강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축복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 염려입니다. 염려는 마음을 나누어 놓습니다. 목을 조이듯이 우리 인간을 괴롭힙니다. 염려가 만들어 내는 것이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성경 암송은 마음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평강을 얻도록 도와줍니다.
저는 염려, 불안, 그리고 두려움과 같은 감정이 일어날 때 성경을 암송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늘 마음에 두면서 기도하는 말씀은 빌립보서 4장 6-7절의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음에 평안이 아닌 염려가 찾아 올 때 우리는 제일 먼저 그 원인을 분석해야 합니다. 그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정말 하찮은 것을 가지고 염려할 때가 있습니다. 그 원인을 밝히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문제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염려를 드러내어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면 염려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비밀은 감추어져 있을 때 힘을 발휘하지만 드러나면 무력해집니다. 염려도 우리 마음에 감추인 비밀과 같습니다. 염려하는 것을 드러내어 말씀의 빛 아래 비추면 염려는 한 순간에 독이 빠진 독사와 같이 되어 버립니다.
염려가운데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때는 기도를 통해 그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전능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짐을 맡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대신 감당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짐을 맡기는 순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짐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염려의 원인이 불순종의 문제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순간, 하나님의 평강이 강물처럼 우리 안에 넘치게 됩니다. 이사야 48장 18절에 보면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평강을 베푸십니다. 이사야 26장 3절에 보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입니다. 염려가 찾아올 때 말씀을 암송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염려를 하나님의 평강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우리 마음이 말씀으로 충만해 지면 염려는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도록 하는 길은 주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골로새서 3장 15절의 말씀을 경험해 보시길 빕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1. 심력이 강화됩니다.
인생에서 승리하려면 강한 마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심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인생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속에 있습니다. 전쟁에 나간 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담력입니다. 강한 심력입니다. 모든 싸움의 승리와 실패는 먼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에서 이기면 승리하고, 마음에서 지면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 장애물은 우리를 공격하는 두려움입니다. 성경 암송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두려움은 생각에서 옵니다. 생각의 초점을 잘못 맞출 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존재임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과업을 맡기실 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전쟁에 능한 용사였던 여호수아도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두려웠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가나안 정복의 과업앞에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반복해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6절에 보면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수아 1장 7절에 보면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수아 1장 9절에서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과업을 앞에 놓고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며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여호수아의 마음판에 '담대하라'는 말씀을 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두려움을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약속을 붙잡고 전쟁에 나가 승리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승리자의 공통점은 담대함, 자신감, 그리고 확신입니다. 담대함은 승리를 가져오고, 큰 상을 얻도록 도와줍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큰 상을 얻는 담대함은 믿음을 통해 얻게 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얻게 됩니다(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말씀을 암송할 때 믿음이 강해지고 심력도 담력도 강화됩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두려워했습니다. 용기란 두려움 중에도 전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기는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힘입니다. 에머슨의 말처럼 다른 사람보다 5분 더 버티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그 버틸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해주는 것이 성경 암송입니다.
용기가 필요할 때는 특별히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을 암송하고 힘을 얻으십시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당신이 암송한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에게 믿음을 주고, 담력을 줄 것입니다. 심력을 강화시켜서 죽음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줄 것입니다.
12. 학습능력이 증진됩니다.
역사를 움직인 인물들은 평생학습자로 살았습니다. 새 천년은 지식혁명시대입니다. 지식을 생명처럼 여기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를 소유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소유한 사람을 찾아갑니다. 지식을 단순히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창출해 내는 지식 생산자를 찾아갑니다. 새시대가 말하는 참된 실력이란 지식을 축적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지식을 생산하는 창조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과업을 성취하려면 지식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하나님이 맡기신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지적, 인적, 재정적, 그리고 영적인 자원을 동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평생학습자로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21세기를 이끌어 갈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평생학습자로 살 수 있는 학습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21세기의 문맹자는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학습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문맹인 것입니다. 앨빈 토플러는 "21세기 문맹자는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하고 교정하고 재학습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고 말했습니다. 평생학습자로 사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학습능력입니다. 학습기술입니다. 학습능력을 가진 사람과 갖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는 실로 엄청납니다.
처음에는 일정한 목표를 향해 두 사람이 같이 출발합니다. 그러나 학습능력을 갖춘 사람은 차를 타고 가는 사람과 같고, 학습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비슷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평생학습자로 살게 하시고 학습능력을 어릴 적부터 배양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교육헌장이 신명기 6장에 나옵니다. 교육헌장의 핵심은 어릴적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6-7절을 보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우수성은 어릴 적부터 성경을 암송하고 배우면서 학습기술을 터득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차세대 지도자로 세웠던 여호수아는 평생학습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모세에게 배웠고, 또한 그 배운 것을 따라 살았습니다. 여호수아 1장 7절을 보면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명한 율법이라고 강조합니다. 여호수아는 학습에 탁월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말씀묵상을 통해 그 학습을 깊게 했습니다. 학습의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요소는 기억력, 종합적 사고력, 창의력, 그리고 판단력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기억력입니다.
기억력으로부터 종합적 사고력이 나오고, 기억된 아이디어로부터 창의력이 생깁니다. 또한 기억된 지식과 정보를 비교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가운데 판단력이 생깁니다. 모든 교육의 기초는 암송에서 시작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와 개념을 암송하는데서 교육은 시작됩니다. 배움이란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이 없이는 배움이 없습니다. 기억한 것을 회상해서 사용함으로 우리는 인생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성경 암송은 기억력을 배양시켜 평생학습자로 살 수 있는 학습능력을 증진시켜 줍니다.
13. 집중하는 거룩한 습관이 개발됩니다.
인생을 승리롭게 살아가는 데 집중력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중해서 일해야 성공합니다. 집중은 성취의 원동력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면서 위대한 일을 성취한 사람은 없습니다. 뜻한 바를 성취하려면 한 우물을 파야 합니다. 한 우물을 파되 물이 나오기까지 파야 합니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집중력입니다.
집중력이 없으면 공부도 잘할 수 없습니다. 집중력이 없이는 지각을 개발할 수 없습니다. 기억력과 창의력도 집중력이라는 터전에서 자랍니다. 집중력이 없이는 문제를 잘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비결도 집중력에 있습니다.
성경 암송은 집중력을 개발하도록 도와줍니다. 성경 암송은 뜻은 정한데서 시작됩니다. 뜻을 정한다는 것은 집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뜻을 정한다는 것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다른 것들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우리는 성경 암송을 통해 집중하는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암송은 짧은 한 말씀을 집중해서 마음에 새기는 일입니다. 짧은 말씀을 집중해서 암송할 때 몰입의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성경 암송을 집중해서 하게 되면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하려고 하는 잘못된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탁월함은 습관에 의해 결정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에 따라 판명된 존재다. 따라서 우수성이란 단일 행동이 아니라 바로 습관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습관에 의해 결정됩니다. 인간은 반복적인 연습에 의해서 대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탁월함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습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습관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동안 반복적인 삶의 패턴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하나 하나 엮어서 거미집을 만드는 것 같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엮어져서 형성되는 것이 습관입니다. 거룩하고 좋은 습관은 우리의 삶에 축복이 되지만, 나쁜 습관은 인생을 파멸로 인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습관을 좇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회당에 가셔서 성경을 읽으셨습니다(눅 4:16).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막 1:35). 또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눅 22:39). 사람들은 예수님의 삶의 거룩한 습관을 알았습니다. 누가는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눅 21:37, 38)고 말씀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우리도 예수님처럼 거룩한 습관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성경암송을 통해 형성할 수 있는 거룩한 습관은 집중하는 습관입니다. 집중하는 습관은 집중력을 강화시켜 줍니다. 집중력은 생각을 분산시키지 않고 정신을 응결시키는 능력입니다. 집중력은 부단한 훈련을 통해 충분히 증진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집중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시도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성취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취는 집중의 열매입니다. 큰 일을 작게 나누어서 집중할 때 큰 일도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습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집중하는 습관을 키우십시오. 당신이 성경 암송을 통해 터득하게 되는 집중하는 습관은 당신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14. 의지력이 강화됩니다.
인생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의지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의지력은 탁월함에 이르는 능력이며, 승리의 비결입니다. 우리가 향기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성과 감성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의지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와일드(R.W. Wilde)는 "의지란 두 가지 이상의 목표 가운데서 추구해야 할 것을 한 가지 선택하고, 일단 선택하고 나면 행동으로 끝까지 관철시키는 마음의 작용이다"고 말했습니다. 의지란 선택이나 결정을 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선택하고 결단한 것을 행동에 옮기는 힘입니다. 의지력을 우리는 다른 말로 끈기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동물은 충동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충동을 넘어서 의지를 따라 움직입니다. 사람이 미숙할 때는 어린아이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하지만 성숙해지면 훈련된 의지를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인생의 문제는 실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쉽게 포기하는 데 있습니다. 실패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포기입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끈기입니다. 조지 모리슨은 "우리는 끈기 있는 일관성으로 승리를 얻는다. 우리는 어떤 화려한 방식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끈기 있는 지속성으로 이긴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떤 조용하면서도 '눈부신 끈기'가 모든 성자들의 표식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성경 암송 훈련을 통해 의지력를 강화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의지력은 훈련에 의해 강화됩니다. 성경 암송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지속성과 일관성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인격은 지속성과 일관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속성과 일관성을 소유한 사람을 인격자라고 부릅니다. 그 사람은 믿음직스럽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요동치 않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가 뜻한 바를 이룹니다. 지속성과 일관성은 탁월함에 이르는 핵심요소입니다.
지속성과 일관성있는 사람이 되려면 의지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의지력을 강화하려면 의지가 어떻게 움직이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의지는 마음의 영향을 받아 움직입니다. 의지력은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영감입니다. 영감은 마음의 생각을 자극합니다.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 하는 것이 동기부여입니다. 영감은 생각을, 동기부여는 행동을 자극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을 강요하기보다 적절한 동기를 부여합니다. 생떽쥐베리는 "만약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으면, 사람들을 불러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등의 일을 하지 말아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고 말했습니다. 동기부여란 사람들이 배를 짓도록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의지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뚜렷한 목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우리 마음속에 불타는 열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의 의지력은 강화됩니다.
저는 성경을 지속적으로 암송하면서 의지력을 강화시켰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제 마음에 주신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의지력을 강화시켜주는 성경을 암송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 9장 23절의 말씀은 언제나 제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또한 의지력을 강화시켜 주는 말씀으로 히브리서 10장 38절, 야고보서 5장 11절, 디모데후서 2장 10절, 12절 말씀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의지력을 강화함으로 승리자가 되십시오.
15. 지속적인 자기 개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교육헌장을 주신 것은 지속적인 자기 개발을 위해서입니다.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주면 하루를 살 수 있지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을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시간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평생동안 시간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시계를 손에 쥐어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 교육이었습니다.
성경 암송은 우리 자녀들에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안에서 우리 자신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길이 성경 암송입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지성을 개발하고, 자신을 잘 개발한 사람은 삶에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잠재력을 실현하는 사람은 자신감에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훌륭한 선생님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가 배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입니다. 달라스 신학교의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는 "선생이 다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최대한으로 배움에 참여할 수 있게 인도해 주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선생이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교육의 최고 목표는 선생님에게 의존하는 학생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교육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성경 암송의 위대함은 잘못된 행동을 잠깐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의식에 있고 생각에 있습니다. 생각이 변화되지 않을 때 진정한 변화, 지속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 생각을 변화시키는 작업이 성경 암송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일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은 "바라는 만큼 성공하지 못할 때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경우, 일을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더 나은 방법은 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의식혁명, 깨달음의 혁명이 일을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참된 깨달음의 혁명은 생각을 개조시키는 성경 암송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사람은 훈련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 암송만큼 자신을 개발하는 데 좋은 투자는 없습니다. 자기 개발에 투자한 것만큼 축복된 투자는 없습니다. 월터 스콧은 "최선의 교육이란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교육이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성장하는 만큼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취와 개발에 적절한 균형을 이루십시오. 지속적인 개발만이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길입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자신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동기부여의 문제입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스스로를 훈련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강력한 힘을 소유한 사람과 같습니다. 또한 성경 암송을 통해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은 더 큰 일에도 도전하는 모험하는 인생으로 살게 됩니다. 향상이란 노력을 통해서만 옵니다. 노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향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지속적인 자기 개발을 도모하십시오.
16. 자녀들을 잘 양육하게 됩니다.
자녀들을 잘 양육하려면 자녀들의 마음을 목양해야 합니다. 테드 트립은 마음을 목양하는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자녀 교육은 마음을 목양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서 마음의 문제를 읽고, 마음을 다루는 것을 배워야 한다. 간단히 말해 부모는 아이들을 그저 야단만 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인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테드 트립. 마음을 다루면 자녀의 미래가 보인다. 디모데. 21면).
성경 암송은 자녀들의 마음을 목양하는 데 가장 탁월한 교육법입니다. 자녀들의 마음을 목양한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말씀을 심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성경적인 가치관을 심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보면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자녀의 마음에 선한 것을 쌓을 수 있는 길이 성경 암송입니다. 선한 것을 쌓을 뿐만 아니라 자녀의 마음에 말씀을 새기는 것이 성경 암송입니다. 잠언 7장 1-3절에 보면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말씀을 마음판에 새길 때 음녀의 유혹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잠언 7장 5절에 보면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들의 가슴에 말씀을 심어 줄 때 말씀이 자녀들을 지켜 주고 보호해 줄 것입니다. 부모가 갈 수 없는 자리에 말씀이 가서 자녀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암송을 통해 자녀들에게 마음을 가꾸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생명의 근원이 있음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잠 4:23). 그들의 마음속에 지혜의 샘이 있음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잠 20:5). 말씀을 묵상함으로 마음의 정원을 가꿀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관찰하면서 마음에 있는 죄악을 회개하게 하고, 그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훌륭한 자녀 교육법 중에 하나는 스스로 배우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남이 가르쳐 준 진리보다 스스로가 깨달은 진리는 더욱 오랫동안 가슴에 남게 됩니다. 자녀를 가르치는 가장 좋은 교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들이 스스로 성경을 암송하고 연구할 때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그들을 교훈 하시고, 책망하시고, 바로 잡아 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그들의 생각이 변화될 때 그들의 삶은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성경을 암송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평생학습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신 훌륭한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평생학습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성장을 넘어서 성숙해야 합니다. 성숙을 넘어서 원숙해져야 합니다. 원숙함은 평생학습자로 사는 사람이 맺는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우리 모두는 평생학습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성경을 암송하고 연구할 때 자녀의 미래는 밝게 빛나게 될 것입니다.
17. 제자 양육을 잘 하게 됩니다.
성경 암송하면 우리는 네비게이토의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맨을 생각합니다. 성경 암송 대회에 나가서 점수를 따기 위해 암송한 20절의 성경 구절중의 한 구절이 그의 생애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경을 암송한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날 직장인 제재소로 가던 도슨의 머리에 암송했던 말씀 한 절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도슨은 그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요 5:24). '영생을 얻었고'라는 말씀이 나의 마음에 강하게 부딪쳐 왔습니다. 그러자 나는, '오! 하나님, 영생을 얻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라고 외치며 호주머니에서 조그만 성경책을 꺼내서 요한복음 5:24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거기엔 틀림없이 내가 암송했던 그대로 그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나는 그 자리에서 성년이 된 후로는 생전 처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 말씀의 뜻을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나는 영생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거듭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새 생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봅 포스터. 불타는 세계 비전. 네비게이토. 55-56면)
도슨 트로트맨은 성경 암송을 통해서 예수님께로 돌아온 이후로 자신의 영혼을 양육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첫 3년 동안 하루에 한 구절씩을 외웠습니다. 어느날은 제재소에서 트럭을 운전하면서 그가 암송한 1000구절을 외우기도 했습니다.
도슨은 다른 사람을 양육하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말씀으로 양육할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말씀으로 양육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한 도슨은 제자훈련중에 가장 중요한 기초 훈련을 성경 암송에 두었고, 성경 암송만큼은 예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한 영혼에게 양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도슨은 "영접은 10%요, 양육이 90%를 차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할 때 성경 암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진정으로 성경 암송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원하고 즐기는데도 지속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가? 교회에 다니면서도 대개의 경우 성경을 잘 모르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사람들을 도전했습니다.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경 암송입니다. 모범은 모범을 낳습니다. 도슨처럼 영적 안내자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사람들을 양육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일입니다. 생명이 성장하는데는 지름길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제자들을 양육한 가장 위대한 모범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암송하심으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께 받은 말씀을 암송함으로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말씀으로 양육 받은 제자들은 그들의 마음에 새긴 주님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양육했습니다. 그들은 성경 암송과 함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했던 것입니다.
18. 훌륭한 교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훌륭한 성경교사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가진 사람은 성경을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에스라는 성경교사의 모범입니다. 에스라 7장 10절에 보면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고 말씀합니다. 훌륭한 성경 교사는 행하면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를 말씀을 실천하면서 가르치는 자로 정의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9절에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모범적인 성경 교사가 되기위해서는 말씀을 실천할 뿐만 아니라 성경을 많이 암송해야 합니다. 성경 교사의 생애가운데 성경을 마음판에 새긴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도슨 트로트맨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는데 투자된 시간보다 더 많은 이익배당을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경 교사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성경입니다. 인간의 탁월함은 도구를 만들고, 도구를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도구란 우리가 목표를 성취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도구입니다. 도구는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의 것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정말 소중한 도구입니다. 성경안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생의 지도와 같고, 나침반과 같습니다. 모든 승리와 형통과 성공의 지침서입니다. 행복의 안내서입니다.
훌륭한 교사는 성경을 도구로 삼아 마음껏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아는 것만으로 안됩니다. 사용해야 합니다. 영적 성숙이란 성경을 많이 이해하는 것을 넘어 성경을 많이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하워드 헨드릭스는 "영적인 성숙은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많이 사용하는 교사가 영적으로 성숙한 교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보존하라고 주신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가르치고 선포하고 사용하라고 주신 책입니다. 성경 교사는 성경을 검처럼 잘 사용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검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날카로운 검과 같습니다. 검은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라집니다. 의사의 손에 들려진 수술 칼은 환자를 살립니다. 훌륭한 의사는 수술 칼을 잘 사용하는 법을 압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칼을 가지고 환자를 수술합니다. 또한 수술 도구를 잘 배열해 놓고 수술합니다.
훌륭한 성경 교사는 탁월한 의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병든 영혼을 수술하고,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검이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잘 준비된 성경 교사는 수술실에 배열된 수술도구와 같이 성경 말씀을 체계적으로 암송하고, 주제별로 암송합니다. 자주 사용하는 도구를 우리 가까이 두는 것처럼 자주 사용하는 말씀을 철저하게 암송하십시오. 성경 암송을 통해 훌륭한 교사로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19. 대화에 탁월한 사람이 됩니다.
영적 안내자들은 대화에 능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말로 사람들을 감화시킵니다. 언어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잠언 18장 20-21절에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말의 능력을 아는 것과 말을 어떻게 잘 사용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또한 알아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말은 잘하면 보약과 같지만 잘못 사용하면 비수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를 잘하는 것입니다. 대화는 독백이 아닙니다. 대화는 함께 서로를 나누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 암송을 통해 대화의 원리를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마음에 새긴 성경 말씀들은 제가 대화를 잘 할 수 있도록 항상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는 대화의 기술보다 먼저 대화의 원리를 터득해야 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터득한 가장 중요한 대화의 원리는 마태복음 7장 12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은 저로 하여금 대화할 때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대화할 수 있는 지혜를 주었습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대화의 원리는 말에 있지 않고 성품에 있습니다. 조셉 에디슨(Joseph Addison)은 "좋은 성품은 재치 있는 말보다 더 기분을 좋게 해주며, 단순한 미모를 넘어서 호감을 줄 수 있는 표정을 짓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우리의 성품이 주님을 닮게 될 때 우리 자신이 향기나는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좋은 성품에서 나온 진실한 언어만큼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화려한 언어보다는 단순하고 담백한 진실된 언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움직입니다. 사랑이 담긴 진실된 언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좋은 언어입니다.
잠언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대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기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것 이상으로 언제 말하는 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잠언 15장 23절에 보면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잠언 25장 11절에 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때를 맞추지 못하면 비참한 결과를 맺게 됩니다. 잠언 27장 14절에 보면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대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분별력입니다. 적절한 때와 적절한 언어를 분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암송과 함께 좋은 원리들을 많이 암송하고 있을 때 우리는 적절하고 적합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아주 적합한 언어는 대화를 아름답게 해줍니다. 마크 트웨인은 "거의" 알맞은 단어와 "꼭" 알맞은 단어의 차이는 진짜로 엄청나다. 이 차이는 정말로 반딧불(lightning bug)과 번개(lightning)의 차이다"고 말했습니다.
대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과의 깊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내면의 감정까지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 암송으로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십시오. 아름다운 내면에서 끌어낸 언어로 대화에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20. 효율적인 상담자가 됩니다.
성경 암송은 우리를 효율적인 상담자가 되도록 도와줍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침묵중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상담자에게 필요한 소중한 상담의 원리들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말씀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인간의 연약함을 알게 되었습니다(사 42:3). 인간 안에 있는 원죄의 뿌리와 인간을 유혹하는 보이지 않는 사단의 세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생은 어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인생에는 사계절이 있어서 흐름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간은 고통받는 존재이며, 죄책감과 열등의식에 시달리며 산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상처받은 영혼들의 아픔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로부터 화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상한 감정을 가지고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치유는 영혼에서부터 일어나야 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치료자가 되신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치료자가 되시며 말씀을 통해 인간의 문제를 치료하신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일반 상담자가 깨달을 수 없는 영혼의 문제와 영적 전쟁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혼을 치료하는 영적 안내자로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좋은 상담은 말씀을 통해 지혜의 말씀을 나누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성경 암송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제가 암송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제게 적절한 말씀을 필요할 때마다 깨닫게 하셨습니다(요 14:26).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의 대부분이 제가 알고 있고, 암송한 말씀을 통해 성령님은 역사하신 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때로는 제가 생각하지도, 배우지도 않았던 지혜를 주시기도 하시지만 성령님은 제가 암송한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상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별력입니다. 분별력이란 문제를 진단하고, 문제의 원인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또한 문제를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를 보는 시각입니다. 문제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문제에 반응하는 능력입니다.
문제를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상담자는 온몸으로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상담자에게는 말하는 기술보다 잘 듣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잘 들을 수 있는 사람만이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상담자에게 털어놓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폴 투르니에는 "실제로 사람은 누구도 자기 혼자서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만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상담자는 온몸으로 들으면서 질병보다는 환자를 치료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환자의 심층에 있는 문제의 원인을 발견한 후에 전인적인 치료를 시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말보다는 그들이 필요한 말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적합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기억나게 하시는 적절한 말씀을 우리의 혀에 담아 곤고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사야처럼 학자의 혀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사야 50장 4절의 말씀이 기도의 제목이 되시길 빕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21. 효과적인 전도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뜻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특별히 전도의 은사가 있는 분들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세계복음화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가져야 할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절박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고 말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고 부탁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관심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말씀합니다. 전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전도를 위해 자신을 준비하고 훈련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구원에 관한 진리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준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라고 말씀합니다.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기 위해서는 복음전도에 관한 말씀을 암송하고 있어야 합니다. 전도란 복음을 단순하게 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설명하고 설득하고 변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암송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암송하고 있는 사람은 복음을 효율적으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암송한 성경을 직접 전도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성경을 찾아가면서 복음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암송하고 있고, 또한 성경 암송을 통해 성경의 맥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필요한 말씀을 빨리 찾아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증거할 때 성경의 맥을 모두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제시할 때, 그는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고 증명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3절에 보면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바울은 전도할 때 말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5절에 보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말씀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바울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말씀속에 있었고, 말씀이 바울속에서 역사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성경을 많이 암송했고, 말씀을 사랑했고, 말씀속에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걸어 다니는 성경이었습니다. 그 비결은 그가 성경 암송을 통해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말씀에 붙잡힌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22. 요동치 않는 신앙 생활을 하게 됩니다.
제자훈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적 훈련이 성경 암송입니다. 가장 힘들긴 해도 훌륭한 영적 지도자는 성경 암송을 강조하고 철저하게 점검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 암송을 통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안에 거할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암송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가장 근본이 되는 훈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변화하고 성숙하는 데 그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처럼 성숙해 지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미숙함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미숙한 어린아이의 특징은 요동함에 있습니다. 바울은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4)고 말씀합니다. 어린아이의 문제는 쉽게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요동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모든 교훈의 풍조에 대한 분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요동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의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또한 신앙의 집을 세우는 뼈대가 견고해야 합니다. 신앙의 체계가 바로 굳게 서야 합니다. 신앙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성경 공부를 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 공부를 통해 배운 가장 핵심 되는 진리를 암기해야 합니다. 그 진리와 관계된 성경 말씀들을 주제별로 암송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때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 생각을 깊이 할 줄 압니다. 생각을 깊이 할 때 생각은 체계가 잡히고, 그 체계는 흔들리지 않는 사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사상이 깊어 질 때 그 사상은 견고한 신앙인의 철학이 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성경의 핵심되는 주제를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쉽게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의 시각에서 문제를 해석하고, 문제를 교육의 기회로 보게 됩니다. 시험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입니다. 모든 이론과 생각을 예수님께 사로잡아 옵니다.
미숙한 사람과 성숙한 사람은 말하는 것과 깨닫는 것과 생각하는 것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고 말씀합니다.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은 우리가 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에게는 미련한 것이 얽혀 있습니다.
잠언 22장 15절에 보면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말씀합니다. 미련한 것을 쫓아내도록 도와주는 채찍과 같은 것이 성경 암송입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해 줍니다(딤후 3:16). 신앙이 흔들릴 때는 거듭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 암송을 통해 심령의 성숙을 도모하시길 바랍니다.
23.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역경을 이기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 번영을 이기는 것입니다. 역경의 때보다 번영의 때에 우리는 시험을 받습니다. 다윗이 쓰러진 것은 바로 번영의 최고봉에 섰을 때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는 번영의 때에 판가름나게 됩니다. 번영의 때는 유혹의 때입니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역경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번영은 인간을 부패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경 속에 성공의 씨앗이 담겨 있는 것처럼 번영 속에 실패의 씨앗이 담겨있습니다.
유혹은 밖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유혹의 씨앗이 밖에서 유혹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마치 오물이 파리를 불러오듯이 우리 내면에 있는 부패한 욕심이 유혹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라고 말씀합니다. 유혹이란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욕심이 잉태함으로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함으로 사망을 낳게 됩니다(약 1:15).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의 기본 욕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때 문제가 됩니다. 잘못된 시기와 잘못된 방법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유혹을 받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분별력입니다.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있을 때 올바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성경 암송의 유익한 점은 바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별력을 상실하는 순간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유혹은 화려합니다. 충동적입니다. 강렬합니다. 관능적입니다. 솟구치는 감성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 유혹입니다.
유혹이 강렬해 질 때, 인간은 죄의 결과를 보는 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유혹의 결과는 무섭습니다. 잠언 6장 26절에 보면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음녀의 유혹을 받은 사람의 모습을 한 조각 떡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죄의 결과만 미리서 볼 수 있다면 쉽게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유혹의 특징은 작게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드러나게 공격해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게, 보이지 않은 작은 손길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유혹을 잘못 반응할 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것은 로마 병정들 앞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여종들 앞에서 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유혹, 작은 욕망의 씨앗을 경계해야 합니다. 아가서 2장 15절에 보면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강렬하고도 화사한 유혹을 이기는 길은 성경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암송을 통해 예리한 분별력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말씀으로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105편 19절은 요셉에 대해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연단된 이성을 가지고 유혹을 이겼습니다. 말씀으로 훈련된 이성의 눈으로 그는 유혹의 순간에 하나님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성경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것이니이다"(시 119:9).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성경 암송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잘 박힌 성전의 못처럼 우리 마음의 성전에 말씀을 잘 박아 두어야 합니다. 성경 암송은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영원한 원리입니다.
24.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훈련된 그리스도의 제자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관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영의 세계를 알고, 영의 움직임을 압니다. 영적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유해야 할 영적 지식가운데 하나는 우리는 영적 전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는 성령의 역사와 함께 악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 안에 성령님이 들어오십니다. 그때 우리는 영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고 말씀합니다. 사단은 유혹자입니다. 진리를 왜곡시키는 자입니다. 사단은 분리자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해서 사망을 가져오게 한 원흉이요, 우리의 대적입니다. 이 사단을 물리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대적 마귀는 믿는 자들을 우는 사자와 같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 9)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함으로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 암송한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거듭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 보면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달하셨고, 말씀을 암송하고 계셨습니다. 말씀을 주제별로 암송하셨습니다. 또한 말씀을 사용하실 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주제로 유혹하는 사단을 주제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사단은 주로 생각을 따라 역사합니다.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에게 사단은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요 13:2).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을 잘 관리해야 하며, 생각으로 역사하는 사단을 암송한 말씀을 통해 물리쳐야 합니다. 사단이 주로 공격하는 화살은 의심, 두려움, 혼돈, 좌절, 죄책감, 열등의식, 무능력, 음란한 생각 그리고 염려입니다. 사단의 화전을 이기는 길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방패로 악한 자의 화전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엡 6:16). 사단을 물리치는 공격 무기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엡 6:17).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악한 자를 이긴 청년들의 모습을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
흉악자를 이긴 청년들처럼 말씀이 당신 안에 충만케 하십시오. 성경 암송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임을 절실하게 깨닫고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말씀을 암송하되 주제를 생각하며 암송하십시오. 주제별로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주제별로 공격하는 사단의 공격을 막기 위해 주제별로 성경을 암송하도록 하십시오. 암송한 말씀을 자주 사용하십시오. 성경 암송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25. 능력 있는 기도 생활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천국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천국 열쇠는 복음 사역을 위해 주신 기도의 열쇠였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8-19절에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매고 푸는 능력이 있습니다.
열쇠 맡은 자는 축복 받은 자입니다. 요셉은 열쇠 맡은 자였고, 다윗도 열쇠를 맡은 자였습니다. 예수님도 열쇠를 맡으신 분입니다(계 3:7).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열쇠를 맡기지 않습니다. 열쇠는 충성된 자와 책임감 있는 자에게 맡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충성 되이 보시고 천국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천국 열쇠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열쇠를 통해 천국을 열고, 하나님의 마음을 열고,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면서 의무입니다. 기도는 능력의 원천이며, 귀신을 물리치는 능력의 근원입니다. 사단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존 번연은 "기도는 영혼의 방패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며, 사탄을 향한 채찍이다"고 말했습니다. 딕 이스트만은 "사단은 가장 연약한 성도일지라도 그가 기도의 제단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볼 때 벌벌 떨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단이 무서워 떠는 강력한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성경은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 약속들을 우리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공부를 통해 그 약속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약속들을 아멘을 통해 우리의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고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약속을 붙잡고 드리는 기도에 관한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님안에서 예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것이 됩니다.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아멘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계 3:14).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많이 소유하는 길은 성경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놀라운 기도 응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은 말씀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약속을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더욱 능력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고, 성령님안에서 무시로 기도드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용장입니다.
26. 영적 기근의 때를 잘 준비하게 됩니다.
성경 암송을 많이 해둔 사람은 영적인 기근의 때를 잘 준비한 사람과 같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있는 것처럼 인생에는 항상 풍년의 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기근의 때가 찾아옵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풍성한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지 못해 기갈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아모스는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 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고 말씀했습니다.
요즈음은 말씀의 홍수시대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홍수가 나면 가장 부족한 것이 식수인 것처럼 말씀이 그토록 많아도 먹을 물이 없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 암송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은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홍수의 때에도 식수를 준비한 사람과 같습니다.
기근을 잘 준비한 사람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7년 기근을 잘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이 애굽 땅에 7년 풍년과 7년 기근을 보내실 것을 알았습니다(창 41:29-31). 요셉은 바로에게 다가올 7년의 기근을 위해 지혜로운 사람을 선택해서 풍년의 때에 장차올 기근을 준비하라고 부탁했습니다(창 41:33-36).
요셉은 기근의 때를 준비할 줄 알았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기근의 때에 오히려 풍성을 보이고, 환난의 때에 강한 사람입니다. 잠언 24장 10절에 보면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름에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와 같이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잠 30:25).
제이콥 드쉐이저(Jacob DeShazer)는, 이차세계대전 당시 동경에 첫 번째 폭격이 가해졌을 때, 일본인에 의해 비행기 추락을 당한 미국 비행사였습니다. 포로가 된 몇 달 동안의 포로기간이 지난 후 그는 단 석주간 성경을 빌려 볼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예수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조롭고 외로운 시간을 많이 보낸 후에 그는 성경을 받고 그것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불빛만 있으면 몇 시간 며칠이든 성경 읽기에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을 당하심으로 자신의 죄의 대가가 치러졌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홀로 감방에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는 곧 성경을 빼앗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구절을 암송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위대한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과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내용의 다른 구절들을 암기했습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면서 그는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주님께서 자신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종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 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이콥은 성경 암송을 통해 그를 괴롭히는 감시원까지 사랑할 수 있었고, 14개월을 독방에서 보내는 동안 그의 마음에 새긴 구절들은 그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제임스 브라가. 말씀을 내 마음에. 22-24면). 제이콥과 같이 기근의 때를 위해 말씀을 암송하는 지혜자가 되십시오. 또한 기근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나누어주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십시오(눅 12:42).
27. 고난을 성숙의 기회로 만들게 됩니다.
인생에는 사계절이 있습니다. 인생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습니다. 밀물이 있고 썰물이 있듯이 형통의 때가 있고 고통의 때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고 말씀합니다. 성경 암송은 곤고한 날에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성경 암송은 깊은 생각을 통해 고난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과 태도와 시각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고난의 순간에 순발력있게 생각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인생에서 승리하려면 고난의 때를 잘 통과해야 합니다. 고난은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고난은 찾아옵니다. 예수님도 고난을 받으셨습니다(히 5:8).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고난은 한번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고난은 인생의 위기입니다. 고난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신비는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더 잘 된 사람이 있는 반면에 고난 때문에 쓰러진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암송은 고난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고난을 이기는 길은 고난을 보는 시각에 있습니다. 성경은 고난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고난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 암송은 고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저는 고난을 통과하면서 성경 암송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고난을 통과할 때 제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성경 암송 구절은 야고보서 1장 2-4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난을 통과할 때 중요한 것은 고난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야고보는 고난을 통과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그는 고난이 우리를 성숙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를 성숙시켜주는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고난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고난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입니다(롬 8:29). 고난은 우리를 훈련하고 연단하는 용광로와 같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스승입니다. 고난 중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잘 깨닫게 됩니다. 더욱 잘 순종하게 됩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 말씀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같은 자리에 두지 않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도록 도와줍니다.
고난을 통과할 때 중요한 것은 능력입니다.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춤을 출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 암송한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 92절에 보면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고 말씀합니다. 성경 암송은 고난중에 우리의 즐거움이 됩니다. 살아 있는 능력이 됩니다. 고난중에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전체 그림을 보면서 오히려 감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롬 8:28). 고난이란 불청객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담대히 환영함으로, 고난을 성숙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28.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때때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를 인도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항상 받게 될 때 우리는 물댄 동산과 같은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사야 58장 11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항상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성경 암송입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두운 밤에 길을 밝히는 등처럼, 등불에서 나오는 빛처럼 그의 인생의 인도자로 믿었습니다. 다윗의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말씀으로 인도 받기를 원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시편 25편 5절에 보면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아삽은 시편 73편 24절에 보면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명철과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암송했던 말씀중에 하나가 잠언 3장 5-6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명철과 경험을 의지하게 됩니다. 인생의 경험은 소중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교훈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은 모든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경험이 고정관념이 되고, 아집이 될 때 경험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수고했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많이 잡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눈이 열려 존귀하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므로 하루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암송하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일예배에 받은 말씀과 아침에 읽은 말씀이, 매 순간 우리를 인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우려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많이 암송하고 있을 때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9, 20)고 말씀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성령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까요? 그것은 우리가 암송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말씀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을 암송함으로 항상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시편 119편 165절의 말씀을 마음에 늘 새기면서 성경을 암송하십시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29.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또한 모든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요긴하게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된 정도만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준비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따라 일할 수 있도록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회와 우리의 준비가 만날 때 사역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회가 찾아 왔을 때 준비된 사람만 그 기회를 알아보고,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준비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준비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영성 훈련이 바로 성경 암송입니다.
성경 암송은 우리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도록 우리를 거룩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귀히 사용하십니다. 바울은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0, 21)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경 암송을 할 때 우리가 암송한 말씀이 우리를 깨끗하게 해 줍니다.
말씀과 죄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말씀이 머물 수가 없고, 말씀이 역사 하는 곳에 죄가 머물 수가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우리의 죄를 씻어 내고, 우리를 거룩하게 해 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1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고 중보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우리 안에 말씀이 거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의 그릇은 깨끗해지고 하나님은 긴요하게 사용하실 수 있게 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우리가 말씀을 붙잡을 때 말씀이 우리를 붙잡아 줍니다. 우리가 말씀에 붙잡힐 때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버린 자를 버리셨습니다(삼상 15:23). 그리고 말씀을 최우선에 두었던 사도들을 존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행 6:2).
성경 암송을 통해 말씀 충만을 받으면 성령님의 능력을 강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이 역사하는 곳에 성령님이 함께 역사하십니다. 말씀과 성령님은 함께 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고 말씀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6장 63절에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씀 충만은 곧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입니다. 말씀 충만과 함께 따라 오는 것이 지혜입니다. 말씀 충만은 곧 지혜 충만입니다. 말씀속에 지혜가 있고, 성령님은 지혜의 신이십니다(사 11:2).
골로새서 3장 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할 때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게 됩니다. 사역자에게 있어서 훈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성경 암송은 우리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도록 준비시켜주는 소중한 영성 훈련입니다.
30. 형통한 자가 되어 사명을 완수하게 됩니다.
성경 암송을 하게 되면 형통한 자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경적인 원리를 따라 형통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이란 하나님이 맡기신 과업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형통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형통은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대상 22:11). 느헤미야가 형통을 위해 기도했을 때 그것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느 1:11).
성경적인 형통이란 단순하게 번영하고, 잘 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형통이란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해서 하나님의 과업을 성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적인 형통의 원리는 말씀묵상에 있습니다. 말씀묵상의 뿌리는 성경암송입니다. 성경 암송이 없는 말씀묵상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성경 암송이 성경적인 형통의 비결입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에 보면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형통의 시작은 생각에 있습니다. 형통하는 생각이 형통을 창조합니다. 에머슨은 "생각이 열쇠다"고 말했습니다. 생각은 결과를 낳고,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은 씨앗과 같습니다. 좋은 생각의 씨앗을 품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생각은 미래를 창조합니다. 생각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환경을 새롭게 창조해 냅니다. 생각은 에너지입니다. 생각은 진동합니다. 파장을 일으킵니다. 미래를 창조하는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성경암송입니다. 성경암송은 형통하는 생각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실 때부터, 차세대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생각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과 아말렉과의 전투는 모든 영적 전쟁의 모형과 같습니다. 모세는 그 전쟁을 기도로 승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전투의 비법을 율법책에 기록해서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출애굽기 17장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훈련시킬 때 가장 중요하게 보셨던 훈련이 생각의 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승리는 생각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생각이 훈련되지 않고는 형통할 수 없고,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귀에 전쟁의 승리의 비결을 외워 들리게 하셨습니다. 영적 전쟁의 승리의 비결이 그의 존재에 스며들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승리의 비결을 암송함으로 승리의식과 형통의식을 가진 지도자로 성장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처럼 성경암송과 묵상을 통해 생각이 훈련된 하나님의 사람은 형통한 자가 됩니다. 형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형통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일회용 형통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형통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형통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실 때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창 39:2).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때 그의 명성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수 6:27).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실까요? 그것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요 1:1). 그러므로 말씀과 동행 할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암송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고, 형통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맡기신 과업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