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독서란 말, 아직도 낯설어요. 개월수 들으면 아직 독서란 말 쓰기도 그런 아기들인데, 여기까지 왔나 했어요.
막말로 독서로 애들 잡는 게, 여기까지 내려왔구나 그말이에요.
유아기 때 엄마랑 책 보며 책 싫어하는 애는 본 적 없어요.
한글 떼고 학교 들어가고 차츰 책 싫어하는 애가 생겨나요. 왜 싫어하게 될까..길게 생각할 것도 없어요.
엄마가 읽어주기를 떼는 때고, 학교 적응하느라 무지 힘들 때고, 독서록, 책 몇 권 읽으면 금메달 은메달..이런 게 생기는 때죠.
여지껏은 그런 게 없었는데 책 읽는 걸로 안 끝나고 숙제가 달라붙고
엄마도 누구는 얼마 읽고 줄거리도 얼마 쓰던데 이딴 말 하고
생전 첨 큰 사회 들어가서 온갖 쓰린 일 겪는 와중에 이러니까 책이 그전처럼 좋지가 않은 거예요.
갈수록 심해지죠. 1학년 때까지는 독서록도 좀 자유로워요. 그림도 그리고 몇 자 안 적어도 되고.
학년 올라갈수록 '정식으로' 쓰라 그러죠. 그거 좋아하는 애도 못 봤어요. 하라니까 하고
착실한 놈들은 그래도 따라가지만 대부분 싫어하죠.
독서만 보면 안 돼요. 시험도 보지요 발표도 못하면 안 되고 제대로 해야 돼죠
뛰어도 안 되고 옆에 놈이랑 놀지 말래죠..규칙에 정답에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그래서 독서도 잘하는 거, 맞는 거 따로 있단 생각을 엄마가 말 안 해도 애들이 다 알아서 생각해요.
전체적으로 생활에 구속이 많아지는 때라, 이때 자칫 잘못하면 독서를 구속으로 강요로
느끼게 되기가 아주 쉬워요. 엄마들이 나는 안 그런다 하지만, 엄마들이 다 만드는 게 아니라
여건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거예요.
아이 환경, 아이가 받는 자극을 엄마가 넓게 봐야 해요.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만 생각하고
애가 왜 그러나 하는데, 애가 딴 데서 정보 얻고 익히는 게 갈수록 많아지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독서의 첫 관문이 학교 들어가 저학년 때예요.
이때 엄마가 이 모든 사회의 압박 앞에서 초연하게, 책은 재미로 읽는거다, 억지로 할 필요없다, 해주는 거요.
독서가 아이한테 좋게 남으려면, 책을 읽히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이거예요.
애가 책 싫어하게 만드는 것들한테서 애를 보호하는 거요. 세상에 책이 싫어지게 만드는 게 너무 많거든요.
그중에 90프로는 독서가 좋다고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교사들)이 만들어낸 각종 독서장려정책이에요.
(생각있는 교사들은 제발 독서는 학교에서 안 하면 좋겠다 그래요.
학교에만 들어가면 다 망가지니까. 독서는 그렇게 망가져선 안 되는 거니까.
웃기는 얘기 하나 할까요. 재활용시범학교 애들은 페트병만 보면 경기 한대요.)
애를 보호하는 일에 한가지, 정말 힘든 싸움이 티비와 컴터와 싸우는 거예요. 제가 싸운다 그래서 애랑 싸우란 소리 아니고요.
티비와 컴터, 그 안에 애들 혹하는 게 널렸단 건 아시지요. 그래서 애들과 싸울 순 없어요.
애들은 순수 자발로 하는 행동이고, 애들은 그게 나쁘다는 거 납득할 수 없어요. 강요밖에 안 돼죠.
(물론 강요할 땐 해야죠. 다만 내가 하는 게 강요 아니고 설득이라거나 이딴 엉뚱한 생각은 하면 안 돼요. 솔직해야죠.)
티비와 컴터랑 싸우는 최상의 방법은 애들이 친구들하고 뛰고 놀게 하는 거예요.
학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요. 충분히 잠잘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도시 생활은 밤늦게 자게 하는 요인이 아주 많아요. 애들 성장에 진짜 나빠요.)
만약 이때 컴터게임에서 적정 거리 유지 못 하면 독서랑 멀어지는 압박이 나이들수록 세져요.
특히 컴터가 애 스트레스 푸는 유일한 수단이 되는 거 위험하고요-이거 중독 가는 확실한 길이에요
인터넷게임 특히 위험해요. 요즘 게임은 어떤지 모르는데 제 경험상 인터넷게임은 거기서 인간관계를 배운다는 게
문제예요. 거기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거 배우고, 겜방 만들었다 맘대로 폐쇄하는 거 배우고,
성질나면 욕설 퍼붓고 뛰쳐나오는 거 배우고..그래서 가뜩이나 친구 경험 부족한 요즘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가짜 사회성 키우는 거, 진짜 위험하다고 생각해요.(이거 다 애들 잘못 아니고 어른들 문젠 거 아시죠..)
또 한 번 관문이 오는데 5, 6학년 때예요. 이때 애가 첨으로 판타지에 눈을 돌렸어요.
무민 시리즈나 오즈 이런 문학 말고 사이버판타지, 게임판타지, 무협판타지 계열요.
친구들한테 정보를 듣고 룬의아이들인가를 도서관에서 찾더군요. 마침 빌려가서 1권이 없었는데
있는 거도 죄 너덜너덜한 걸루 봐서 대출빈도 최고구나 싶었어요.
사 달라는 거 안 사주고 몇번 도서관 가서 한번 빌렸어요. 읽어봤죠.
애들이 좋아할 만하겠더군요. 것도 독서력 있는 애들이나 보는 거예요. 1부가 6권에 몇부작으로 나간다구요.
그 한 작품 읽는 거는 문제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보니 그 길로 접어들면 무한대다 싶길래
안 사주는 걸로 버티고 도서관 가도 없을 때 많고 적당적당 넘겼지요.
이렇게 보호할 때 최대한 애가 내 작전 눈치 안 채게 해요. 애랑 싸우는 거 아니고 사회랑 문화랑 싸우는 거니까.
우리 애한테 직접 경험한 거 아닌데 애들이 직접 쓰는 팬픽, 인터넷소설류 장난 아니에요.
이게 다 인터넷문화와 연결돼 있다 생각하심 돼요. 컴과의 싸움은 한번으로 안 끝나고 계속이에요.
학업스트레스 커질수록 컴터 유혹 커지고 중독 위험 커지고, 다 순차적인 도미노죠.
어릴 때부터 참고서 풀면 컴터 한 시간 이런 식으로 엄마가 길들이는 거 봤는데, 컴터 위험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이 아이들 소설 겁나 많이 봅니다. 그러나 문학으로 안 와요. 문학성 있는 작품과 하급장르 차이는
독자의 능동성을 얼마나 요구하냐, 오직 서스펜스냐 아니냐 이런 거예요.
어른 돼서 장르 취향 갖는 거 나쁘다 말 안 해요. 성장기에는 위험하단 거지요.
그전에 판타지 안 읽힌 거 아니지만 아이가 직접 판타지 찾는 거 보고
아 이때가 판타지 요구할 때구나 했어요. 판타지가 뭐냐, 모험, 세상에 대해 그림그리는 거, 자기와의 싸움 이런 거죠.
초등 때 본 판타지는, 옛날얘기들 기본이고 일곱 살인가 때 엘머의모험이란 3권짜리, 더 커서 무민시리즈(9권짜린가?),
아무도 모르는 작은나라, 나니아 같은 거고, 중학생 돼서 모모, 끝없는이야기, 어스시의마법사, 유리장이의아이들
같은 거 읽어줬어요.
독서의 단계는 애 성장단계와 같이 간다고 저는 생각해요.
학교들어가는 때가 미운일곱살 넘어가는 때고, 5학년이 독립된 자아가 형성되는 때고,
중학생 때 본격 사춘기로, 자기자신, 세상, 장래, 이런 거에 몰두하고 비판적인 태도가 급성장하는 때.
생리적인 변화, 정신적인 변화, 인지의 성장 같은 게 한꺼번에 단계변화를 겪는 때들이에요.
통과의례라 그러죠. 이때는 자기 안에서 그전까지 만들어진 걸 부정하면서 다음단계로 가는 거라
혼란과 공포 당연히 겪어요. 애가 전엔 안 그랬는데 엄마한테 넘 반항적이에요, 전과 너무 달라요,
자연스러운 거예요. 엄마랑 손 붙잡고 가는 길 절대 아니에요. 엄마는 애가 전쟁-내면에서 치르는 전쟁-의
공포와 혼란을 두서없이 표출할 때 믿는 맘으로 지켜보는 거, 엄마한테 스트레스 쏟아내는 거 감당해주고
-엄마한테 스트레스 안 풀면 어디서 풀어요-그러는 거 같아요. 날 왜 미워하나 괴로워할 필요 없어요.
엄마는 일종의 후방진지 같은 거예요. 엄마랑 싸우는 게 애의 진짜 전쟁 아니기 땜에
괜히 오해하고 애랑 진짜 전쟁 벌이면 곤란해요.
진짜 할 얘기는 유아기 때는 이런 단계를 그릴 수 없단 거예요. 제 경험상은.
단계를 말한다면 한달한달 일년일년이 다 단계가 될 만큼 계속 새로운 거고
그러나 거기다 무슨 틀을 입힐 수 없기 때문에 단계란 말을 써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미운 세살, 이건 좀 분명한 관문으로 보이긴 해요. 두살 전후로 급격하게 모방행동이 늘어나고
감정도 훨씬 지속적이 되면서 고집이 엄청 세지고 엄마를 굴복시키려고 갖은 짓을 하는.ㅎㅎ
미운일곱살 준비단계쯤 하면 되려나. 미운일곱살 때는 전면적이죠. 엄마 품 떠나야 하는 힘든 때니까.
학교를 가서 떠난단 게 아니고 엄마를 떠나는 때여서 이때 학교 들어가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 옛사람들이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인생의 단계를 정확히 봤어요.
유아기는요, 빅뱅 같은, 40억년 우주 팽창을 낳는 출발 같아요.
빅뱅 이후 우주에 새로 생겨난 건 없죠. 그러나 우주는 처음 그대로 아니고 계속 진화했죠.
그니까 유아기 때 있는 건 인생에 있을 거 다 있는 거고
하지만 성장하면서 유아기 때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죽는 게 뭐지, 땅에 묻히면 안 답답할까, 왜 세상에 나쁜 사람이 있나,
왜 토끼는 사람한테 붙들려 괴롬을 당하나, 나는 뭐가 될까, 왜 나는 남자 아니고 여잘까,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 성적 감각을 포함한 온갖 감각들..이 모든 게 유아기 때 다 있다는 거죠.
이제는 있어야 한다고 말해야 될 거 같아요. 유아기를 틀에다 넣고 단계로 만들어서
인위적으로 형태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또 유아기 때 있던 게 그 모습 대로 평생 가진 않죠. 재능도, 감수성도, 사교성도, 호기심도..
그 어떤 것도요.
유아기와 인생을 연결해서 어떤 결정론을 만드는 건 지극히 위험하지 않을까요.
다만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유아기의 무엇과 관련해서 설명하는 설이 있고
그건 암의 원인을 찾는 것 같은 건데, 밝혀지지 않은 원인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르고
그래서 언제나 불완전한 지식일 거라 생각합니다.
첫댓글 애랑 싸우는 거 아니고 사회랑 문화랑 싸우는 거니까. <-- 노트노트.. 줄긋고 빨강 동그라미 별 표 세 개... 문득 조는 물고기 언냐와 개굴님이 등장하는 팬픽을 써 보고 싶어진다는...
별빛님 상당히 학습적이세요^^
제 아이는 이제 6살입니다. 하루하루 아이와 생활하는 것도 바쁘고 내년에 유치원 들어갈 걱정만 하고 있었어요 조는 물고기님의 경험을 읽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가슴에 새겨지네요
님의 글을 읽다보니...막 찌릿합니다... 사회와 문화와 싸워야한다....ㅡ.ㅡ^ 참으로 거대하고 어려운 일이지요...한낱 아이키우는 엄마가 이루어내기에는... 그래서 엄마가 공부해야하고 항상 진보해야하고 깨어있어야 하는거 아니겠어요... 아주 자극되는 구절이였습니다!!
아 정말 보석같은 글입니다. 가슴에 새겨두겠습니다...^^
어렴풋 앞으로 있지 않을까 하는 일들을...이렇게 선배맘님의 글로 보게 되니 너무 와닿습니다. 유아기를 어떤 틀에 넣어 결정론으로 확정지어 버리는 것, 근데 그게 전집이나 사교육쪽에서는 좋은 영업전략이죠. 지금 안 하면 늦는다....이 말처럼 엄마들에게 무서운 건 없으니까요. 지금 내가 그 빅뱅의 시기를 잘 다스리고 있는 건가? 도 갑자기 혼란스러워집니다.
역쉬 선배맘님의 통찰력... 어찌 글이 소설같은 느낌. 길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푸닷의 고수맘들 글이 부끄러워지네요. 누구신가 그러대요. 0~7세까지 인생의 교육비 80%를 투자하라고.. 책으로.. 그럼 그 이후는 알아서 간다고.. 참으로 대책없지요? 초등 얘기에 관심이 번쩍 듭니다. 소소한 이야기라도 많이많이 들려주세요. 애독자 할래요.
저희 옆집 고2남자아이가 있는데 셤 끝나면 피아노를 연주해요. 스트레스 푸는 거죠. 근데 오히려 이 아이의 연주가 저를 더 즐겁게 해 줍니다. 영화드라마 주제곡을 연주해 주거든요. ㅋ 중3 여름방학 때 학원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아이를 이해하고 쉽게 허락하신 옆집아줌마... 이게 배려깊은 사랑인가 봅니다. 사회와 문화와 싸운다길래 옆집 아줌마처럼 싸워야 겟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ㅎㅎ
피아노하는 유아들 많은데 초2,3 가면 끊는애 많죠. 왜냐면 아이가 공부 딸리는 거 같음 예술이 젤 첨 잘리거든요. 중학생들 성적 딸리면 책 읽을 시간에 영어 한자라도 더 봐라, 그렇게 가고요. 사춘기 때 음악 넘 중요하고 책 넘 중요해요.
추천~ 꾹 눌러요^^* 아이가 아직 어리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봐야할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는데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 아직까진 싸울만 했는데 초등학교맘들 이야기 들어보니 쉬운 문제는 아니더군요. 사회와 문화랑 싸우는거...
사회와 싸운다는말씀, 정말 마음에 와닿네요^^
아이가 어려서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들려주시니...감사할따름입니다...아이랑은 절대 싸우지 말아야겠네요...^^ 욱하는 성질 죽이느라 주름만 늡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