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집단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도마을과 남해안, 더 나아가 조선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툭하면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며 편 가르기를 일삼는 모략꾼들과는 근본부터가 다르고, 나라는 어찌되던 같은 진영이나 정파끼리만 감싸는 요즘 정치인들과도 레벨이 다릅니다.
초라한 동상이지만, 노량의 관음포를 바라보고 있는 장군모습에서 진정한 애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장군의 죽음을 슬퍼하며 충무공이 지은 애도사(哀悼辭)는 실은 본인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라 위해 던진 그 몸, 죽어도 살았도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산악회에서 아침식사로 내준 도시락을 여기에서 펼칩니다.
명상의 언덕
언덕을 오릅니다.
양쪽으로 남해대교와 섬진강 하구가 쭉 펼쳐집니다.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합니다.
걸음걸음 밝혀주는 꽃들이 천국으로 가는 꽃길을 장식해 놓은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길입니다.
그 꽃길 언덕배기에 꽃 잔디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여져 있습니다.
'명상의 언덕'이랍니다. (12:00)
상형문자를 새겨놓은 조형물이 매우 특이한데요, 명상하러 찾아온 탐방객들에게 삶의 화두(話頭)를 던지는 듯합니다.
영국 'Salisbury'평원에 세운 선사시대의 거대한 '스톤헨지(Stonehenge)'처럼 이곳에도 돌기둥이 있습니다.
석재기둥에 음각된 형상들은 고대 중원대륙을 지배한 배달한국의 금문(今文)을 조각한 것이라네요.
신기합니다.
명상의 언덕과 꽃길을 걸어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하늘공원'이 펼쳐집니다. (12:15)
장수이씨 입도 기념동산인 하늘공원인데요, 규모가 어마어마하네요.
푸른 바다와 다소곳한 섬들 사이로의 풍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농섬
해변으로 나왔습니다. (12:20)
부속섬인 '농'섬을 잇는 길이 225m, 너비 2.5m의 연륙교를 건넙니다.
다리를 지나면 1.5km 정도 되는 Deck길이 이어집니다.
섬 in 섬의 바닷가를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Healing이 됩니다.
썰물 땐 다리 아래에서 바지락과 굴을 채취할 수도 있다죠.
해안 길에서 바라본 풍경이 독특합니다.
아름다운 섬 풍경에 이웃한 여천화학공업단지와 하동발전소를 공존시켜 파라다이스를 꿈꿉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대도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보상으로 받은 돈의 이자까지도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남겨주려는 마음들이 빛납니다.
빚을 내어 펑펑 나눠주는 작금의 위정자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풍차식당
박석(薄石)이 깔린 트레킹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빨간 풍차식당'입니다. (12:40)
8자 형태의 섬 한쪽을 트레킹 하다가 만나는 곳으로 생김새부터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차와 식사가 동시에 해결되는 곳이라는데, 2층엔 생뚱맞게도 용궁사가 자리하고 있네요.
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해물 밑반찬과 함께 나오는 풍차정식이 푸짐하면서도 정갈하다는데, 숙제로 남깁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쭉 둘러봅니다. ㅎ
동화 속에 나오는 집을 닮은 풍차식당에서 조망하는 아련한 봄 바다 풍경이 참 포근합니다.
쉼 없이 밀려오는 오르가즘에 전신이 몽롱해집니다.
두고 온 걱정,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ㅎ
살다가 마음이 아플 때 들어와 하룻밤 묵어보는 것도 꽤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음을 닮은 섬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여보는 것도 좋은 치유방법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무엇을 잃어버리는 일이 꼭 나쁜 일은 아니겠지요.
기억 위로 세월이 덮이면 때로는 그것이 추억이 될 테니까요.
삶은 우리에게 가끔 깨우쳐줍니다.
머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이 주인이라고] ('공지영'/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대도마을(선착장)
다시 마을 앞을 걸어 약속한 배 시간에 맞춰 선착장으로 모여듭니다. (13:10)
윤슬을 보니 어느새 태양이 오후를 가리킵니다.
2005년 '갈사'만에 들어선 하동화력발전소와 산업단지개발로 어업자원이 줄어들어 삶의 터전을 잃은 어민들은 새로운 소득원 개발을 위해 어업권상실보상금(150억)을 대도섬에 재투자하기로 결정합니다.
도서특화마을로 선정되면서 공공 370억을 포함 520억의 사업비를 투자했다는데요, 트레킹 길 조성을 비롯한 휴양시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마련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췄답니다.
파괴된 자연환경을 되살리려고 개발보상금을 섬에 재투자하여 휴양관광지인 파라다이스로 만들고자 하는 꿈을 실현시킨 것입니다.
파괴와 보존의 갈림길에서 생태보존과 Wellbeing휴양이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는 대도생태마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은 후손들로부터 빌린 것이다.
빌린 본전(자연)을 까먹으면 안 된다.
그 이자만 가지고 살다가 본전만큼은 고스란히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자연을 훼손하거나 파괴하는 현실을 질타한 소설가 '박경리'선생의 말이 떠오릅니다.
출도
섬 떠납니다. (13:30)
자연환경을 이용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강점인 대도(大島)였습니다.
바다낚시와 숙박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해상콘도가 대도 앞 바다를 수놓고 있습니다.
물고기들의 놀이터라 할 만큼 계절마다 다양한 어종이 꾼들의 손맛을 즐겁게 해준답니다.
1인당 25,000원의 비용을 지불하면, 1박 2일 동안 고요한 바다 위에서 밤바다를 보며 시간과 물고기를 동시에 낚을 수 있다죠.
바다의 물 흐름이 빨라 생선육질이 단단하여 회 맛이 일품인 건 덤이랍니다.
온 세상이 온통 싱싱한 초록의 순수로 물드는 5월 -.
마음만으로도 애틋해지는 가정의 달이건만 '코로나19' Pandemic이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환경 속에서 집안에 발과 마음이 꽁꽁 묶여 지낸지 몇 달이 흘렀습니다.
'비대면', '사회적 & 생활 속 거리두기', '드라이브 스루' 등의 생활용어들도 너무 생경합니다.
가족이란 뜻의 '패밀리(Family)'는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단어들의 첫 스펠링(Spelling)을 모아 만들었답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데요, 어느덧 가정의 달도 기울어갑니다.
가기 전에 가족과 함께 외식 겸 나들이나 함 해보죠.
남해 이순신공원
노량선착장에 도착하여 주섬주섬 버스에 올라 또 다른 투어를 위해 삼자(유자, 비자, 치자)의 섬이자, 충효(忠孝)의 고장인 남해도로 들어갑니다.
남해대교를 건너면 바로 아래로 거북선과 충렬사가 있는데요, 충무공께서 1598년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하셨을 때 유해를 안치한 가묘(家廟)가 있었던 곳입니다.
다리건너 섬 한가운데로 약 10여리 들어가면 관음포 충무공 전몰유적인 '이락사(李落祠)'가 나옵니다. (14:05)
'이 충무공[李]을 모신[落] 사당[祠]이란 의미'라는데요, 공께서 숨을 거두신 바다라는 뜻으로 '이락파(李落波)'라고도 부릅니다.
1965년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라는 뜻인 '대성운해(大星殞海)'와 '이락사(李落祠)'라는 '박정희'대통령의 친필 액자를 걸었고, 1973년 사적 232호로 지정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 명명했습니다.
'첨망대(瞻望臺)'에 이르면 노량해전의 현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왜군이 명량대첩 패배 후 철수를 시작하자 충무공은 '단 한 놈도 살려 보낼 수 없다'는 각오로 일전을 도모합니다.
왜선 500척 중 400여척을 침몰시켰으나 안타깝게도 장군은 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입구에 있던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慎勿言我死)'란 비문에서 발길을 멈춥니다.
'지금 전쟁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충무공의 유언입니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는 비석을 보며 참 생각이 많습니다.
혹시라도 왕권에 걸림돌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이순신'을 미워했던 선조임금과 국가안위보다 권력유지에만 급급했던 지배세력들 틈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국가와 임금에게 충성한 충무공의 충절과 애민(愛民)정신은 우리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태양 같은 존재로 빛날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위국헌신(爲國獻身)을 되새기고 떠납니다.
뒤풀이(삼천포)
회 타임을 갖기 위해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ㅎ
'수야네'식당입니다. (15:35)
조금은 수다가 넘쳐도 오늘 만큼은 그냥 넘어갑니다.
사랑의 열매가 나눔 교향곡을 연주합니다.
관객은 없는데요, 모든 이가 연주자입니다.
나눔 교향곡은 지휘자가 조용히 손을 치켜든 뒤부터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을 향해 더 밝고, 더 따뜻하고, 더 힘차게, 멀리 멀리 울려 퍼진 교향곡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린 변함없이 마음속에서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바닷가입니다.
우리나라는 늦어도 한나절 안쪽이면, 바닷가에 닿는 나라입니다.
바다는 여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해변과 노을, 항구와 방파제, 뱃고동과 연락선, 파도와 갯바위, 밀물과 썰물...
게다가 이별도, 기다림도 다 바다의 사업입니다.
바닷가의 빈 의자는 누구든 앉는 이가 주인인데, 기다림 전문인 사람이 주로 앉습니다.
곱은 손을 꼽으며 기다렸는데, 찾아온 봄이 봄 같질 않습니다.
다시 기다려보지만, 어쩜 봄은 더운 바람 부는 여름으로 그대로 건너뛸 형국입니다.
바닷가 빈 의자에도 봄은 결국 오지 않을 듯합니다.
그저 좋았다는 말속엔 높은 체념의 습도가 있습니다.
봄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정석남)
복귀
돌아가는 길입니다. (15:00)
대지에 꽃 한창이 지나고, 이제 연두(軟豆)가 밀립니다.
철 따라 차례대로 오고 또 가는 빛깔인데요, 겨우내 색이 그리웠던 산천의 부름을 받고 천천히 거드름을 피우면서 나타납니다.
그 다음은 초록의 무리들이 좀 급한 듯 넘보겠지요.
바람이 지난 바닷가에도 넘실대던 파도들이 자지러드니 바위들이 부끄러운 고백의 자세를 취하며 돌아앉았습니다.
풍경들을 바라보던 누추한 늙은이가 오래전에 가셔졌던 연애의 감정을 불러냅니다.
그 질서를 그대로 따라가면 좋으련만, 인간사 어렵습니다.
예부터 힘겨울 땐 바다를 보러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그 풍경이 마음속으로 들어서 가득 채워지면 금세 마음이 고요해지던 그 바다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다는 그대로인데, 나만 변했습니다.
섬 전체를 우리가 차지한 듯 느긋하게 쏴 다닌 하루가 행복합니다.
생활 속 거리두기 와중에도, 이젠 사람이 조금씩 보입니다.
행복은 '비교가 지배하는 소유'가 아니라, '재미가 지배하는 경험'의 영역에서 발견될 때가 많습니다.
행복시장에선 소유(Having)보다 경험(Doing)이 남는 장사랍니다. (계룡도착/20:30)
에필로그
계절의 여왕 5월 -.
산과 들은 새 옷을 갈아입고 빨간 덩굴장미가 젊음의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젊을 때 느끼지 못했던, 계절이 매일 변해가는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며 삽니다.
올해는 윤달[閏月]이 있는 해인데요, 4월에 추가되어 윤사월입니다.
양력은 1년이 365일인 반면 음력은 1년이 354일 정도로 1년에 약 11일 차이가 납니다.
양력과 음력의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3년에 한 번 꼴로 윤달을 넣어 절기를 맞춰 나갑니다.
만약 음력에서 윤달이 추가되지 않으면 17년이 지나면 계절이 뒤바뀌어 동지가 한여름이 됩니다.
예로부터 윤달은 공달이라 했다는데, 올 윤사월을 보너스(Bonus)라 생각하고 함 살아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