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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불교문화연구회 원문보기 글쓴이: 진각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기 전에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다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고 하며, 성수산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절의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830년(흥덕왕 5)에 무염국사(無染國師 801~888)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무염국사는 충청남도 보령 성주사(聖住寺)에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일으켜 후학들을 지도했는데, 신광사가 자리한 지역에는 그럴 만한 절이 없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여 절을 지었으며, 절 이름인 신광사는 곧 항상 새로운 인재가 자라나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1848년(헌종 14)에는 현감 조능하(趙能夏)와 운장(雲漳) 스님의 노력으로 중수되었다.
신광사 대웅전 /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 113호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인데, 지붕이 기와가 아닌 너새 라는 돌로 이어진 것이 특이하다. 1848년에 중건되었다.
신광사 명부전 명부전은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인데, 기둥은 둘레 150㎝의 싸리나무로 세워졌다.
신광사 부도탑 절 입구에는 1827년(순조 27)에 세워진 무송긍초(茂松亘初)스님의 부도탑과 1849년(헌종 15)에 세워진 <법당대공덕주 현감조공능하영세불망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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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ㅋ남쪽 사람들 눈보고 난리가 학예회 무대에 선 아~아들 같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