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 여행』
일본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2006년 여름에 가족들과 함께 부산에서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오사카,나가사키
일대를 팩키지로 여행했고, 금년 여름 8월에는 교총단체 연수에 동료 영양교사들과 함께 다녀왔다.
부산에서 일본을 여행하려면 주로 쾌속정을 타거나, 야간 여객선을 이용한다. 지금은 도쿄가 수도이지만,
한반도에서 가까운 오사카나 교토는 오랫동안 일본 정치문화의 중심지였기에 남쪽지역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다.
첫째날, 가장 남쪽에 위치한 규슈섬의 아소국립공원 활화산은 두 번 방문하게 되었으나, 첫 번째 방문 때 보지 못했던
활화산을 다행히 이번 여행에서는 구경할 수 있었다. 천지나 백록담이 그렇듯, 수천년 전에 화산폭발이후 산꼭대기에
아름다운 연못이 생성되어 있다. 특히 아소산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살아있는 활화산이다.
하여 매캐한 화산가스 발생정도, 바람의 방향에 따라 관광객들이 마그마연못을 볼 수도, 못 볼 수도 있다.
수면은 빗물, 수증기 등이 내려 앉아 도저히 인공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맑은 옥색에 희뿌연 연기를 뿜고,
수면 200m아래는 펄펄 끊는 마그마가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연못 속에 1천도의 마그마가 끓고 있다니 상상이 안 된다.
아소산 근처는 초지가 많아 목축이 성행하고 유제품이 맛있다.
비싼 물가 때문에 환율 비교하면서도 동료들과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는 온천여행인데. 화산지역에 지진이 빈번하므로 온천이 많이 발달해 있다.
일본여행하면 온천을 빼 놓을 수 없다. 벳부에서 카마도 지옥온천이란 곳을 방문하여 잠시 족욕과 온천 스팀으로 구운 계란을 맛보았다.
사방에서 물이 거품을 뿜으며 끓고 있는 모습이 마치 지옥과 같아서 지옥온천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 밖에 향수박물관을 관람하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숙박지에 도착.... 다들 기진맥진하여 밤거리 구경은 엄두를 못 냈다.
이튼날, 우사신궁, 최근에 완동된 꿈의 다리, 육지와 섬을 연결한 길다란 다리를 보기 위해 일찍부터 버스에 올랐다.
이번 여행 일정은 너무 빡빡했다. 주로 원거리를 단시일에 돌아 보려니, 버스로 2~3시간씩 달리기가 기본이고,
관광지를 직접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30분 정도였다.
특별히 인상에 남는 장소 대신 2~3시간씩 버스로 이동하면서 스쳐지나는 풍경들, 주로 가이드가 들려 준
일본의 문화, 국민성, 역사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여행지가 남쪽 외곽지역인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많이 본고 느낀 것은 경차들과 히노키라는 삼나무 숲이다.
모든 도로망이 경차위주인지 한국보다 도로는 좁은 것 같다. 또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쓰레기가 없다.
섬지역이어서 습한 날씨 때문에 햇빛만 나오면 열심히 이불이나 빨래를 널어 놓는데, 이 모습이 왠지 정겨웠다.
빨리빨리, 정보화, 현대화 하며 앞으로 달리는 우리에 비해서 아직 일본은 주변도 돌아보고, 자연도 생각하면서 조금은
천천히 천천히 미래를 준비하는 것 같다.
일본은 화산지역이다 보니 혼슈 본섬에만 해발2000m이상의 높은 산이 600여곳이라 한다.
육지전체가 바다에서 매우 높게 융기해 있어, 세계에서 높은 산이 많기로 유명하고, 그 중 최고봉이 약 3800m인 후지산이다. 일본인들은 후지산을 아주 신성시하면서 신년 새해 꿈에 후지산을 보게 되면 가장 좋은 길몽으로 여긴단다.
옛날부터 중국, 한반도를 통해 불교문화가 전파되어 1억2천700만명의 인구중에 8천만명이 불교도이면서,
동시에 8천만명은 일본 자생신앙인 신도를 믿고 있고, 기독교인은 10%미만이라고 한다.
신도를 한동안 국교로 정했고, 왕을 신성시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된다고 여겨서, 조상의 납골당을 마을 가까이
모시고, 그들이 후손들을 보호해준다고 생각한다. 하여 일본국민들은 신년 새해에 꼭 신사참배로 일년의 복을 기도한다.
신년에 일본인들은 신사에서, 복을 빌고, 신년운세가 적힌 종이를 뽑아서 행운이면 종이를 집으로 가져가고, 액운이면
종이쪽지를 신사의 담벼락에 걸어 두고 가는데, 신들이 액땜을 위해 빌어준단다.
무조건 편하게 해석하는 일본인들이다.
가끔 일본수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여, 세계의 질타를 받고 있는 이유는 이곳 신사는 일본 왕실 역대조상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일본인들이 가장 숭앙하는 곳이다.
2차대전 당시 진주만을 공격하기로 한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살아 돌아오기 힘들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에 그들끼리는
“후일에 야스쿠니 신사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약속을 하였다 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국이 주축이 되어 일본의 전범들은 국제법에 의해 사형 당했고, 나중에 일본이 전범들의
위패를 야스쿠니 신사에 모셨기 때문에 일본의 정치수장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함은 2차 세계대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는 뜻이니 세계인의 눈은 곱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일본 자국민 입장에서는 전범들이 애국자인 셈인가?
2차대전 말기에 이탈리아, 독일이 차례로 항복을 하였으나 일본은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당시 2개의 원폭(각각 우라늄, 플루토늄 폭탄)을 일본에 피폭하기 위해 연합국 수장들이 장소 결정에서 처음에는 미츠비시공업 등 일본 군수산업의 메카인 나가사키와 일본의 심장인 교오토를 결정했다.
옛날부터 교오토를 중심으로 주로 대륙쪽에서 교통이 편리한 서남쪽에 인구가 밀집하고, 모든 경제, 문화가 융성하였으므로 교오토는 1천년 이상의 고문화재가 많은 곳이기에 제외되었고, 당시 해군사령부가 있었던 고쿠라시를 결정하였다 한다.
예정대로 나가사키는 피폭을 당했고, 3일 뒤에 고쿠라시에 피폭을 하러 갔던 전투기조종사는 기상의 악화로 고쿠라시를
상세히 확인하지 못했고, 되돌아가던 길에 구름안개가 걷히면서 정말 신의 은총이 내리듯 빛이 내리쬐는 곳을 목표물로
보았는데, 그곳은 고쿠라시의 해군사령부 건물이 아니라 히로시마의 오래된 성당건물이었다.
고쿠라시는 운좋게 원폭을 피했고, 어의 없게도 전혀 군대 시설과 아무 상관 없는 히로시마가 피폭을 당한 것이다.
지난 번 여행 때 평화의 공원을 거쳤는데 그곳에는 피폭현장의 처참한 사진들, 피폭후 전신에 화상을 입은 희생자들의
처절한 몸부림, 생명이 끊어지기 전 까지 “오미즈(물)”을 절규하며 찾았고,
어린 소녀가 기록한 피폭후 며칠간의 일기내용을 전시해 두고 있다.
그리고 이름을 “평화의 공원”이라 하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곳을 방문한다.
피폭현장의 처참함만 비추고, 최초로 원폭 피해자인 그들의 불쌍함만 초점 맞추고, 그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아우슈비츠의 독일을 제치고 일본에서 최초로 원자 폭격을 받게 되었는지는, 자신들의 반성한다는 내용 같은 설명은
없는 것이다.
마지막 날은 시모노세키항 근처 하기마을의 일본 전통가옥을 방문하였는데, 일명 사무라이 마을이다. 일본식 전통가옥의
특징은 다다미방, 인공적으로 가꾼 정원이다. 한국은 방구들을 놓아 조리와 난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반면,
일본부엌은 조리용 아궁이가 따로 있고, 방에도 따로 국소난방을 하므로 다다미방이 필수 인듯…
마지막으로 모지항구를 시찰했다. 이 항구는 일찍이 개화기때 네덜란드 등 유럽 상선들이 드나들던 곳으로 100년 이상 된
고건물들이 많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들렀는데, 예전의 영도대교처럼 다리를 들어 올리면 아래로 배가 지나가는 형식으로 때마침 오전10시에 다리가 올라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먼저 여행은 가족과 함께라서 고추장, 김치 등 준비를 했었으나 이번은 혼자라 가볍게 떠났다가 사흘쯤 지나니
서서히 매콤한 맛이 땡긴다. 범일동 조방앞 낙지볶음이 얼마나 먹고 싶던지...
부산으로 귀항하는 배에서 올림픽 여자핸드볼 3위 결정전, 화창한 여름 대한해협의 맑은 하늘을 마음껏 즐기면서 건너 왔다.
첫댓글 일본, 참 아름답고 잘 정돈 된 나라이지, 난 그렇게 많이 일본에 다녔지만 관광지를 가본적은 없고 항상 호탤과 공장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미즈와리나 정종을 마신것이 전부이지,, 참 해태근무시 신입사원 연수차 일본에 몇 개월 주재하고 있을때 비와꼬 라는 아름다운 호수를 본적은 있구나.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