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강도 삼지연군(三池淵郡)과 중국 [東北地方(동북지방);滿洲(만주)]의 [吉林省(길림성)]이 접하는 국경에 있는 한국 최고봉의 산. 북위 41˚31′∼42˚28′, 동경 127˚9′∼128˚55′에 걸쳐 있다. 해발고도 2744m. 총면적 약 8000㎢. 북쪽으로는 장백산맥(長白山脈)이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백두산을 정점으로 남동쪽으로는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이 2000m 이상의 연봉(連峰)을 이루면서 종단하고 있다. 동쪽과 서쪽으로는 완만한 용암대지가 펼쳐져 있어 한반도와 멀리 북만주지방까지 굽어보는 이 지역의 최고봉이다. 산정은 거의 4계절 동안 백설로 덮여 있고, 산정부는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이루어져 있어 항상 희게 보이는 데서 백두산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불함산(不咸山)·개마대산(蓋馬大山)·도태산(徒太山)·태백산(太白山)·장백산(長白山) 등으로도 불려왔다.
자연
지질·지형
백두산은 산세가 험준하고 지형이 복잡한 데다 대륙쪽으로 열려 있고, 한반도쪽은 고원과 2000m 이상의 고산지가 둘러있으며 급격히 동해로 이어지고 있어, 독특한 산지기후와 자연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1597·1668·1702년에 백두산이 폭발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까지 활동한 휴화산이다.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제3기에 이루어진 산정부(山頂部)는 알칼리성 조면암(粗面岩)으로 구성된 종상화산(鐘狀火山)이다. 대략 2200m를 경계로 그 이하는 제4기에 현무암(玄武岩)이 열하분출하여 용암평원을 이루어 순상화산(楯狀火山)의 형태를 보여 준다. 중앙화구는 그 뒤 함몰에 의하여 칼데라가 되었고 여기에 강수와 융설수가 괴어 천지(天池)를 이루었다. 천지는 흔히 용왕담(龍王潭)이라고도 하며, 남북의 길이 4.85㎞, 동서의 나비 3.35㎞, 둘레 13.11㎞, 평균수심 204m, 총적수량 20억 400만㎥이다. 이곳은 병사봉(兵使峰)을 비롯한 망천후(望天吼)·비류봉(沸流峰)·차일봉(遮日峰) 등 16개의 산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주위의 화구벽(火口壁)은 400∼500m의 높이로 절벽이어서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병사봉 동쪽과 달문 부근뿐으로, 천지로 내려가는 완경사 지형인 권곡(圈谷;Kar)에 해당한다. 천지의 물은 북쪽의 화구벽 곧 승사하(乘磋河)로 뚫린 달문을 통하여 넘쳐 흘러 높이 68m의 비룡폭포(飛龍瀑布)를 이룬다. 제4기에 이루어진 현무암은 개마고원 일부와 만주에 걸쳐 동서 240㎞, 남북 400㎞에 이른다. 수직단면의 지질을 보면, 상층은 기공(氣孔)이 있는 현무암, 그 다음층은 회색의 석질이 단단한 덩어리의 현무암, 원마도가 높은 자갈, 현무암층의 순으로, 중간의 자갈층은 현무암대지의 형성 이전에 상당기간 유수(流水)에 의한 침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두산 동쪽 삼지연에서 신무성(神武城)을 지나 원지(圓池)에 이르는 일대는 높이 1500m, 반지름 30㎞인 대표적인 용암대지 지역이다. 비룡폭포에서 약 2㎞ 부근에 있는 온천군(溫泉群)은 백두산이 아직도 잠재적으로 화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이처럼 백두산 일대의 지질은 생성연대가 짧고 다공질인 현무암이어서 지표수의 흐름이 순조롭지 않아 하곡(河谷)의 발달이 미약하다.
기후
기후는 수직적 분포가 뚜렷이 나타나 저지대에서 정상부까지 온대로부터 한대에 이르는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 천지 주변의 기후는 고산기후의 특색을 이루어 겨울이 춥고 길며 바람이 세고 일기변화가 크다. 평균기온은 1월이 -24℃, 7월이 10℃ 내외로 최저 -44℃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1965. 12. 15). 연평균풍속은 초속 11.7m이며, 12월에 17.6m로 가장 심하다. 강수량은 백두산 일대의 지형적 장애로 인하여 습기를 가진 대기가 강제 상승되거나 서쪽에서 이동해 오던 저기압계가 지연되므로 주변지역보다 증가되어 연강수량 1408㎜ 정도의 최다우지에 해당한다. 기온이 낮아 적설기간은 9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 약 9개월로 평균 적설심(積雪深)은 약 30∼50㎝ 정도이다.
생태
기후의 수직적인 변화가 크기 때문에 식생의 차이도 뚜렷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대체로 이 지역에는 식물 1400여 종, 동물 400여 종이 살고 있다. 식생을 고도별로 보면, 높이 500∼1050m는 혼합림지대로 낙엽송·가문비나무·사시나무 등 침엽수와 자작나무·황철나무 등 활엽수가 혼재한다. 높이 1750m까지는 침엽수림지대로 침엽수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높이 2100m까지는 관목림지대로 이깔나무·월하나무 등이 주요 수종을 이룬다. 높이 2100m 이상은 한대림지대로 겨울기온 -45℃ 이하에다 강풍이 불기 때문에 털진달래·풍모버섯·바위솔 등이 자생하며, 이 지역의 1/3이 전형적인 북극식물로 총 170여 종에 달한다. 또한 백두산지역은 천연 한약재의 보고로 산삼·당상·황기·북오미자(北五味子)·두향(杜香)·위령선(威靈仙) 등 약용식물이 있다. 동물은 백두산호랑이·자초(紫貂)·수달·표범·곰 등이 있고, 이로부터 얻은 약재로 호골(虎骨)·녹용·사향·웅담·수달담 등이 있다. 서식하는 조류로는 130여 종의 텃새와 70여 종의 철새가 있어 200여 종에 이른다. 주요 조류로는 원앙·먹황새·파랑새·노랑때까치·노랑할미새·오색딱따구리·수리부엉이 등이 있다.
역사·유적
백두산의 문헌에 의한 최초의 이름은 불함산으로 《산해경(山海經)》 <대황북경(大荒北經)>에 기재되어 있다. 한(漢)나라 때에는 <단단대령(單單大嶺)>, 남북조 위(魏)시대에는 <개마대산> 또는 <도태산> <태백산>으로, 금(金)나라 때는 <장백산>이라 불렸다. 고려의 기록으로는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태백산>이라 칭하였으며, <백두산>이란 명칭은 《고려사》의 광종 10년에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역사상 단군조선·부여(夫餘)·고구려·발해(渤海)·금·청(淸) 등 이곳과 관련을 갖지 않은 나라가 없다. 백두산은 일찍부터 한민족(韓民族)의 발상지로 또 개국의 터전으로 숭배되어왔던 민족의 영산(靈山)이었으며,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수난을 같이 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인용된 고기(古記)의 기록에 의해 단군신화의 탄생무대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백두산이 200∼300년을 주기로 분출했던 휴화산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한민족의 직접적인 거주지였다기보다는 불을 뿜어내는 성역으로 간주되어, 인지가 발달하지 못했던 선사시대에 민족의 시원(始原)을 말해주는 신화의 무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민족의 기원설화를 안고 있는 까닭에 인간의 거주가 제한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므로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의 발굴을 기대하기 힘들며 발견·보고된 바도 없다. 삼국이 정립되기 이전의 시기에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남서쪽에는 고구려, 서쪽에는 부여, 북쪽에는 읍루, 북동쪽에는 숙신(肅愼), 동쪽에 동옥저(東沃沮) 등의 북방유목민족이 주변에 흩어져 살았다. 고구려가 강성해진 이후에는 고구려의 세력권이었으며, 발해의 영토 안에 있었다. 연변지역에는 발해가 건설한 많은 성지가 보존되어 있는데, 발해 전기의 도성인 구국(舊國;돈화현 오동성)과 5경중의 동경 용원부(龍原府;훈춘현 팔련성), 중경 현덕부(顯德府) 등이 이 지역에 분포하여 있다. 이후 백두산은 통일신라나 고려의 영역외곽에 위치하여 북방 이민족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요(遼)를 건국한 거란이나 금을 건국한 여진족의 발상지도 이곳을 중심으로 하였다. 금은 1172년(명종 2)에 이곳을 산신으로 봉하여 영응왕(靈應王)이라 하였고, 1193년에는 개천굉성제(開天宏聖帝)로 책봉하였다. 고려 말∼조선 초기에는 여진족이 백두산을 경계로 흥경(興京)을 중심으로 압록강·두만강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후금이 건국되자 그들의 시원지로 간주하여 영경(靈境)이라는 제사를 지냈다. 청나라 때에는 이곳을 장백산신(長白山神)에 봉하고 출입과 거주를 제한하는 금봉책(禁封策)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에 세종(世宗)은 북방야인의 침범을 막기 위해 1434년(세종 16) 두만강 일대에 6진(경원·경흥·회령·부령·온성·종성)을 설치하였고, 1443년에는 압록강변에 4군(무창·자성·여연·우예)을 설치함으로써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천연적인 국경이 되었으나, 백두산 일대는 너무 광활하여 국경선을 확연히 할 수 없었다. 조선과 중국의 문헌 중 1677년(숙종 3;淸 康熙 16)에 무목납(武木納) 등 4인을 백두산에 파견하여 실황을 조사·기록한 《장백정존록(長白征存錄)》이 백두산 답사기록으로는 최초일 것이다. 1712년(숙종 38) 5월에는 국경을 확실히 하자는 청의 제의에 의해 오라총관(烏喇總官) 목극등(穆克登)과 조선 군관 이의복(李義復)과 조태상(趙台相)이 백두산의 분수령인 높이 2150m의 지점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 이 비가 백두산에 전하는 금석문으로서는 최초의 유적이다. 이 정계비는 높이 72㎝의 6각기둥으로, 비문에 <서쪽은 압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이다 …(西爲鴨綠 東爲土門 …)>라고 새겼다. 그 후 1880년(고종 17)부터 청나라는 돌연 토문이 두만(豆滿)을 뜻함이라는 억설을 주장하여 논란이 되더니, 1909년(순종 3) 만주 침략의 야욕을 가진 일본이 북경에서 청나라와 회담하고 토문강에서 훨씬 남하하여 두만강이 한·청 두 나라의 국경이라고 임의로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영토이던 간도(間島) 전역을 청나라에 넘겨주었다. 일제강점기의 백두산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무력항쟁의 기지로서 더없이 좋은 곳이 되었다. 1920년 6월 백두산 기슭의 봉오동(鳳梧洞)에서는 홍범도(洪範圖)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이 일본군과 격전 끝에 최대의 승전을 하였다. 백두산은 이처럼 항일의 전승지로서 독립운동사에 그 이름이 빛날 뿐만 아니라 6·25 때에도 개마고원유격대가 전투부대를 조직하여 인민군과 싸웠던 활약은 유명하다. 현재는 백두산 천지 수면을 경계로 하여 동쪽의 비류봉에서 남서쪽 마천우(麻天隅)를 향해 일직선으로 국경선 표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자원
부존자원
백두산 천지 주변 반지름 70㎞내에는 백색의 부석(浮石;輕石)이 뒤덮고 있는데 구멍이 많고 가벼워 건축시 경골재(輕骨材)로 활용도가 크다. 건축재로 경비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천연단열재로 실내 보온효과도 커서 경제성이 매우 높다. 천지의 수질은 무색·무취로 맑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플랑크톤이 없어서 물이 오염되지 않아 천연식수로서의 개발이 기대된다. 지하자원도 매우 풍부하게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금속광이 50여 종이고 비금속광이 40여 종이다. 주요 자원은 금·은·알루미늄·구리·아연·망간·석탄·석유·석면·석회석 등이 있다. 또한 높이 약 2000m 이상의 고지를 제외한 백두산 일대는 산림으로 뒤덮여 있어, 아시아 북동지방에서도 산림자원이 가장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약 1400여 종의 자생하는 식물 중에 경제성이 높은 식물만도 800여 종이 된다. 특히 혼합림지대는 전형적인 산림지대를 이루고 있고, 1800∼2000m의 자작나무지대에는 거의 잡목이 섞이지 않은 자작나무의 삼림을 이루고 있다. 이도백하(二道白河) 부근에 자생하는 미인송(美人松)은 표피가 등황색으로 약 40∼50m씩 수직으로 자라기 때문에 최양질의 재목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원목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뗏목이나 혜산(惠山)∼대평(大平)간의 백두산 임산철도·혜산선·백무선(白茂線) 등을 통해 길주(吉州)·무산·만포 등지로 운반되면 이곳에서 제재된다. 백두산지역의 각종 천연한약재도 임산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광자원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특이한 분화구를 이루고 있어서 수직적인 자연경관의아름다움과 그 생태체계로 보아 세계적인 영산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높이 2155m에 깊고도 넓은 천지를 가진 산은 이 지구상에 백두산뿐이며 물이 흘러 들어오지도 않는데, 주야로 넘쳐 거대한 비룡폭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도 신비로운 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근래 미국·캐나다·일본·독일 등에서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약 5000㎡의 면적에 온천군을 이루고 있어서 세계적인 온천 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다. 이도백하가 이 온천군의 가운데를 지나가는데, 이 하안(河岸) 우측에 온천물이 솟아나는 온천안(溫泉眼)이 집중되어 있다. 온천안은 모두 13개로 뜨거운 것은 82℃에 달하며, 최저의 것은 37℃이다. 13개의 온천안 가운데 7개는 60℃ 이상으로서 고열온천에 속하고, 3개는 41∼59℃에 이르는 중열온천, 나머지 3개는 37∼38℃에 이르는 저열온천에 속한다. 분출되는 온천수의 양은 제5·8호의 온천안이 가장 많고, 제1·9호는 비교적 적다. 중급에 속하는 제3호 온천안의 수량은 시간당 약 2.4㎥가 분출되며, 수량도 항상 한결같고 수온도 4계절 변함이 없다. 이들 온천물은 유황냄새로 보아 황화수소 H
S 기체가 함유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그 외에 칼슘과 마그네슘의 중탄산염(重炭酸鹽;Ca(HCO
)
·Mg(HCO
)
)이 함유되어 있다. 이 온천물은 특히 피부병·관절염·풍습병 등에 효험이 있다. 또한 약수가 분출되는 냉수천(冷水泉)이 있는데 두도백하(頭道白河) 서쪽 물가 현무암벽의 틈에서 분출된다. 항상 8℃의 온도를 유지하며, 그 물맛이 시원하고 산뜻하여 천연사이다라고 불린다. 물 1
당 이산화탄소 1500㎎, 중탄산기 1400㎎, 마그네슘 134㎎, 칼슘 110㎎, 나트륨 150㎎이 함유되어 있어, 위장병이나 심장병 등 만성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루 약수량 약 4만
가 용출된다. 이렇듯 빼어난 자연경관과 양질의 온천 및 약수, 고산지대의 서늘한 기후조건 등 관광개발의 좋은 입지조건을 구비한 백두산 일대는 세계적인 관광지 및 피서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북한에서는 이 지역에 대하여 대규모 벌목공사를 하고 고산지개발을 위하여 케이블카 건설 등 개발에 힘쓰고 있다.
첫댓글 소원 조씨<소원댁>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려서 좋은글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늘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