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여는 작가>, 한국작가회의, 2009년 가을호.
이발소에 가는 이유 외 1편
맹문재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몰아치는 날인데
나는 이발소에 간다
세련되고 요금이 더 싼 미용실이 집 가까이 있는데
비 그친 뒤 가면 될 텐데
최후의 선택이라도 한 것처럼 간다
땅에 뿌리를 박는 바위처럼
습관이 나의 길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밥상 앞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전화를 걸면서도 물건 값을 치르면서도
습관을 지키려고 한다
광장의 집회에서는 신도가 된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궁상을 떤다거나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이라고 탐탁하게 여기지 않지만
나는 철회할 생각이 없다
난쟁이 같은 사람들에게 이기적이지 않고
노동의 길을 돌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먹잇감을 찾아가는 호랑이처럼 나는
빗속을 뚫고 이발소에 가는 것이다
마음을 극화시키다
태백에서 진폐자들을 보는 순간
내 마음 속의 분진을 걷어낼 수 없었다
황사를 넘어 탄가루가 되어
나의 폐까지 죽일 것 같았다
낙관주의를 선택한 나의 안목이나
푯대를 세운 용기나
갱구를 옮기기 위해 삽을 쥔 손힘까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분진을 걷어내려고
광부들의 선언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불안에 움츠러들지 않고
야심을 북돋우려고
자정이 넘도록 각서까지 쓰지 않았던가
이러면 될까요,
나는 진폐자들에게 기도하듯 주먹을 쥐어 보였다
탄가루 덮인 내 마음을 극화시켜 보았다
맹문재
1991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가 있음.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수상.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