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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7일 물사랑
지구 온난화에 따른 영향인지 좀처럼 겨울답지 않은 날씨가 계속되더니 그래도 12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제법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크리스마스 이브와 성탄절에도 이것이 바로 겨울날씨 다 라고 보여 주는 것과 같이 제법 매서운 한파가 이어진다.
올해는 국가적인 경제 상황도 여의치 못한 데다 국민들의 소비심리 마저 꽁꽁 얼어붙어 있어서인지 예전에 느끼던 그런 연말연시의 흥청거림이 잘 나타나지 않음은 비단 내 주위에 일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12월에 접어들면서 간간히 각종 모임이 열리더니 셋째주 산악회 송년의 밤을 시작으로 매일 몇 번씩 겹치는 모임 약속에 꼭 참석해야 하는 곳과 그냥 인사로 대신해야 할 곳을 구분해야하는 분주함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래서 인지 몸과 마음은 연일 이어지는 음주로 인하여 그래도 강성체질을 갖고 태어났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좀처럼 힘들다는 말을 안했는데 참으로 견디기 힘들 지경이다.
다행히 성탄절에는 별다른 스케줄이 잡히질 않아 일요일 산행에 참석하기로 이미 진작에 마음먹은바 컨디션 조절을 위해 계양산에 올랐다.
차겁지만 그래도 상쾌한 공기가 찌든 가슴을 세척이라도 하듯 시원하게 느껴지며 그간에 쌓인 주독을 나름대로 풀어보려 애썼다.
그런데 하산하여 집에 돌아오니 그간에 지친 몸을 한번 더 혹사한 모양이 되어서 그런지 온몸이 으슬으슬 춥고 관절에서는 기분 나쁠 만큼 몰려오는 통증이 아무래도 몸살이 난듯하여 내일의 산행이 은근히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냥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잠 푹 자고 나니 그래도 제법 정상 컨디션이 느껴진다.
아침 일어나서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푸는 모습을 보고 오늘은 그냥 쉬는게 어떻겠냐고 종용하지만 이미 약속한 일이므로 그럴 수 없다며 배낭을 메고 새벽길을 나선다.
지난주 산행을 송년 모임 때문에 거른지라 한주 만에 나서는 새벽길이 마치 오래 전에 해본 듯 생면스러움 마저 느껴지지만 그래도 산행에 대한 묘한 기대와 잔잔한 흥분으로 매서운 새벽바람도 그저 시원스럽게 느껴진 뿐이다.
월마트앞 멀리 비추는 불빛을 배경으로 그림자처럼 어둡게 투영되는 단 한명의 사람
꽤 먼거리지만 무릉도원님임을 알아보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마도 강건한 체력과 오랜 산행을 통해 생겨난 그 특유의 기가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곧바로 도착한 청송 창밖에서 차안의 상황을 살피는 것은 성탄절에 그리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혹 참여 인원이 너무 적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 일것이나 그건 정말 한낱 기우에 불과함을 금새 깨닫는다.
얼핏 보아도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걸로 보아 오늘도 만석인 상태로 산행을 하게 되는구나 생각하니 웬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하고 넉넉해짐을 느낀다.
가는 곳이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국망봉이라 아마도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목적지에 도착하여 9시 전에는 산행을 시작 할 수 있을 걸로 예상해본다.
고속도로를 통해 가는 것이 아니다 보니 제대로 된 휴게소는 없고 졸다가 자동차가 서길래 내다보니 일동 버스 정류장 앞이라고 한다.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이른 아침에 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소화해날 식당은 없어보여 최대장님 한군데만 가지말고 이리저리 분산해서 들어가 식사하라고 하여 일단 나와 보니 꽁꽁 언 밤을 보내고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히뿌연 서리를 뒤집어쓰고 있는 한적한 시골의 작은 도시가 영하10도는 넘을 듯한 매서운 기온 앞에 얼어붙은 듯 웅크리고 서있다.
뉴스에서도 보면 제일 추운 곳이 철원지방인데 포천이나 철원이나 거기가 거기 아니던가.
정말 볼을 스치는 작은 바람이 마치 예리한 면도날로 그어대듯 따겁고 쓰라리게 느껴진다.
아침은 집을 나서며 대충 먹었기 때문에 진작에 포기하고 화장실에나 들려볼까 생각했는데 그 마저 만원이라 그냥 버스에 오르니 정말 올 때는 버스가 춥다고 투덜댔는데 이처럼 따스할 수가 없다.
산밑에서도 이처럼 추운데 산에 올라가면 얼마나 추울까 생각하니 동원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방한 장비를 갖추기로 마음먹는다.
어째든 버스는 한적한 시골 길가에 서고 이것저것 갖춘 방한 장비로 제법 육중함마저 느끼는 몸으로 버스를 나서니 바짝 얼은 잡초에 하얗게 내린 서리가 발에 밣혀 바스락거리며 일행을 맞이하는 듯 하다.
몸의 컨디션을 생각하여 오늘은 무리하게 선두를 고집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주어진 위치에서 한발 두발 내딪어 보니 그래도 생각보다는 발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작하자마자 선두 팀들은 벌써 산행들머리로 잠기듯 밀려들어가고 그 뒤를 천천히 따르는데 오늘도 처음부터 진입이 잘못되어 되돌아서 다시금 방향을 잡는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로를 따라 몇 분 쯤을 워밍업겸 걷고 나니 본격적인 산행으로 들어가기 위해 왼쪽의 언덕을 향해 들어서기 시작한다.
가을의 그 눈부시도록 아름답던 단풍들은 이제는 짙은 갈색과 바싹 말라붙은 낙옆의 모습으로 떨어져 땅에 딩굴다 어느 잡초 옆 초라한 자리에 기대어 죽은 듯이 누워있고 그 위로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희다못해 시퍼렇기까지 한 서리가 다시금 하얗게 채색하고 있다.
겨울산 초입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풍경은 이처럼 무겁고 어두운 갈색과 앙상한 가지만 남은 쓸쓸한 나무가 띠고 있는 짙은 회색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깊은 어둠의 색깔이 온통 가득 내려 앉아 있다.
그나마 머리를 들어 산위를 바라보니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이 정산 부근 산위를 밝고 맑게 비추고 있어 깊은 회색의 자연 속에 소중한 생명이 숨겨 있음을 대변하는 듯 하다.
추위를 예상하고 낀 남극 탐험대원 들이나 사용할 듯한 투박한 장갑 속으로 후끈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하고 잠시 후엔 더 이상에 그 안에 손을 놔두기 곤란한 정도로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냥 얇은 장갑을 끼고 올 것을 하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배낭 속 깊이 들어가 있는걸 생각해 봐야 소용없고 급기야는 장갑을 벗고 오르는데 들고 가는 것도 거추장스럽지만 손시러운 것은 어쩔건지......
처음 볼을 에이듯 차겁던 바람은 이젠 시원하고 상쾌하게만 느껴지고 자켓 목부위에서는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이리 추운데 땀이 나랴 생각하고 헤어밴드는 소품 주머니에 넣고 출발했는데 20분쯤 헐떡이며 오르니 이마에선 벌써 땀이 방울방울 눈썹위로 떨어지기 시작하여 할 수 없이 꺼내어 머리에 동이고 나니 이젠 목에서 올라온 수증기하고 코와 입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합세하여 안경을 뿌옇게 하더니 바람으로 날아갈틈도 없이 그대로 얼어 앞이 잘 보이질 않는다.
몇 번이고 숨을 아래로 뿜으며 바람으로 말려보려 노력했지만 효과가 별무신통하여 아예 벗어 주머니 넣고 점점 무거운 발걸음 밑에 언제부터 인가 뿌리다 만듯한 잔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밑에서 볼 때는 산 어느 곳에도 흰색은 찾아 볼 수가 없었는데 이토록 속살깊이 감추고 있었구나 생각해 본다.
지난번 갑자기 첫눈이 내려 구경도 못했는데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산에서 구경하게 될 줄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뜻밖의 상황이 무슨 횡재라도 만난듯하다.
버스에서 최대장님 경기도 근교의 산이라고 호락호락하게 보면 큰코다치는 경우가 있으니 1000고지 이상되는 산은 절대 얕잡아 보지 말라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을 보니 이젠 제법 힘이 드는 모양이다.
오늘은 일찌감치 선두는 포기했고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며 물을 먹으려했더니 아뿔싸 하이드로미더리의 연결 호스에 든 물이 그만 꽁꽁 얼어 사용불가능 상태다.
호스에 물을 빼고 마실때마다 빨아올려야 했는데 거기까지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는 노릇이고 물없는 산행은 상상도 못하는 터라 할수 없이 일행이 올라오기만 기다리며 천천히 한발씩 오르니 몸은 어느덧 풀려 편안하고 뛰어서 오를 만큼 기력이 회복되어 기분 마져 상쾌해진다.
산행으로 몸은 열기가 가득하지만 분명 날씨는 영하10이하임이 분명한 것이 코에서 올라온 수증기가 눈썹에 매달려 얼었는지 껌벅일 때마다 끈적거리고 무거운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물며 어떤 산우님은 머리가 긴 중년의 남성인데 뒷머리 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모르고 헐떡이며 내곁을 스치고 지나 올라간다.
과연 이 상황을 웃어야 할지 놀래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거의 칠부 능선쯤은 되리라 생각하는 지점에 대피소가 보인다.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 내부에는 의자며 평상처럼 생긴 목재 구조물들이 보여 잠시 쉬고 가려 들어갔더니 온통 담배 냄새로 머리만 살짝 들이밀었다가 얼른 빼고 오른쪽 옆을 돌아 힐끗 바라보며 스쳐 지나간다.
산의 형상을 보니 이제부터 이산에서 가장 가파른 깔딱 고개 앞에 서 있음이 분명하고 어느덧 발밑에는 제법 쌓인 눈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하며 천근은 되는 듯 무거워진 다리와 헐떡이는 허파와 쿵쾅거리는 심장을 위로하는 것처럼 색다르면서도 행복하기만한 겨울 산의 젓번째 기쁨조의 합창이 현실을 벗어 난 듯한 묘한 착각 속에 빠져들게 한다.
가파른 경사와 쌓인 눈 그리고 이제는 웬일인지 좀전 만해도 시원하던 바람이 날카로운 칼날이 된 듯 볼과 코를 베어내듯 스치고 지나가는 그야말로 겨울 산의 진면목 앞에 서 있는듯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처럼 무겁지만 마음 놓고 내 딛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 지금부터는 아무생각도 아무 경치도 눈에 보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종전 까지만 해도 두런두런 들리던 산우님들의 대화가 이젠 어디에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귓가를 스치는 그다지 강하지도 않은 겨울 산의 매서운 바람만이 쌩쌩 에이듯 스칠 뿐이다.
코에서는 콧물이 줄줄 눈썹에는 허연 성애 지나는 산우님들의 모자위에도 올라온 수증기가 얼어 허옇게 서리가 내린듯하고 어깨며 등 옆에도 허옇게 서리가 내려있다.
드디어 산마루에 올라서니 오른쪽 30미터 전방에 국망봉(해발1167.2미터)정상이 보인다.
옛날 궁예가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대야망의 꿈을 펼치다 스스로의 모순에 빠져 폭정으로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첫 번째 부인인 강씨가 목숨을 걸고 직고를 하자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유폐시키고 나중 왕건에게 패 한후 부인을 찾으니 이미 죽은 후라 이산 정상에 올라 망한 나라 철원을 바라보며 통탄했다하여 국망봉이라 한다고 한다.
국망봉 정상에 오르니 아직까지 몹시도 추웠던 날씨가 마치 봄날이라도 된 듯 내리 쪼이는 햇살이 유별나게 따스하게 느껴지고 펼쳐진 산 아래로 울퉁불퉁 험하게 느껴지는 봉우리들이 전방고지의 위용을 여지없이 자랑하듯 뽐내며 서있다.
산우님이 건네준 따스한 녹차 한잔에 그간의 피로와 고통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잠시의 휴식은 또 다른 도전의 의욕을 불태우게끔 한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눈썰매장처럼 쌓인 눈이 다져져 있다.
어릴 적 산 비탈에서 타던 미끄럼이 생각나서 쪼그리고 앉아서 스틱을 지팡이 삼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와본다.
불과 몇 미터였지만 어릴 적 즐거웠던 추억을 끄집어내기 에는 충분하다.
아직은 한번도 설산을 등반해본 경험이 없는지라 배낭 안에 든 아이젠도 어떤 상황에서 차야 하는지 조차 몰라 그 미끄러운 길을 그냥 내려왔다.
하기사 어릴때 생각해보면 겨울날 그 춥고 눈이 제아무리 와도 신고 다닌 것은 검정고무신 이였다.
그걸 신고 학교에도 갔고 얼음판에서는 썰매도 탔고 눈길에서는 미끄럼도 탔다.
어른들을 따라 토끼 몰이라도 나갈라치면 벗어질까 두려워 새끼줄로 꽁꽁 동여매고 무릅까지 빠지도록 쌓인 눈 속을 추운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지 않았던가
내 기억에는 그 당시 미끄러져 넘어져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자연적으로 체득한 몸의 중심 잡는법 이나 미끄러운 길에서의 보행법 들이 아마도 자연에 스스로 적응하는능력을 키워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같이 등반하면서도 한번도 어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는 오소리님의 자제 승호를 보면서 왜 자꾸 어릴때 모습이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다.
지금 승호의 모습은 참으로 별나고 기특하고 대단하고 가상하게 느껴지는데 당시 우리는 그런 것이 생존의 가장 기초적인 현실일 뿐이였다.
너무 심약해져가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참으로 앞날이 걱정이 되는 걸 피할 수가 없다.
그런 고무신신고 다니던 때에 비하면 얼마나 훌륭한 장비인 등산화를 신고 있는가
푸석한 눈길은 발전체로 밣아야 미끄럼이 덜하고 딱딱하게 굳은 눈에서는 뒷굼치로 꽉 찍고 밣아야 미끄러지지 않고 아예 미끄러운길은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지나가고 게다가 스틱으로 위쪽에 든든한 지지점을 오른발과 같이 균형을 잡은 상태에서 왼발을 옆으로 게걸음처럼 내려 딛어 안정된 자리를 잡고 다시 오른발과 스틱을 옮겨 반복하면 가파르고 미끄러운 비탈길도 제법 빠른 속도록 내려갈 수 있다..
발을 옮기기 너무 먼 거리이면 어떠랴
또 하나의 좋은 지지점 엉덩이가 있지 않은가
안전이 우선인 겨울산 생각하기에 따라선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고 재밌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조금 내려와 조금 아늑한 분위기 풍기는 장소에 사람들이 몰려있어 혹 우리 경인 산우님이 아닐까하고 바라보니 아닐 리가 없다.
선두팀들은 벌써 식사와 정상주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어 합류하지 않고 옆에 다시 자리를 마련하고 뒤 따라오신 유달산님 내외분과 또 처음 뵌 듯한 중년의 여성 산우님과 같이 식사를 했다.
일주일내 술을 마셔 오늘은 안 마시려 처음엔 뺐는데 김대진씨가 건네준 소주잔을 시작으로 무릉도원님의 잔 유달산님의 잔 등 서너 잔은 한듯하다.
식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역시 눈 쌓인 급경사의 썰매장이다.
그래도 신로령까지는 제법 재미있게 내려왔는데 좌측으로 접어들면서 의 하산로는 바위와 눈이 섞여 얼어붙은 그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길이 이어진다.
바짝 긴장된 다리와 스틱을 잡은 팔이 경직되어 쥐기 날 정도인데 그것도 잠시 적응을 하고 나니 그래도 제법 걸을만하다.
사실 한발 한발이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에 잠시의 방심도 허락지는 않는 긴장의 연속이지만 적응 되었다는 것은 위험과 난관을 그때그때의 기지와 재치로 넘겨가는 스릴이 나중에는 가슴이 저릴 정도로 짜릿한 기분이 정말 여간이 아니다.
끊었다 이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고 연속된 난관을 해결하며 나가다 보니 위험을 인지하는 감각이 둔해져 혹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약 1분 간격으로 한번씩 심호흡을 하면서 기분을 전환하고 감각을 가다듬은 후에 이어지는 스릴은 정말 같이 산행 하신 분들 대부분이 느끼셨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약 삼사십분 급경사의 하산로는 끝나고 그래도 위험하지만 아직까지 보다는 훨씬 편안한 길이 나오고 이제부터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눈 쌓인 겨울산의 아름다움이란 그냥 방안에 앉아서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상당히 차이가 많은 것 같다.
약간의 신체적 고생이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앞에 우리를 서게 하는 것이다 생각하니 우리 몸이 건강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행복인가를 다시 새삼스럽게 느껴본다.
조금 더 내려오니 이제 계곡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숨은 듯 드러낸 듯 조롱조롱 흐르는 소리가 그 어떤 최고의 오케스트라의 음악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바라보니 위에는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얼음이 얼어 있고 가운데 물살이 빠른 곳을 통해 눈이 시리도록 깨끗한 계곡물이 겨울산을 안고 딩굴 듯이 이리저리 맴돌며 흐르고 있다.
물은 같은 물이로되 얼음과 물이 갖는 느낌은 정말 많이도 차이가 나는듯하다.
얼어야 함에도 무슨 한이 남아 있음인지 아니면 추운 겨울 산을 찾은 산꾼들의 위안이 되기 위함인지 고여 있음에도 얼지 못 하고 맑고 푸른 속내를 보여주는 작은 소에서는 몸과 마음이 정갈하게 정화되는 심연속의 고요를 느끼게 한다.
사계절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면서도 굳이 두드러지지 않는 조화로운 산의 변화 속에 우리네 산을 찾는 산우님들은 그 은덕으로 마음의 건강과 신체적 건강을 넉넉하게 나누어 받는다.
추웠고 즐거웠고 행복했고 짜릿한 스릴이 넘치는 이번 국방봉 산행도 이제 휴양림을 조성하기 위해 공사 중인 넓은 공터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오늘따라 생수 공장 위에 있는 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조차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산으로부터 좋은 심성을 갖도록 하사 받은 푸근한 덕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산주로 마련한 이동 갈비집에서 산우님들과 주고받은 즐거운 대화가 점차 깊어만 가는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녹여 버릴 만큼 훈훈함이 가득하여 너무 좋았다.
성탄 연휴에 찾아와 동서남 아시아를 강타한 초대형 지진으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