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문학보다는 미술을 더 많이 들으러 다녔다. 특히 김백균 교수님의 강의는 <동양예술론>, <동서미술 비교론> 두 과목이나 들었다. 한자투성이의 교재를 나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그림을 통해 옛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는 게 무척이나 좋았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을 쫓아가 비오는 날 맨발로 연꽃 구경을 하던 ‘고려시대 곽예’ 말씀을 드리고 나의 필명으로 어떨지 의논을 드렸다. 대답과 함께 보여주신 그 미소를 잊지 못한다.
美: 좋은 글자는 희생과 관련이 있다. 선보다 미가 크다. 크게 얻으면 크게 손해 봐야 한다. <동양미술사> 김기주 교수님.
책 하나가 교실만큼의 죽간이 필요하다. 점토판이나 대나무 같은 초기 책에 매료되다. 동양에선 ‘서명’ 위주로 저자의 이름은 없지만 본문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서지학 특강>의 송일기 교수님.
첫날 아무 길이나 걸어도 좋게 생긴 구두와 운동화의 중간 신발을 신고, 등산에나 갈 법한 까만 가방을 메고, 칼과 숟가락과 포크로 이루어진 꽃그림 티셔츠를 입고 들어와서 “출석, 신경 쓰지 마세요, 하하.” 웃으시던 <미학 개론> 진중권 교수님. 그럴수록 우리는 출석에 신경 쓰고 시험은 더더욱 신경을 썼다.
<한국미술사 연구>의 목수현 교수님은 무척 어려보이는 얼굴로 즐거운 강의를 하고 하루는 식사로 드시려던 빵을 나눠주었다. 편한 신발을 신고 이촌역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한 좋은 추억이 있다.
송이 언니와 <뮤지컬의 이해>를 들으러 갔다. 고성일 교수님은 청강생의 이름도 불러주고 배려해 주었다. 수업시간에는 열정적이며 재미있고 시험 볼 때에는 가차 없었는데 그 태도에도 감탄했었다. 집에 고우영 화백님의 통감투 2권, 일지매 8권, 십팔사략 10권을 사서 두고 늘상 보고 있다.
박철화 교수님의 글을 좋아한다. 말은 더 좋아한다. 모 소설가의 표절 문제가 터졌을 때 “이런 거에 휘둘리지 말고 그 시간에 시 하나 더 쓰라.”는 말씀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쓰고 있다. 시가 되는지 알 수 없어도 쓰고 있다.
강의 첫 시간에 연못 구경한다고 늦어서는 지각이 아니라고 우기고, 한밤에 느닷없이 프로스트의 <목장>이란 시를 문자로 날려서 놀라게도 해드리고…. 이승하 교수님. 중앙대에는 서정주 박목월 시인이 있고 이승하 시인이 있다.
함께 상해 여행을 가고,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기댔던 해갑 언니, 회장님이던 언니는 긴 머리 날리며 말을 타고 남한산성에 와서 밥솥 가득 밥을 비벼주었다.
송이송이 눈꽃송이 송이 언니, 어여쁜 재주꾼 주희, 문화방송 작가 정희, 지석이의 행복한 엄마 영주, 한 송이 꽃같이 부드러운 숙련 언니, 오래도록 책을 복지관에 보내준 정란 언니, 상냥한 해선 언니, 함께 시낭송 무대에 섰던 동화 님, 조용한 리더 광식 오라버니, 다정한 국어선생님 태진 선배, 행복과 행운을 다가진 혜경이, 별이 된 지은이 모두 그립다.
―≪곽예의 사진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