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잡지 못하는 예배문화
예배의 답답함 호소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이는 주일 예배 시작때 선포되는 말씀이다. 두눈을 꼭 감고 듣는 이 말씀과 함께 주일날 예배는 시작된다. 그러나 축도로 끝난 예배 마지막에는 과연 내자신이 오늘 예배에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드렸는지 의문을 품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형식화된 예배에 익숙해 졌기 때문이다. 몇십년이 흘러도 변화지 않는 한국교회 예배문화 틀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않다는 뜻이다.
‘경건과 거룩’ 그리고 ‘전통’이라는 명맥하에 한국교회 예배는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근 몇 년사이 ‘열린예배’라는 새로운 예배가 몇몇 교회에서 시도됐고, 이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끝이지 않고 있다. 분명 예배는 경건과 거룩이라는 부분이 중요한 기본 정서로 담겨져야 한다.
또 전통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반면, 예배의 역동성 및 생명감을 회복해 예배드리는 자들이 예배를 통해 기쁨과 감격을 경험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현재 드리고 있는 예배문화의 딱딱함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으며, 새로운 초신자나 젊은이들은 두말 것도 없이 기존 예배문화의 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현재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는 무엇이 잘못됐기에 교인들이 이러한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이는 한국교회 예배문화가 너무 한가지틀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이 한곳에만 고이면 썩듯이 말이다.
즉 ‘예배의 갱신’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예배는 끊임없이 그 시대의 상황과 문화변화에 따라 갱신돼야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교파와 교회들이 자신들이 드리는 예배형식을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데서 예배갱신이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교회에서 예배에 변화를 주려면 많은 반대에 부딪힌다고 한다. 변화를 싫어하기 보다는 두려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각처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와 형식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며 예배 드리고 있다. 기존의 한국교회 전통예배와 다르다고 해서 변화와 형식을 적용하는 것을 꺼려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고 있는 예배인가하는 점이다. 즉 예배에 대한 분명한 목회철학이 세워져 있는 성령이 살아있는 예배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 기본틀안에 형식적인 변화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가 과제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예배의 다양한 요소들
그러면 예배를 이루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쉽게 예배의 요소들을 살펴볼수 있는 것은 각교회 주보를 보면 알수 있다. 교회마다 순서에는 차이가 있으나 고백, 찬양, 기도, 설교 , 성찬식, 축도 등의 순서를 갖는다. 또 이를 세분하면 기도에도 참회기도, 신앙고백, 중보기도등 수없이 많은 기도를 예배가운데 드린다.
찬양도 성가대 찬양과 따로이 찬양단이 조직되어 찬양을 활성화시키고 있는 것이 요즘 추세다. 그러나 교회마다 아직까지 대예배시 찬송가만 불러야 되고, 복음성가등은 사용할수 없게 되어 있다. 다만 청년예배나 집회때는 복음성가를 허용하고 있다. 즉 찬양에도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설교에도 영상물을 사용한다든가 설교시간을 짧게 한다든지 다양한 시도들이 적용되고 있다. 농담삼아 ‘목회자의 설교는 짧을수록 좋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만큼 설교안에 생명력이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예배의 경우 설교 또 시간의 장단은 논란 거리가 안된다. 모교회의 경우 설교시간이 한시간이 넘지만 설교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 그 교회 교인들의 증언이다.
특히 최근에는 청년층등 변화된 세대에 맞게 월십을 넣은 찬양을 강화한다든지, 드라마나 연극등이 예배중에 공연되기도 한다. 또 각종 영상물등 멀티미디어를 사용해 예배의 효과를 더하는 경우도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것이 20세기말 현재 한국교회 예배안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의 다양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적인 효과 장치들을 갖추어도 부족한 것이 아직도 있는 것이 한국교회 예배의 현실이다. 예배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지금의 한국교회 예배가 전통예배스타일을 고수해 지루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세례나 성만찬 그리고 예배력에 맞는 설교나 예배분위기 조성등 전통예배 요소등은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즉 한국교회 예배는 완전히 전통적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자신들이 세례받았을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세례교육 또한 형식적이며, 교인만들기에 급급해 짧은 기간내에 이뤄진다. 그래서 어떤 교인은 교회를 오래다녔어도 자신이 예수를 구주로 확실이 영접한때 세례를 받기위해 세례받는 것을 늦추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예배의 가장 큰 요소를 이루는 성만찬도 개신교의 경우 형식화되어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성탄절등 특별한 절기에만 이뤄진다. 그러나 교인들중에는 이러한 성만찬이 자주 이뤄졌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더불어 예배력에 대해 무지한 기독교인들이 많은 만큼 예배력애 대한 교육과 예배분위를 조화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특히 한국 전통절기와 교회절기와 비교 연구하는 문제는 중요한 부분이다.
담임목사 목회철학중요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교단마다 차이가 있다기보다, 개교회별로 정확히는 담임목회자의 목회철학에 따라 형식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보수적인 교단이라도 담임목회자에따라 찬양이 강화된 열린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진보적인 교단이라 불리는 교회라고 해도 담임목회자가 보수적이면 기존의 엄숙함 예배를 드리기도 하는등 차이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담임목회자의 목회 철학이 한국교회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담임목회자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한국교회안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더불어 예배갱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담임목회자가 어떠한 목회 철학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교회 예배문화가 바뀐다. 작은 예로 어떤 교회는 성찬식이 1년에 4번밖에 없지만 어떤교회는 성찬식이 한달에 한 번 아니 매주 한 번씩 있기도 한다. 이는 담임목회자의 예배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 부분이기도 한다.
또 이러한 목회철학은 그 교회가 위치한 지역상황에 따라 예배형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작용한다. 즉 예배형식에 있어서는 정형화된 틀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교회가 열린예배를 드려 교인들이 많이 모이고 교인들이 감격과 눈물을 쏟는다고 해서 그 교회의 예배가 곧바로 한국교회 전체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단, 좋은 예는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 교회가 위치한 지역과 교인들의 상황에 맞게 드려진 예배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많은 지역과 청년이 많은 지역, 노인이 많은 농어촌 지역에 따라 교회의 예배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작은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큰교회는 큰 교회대로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역할이 있기 때문에 예배문화의 형식도 다를 수 있다. 또 같은 지역이라고 해도 큰교회에서 막대한 재정력을 가지고 드리는 화려한 예배와 교인이 얼마안되는 작은교회에서 적은 재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겉보기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름대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이 있기 때문이다.
열린예배 아직도 논란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열린예배’가 미국에서는 구도자예배(seeker's worship), 즉 믿지 않은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거부감없이 예배에 적응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의미를 가진 열린예배가 한국에서는 불신자나 초신자들을 위한 예배이기 보다는 신앙생활 몇십년 한 교인들 즉 기존 교인들을 대상으로 드려지고 있는 것이다. 대상이 틀린 것이다.
그래서 김병삼목사(만나교회)는 그의 저서 〈열린예배? 현대예배!〉에서 미국의 열린예배 즉 구도자를 위한 예배가 한국에서 기존예배의 변형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은 절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분히 실패의 위험을 안고있다며, ‘열린예배’를 ‘현대예배’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밝혔다. 열린예배가 현대 예배의 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예배는 세상사람들의 언어와 형식을 사용해 대화하기를 원하며 복음의 진리를 나누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간단한 이야기들, 매일매일의 생활속에서 흔히 들을수 있는 이야기들을 사용하여 진리를 말씀하셨고, 오늘날의 예배가 현대적인 언어로 드려져야 함도 이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아직도 열린예배 내지 현대적인 예배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한국교회의 정서도 여전하다. 즉 경건과 거룩으로 대표되는 기존 예배에 대안으로 나온 열린예배는 예배모범에 대한 도전이며, 열린예배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기쁨을 준다고 하지만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그 주체는 하나님이시지, 인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쁨 또한 축제같이 춤추고 노래하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것. 즉 열린예배를 반대하는 이들은 열린예배가 사람위주로 현대감각에 맞게 적용되어 세상의 문화를 교회안에 끌어들인다고 반박하고 있다.
삶의 변화로까지 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이 기존 예배스타일에서 조금씩 변형을 주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저마다 찬양을 활성화시키고 젊은이들을 잡기위해 애쓰며, 예배중에 연극이나 영상물 등을 도입하고 있다. 열린예배를 드리는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 예배스타일을 배우기 위해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탐방을 가기도 하며, 경동교회, 동안교회의 예배문화등도 한국교회안에서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20세기 끝머리와 21세기 문전 앞에 와 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부흥회와 찬양집회등으로 교회 성장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문화 그중에서도 예배문화에 대한 갱신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것도 그 지역과 그 교회 실정에 맞는 예배문화로 말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되, 그 방법적인 차원에서는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예배도 지금은 개혁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형식화되어 교인들이 또 답답해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예배갱신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부분은 예배를 통해 교인들의 삶도 변화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일 하루만의 감격과 기쁨을 주는 예배는 한편의 공연물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들의 삶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대화하며, 찬양하는 그러한 삶으로의 변화까지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21세기 예배갱신을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우은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