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앞 회화나무
김선식
도청 앞 회화나무
사무실에서 나와 금남로 지하상가에 가는 길이다.
상가 입구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습관처럼 눈길을 오른쪽으로 돌린다. 저 만치 죽어버린 회화나무 한 그루. 작년을 마지막으로 잎을 틔우지 못하고 시커멓게 마른 가지들을 하늘로 뻗친 채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서 있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도청 앞 회화나무라 부른다.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옮겨간 지가 여러 해이고 그 자리에 아시아문화전당 건설공사가 한창이지만 아직도 그렇게 부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꼭대기에서 아래로 쓰윽 훑어 내려오는데, 하얀 천으로 휘감아 놓은 밑둥치 옆 성글게 자란 풀숲 위로 둥글둥글 줄지어 달린 회화나무 이파리들이 한들거린다. ‘어, 고목에서 새순이 나왔나?’ 내려서려던 발길을 돌려 그곳으로 가보니밑둥치에서 돋아난 가지가 아니다. 아직 어린, 새끼손가락보다도 가늘지만, 다시 보아도 틀림없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잡초 속에서 자라고 있다. 이렇게 반갑고 고마울 데가!
출판사를 시작한 이래 30여 년을 이 근처에서만 옮겨 다녔기 때문에 오갈 때 마다 눈여겨 봐 오던 회화나무다 수령이 130년이라니 그렇게 오래된 나무는 아니지만, 밑둥치의 굵기나 옹이가 박히고 용트림하며 휘어 올라간 수형이 그 세월의 충상을 말해준다.
이곳에 전남도청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광주읍성 자리였다고 하니 이 나무가 여기에 있는 연유도 짐작이 간다. 예부터 궁궐이나 서원, 관청의 뜰에 반드시 심었고, 사배부들도 집 안에 이 나무를 심으면 큰 학자가 난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자수’ 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지 않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제일 좋아한다는데, 그것은 아마 조선조 이후 근현대에 들어와서 그렇다는 말일 것 같고, 옛날에는 이 회화나무를 제일로 쳤던 모양이다.
서당에서는 회화나무 가지로 학동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회초리를 만들고, 과거에 장원한 사람에게 내린 어사화도 회화나무 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대전, 부산의 괴정동槐定洞이나 충북의 괴산군槐山郡처럼 이 회화나무 괴 槐 자를 쓴 지명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이 나무를 어떻게 대접했는지 알 수 있다. 선비들의 시문詩文에 회화나무가 자주 나오는 것도 그런 내력에서였으리라.
‘도청의회 앞의 회화나무 한 그루
너는 오늘도
生佛로 서 있구나.
해탈한 미륵불로 거 있구나.‘-최봉희 시인의 <회화나무> 일부.
나도 이 회화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그만큼 오래되 나무를 도심에서 보기는 드문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 나무를 처음 본 뒤로 오랜 지기 하나 있는 것처럼 마음이 흥감하여 오갈 때마다 인사를 나누었다. 그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길을 가다가 반가운 사람을 만난 거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혼자 빙긋이 웃음 짓는 때가 많았다.
최봉희 시인이 노래한 이 회화나무, 도청 앞 광장에 서서 광주의 역사를 지켜봐온 터, 인간들의 부끄러운 또한 면면 얼마나 많았으랴만 그래도 꿋꿋이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 주는 생불과 눈 맞추며 고마워했다.
이 회화나무를 베어 없애야 한다는 말이 나온 적이 있다. 이 나무가 바로 뒤에 있는 전남도의회 감판을 가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시민들의 호된 질타를 받아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건물 2층에 의회 사무실이 있었는데 이 회화나무가 바깥 경관을 가린다 하여 가지가 잘려나가는 참변을 당하기도 했다니, 어찌 생각 있는 사람들의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빈총도 안 맞은 것만 못하는데, 잘라버리겠다니, 시야를 가린다느니 되지도 않는 말을 해대니 그렇게 그냥 눈을 감기로 작정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차츰 수세가 약해져 가는 그를 보면서, 아무리 말 못하는 나무라 하나 그 앞에 서서 맞바로 쳐다보기가 미안했다.
작년 여름 가뜩이나 약해진 뿌리가 태풍 볼라벤의 모진 바람을 버텨내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서둘러 일으켜 세웠으나, 그 가을성긴 이파리들을 쓸쓸히 흩뿌리더니, 올 봄이 가고 여름 가을이 다 지났는데도 회화나무는 여전히 빈 가지로 휑뎅그렁한 모습밖에 보여주지 않는다. 온기아고는 하나 없는 빈 가지를 뻗치고 바람 속에서 울고 있을 뿐이다.
그 작은 회화나무가 어떻게 거기에서 자라고 있을까. 그날 이후 궁금증을 풀고자 여기저기 알아보니 시청에서 답이 나왔다.
회화나무가 완전히 말라버린 것을 확인한 시민단체 ‘푸른광주2’에서 천도제를 지매주었는데, 그때 어떤 시민이 어린 회화나무 한 그루를 가져와 심어놓았다고 한다. 그 어린 회화나무는 그가 어미 회화나무 아래서 난 것을 파다가 자기 집에 심었던 것이라 하니 틀림없이 새끼 나무가 아니겠는가. 그도 나처럼 도청 앞 회화나무를 안타까워 한 사람이었으리라. 나중에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두 나무가 모자관계가 분명했다는 말도 들은 것 같다.
어쨌든 어떻게 해서 그 어린 회화나무가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랴. 다만 그 나무가 무탈하게 잘 자라 예전의 큰 나무처럼 무성하여 괴음槐陰을 드리워주기를, 부디 보우하사 흉한 기운일랑 막아주기를, 하늘에, 땅에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