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절을 통해 참회를 하고, 소원을 이루고자 할때 얼마만큼의 절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 절의 횟수는 기도의 내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다급한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참회기도나 큰 원을 세우고 절을 할 때의 경우입니다.
죽을 병에 걸렸거나 아주 난처하고 다급한 상황에 처하여 절을 할때는 앞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됩니다. 그야말로 몸이 부서질 각오를 하고 절을 해야 합니다.
다리가 아프고 기운이 없어서 못하겠다면 이미 그 기도의 결과는 자명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3천배를 많이 시킨 분으로는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을 꼽고 있습니다.
이 두 분 스님중 청담스님은 자비심이 아주 짙어 고통받는 이를 보면 함께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절을 시킬때만은 그야말로 '모질게' 권했습니다.
한 예를 들어봅시다.
◈ ◈ ◈
1965년 여름, 30대의 부인 두 사람이 청담스님을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도선사의 신도요, 다른 한 사람은 중환자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만큼 모습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힘없는 음성으로 스님께 말했습니다.
「스님, 저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여 남매까지 둔 부유한 가정의 주부입니다. 그동안은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더랬습니다.
그런데 2년전에 발견된 자궁암은 말기에 이르러 아래로 피와 고름을 흘리는데다 폐병 3기까지 겹쳐 위로는 각혈까지 하고있습니다. 거기에다 심한 위장병으로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이 친구가 찾아와 '삼각산 도선사에 참회도량이 있으니 그곳에서 기도를 하면 뭐든지 성취한다'고 하기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갖고 찾아왔습니다. 스님,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불교의 '불'자도 모르는 이 문외한 여인에게 청담스님은 생사윤회와 인과응보의 법칙,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법문을 몇 시간에 걸쳐 자상하게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불교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자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의 생사고락(生死苦樂)은 내 마음의 조작입니다. 콩을 심어 콩이 나고 팥을 심어 팥이 나는 것과 같이 인(因)의 뒤에는 반드시 과(果)가 따릅니다. 모두가 한 마음을 잘못 써 그릇된 씨앗을 심은 결과로 고통을 받을 뿐입니다. 현재 부인이 받고 있는 고통을 타인에게 주려하지 말고 무조건 참회하십시오. 참회만이 그릇된 업을 녹일 수 있습니다.」
「스님, 어떻게 참회하면 됩니까?」
「하루 3천배씩, 7일동안 절을 하십시오. 단, 한 번의 절을 하면서 엎드릴 때는 '부처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일어날때는 '큰 마음으로 일체만물을 평등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몸이 되어지이다' 하십시오. 할수 있겠습니까?」
청담스님께서는 그녀의 병이 이기적인 삶의 결과라는 것을 꿰뚫어 보시고, '병이 낫게 해주십시오'가 아니라 '일체만물을 평등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몸이 되어지이다'하는 원을 발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날부터 그녀는 하루 열 번의 절도 못할 몸으로 하루 3천 배씩의 7일 참회기도를 지성껏 하였고, 그결과 불치의 병이 말끔히 낮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특별한 경우에는 특별한 각오로 참회기도를 하여야 하고, 절의 횟수 또한 보통 때와는 달리해야 합니다.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부처님 앞에서 참회를 하다가 목숨을 마치리라."
"당장의 내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절을 하면서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기자."
이렇게 마지막 각오를 가지고 참회를 해보십시오.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막혀 있던 것이 뚫리게 됩니다.
신라의 원효대사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품(下品)의 참회는 땀의 참회요, 중품(中品)의 참회는 눈물의 참회이며, 상품(上品)의 참회는 피눈물의 참회이다.」
정녕 그러합니다. 매우 다급하고 아주 절실한 문제가 있으면 피눈물을 흘릴 각오를 하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또 신라의 진표율사께서는 망신참(亡身懺)을 몸소 행하셨고 두루 권하셨습니다.
나를 잊고 나의 몸을 잊을 만큼 간절히 참회하는 망신참을 행할 때 더할 나위없이 좋은 결
실이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정녕 이렇게 참회를 하건대 녹지 않을 죄업이 어디 있겠으며, 죄업이 녹았는데 어찌 더 이상 고통이 계속 되겠습니까! 하루 3천배라고 하여 마다할 까닭이 없습니다.
불보살의 가피가 '나'에게 임할 때까지 참회를 하고 또 참회해야 합니다.
부디 다급한 일이 있으면 적당한 참회를 하지 말고, 치열한 참회기도를 하겠다는 각오로 임하시기를 거듭거듭 당부드립니다.
이제 평소의 참회기도를 할 때의 절하는 횟수에 대해 살펴봅시다.
직장을 다니는 등의 불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행하는 참회기도라면 매일 108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때는 108염주를 돌리면서 하거나, 자신의 절하는 속도에 맞추어 엎드릴 때 한 번, 일어날 때 한 번, 2×108번의 목탁소리 또는 종소리를 녹음하였다가 매번 녹음기를 틀어놓고 절을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또한 향 하나를 피워 놓고 그 향이 다 탈때까지 횟수에 관계없이 지성껏 절하여도 좋습니다.
혹 매일같이 108번의 절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시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하는 불자가 있다면 하루 한 차례씩, 예불을 드리면서 일곱 번의 절만 하여도 좋습니다.
비록 108번의 절에 비해 일곱 번의 절이 적기는 하지만, 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또 아무리 적은 횟수의 절일지라도 꾸준히 하게 되면 생활의 태도가 달라질 뿐 아니라, 차츰 쌓이게 되면 원력(願力)이 커져 성취가 가까워지게 됩니다.
만약 피치못할 일이 생겨 108번의 절을 못할 경우라면 최소한 3배라도 하십시오. 그리고 3배를 올리면서 염하십시오.
'부처님 제가 오늘 이러이러한 까닭으로 참회의 절을 하지 못하였나이다. 앞으로는 잘 하겠습니다. (또는 대신 내일 하겠습니다.)'
적어도 스스로 정한 참회의 절을 해도 좋고 안해도 되는 절처럼 그냥 넘어가지 마십시오. 참회는 하면 좋고 하지 않아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행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고, 부득이한 경우라면 속으로라도 부처님께 그 까닭을 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참회기도의 생명력이 길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참회의 절을 하며 우리 불자들이 꼭 새겨야 할 한가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한 배 한 배 절을 올릴 때마다 살아계신 불보살님께 절을 하는 자세로 임하라는 것입니다. 불상이나 탱화처럼 고정된 모습의 불보살이 아니라 진짜로 살아숨쉬는 불보살님께서 바로 '나'의 앞에 계신다는 자세로 절을 해야합니다.
진짜 불보살님께서 지금 우리앞에 계신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절을 올리겠습니까? 흐트러진 자세로 절을 하겠습니까? 한 배를 하든 천 배를 하든 꼭같은 정성으로 절을 할 것입니다.
또 참회를 하는 마음가짐은 어떻겠습니까? 오로지 '잘못했습니다. 이끌어 주옵소서.'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참회문을 읽을 때도 틀림없이 온 마음을 기울여 읽을 것입니다.
눈앞에 살아 숨쉬는 진짜 불보살님이 계시는 듯이 절을 올리고 참회를 할때의 정성과 마음가짐! 그 정성과 마음가짐이면 법계에 가득 충만되어 계신 불보살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우리에게 가피를 내려주십니다.
단 몇 번의 절이라도 이렇게만 한다면 생각보다 훨씬 큰 은혜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정녕 이것이야말로 절의 참된 의미이자 참회의 핵심이요 불교를 믿고 실천하는 불자의 근본자세이니, 잘 명심하고 절하고 참회하고 생활하시기를 간절히 청하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_()_
출처 : 불공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