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5일
제목: 상한 마음의 치유
본문: 시편 34:18
우리 인생 가운데 마음에 상처가 없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크고 작음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상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상처는 평생 우리의 발목을 붙잡기도 하고, 신앙생활까지 무너뜨립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인생의 많은 문제가 함께 해결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상한 마음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 친절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여러분 모두에게 마음의 치유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음이 상하는 이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 "속상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속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가난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질병 때문에 마음이 상합니다. 대인관계,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고부관계,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에서도 그러합니다. 실패를 경험하거나 승진에서 제외될 때도 마음이 상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사울 왕의 살해 위협을 피해 이웃 나라로 도망하였다가 정체가 드러나 미친 체를 하며 쫓겨난 후에 지은 시입니다. 그때 다윗의 마음은 극도로 상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큰일 때문에만 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소한 일 때문에도 깊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재난의 원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달걀 하나 때문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지내던 두 집이 다투다가 양쪽 집을 서로 불태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그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뒤늦게 후회합니다. “우리가 왜 싸웠는가? 겨우 달걀 한 알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것쯤은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지 않았던가? 달걀 한 알 때문에 이렇게 큰 집을 모두 태워 버렸구나.” 이처럼 사소한 일도 치유되지 않으면 큰 상처가 되고, 인생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또한 오해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만든 오해로 상처받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상대가 나를 무시했다고 지레짐작하기도 합니다.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던 사람에게도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연약하기에 누구나 오해할 수도 있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마당에 심어 놓은 비파나무는 5~6년이 지나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가 흔들고 괴롭혀도 불평하지도 않고, 배반하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불평도 많고 변덕도 심합니다. 그런 사람들과 날마다 함께 살다 보면 상처받습니다. 교인도 상처받지만,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원만 아니라, 회사 대표도 상처받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평생 남기도 하고, 배우자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받고 삽니다.
상한 마음은 치유되지 않으면 쓴 뿌리가 됩니다
상한 마음은 반드시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는 점점 덧나게 됩니다. 몸의 상처를 방치하면 염증이 생기고 병이 깊어지듯이 마음의 상처도 오래 품고 있으면 결국 독이 됩니다. 마음에 상처가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병들게 합니다. 상처를 준 자와 관계가 끊어지고 맙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으면 신앙생활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기도가 막히고, 설교를 들을 때도 말씀을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건강한 교제를 나누기 어려워집니다.
건강한 손은 흙탕물에 들어가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상처 난 손은 깨끗한 물에 씻어도 쉽게 덧납니다. 건강한 손은 박수해도 괜찮고 주먹으로 땅을 쳐도 괜찮지만, 상처 난 손은 조금만 스쳐도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상처받은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깨진 그릇과 같습니다. 깨진 그릇에 물을 담을 수 없듯이 하나님의 은혜도 온전히 담아 둘 수 없습니다. 또한 상처받은 마음은 깨진 거울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얼굴도 일그러져 보이고, 아름다운 풍경도 보기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으면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매사에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됩니다. 더욱이 상처받은 마음에는 사탄이 쉽게 침투합니다.
여러분에게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없으십니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상처도 있지만, 차마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상처도 있습니다. 그 상처가 어떤 것이든지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치료받을 수 있겠습니까?
상한 마음을 어떻게 치유 받을 수 있을까요?
일반은총의 영역에도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과 상담이 있습니다. 깊지 않은 상처는 그런 도움으로 해소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깊은 상처는 상담으로 해결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다윗은 자신의 상한 마음을 치유받기 위하여 여호와께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해답입니다. 상담사도 해결하지 못하고, 의사와 약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상처는 여호와께 나아가야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 교수는 히틀러 정권에 의해 추방되어 미국 유니온 신학교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철학과 신학, 심리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석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독일식 억양이 강하게 남아 있었고, 학생들은 그의 발음을 듣고 웃곤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망명 온 학자였던 그는 점점 의욕을 잃어갔습니다.
어느 날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우편함을 열어 보니 학생이 보낸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선생님, 힘내십시오. 우리가 웃는 것은 선생님의 발음 때문이지 강의 때문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정말 훌륭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웃더라도 힘을 내십시오. 우리는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폴 틸리히 교수는 그 편지를 읽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통곡했습니다. 그 편지 한 장이 그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도 이렇게 놀라운데, 죄인 된 인류의 아픔을 치유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의 역사는 얼마나 위대한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상한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고 몸부림칠 때, 우리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함께 아파하시는 주님이 계심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하던 마르다와 마리아를 찾아가셨고,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함께 우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체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우리의 상처를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주시고 싸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처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아픔을 치료해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모든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때 막혔던 물줄기가 다시 흐르듯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흘러넘치고,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속 깊이 숨겨 두었던 상처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도 있습니다. 누구나 한때는 아픈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생 그 상처를 붙들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아뢰십시오. "주님, 제 마음을 만져 주십시오. 제 상처를 치료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싸매지 못하실 상처가 없으십니다. 어떤 아픔이든 상관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도, 오래된 상처도 주님께는 치료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상한 심령이 치유되고, 마음에 그늘이 사라지며, 하나님의 평안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