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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바로크(BAROQUE(A.D 17C))란 1600년부터 1750년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카톨릭 국가에서, 르네상스의 이성적 규칙에 의한 지나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부터 발전한 미술양식을 뜻한다. 바로크는 포르투칼어의 '비뚤어진 진주'라는 뜻으로 르네상스가 지닌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해 장식이 지나치고 과장된 미술양식에 대한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혹은 르네상스가 지니고 있는 고전적인 균형, 조화의 세계에 비하여 강한 왕권과 함께 나타난 유동적이고 강렬한 남성적인 감각이 강조되어 붙어진 이름이라 한다.
르네상스와 비교해서 바로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보다 빛나는 색채, 음영과 질감의 풍부한 대비 효과, 자유롭고 표현적인 붓질 등으로 비고전적, 동적, 남성적, 불규칙적인 성격과 심한 과장성의 표현이다.
회화에 있어서는 대각선적인 구도, 원근법, 단축법, 눈속임 효과의 활용 등이 전체적인 특색이다.
17세기 초의 대표적인 미술가는 카라밧지오였다. 그의 사실주의는 이상화된 사실이 아닌 현실자체의 표현으로 그의 작품 「의심하는 성도마」에 등장하는 성인의 모습에는 이상화된 성인이라기보다는 현실속의 사람의 모습이었고, 당시의 사람들은 분개하였다. 그는 사건을 보다 진실하고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극적을 사용하였다.
또한 17세기 조각의 거장인 지안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은 조각이 다소 회화에 위축된 시기에 만들어지는데, 그의 작품은 조화와 균형 보다는 감정과 종교적 체험 등의 표현에 역점을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즈는 카라밧지오의 사상과 기법에 커다란 영향을 받아 자연을 냉정하게 관찰하여 몇 번의 단순한 필치로 작품을 완성하였는데「왕녀 마가렛」「시녀들」을 그렸다. 거대한 화면에 사물을 운동감 있게 배치하고 색과 명암을 풍부하게 묘사한 루벤스 등이 그 뒤를 이었으며, 집중적인 광선의 표현과 깊은 인간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던 렘브란트의 「야경」,「자화상」등은 바로크 미술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크는 16세기 고전적 르네상스의 조화·균형·완결성 등에 대해 경탄과 현혹을 지향하여 양감, 광채, 동감에 호소하고 있다. 그리하여 건축에서는 거대한 양식, 곡선의 활용, 자유롭고 유연한 접합부분등의 특색을 나타내고, 조각에서는 비상하는 동적인 자태와 다양한 의복의 표현 등을 특색으로 하였다.
바로크 예술은 전체에 종속되는 부분들의 조화를 통한 균형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균형이란 전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던 각각으로도 완벽한 부분들이 이루는 전체적인 균형과는 다른 것이지만 매너리즘의 종종 고의적으로 조화를 깨뜨리는 점이나 로코코의 신경질적인 단편성 보다는 오히려 르네상스에서 말하는 균형과 공동되는 점이 더 많다.
바로크가 추구하는 화합은 형식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신체적인 참여를 하게하고 그럼으로써 정신적인 참여를 하게 하는 것이 바로크 작품의 특징이다.
바로크 미술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첫째, 자연주의적 추세를 부활시킨 카라밧지오는 예술의 원천으로 관념보다 자연의 관찰을 강조했다.
둘째, 전성기의 르네상스 고전기와 로마 고대 풍습으로의 복귀였다.
셋째, 필수적이며 가장 지속적인 요소로 베네치아 - 특히 티치아노의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과 코렛지오의 예술에서 이탈리아 바로크의 색깔과 빛, 풍요로움이 비롯된다.
이 세 요인으로 1620년대에 바로크 양식은 루벤스와 로마 화가들에 의해 최초로, 또 놀라운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로코코
로코코(ROCOCO(A.D 18C))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 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코코는 왕실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주아의 예술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희와 쾌락의 추구에 몰두해 있던 루이14세 사후,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귀족계급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 위해 에로틱한 주제나 아늑함과 감미로움이 추구되었고 개인의 감성적 체험을 표출하는 소품위주로 제작되었다.
17세기 미술의 후원자는 교회와 왕실이었지만 여기에 부르주아 지배계급으로 등장하면서 살롱이 미술 활동의 새로운 무대로 등장하였고, 그 결과 종전의 권위적인 바로크적 권위 대신 개인생활에 적합한 감각적이고 쾌적한 미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부서지기 쉬운 호화로운 장식, 사소한 주제, 목가적인 시, 규모는 작으나 정밀한 조각 등이 쉽게 눈에 띄는 것이 로코코의 특징이다.
로코코는 바로크 미술이 즐겨 쓰던 부정형이나 유동적인 조형요소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바로크의 연장 또는 변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바로크가 지녔던 충만한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따위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유희적 정조로 바뀌었다.
다시 말하면 바로크가 남성적, 의지적임에 반하여 로코코는 여성적, 감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회화는 고전주의를 부정하고 빛에 중점을 둔, 시적이고도 고도로 표현적인 미술작품들을 제작하면서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후기 바로크 양식을 로코코라고 부르는데 이 양식은 밝고 감각적인 연작의 그림으로 재현되었으며, 다채롭고, 연극적이며, 쾌락을 찾는 계층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있다.
로코코는 고대풍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새로운 취향의 신고전주의가 출현함으로써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 혁명과 함께 새로운 시민 계급과 청교도적인 분위기가 대두되면서 전 세대의 예술과 도덕의 경박성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로코코는 프랑스에서만 크게 전개 되었을 뿐 다른 나라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한편 이 시기 샤르뎅이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미술가가 있었는데, 그는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예술로까지 승화시켰다. 특히 정물화에 뛰어났던 그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음식 도구까지도 예술적으로 그려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