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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코카 키나바루 여행은 7월 15일(토요일) 9시 30분, K카운터, 여권, 9시 30분, K카운터, 여권,,,, 암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매일 한번씩 회장님(김영환선생님)이 보내는 지령과도 같은 산행 안내문은 기다리는 즐거움을 더 해 주었다. 정답이 모두 “3번”인 퀴즈까지 동원하여 그 안내문을 회원들에게 읽게 했으니, 회장님의 유머감각은 과연 수준급이다.
1년을 기다리던 코카 키나바루 해외 등정!! 나는 이 여행을 위해 10만원씩 2인분, 매달 20만원을 계돈 붓듯 10달을 부었다. 큰딸 현주와 같이 가기 위해서.... 기대반 걱정반으로 시작한 여행은 성공리에 끝나 이제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9시 30분, K카운터 앞에는 약속대로 이화산우회 식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면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고, 퀴즈를 맞춘 사람들에게 행운권 추첨을 해서 상품을 주는 깜짝 이벤트까지 벌여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희안한 것은 뽑기를 뽑은 사람이 거의 자기 이름을 다시 호명하였으니, 이게 왠 주최 측의 오묘한 마술? 우리도 1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을 받아 즐거워하며 출국을 기다렸다. ^^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서는 창가에 앉아 구름을 보기를 원하는 현주를 위해 김영환 선생님이 기꺼이 창가 좌석을 양보해 주었다. 덕분에 김영환 선생님과 나는 비행기짝이 되어 맛있는 식사와, 맥주, 와인, 꼬냑까지 먹으면서 4시간여의 비행시간을 즐겼다. (옆에 앉아있던 홍익대선생님들이 둘이 부부냐고 묻는 바람에 이후 우리는 비행기 짝이라 부르기로 했다. ㅋㅋㅋ)
말레이시아의 사바주에 도착한 우리는 2,000m 높이의 키나바루 공원까지 버스로 이동을 하였다. 여기로 치면, 서울에서 설악산 입구를 간다고 해야 하나?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이것 저것 설명해 주었다. 30여 종족이 흩어져 살다가 1700년 경에야 겨우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곧 영국 등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이야기, 풍부한 자원을 지녔으나,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라는 설명, 이슬람교의 1부다처제가 좋은 것 같으나, 재력과 체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설명들을 들으며, 창밖의 풍경들을 보았다. 엉성하게 나무로 지어진 2층 집, 허름한 사람들의 옷차림, 늘어진 야자수 잎 들. 이런 것은 어쩐지 슬픈 느낌을 들게 했다. 식민지가 되었던 곳은 어디나 착취당한 자국이 남아있다고 느껴서일까?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는 설명이 마음에 와 닿았다. ㅠ.ㅠ
어두워지는 산을 향해 우리는 자꾸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나타난 키나바루 공원 입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속에 다시 작은 봉고에 나누어 타고 20여분을 더 들어가니 화려한 메실라우 리조트가 나타났다. 따뜻한 불빛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 메실라우 리조트는 단아하면서도 품위있어 보였다. 그러나, 왕회장님의 등산배낭과 지팡이를 담은 상자가 없어졌다는 소식에 우리 모두는 당황하였다. 혹, 오는 차안에서 굴러 떨어졌으면, 이 어두운 밤길에 어디서 찾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걱정 속에서도 저녁식사는 맛있게 먹고, 각자의 숙소를 향해 갔다. 예쁜 목조건물이 유럽풍의 별장을 연상케 했고, 꽃무늬 프린트의 화려한 커튼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 욕조의 샴푸병과, 비누병이 토기로 되어있었는데, 말레이시아 전통 토기인 것 같아... 마음에 찜을 해 두었다. (나중에 사가야 징 ^^ ㅋ ㅋ)
싱그러운 아침공기와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났는데, 바로 옆방에서 자던 이경옥선생님과 이정희선생님은 밤새 추워서 벌벌 떨었다고 한다. 등산복을 다 입고 잤는데도 한기가 왔었다고,,, 우리방은 따뜻한 샤워물까지 나왔었는데, 이를 어쩌나 싶어 라지에타에 엉덩이라도 뎊히라고 하였다. 밤새 얼마나 추웠을꼬 -_-;
이제부터 정식 산행이 시작되는데, 다행이 포터에게 짐을 맡기면, 꼭 필요한 것만 가볍게 지고 올라가도 된다고 한다. 고산병이 걱정이던 나는 짐을 맡기기로 하였다. 우리의 짐은 6Kg, 한국 돈으로 18,000원!! 이게 왠 횡재냐 싶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두고두고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역시 돈은 살아가는데 필요해 ㅋ ㅋ)
중국 구체구를 갔을 때, 어지러움과 구토증세로 고생했다는 우리 산우회 식구들은 내가 따라다녔던 중에 가장 느린 속도로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쉬는 텀도 자주 가졌다. 나는 이런 속도라면, 얼마든지 갈 수 있겠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 이 팀들을 따라가느라, 늘 뒷골이 땡기고 아팠던 나로서는 이렇게 느리게 가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짐도 가볍겠다, 아직 현주도 별 말없이 따라오겠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석진호선생님 짝, 동백아줌마의 얼굴이 말이 아니게 창백해 지면서 굉장히 힘들어 했다. 늘 씩씩한 우리의 김창현샘도 얼굴이 하앻지며, 맥을 못 추었다. 10시 정도쯤 지났을 때는 이재창 선생님까지 얼굴이 하얗게 굳어진채 심각한 얼굴로 겨우겨우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오기 전에 배앓이를 하고, 몸살을 앓았다는 동백아줌마는 머리가 아파온다고 하여, 우리 모두를 걱정시켰다. 뇌수술한 후유증이 고산증세와 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드디어 석진호 선생님과 이화영선생님(이재창샘 짝)은 아내를 위해 앞뒤로 배낭을 맸다. 불룩한 배를 하고서, 애기야 아직 나오면 안돼, 조금만 참아라 하면서 주위사람을 웃겼다. 모두가 헐떡대며 산을 올라가는 와중에 한마디씩 던지는 우스개말에 우리는 깔깔깔 웃는 수밖에 . 바로 이 맛이야. 어디서 이런 코메디프로를 맛보겠어. 모두가 특급 코메이언들인 산우회 식구들. 나는 남을 웃길 줄 몰라, 그저 웃어대기만 해서 미안해용.
산은 점점 울창한 정글의 모습에서 신묘한 산신령의 모습까지 연상시키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초록색 이끼가 나무등걸이 마다 끼어 있고, 팔뚝만한 식용식물이 머리 위에서 늘어져 있을 때는 인디아나존스 영화의 한 장면에 내가 서있는 것 같았다. 얼기설기 나무들이 엉크러지고 뒤섞이면서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곳도 있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보물섬” 같은 곳을 탐험할 때 이런 기분이었겠지? 나는 동화 속과 영화속을 넘나들며 구름 속에서 신비한 모습을 살짝 살짝 보여주고 있는 키나바루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아, 멋지다. 이것이 적도 위에 높이 솟아있는 유네스코 지정의 자연유산이라는 거구나. ~ 산은 산이 허락할때만 올라갈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을 상기하며, 이산이 우리를 허락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고대하던 긴코원숭이나, 오랑우탕, 사람키보다 더 크다는 “라풀레시아”꽃은 저 숲속 깊은 곳에서 우리를 보고 있겠지?... 에이, 좀 보여 줄 것이지... 그러면, 우리도 Hi ~ 할텐데...
1시가 넘어서 먹은 점심은 원숭이가 좋아한다는 노란 몽키바나나!!! 그렇게 달고 맛있는 바나나는 처음 먹어 보았다. 함께 넣어 준 치킨조각은 우리의 사위감, 동규에게 주고, 샌드위치는 조성숙선생님의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중간중간 쉼터마다 있는 화장실과 수도꼭지(식수)에 감사해 했다. 특히 화장실 변기 옆에 반드시 있는 밑닦이용 수도꼭지는 문명국(?)임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오후 3~4시 경이 되니까, 햇볕 중간 중간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더운 우비를 입으면, 얼마있다가 다시 개이고, 벗으면, 조금 있다가 비가 내리고, 니가 이기나 , 내가 이기나 보자 하며, 오기로 안 입으면, 다시 비가 오고... 이러면서 산을 올라가는데, 4시 정도 되니까 본격적인 빗줄기가 (스콜이겠지?) 쏟아졌다. 3,200m 산장이 바로 코 앞이라는데, 뒷 쪽 대열에 있던 우리는 순식간에 비바람을 동반한 비를 우비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홈빡 맞게 되었다. 그래도 현주의 바지와 등산화는 방수를 자랑하며, 비에 덜 젖었으니, 딸을 위해 떠나기 전날 방수용 등산화와 바지를 새로 사준 아빠의 사랑에 감사해 했다. (나는 돈을 아끼려고 있던 것을 활용하려 했었음 -_-;)
저녁을 먹은 후, 젖은 바지와 등산화를 방안의 열기로 말리면서, 비좁은 2층 침대와 바닥의 매트리스 위에서 8시도 안돼 잠을 청하기로 했다. 꾸깆꾸깆 서로의 몸을 접어서 자야 되는 라반라타산장, 샤워기의 물은 차기만 하고, 복도에서 걷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방안에서 12명(동규까지 우리 방에서 엄마(이재창샘)와 동숙함)이 잠을 청하니, 제대로 잔 사람은 아마 나 하나였을 듯 싶다. (잠꼬대까지 하는 나를 현주가 깨웠다. ㅎ ㅎ ^^)
12시가 조금 넘으니,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소리가 나고, 우리는 1시도 못되어 화장을 마치고 등산차림을 한 후 앉아 있었다. 이제 800m 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니까.... 화이팅!!! 머리에 반딧불 하나씩 매고서, 추위에 대비한 두꺼운 잠바에 장갑까지~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되어 2시 15분, 출발 신호와 함께 어두운 밤길을 시작하였다. 깜깜한 속에 물소리는 나는데, 다행히 밤하늘에 반달이 떠 있었다. 앞뒤로 줄을 이어 걷기 시작하는데, 내 손에 들은 랜턴의 불빛이 점점 흐려져 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왜 이러는 거야? 헤드렌턴도 사라고 하던 남편의 말을 들을 것을... 참으로 깜깜한 밤, 물소리는 발밑에서 졸졸 나고, 어두운 계단 길을 올라는 가야 하는데, 현주가 들던 렌턴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진땀이 바짝바짝 났다. 동규야, 네가 기사가 되어주렴. 뒤 따라 오던 동규에게 SOS를 보냈다. 이후 4,100 m 정상까지 동규는 언제나 현주의 뒤에서 백마탄 기사처럼 보호를 해 주며 따라왔다. 어찌나 듬직하고 고맙던지... 뒤에서 쳐진 이재창 선생님에게 미안하고, 동규에게 고맙고,,, 그 어두움 속에서도 왔다 갔다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석진호 선생님, 서로 손을 잡아주며 어두움 속에서 보살펴주는 동료들에게 정말 가슴깊이 감사를 드렸다. 아름다운 사람들...
3~4시가 되고, 산은 점점 허연 화강암 살을 드러내면서 하늘의 별들이 총총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기암괴석이 한국에선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서 있고, “스타워즈” 에 나오는 우주의 한 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오직 익숙한 것은 하늘위에 떠 있는 달빛뿐이었다. 몇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어떤 낯선 종족들도 이 산위에서 신성한 제사를 지냈으리라. 저 별을 보며, 주술사는 종족의 운명을 점쳤겠지. 산을 오르는 내내 나는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무사히, 우리 모두 아무 사고 없이 이 등산을 잘 마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오늘 이렇게 오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린다고.... 긴 등산이 끝나고 마침내 LOWS PEAK (4095.2m)라고 쓴 정상에 도착을 하였다. 검푸른 색 구름사이로 붉은 빛이 삐져나오는 저쪽 하늘이 동쪽이겠지? 날마다 해는 뜨겠건만, 유난히 그날의 해 오름에 감격해 하며, 우리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정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신령스러운 산, 드디어 그 산은 우리가 산에 오름을 허락해 주었던 것이다. 눈이 시리도록 , 차가운 밤 하늘과 별을 , 달을 그리고, 산 봉우리 모습을 가슴 속에 담고서 우리는 다시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 본 별로도 내딸 현주는 이번 여행의 보람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라도 별을 좋아하겠지만, 유난히 별을 좋아하는 현주!!! 아름다운 장면들은 신현식, 석진호 선생님이 책임지고 찍으려니 믿으며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산을 내려왔다. 이제 돌아와 사진들을 보니, 정말 아름답고, 사진사 선생님들에게 미안할 만큼 고마웠다.
고산병에 걸릴까봐 떨었던 등산을 가볍게 끝마치고, 이제부터는 룰루랄라 놀기만 해도 되는 하산길, 관광코스~ 그러나 복병은 남아 있어서, 내려오는 마지막 길에 장대비를 다시 만나서, 우리는 또다시 물에 빠진 생쥐모양이 되었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맛있는 중국음식점에서의 식사, 듬직한 말레이시아 남자가 해 주던 발맛사지, 근사한 퍼시픽슈테라 호텔, 아침식사, 사피섬, 특히 바나나보트와 스노쿨링은 너무나 재미있어서 그 해변에서만 종일 놀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비싸서 못 먹던 랍스터요리는 정말 맛있었다. 현주는 여기서도 동규와 패러글라이딩, 씨워킹, 바나나보트 등을 하고 놀았으니, 이보다 더한 기사는 없으리라. 아마 그 두 아이에게는 훌륭한 추억거리가 될 듯 싶었다. 저녁에 들린 바닷가에서의 노을도 참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바닷물이 어찌나 부드럽고 따뜻하던지, 딱딱하고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함께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될 것 같다.
너무 여러 사람의 수고로 이번 코카키나바루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것 같아 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1년 전부터 기획을 했을 회장, 총무, 회계 선생님의 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열심히 사진을 남기려고 뛰어다닌 석진호 선생님과 신현식선생님, 그리고 서로 서로를 격려하며 사랑을 베풀어 주던 한 사람 한사람들이 모두 보석처럼 귀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또 만날까? 이화 산우회에 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책을 내며 두루두루 고마운 사람들을 명시하듯,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사람 한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졌다. 감사합니다. 이화산우회 식구들!!!! 영원히 아름답기를....
첫댓글 캐롤리나 정경희샘의 산행기를 읽으니 여행 중 즐거웠던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정샘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옴을 느낍니다. You did a good job! Thank you for everything!
산행기도 뽑아서 또 상 줘야 되는거 아닌감? 며칠 기다려 올라오는 것 보고 또 집안살림 거덜내야징!!!!!!!!!! 정경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해변에서 비행기에서 그대와 함께 했던 추억(?)ㅎㅎㅎ 이 그립습니다.
섬세하고, 깔끔하고, 맛깔난 산행, 여행기 버릴 게 하나도 없는 한마디로 입니다.
상큼하게 참 잘 썼어요. 100점주고 싶네요. 이 산행기 보고나면 다른 누가 감히 산행기를 올리랴. 근데 캐롤리나는 세례명인가? 어쩐지 공주병 냄새가 폴폴나는 이름이네.^^
아무것도 한 게 없으면, 산행기라도 쓰라고 왕회장님이 째려보셔서 몇자 적었는데, 너무 과분한 칭찬을 해 주셨어요. 해변에서의 즐거웠던 것을 마져 못써서 죄송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