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상을 말하듯 죽음을 이야기한다. 밤이 있고 낮이 있듯이 죽음 또한 삶의 일부분임을 편안한 대화 속에서 느끼게 하려는 유병우 원장(45). 그는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마음수련을 권한단다. 자기 성찰을 통해 평화를 찾게 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삶의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픈 그가 호스피스(Hospice, 임종 봉사) 병원에 마음수련 프로그램을 도입하려는 이유이다.
죽음도 삶처럼 여길 수 있는 마음
일산가족병원 유병우 원장의 마음공부
편안한 카페 같은 호스피스병원
질병으로 인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은 사람들. 일산가족병원은 그들을 육체적, 정서적으로 돌봐주는 호스피스 전문 병원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입원해 있는 곳,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일 거라는 관념은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바뀐다. 병원이라기보다 편안한 카페 같은 곳. 환자들은 편안해 보이고, 의료진들은 밝다. “다리는 어떠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싹 좋아지게 만들어드릴게.” “이거 수면 양말인데, 신어 봐요. 뽀송뽀송해서 잠 잘 올 거예요.”
환자들의 몸도 마음도 꼼꼼히 챙겨주는 유병우 원장. 그에게는 회진 시간이 따로 없다. 환자들은 시시콜콜한 개인사부터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도 털어놓는다. “우린 밥 먹는 것처럼 편하게 죽는 거 얘기해요.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 건 당연한 거고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그냥 옷을 벗는 것일 뿐이라는 걸 인식하면 공포에 떨 이유가 없죠.” 유원장은 평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죽음을 외면한다고 죽음이 비켜가는 것도 아니니 열심히 살다가 갑자기 죽음이 닥쳐오면 당황스럽고 무서운 것이다.
친구 빚 보증의 분노와 화 다스리려 마음수련
그가 의대생일 때에도 너무 바빠 오히려 죽음에 대해 특별히 떠올릴 시간이 없었다 한다.
환자가 죽으면 죽었나 보다, 그뿐이었다. 약간의 서운함,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 뿐 슬픔에 빠질 겨를조차 없었다. 하지만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암을 전공하는 레지던트로서 그는 환자에게 중요한 것이 고통스럽더라도 삶을 연장하는 것이냐, 다소 단축된 삶이라도 편안하게 살다 가는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이 환자가 어떤 항암제를 써서 한 달이라도 더 사느냐에 치중했어요.
삶의 질보다는 생명 연장만 보는 거죠. 독한 항암제 때문에 환자는 계속 토하고 고통스러워하는데. 나라면, 우리 부모님이라면, 저렇게 안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도 마음도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해주고,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 생각했죠.” 10여 년이 흐른 2007년 2월,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호스피스 병원을 개원했다.
하지만 이날이 있기까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의 나이 서른 다섯 살, 결혼해서 자녀도 생기고 행복을 느낄 무렵이었다. 전문의 과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 정말 의사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지 1년, 친구의 빚보증을 선 것이 잘못되고 만다. 갑자기 몇 억 원의 빚쟁이가 된 그는 월급을 차압당하고 전셋집마저 날리는 지경에 이른다.
어려운 형편에 온 가족의 힘겨운 노력으로 가게 된 의대인 만큼 이제부터 부모님께 효도 좀 해보려 했는데 오히려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것이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친구를 원망하며 술을 마시는 것뿐이었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우울증에 빠진 채 서너 달을 보내며 수없이 자살도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순간 죽으려는 마음이면 못 살 거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런 각오로 십 년만 고생하면 되지 않겠나, 살다 보면 쓴맛도 보고 단맛도 보는 게 인생 아닌가 싶었어요.” 다시 용기를 내어 친구가 운영하는 개인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우연히 마음수련에 관한 책을 보게 된다.
“책을 딱 읽는 순간, 이건 진짜다!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수련을 시작하고 3주쯤 지났을 때였다. 언제부턴가 술을 먹지 않고도 잘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불면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보증을 서줬던 친구를 떠올려도 화가 치밀지 않는 게 신기했다. 오히려 “나중에 보답을 받으려는 기대, 나는 이렇게 보증 서줄 정도로 남자답고 의리가 있는 놈이야 하고 과시하려는 마음이 가득했다”는 걸, 그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마음을 버리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피해를 주고 괴로워하던 친구를 도로 되찾을 수 있었다.
수용과 긍정, 말기암 환자의 희망 찾기
마음수련은 의사로서의 그에게도 많은 변화를 준다. 의사들의 스트레스 중 하나는 환자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 환자가 처방대로 안 한다거나, 자기의 조그만 지식 가지고 아는 척하는 것조차 짜증이 났다. 그런 환자와 부딪치면 그는 똑같이 퉁명스럽게 대하거나 차라리 다른 병원으로 가기를 바랐다고 한다.
이것도 수련하면서 참회하게 됐단다. “환자라면, 그냥 환자로 봐야 하는데, 내 취향에 맞는 환자를 고르고 있더라구요. 그건 진정한 의사가 아닌 거죠.” 그는 의사의 권위의식, 사람들에 대한 분별과 관념들을 버렸고, 더 이상 환자들을 대하는 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환자들도 예뻐 보이고, 저절로 환자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게 되더란다. “마음수련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수용이라고 해요.
제가 환자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 역시 결국은 빨리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에요. 난 아프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해결이 편해져요. 부정하기 때문에, 있는 걸 있는 대로 못 보기 때문에 더욱 힘든 거거든요.” 유원장은 “죽음도 수용하면 그냥 우리 삶의 일부일 뿐임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부정한다고 부정이 되는 것도 아닌데, 부정하느라 남은 힘을 다 쓰고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이 가장 안타까운 것도 그래서이다. “실제로 환자 분들도 받아들이고 나니까 할 일도 생각나고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다 풀린다고 하시거든요.
그래서 빨리 마음수련 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해요.” 마음 닦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열고 잘 받아들이는 환자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기적처럼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긍정적인 마음의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아파서 늘 찡그리고 있던 환자가 활짝 웃을 때 유병우 원장은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글 이권자 사진 김혜균
첫댓글 좋은 글이네요. 그래요. 누가 내게 돌을 던지면 피하지도 말고, 그대로 앉아 맞지도 말고, 두 손을 내밀어 받아서 내 집을 짛을 때에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