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네 나라는 모두 동남아시아의 국가들로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해 있다. ‘인도차이나’(Indochina)는 협의로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과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 세 나라를 일컬으며, 이 경우 역사적 및 정치적인 함의를 보다 강하게 갖는다. 그에 비해 광의로는 태국과 미얀마와 말레이반도까지 포함하는 소위 ‘인도차이나 반도’를 가리키며, 이 경우 대개 지리적 개념으로 쓰인다. 이 글에서는 ‘인도차이나’를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인도차이나 개념을 어원에 따라 분해하여 보면, 그 함의가 조금 더 복잡해진다. 인도차이나는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지칭하기 위해 만든 조어(造語)로서, ‘인도’(Indo-)와 ‘중국’(China) 두 단어를 합성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도차이나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지리적 개념으로 이해되지만, 동시에 이 지역의 문화가 인도와 중국의 두 문화권으로부터 모두 영향을 받아 형성되어 왔다는 문화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 글은 광의의 인도차이나 중에서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네 나라인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쓰여진 것이다. 이 나라들은 동남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비교적 낙후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는 최근까지 혹은 현재까지 사회주의 체제이며 사회적으로 여전히 안정되어 있지 않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 나라들은 최근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사업가들은 이 나라들을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기 위해 빈번하게 찾는다. 또한 많은 비정부기구(NGO)들은 이 나라들의 독재적인 국가의 압박 하에서 제대로 역할을 행하지 못하는 사회의 기능을 강화해주기 위해, 구체적으로는 국가가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자, 환자(특히 에이즈 환자), 문맹인 등을 돕기 위해 각종 사회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교회들은 오랫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문을 닫았던 이 나라들이 최근 변화ㆍ개방됨에 따라 이 나라들에서 복음 전파의 큰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우선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네 나라의 공통적 특징을 개관한 다음, 베트남과 다른 세 나라간의 차이와 개별 국가간 차이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한 지역과 국가와 민족을 이해하는 데에는 공통성 외에도 세부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4개국의 공통성
이 글에서 다루는 네 나라는 동남아시아 세계에 속한 민족과 국가라는 큰 공통성이 있다. 이 지역의 “동남아시아적”인 여러 특징들은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이슬람과 유럽의 문화적 특징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우선 의식주에서 간장을 보면,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는 전통적으로 콩으로 장을 담그는 곡장(穀醬) 문화권임에 비해, 동남아시아는 어장(魚醬) 문화권에 속한다. 베트남의 느억맘, 캄보디아의 뜩뜨라이, 라오스의 남빠(태국은 남쁠라) 등 생선간장은 동남아시아의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부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몸에 염분과 단백질을 보충해 주는 적절한 음식으로 일찍부터 발달했다.
동남아시아의 또 다른 토착적 전통으로 여자들의 적극적인 사회적 역할을 들 수 있다. 중국의 진서(晋書)에 의하면 현 베트남 중부와 남부에 있었던 참파 왕국의 사회에서는 3-5세기경에 “貴女賤男” 즉 남자보다 여자를 중시했다. 명사(明史)는 16-17세기의 타이 사회를 설명하면서 “自王至庶民, 有事皆決於其婦, 其婦人志量, 實出男子上”이라고 하여, 부인들이 남자보다 속이 깊고 계산이 밝아 집안에서의 대소사를 대개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 점은 여자들이 실상 관혼상제를 비롯한 집안의 중요한 행사들을 주관하며 농사일을 돕고 논밭과 정원에서 생산되는 잉여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부수입을 올리는 등 시골의 대부분 가정에서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지난 수 세기간 유교와 불교, 이슬람과 기독교의 제도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사회에서 여자들의 상당한 정도의 자립과 경제적 중요성은 그다지 감소되지 않았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은 특히 농촌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 점은 오늘날에도 흔히 관찰할 수 있는 결혼 후 신랑이 신부의 부모집에 들어가 생활하는 처거제(妻居制)와 상속과 이혼 등에서 여자에게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주는 친족관계에서 볼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 비록 오랫동안 중국 유교의 영향을 받아 왔지만, 여자들의 가정 및 사회에서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처거제와 자녀간 균등상속과 아내의 재산권 등 동남아시아적 전통이 강하게 지속해 왔다.
종교와 신앙에서도 동남아시아 사회에 뿌리를 둔 토착적인 전통이 오늘날에도 도처에서 발견된다. 베트남에는 유교와 대승불교가, 그리고 캄보디아와 라오스와 미얀마에는 소승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주술신앙, 정령신앙, 조상신 숭배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민간신앙은 제도종교들이 도입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이들과 결합하여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혼합주의적인 종교세계를 이루고 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네 나라는 모두 동남아시아 중에서 대륙동남아(Mainland Southeast Asia)에 속한다. 이 네 나라 외에도 태국을 포함하는 대륙동남아는 도서동남아(Island Southeast Asia)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종교문화적으로 볼 때 전자는 모두 불교권인 데 비해 후자는 이슬람이 지배적이다. 그밖에 전자는 언어 및 민족적으로 어떤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는 데 반해, 후자는 언어 및 민족적으로 말레이 세계에 속한다.
위의 네 나라는 그밖에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남아시아 내에서도 경제적으로 모두 비교적 낙후되어 있고,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덜 되어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치변동 동향을 국가와 사회간 관계를 기준으로 구분하면, 네 나라는 1980년대까지 일원주의적 전체주의에 속했으나, 1980년대 말 이후 점진적인 개혁·개방에 따라 점차 제한적 다원주의로 이행하고 있다. 그에 비해 태국과 필리핀 등 권위주의적인 제한적 다원주의에 속했던 나라들은 오늘날 점차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로 넘어오고 있다. 또한 시장에 대한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독점, 통제, 보조 등 세 가지로 구분하면, 위의 네 나라는 국가가 자본축적 과정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독점 단계에서 1980년대 말 이후 점차 자본축적 과정에 대한 부분적 지배 혹은 통제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3.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4개국간의 차이
이 글에서 다루는 네 나라는 위에서 본 여러 공통성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으로 보면 국가간 많은 차이가 있음이 확인된다. 우선 크게 중국문화 및 유교권에 속하는 베트남과 인도문화 및 소승불교권에 속하는 다른 세 나라를 구분할 수 있다. 생산방식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우기마다 북부의 홍하(紅河) 델타 지역에서 홍수의 피해를 겪어온 베트남은 중국식 치수(治水)의 전통이 오래 전부터 발달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집단적인 협동의 사회구조와 민족성이 형성되어 왔다.
베트남 사회의 집단성은 무엇보다도 마을의 성격에서 드러난다. 베트남의 마을은 베트남어로 “랑 느억”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마을 나라”이다. 마을은 울창한 대나무 혹은 선인장의 담으로 둘러싸여 하나의 폐쇄된 세계를 이루며, 국가에 대해 전통적으로 상당한 정도로 자치적인 관계에 있어 왔다. 그리하여 “마을 전통이 왕권을 능가한다” 혹은 “관리들은 오고 가도, 마을 사람들은 남는다” 등의 베트남 속담이 만들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차원의 모든 일을 항상 집단적인 협동작업으로 수행해 왔으며, 마을에 대해 강한 “우리(마을) 의식”을 지녀 왔다. 한편 정부는 치수를 위해 백성을 효율적으로 동원해야 했으며, 그 과정을 통해 국가는 더욱 조직화되었고 강한 행정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에 비해 캄보디아와 라오스와 미얀마의 하천들은 심각한 홍수의 피해를 야기하지 않으며,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전통적으로 집단적인 협동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천은 오히려 논과 밭에 물을 공급해줄 뿐만 아니라 풍부한 민물고기의 어장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생계활동은 대개 개인적으로 혹은 기껏해야 가족 단위로 행해져도 충분하다. 이 세 나라 사람들은 마을을 구심점으로 둔 공동체 의식이 적으며, 국가와 사회의 구조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 생산방식의 차이와 그로 인한 사회 및 국가의 성격에 있어서의 차이는 베트남에서는 보다 집단성과 인간 상호관계를 강조하는 대승불교와 유교가 발전한 반면, 다른 세 나라에서는 개인의 카르마(karma) 즉 업(業)과 개인주의적 수도를 중시하는 소승불교가 뿌리를 내렸다는 종교적 차이로 연결된다.
1975년 이후 베트남에서는 공산주의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정착한 반면,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루즈가 행한 공산주의 실험이 도시의 파괴와 약 200만 명의 살상과 사회분열을 초래하며 실패로 끝난 것의 문화적 원인을 분석한 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이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문화의 바탕에는 다르마(dharma) 로 대표되는 인도의 사상이 깔려 있다. 다르마는 인도에서 사회의 질서와 개개인의 가치관의 가장 중요한 바탕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세속적 법보다 더욱 중시된 다르마는 궁극적으로는 탈세속적 목표를 추구하며, 집단보다는 개개인의 수행을 강조한다. 다르마는 또한 인도 사회에서 특정 카스트마다 다른 내용과 목표를 설정한다. 이런 성격의 다르마 사상이 지배하는 인도에 전통적으로 국가통합적, 사회보편적 의무감이나 윤리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베트남의 문화의 바탕을 이룬 중국의 유교 사상은 사회보편적 윤리체계로서 현세적 목표를 추구한다. 그러한 유교 사회에서 정부는 조화로운 사회의 유지를 위해 윤리와 교육과 정치를 중시한다. 유교적 베트남 사회가 인도의 다르마 사상을 바탕에 둔 캄보디아 사회보다 집단성과 조직성과 규범을 더욱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산주의는 베트남의 유교적 전통에 더욱 잘 접목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유교와 공산주의가 첫째 현세지향적이고, 둘째 인간중심적이며, 셋째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며, 넷째 엄격한 규율을 중시하고, 다섯째 지도자들에게 민족과 국가의 도덕적 표상을 요구한다는 공통성이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다른 세 나라간의 사회 및 국가의 성격과 주민들의 의식에 있어서의 차이는 의식주 문화에서도 여러 차이로 연결된다. 우선 주거문화를 보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에서는 농촌 지역에서 여전히 기둥 위에 지은 주상(柱上)가옥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비가 많이 오고 무더운 동남아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에 비해 베트남의 집들은 중국식으로 땅에 바로 붙여 짓는다. 그래서 17세기에 라오스의 한 왕은 라오스와 베트남간 경계를 정할 때, 기둥 위에 집 짓고 사는 사람은 라오스에 속하고, 땅에 붙여 집을 짓고 사는 자들은 베트남에 속한 것으로 규정했다. 집 안에서의 생활에서도 비교가 된다. 베트남 사람들은 가구를 중시하고 중국인들처럼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을 제대로 된 생활로 친다. 그에 비해 다른 세 나라의 농촌 집들에서는 가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주민들은 대개 바닥에 깐 매트 위에서 잔다.
음식문화는 베트남이 육류를 비교적 즐기는 음식재료의 선택이나, 주로 볶고 튀기는 조리법과 음식의 종류 등에서 매우 중국화되어 있는 데 비해, 캄보디아와 라오스와 미얀마는 카레 음식을 즐기고, 매운 고추를 비교적 많이 쓰는 등 인도의 영향이 보다 현저하다. 요즈음은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사람들도 점차 많이 먹는 경향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나라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보다 적게 먹었다. 그것은 보다 적극적인 베트남 사람들이 보다 많은 활동을 위해 보다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음식을 먹는 방식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식탁에 상을 차리고 의자에 앉아 공기에 담은 밥을 젓가락으로 먹지만, 다른 세 나라 주민들은 매트 위에서 음식을 손가락으로 먹는다.
끝으로 의복을 보면, 베트남 사람들은 유교의 예(禮)를 중시하여 옛날부터 신을 신고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는 것을 중시해 왔다. 그러나 다른 세 나라의 경우, 오늘날에도 농촌 지역에 가면 남녀 모두 흔히 맨발로 다니며, 인도에서 ‘사롱’(sarong)이라 부르는 천을 하체에 둘둘 감아 한 쪽 끝을 허리춤에 쑤셔 넣어 바지나 치마 대신 입고 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나라들에서는 19세기 어느 시점까지 여자들의 상체를 가리는 의복 개념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이상 베트남과 다른 세 나라간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이 세 나라들 사이에도 현저한 민족적 및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언어적으로 이 세 나라 민족들은 각각 다른 어족에 속하는데, 정치적인 국경과 민족 및 언어 경계선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미얀마의 버마족, 친족, 까친족, 카렌족, 라후족, 아카족 등은 중국-티베트 어족의 티베트-버마 어파에 속하며, 라오스의 라오족과 미얀마 동북부의 샨족은 따이-까다이 어족에 속하고, 캄보디아의 크메르족과 미얀마 동남부의 몬족과 베트남의 비엣족은 오스트로아시아 어족에 속한다.
이처럼 언어ㆍ민족적으로 다른 점은 세 나라의 문화가 비록 소승불교라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각각 다른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그것은 특히 불교와 결합한 토착적 민간신앙에서 드러난다. 미얀마의 귀신신앙인 낫(nat) 신앙에는 캄보디아나 라오스의 정령신앙들에 비해 점성술과 연금술 등 인도의 영향이 더욱 강하며, 티베트-버마 문화에서 나타나는 샤머니즘의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하여 미얀마의 낫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존재는 한국의 샤머니즘에서처럼 대부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역사적인 때로는 전설적인 인물들의 망령들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간의 그밖의 많은 차이들은 대부분 네 나라가 겪은 역사적 경험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베트남ㆍ캄보디아ㆍ라오스 세 나라는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이 나라들의 의식주 문화와 언어와 사고방식과 사회제도 등에 프랑스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그에 비해 영국 식민지를 받은 미얀마는 영국 문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영국 식민지 지역에서는 자동차가 좌측 통행을 하는 데 비해, 프랑스 식민지에서는 우측 통행을 하는 것도 그 한 예이다. 또 미얀마에 인도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는 것도 영국 식민지배의 한 잔재이다.
동일한 프랑스 식민지일지라도, 투쟁의 역사를 가진 베트남은 인도차이나에서 항상 팽창적ㆍ공격적, 적극적이었지만, 15세기부터 태국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17세기부터는 태국과 베트남 두 나라로부터 끊임없는 간섭과 압박을 받아온 캄보디아와 역시 태국과 베트남의 두 이웃국가들의 그늘 하에서 눈치를 살펴온 라오스는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다. 이 측면은 오늘날 베트남-캄보디아, 베트남-라오스 관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캄보디아와 라오스 두 나라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라오스의 라오족이 태국의 타이족과 민족ㆍ언어적으로 한 뿌리에 속한다는 사실과 그러한 관계 때문에 역사적으로 라오스가 태국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아왔다는 점, 그에 비해 캄보디아의 크메르족은 민족ㆍ언어적으로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라오스는 베트남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아왔지만, 두 나라 사이에 놓여 있는 고산준령의 장대한 산맥 때문에 베트남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볼 때 엉성했고 지속적이지 않았다. 오늘날 양국간 정치적 관계는 1950년대 이후 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인 베트민이 라오스의 공산주의자들인 빠텟라오에 대해 끼친 이념적 영향과 특히 1975년 두 나라의 공산화 이후 발전된 결과이다. 그에 비해 라오스와 태국 사이에는 메콩강이라는 문화 전달의 하이웨이가 놓여 있다. 라오스가 1980년대 중엽 이후 개방하기 시작한 이후 두 나라 사이에 점차 긴밀한 정치·경제·문화적 관계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네 나라간의 차이도 있지만, 한 나라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소수민족들의 지역은 해당 국가의 다수민족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갖고 있으며, 다수민족으로부터 정치ㆍ경제ㆍ문화적으로 차별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측면은 이 글에서 다룬 나라들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에서 민족 갈등과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 베트남의 경우, 17세기 이후 대립 관계에 있어온 북부와 남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북부는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가 시작되었으며 1945년 이후 공산주의자들의 영역이었던 곳으로 보다 중국적, 보수적이다. 그에 비해 남부는 원래 참파 왕국과 캄보디아의 땅이었던 것이 17세기 이후에야 베트남 사람들의 땅으로 개척되었고, 19세기 중엽 이후 프랑스 식민통치의 영향이 보다 강하게 미쳤으며, 베트남전쟁 기간 미국의 자본주의가 밀려 들어왔던 곳으로 보다 동남아시아적,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를 이해하고자 할 때, 이 글의 서두에서 쓴 것처럼 차이를 중시해야 한다는 점은 한 국가를 다룰 때도 적용되는 것이다. 인도차이나 지역이건 한 국가이건 한 민족이건 그것을 전체적으로, 일반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항상 동전의 한 쪽 면만 보게 되는 위험을 갖는다. 지역연구는 전체적인 이해도 필요하지만 언제나 개별적, 세부적 관찰이 중요하다.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또 올려주세요..
좋은글 정말잘읽고 좋은공부였읍니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역사에 지식이부족한 저같은 이는 많은도움이 살아가는되 도움글이 돼었읍니다 감사드리고 다음에도 좋은글 나누워 주셨으면 고맙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