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 역시 대구는 문턱이 높다. 일요일 오후 대구에 진입하는 것이 미친짓이라고 지난 주에 그랬었는데, 토요일 오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기어이 오늘도 대구에 들어갔다. 좀 늦었지만, 고마운 '맑음'님의 배려 덕분에 많이 늦지 않고 무사히 볼 수 있었다. '맑음'님, 고마워요.^^
오늘 연극은 그리 느낀 점이 많지 않은 연극이다. 연극을 보고 돌아오면서 보통 내 차 안에서 같이 본 사람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인데 오늘은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같이 갔던 제자 홍수도, 나도, 별로 느낌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재미없었거나 잘못 만들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보는 동안 내내 즐거웠다. 눈과 귀와 손이 즐거웠다. 배우들의 동작이 참 부드러웠다. 그리고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때론 구성지고 때론 장난기 어린 그들의 소리는 애달프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정답기도 했다. 덩달아 박수치느라 손도 내내 즐거웠다.
누가 그랬던가, 전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시인이랬다. 그렇다. 그들의 타고난 감성, 어딘가 모르게 한이 어린 듯한 훗훗한 가슴, 그들은 판이 만들어지면 어디서든 구성진 노랫자락이나 시를 뽑아낼 수 있댔다. 그런 것 같다. 남도 사람이면 누구나 판소리 한 자락은 할 수 있댔다. 그것도 정말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의 연기도 골랐고 소리도 골랐다.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민족성이 '은근과 끈기'라는 어느 국어학자의 말을 나는 아주 싫어한다. 그 은근과 끈기라는 말이 꼭 소극성이나 회피나 적절한 타협으로 비춰질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이 연극을 보면서 그분이 말한 은근과 끈기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은 한이 많은 민족이라는 데도 나는 반대해 왔다. 그건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생겨난 말이지, 원래 우리 민족은 가무음곡을 즐기는 민족이라고 고대 때부터 전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늘 연극을 보면서 그 말에도 조금은 수긍이 갔다. 그래, 이 연극에는 분명 한이 배어 있었다. 지역성일까? 그러고 보면 전라도 사람들은 유난히 이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구성지고, 억척같고, 질기고, 약한 듯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이것이 우리 민초들의 살아 온 모습일까?
98년도에 나는 순천에서 열린 전국연극제에 참가한 일이 있는데 우리 극단 공연 바로 앞날 광주팀의 공연을 보고 기가 팍 죽었었다. 사도세자의 갈등을 소재로 재구성한 연극이었는데 화려하고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것이 남도의 아름다움인가 싶었다.(결국 그 팀이 전국대회 1위를 했다.) 기가 죽긴 했어도 다행히 내가 스탭이라 배우들은 보지 못한 좋은 연극 한 편 볼 수 있었구나 싶어 기뻤다.
예술에는 지역성이라는 게 분명 있는 것 같다. 이건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지역감정과는 엄연히 다르다. 경상도의 문학이나 연극이 투박하고 선이 굵으며 정감 넘치는 것이라면 전라도의 문학이나 연극은 섬세하고 가늘며 한과 소리가 잘 조화된... 그런 것이 아닐까? 전라도 연극을 몇 편 보지 못해 감히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좀 그렇지만 문학은 분명 그런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본다면 지역을 바꿔 가며 마당극을 공연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일 것 같다. 극단 함세상의 광주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이런 또다른 기쁨을 누릴 것이다. 경상도 연극의 투박한 정다움과 힘을 새로이 맛보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내가 이 연극의 내용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극이란 생활과 맞닿아 있을 때, 아주 멀지 않은 삶이 적당히 예술로서 승화될 때 관객의 진심어린 공감과 동의를 얻어내지 않을까? 특히 마당극에서는 관객도 연극의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오늘 연극에서 나는 연극이 재미있고 멋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내가 이 연극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단지 일제 시대 이야기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사도세자 이야기에서도, 장녹수와 그의 연적(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연우무대>의 "이"에 나왔던 그 광대 말이다.)이야기에서도, 시간도 공간도 생소하기만 한 햄릿 이야기에서도 나는 무대와 내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감정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연극에서 "갯돌"은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누군가가 죽었을 때도, 칼에 찔렸을 때도 나는 슬프지 않았다. 그것은 나와 상관 없는 일이었다.
"참 잘한다"라는 느낌과 동시에 "이건 내 얘기구나"라는 느낌까지 갖고 극장을 나오길 기대한 것은 내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아니면 지역이 달라 내가 잘 이해 못한 것이었을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희곡이 재미없다고 한다. 자기들이랑 아무 상관이 없는 얘기란다. 예술성만 있고 삶이 빠진 문학작품에서 독자들은 종종 허탈감을 느낀다.연극또한 예술이기 이전에 삶의 또 다른 표현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