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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삼동회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엄마 엄마 우리엄마 나 떠나면 울지마
바람 추천 0 조회 90 12.12.21 18: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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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Darling Clementine

스티븐 포스터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근교 로렌스빌에서 유복한 가정의 10남매의 막내로 출생했다.

정규 음악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20세도 되기 전에 가곡을 출판했다. 1846년오하이오 주

신시내티로 이사해 형의 증기선 회사의 경리로 취직했다. 그는 이 곳에서 최초의 히트작인 '오! 수잔나'를

발표했는데, 이 곡은 1848년캘리포니아 골드 러시의 주제가가 되었다. 1850년 고향으로 돌아와서

내과 의사의 딸인 제인 맥도웰과 결혼, 이듬해에 딸을 낳았다. 그는 이 기간 중에 그의 대표작들을

쓰기 시작했다. "시골 경마" (1850), "스와니 강" (1851), "켄터키 옛집" (1853),

"늙은 개 트레이" (1853), "금발의 제니" (1854) 등이 그것이다. "금발의 제니"는

그의 아내 제인 맥도웰을 위해 쓴 작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계가 차차 악화됨에 따라

포스터는 그녀와 사이가 나빠졌다. 1860년 뉴욕 시로 이사했는데, 이 무렵부터 그의 운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내와도 헤어진 포스터는 빈곤 속에서 1864년 1월 10일맨해튼

한 호텔방에서 지냈는데, 끈질긴 감기 때문에 침대에서 시녀를 부르려는 도중 쓰러져 옆에 있던

세면대를 머리로 박아 세면대가 깨지고 그 조각들이 머리부상을 냈다. 포스터를 살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그는 과다출혈로 3일 후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그는 단 38센트와 "dear friends and gentle hearts"라고 쓰인 메모지를 가지고 있었다.

포스터는 피츠버그 근교 앨러게니(Allegheny)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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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mentein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forty-niner들이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불렀던 노래였다.
노래에 나오는 "포티나이너"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황금을 캐기위해 캘리포니아의 광산으로 몰려든

사람들을 말한다. 184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의 어느 제재소에서 일하던 목수에 의하여
시작된 골드러시는 당시 미국 사회를 열병으로 끓어 오르게 하였다. 각국 각지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서 북부 아메리카의 강변으로 몰려들었다. 모두가 직장을 팽개치고 노다지를 캐기위해

광산으로 향했다. 그중에는 공무원도 있었고 신문기자도 있었으며, 군인, 의사, 판사 등 상류층 사람들도 있었다.
때문에 공장과 사무실은 휴업을 하고, 선원들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바람에 선원들을 구하지 못해

선주들은 배들마저 운항을 중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유럽, 남미, 중국 등 외국에서도

수십만의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광부가 되어 1848년부터 1858년까지

약 10년 동안 5억5천만 달러어치의 금을 캘리포니아의 광산에서 캐내었다. 물론 당시로서는

아주 큰 돈이었지만 "포티나이너"들 모두가 거부의 꿈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포티나이너"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가혹한 노동과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거친 노동과 부실한 식사로 인한 영양실조와 인디언의 습격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수없이 많았다.
힘들게 일을하고 집에 들어가면숭숭 구멍뚫린 지붕에선 비가 새고편안히 쉬어야 할 방안에는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 있기가 일쑤였고, 옷은 제대로 입을수도 없었다. 그렇게 자신들이 피땀 흘려 캐낸 황금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등 돈많은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허탈감에 사로잡힌

"포티나이너"들 사이에서는 자조적인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는 한 포티나이너에겐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

이렇게 시작하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는 "포티나이너"들의 슬픔과 눈물이 담긴

상실의 노래였던 것이다. 이 노래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3.1운동 직후부터라고 한다.
소설가 박태원씨에 의해 우리의 정서에 맞게 가사가 바뀐 이 애조 띤 노래는
당시 나라 잃은 슬픔에 절망하고 있던 우리 민중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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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멘타인(엄마 엄마 우리엄마) *



유명한 미국의 작곡가 포스터가 지은 곡인데, 한국에 들어와서 가사가 바뀌어 분위기마저 완전히

변해버린 노래이다. 다시 말해서, 클레멘타인 원곡에다 이 변형된 가사를 붙인 노래인데

저작권 침해는 아니겠고, 그냥 포스터가 들으면 섭섭해 하지 않을까 싶다.?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60년대 말부터 불리운것 같다.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내가 그 때쯤 주워 들은 노래이니까...
가사가 얼마나 슬픈지, 초등학생도 안된 나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은 곡이 이 곡이었다.
슬프면 부르고, 혼나면 부르고, 비오면 부르고, 눈이 와도 부르고......
청승 맞다고 부르지 말라는데, 또 부르다가 혼나고...... 혼나서 눈물나면 또 부르고......
그 때에 얻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어떤 어린 소녀가 백혈병으로 죽으면서 노랫말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지금도 조용한 방구석에서 가만히 가사를 되뇌이며 불러보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어리고 마음 한가운데가 뻥~ 하니 뚫리는 듯한 느낌이 온다.
잘 지었다는 이야기..... ?흩뿌리는 빗물 사이로 내리놓인 바다에는 안개가 피었다...
충충한 하늘과 또 그같은 바다의 사이에서 괜히 센티멘탈해지면서 떠오른?노래 엄마엄마 우리엄마...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적어본다.. 엄마엄마 우리엄마... 엄마엄마 우리엄마 나 떠나면 울지마..

?희망아침 HQ편지 불나비와 함께?
    Oh My Darling, Clementine

    In a cavern, in a canyon
    Excavating for a mine
    Dwelt a miner, forty-niner
    And his daughter Clemen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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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9년 어떤 계곡의 동굴에서

    금맥을 찾아 헤매이던

    어느 광부와 그의 딸

    클레멘타인이 살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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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frain **
    Oh my darling, oh my darling
    Oh my darling Clementine
    You are lost and gone forever
    Dreadful sorry, Clemen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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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내 사랑 오~내 사랑

    오 내 사랑 클레멘타인

    네가 영원히 내곁을 떠나갔기에
    가슴이 미어질듯 아프단다


    Drove the ducklings to the water
    Every morning just at nine
    Hit her foot against a splinter
    Fell into the foaming b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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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애는 매일 아침 9시만되면

    오리떼를 몰고 물가로 나가곤 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거센 물결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지요


    In my dreams, she still doth haunt me
    Broken garments soaked in brine
    Though in life I used to hug her
    Now she's dead I draw the line
    How I missed her, how I missed her
    How I missed my Clementine
    Then I kissed her little sister
    And forgot my Clemen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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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속에 그애는 여전히

    물에젖고 찢긴 옷을 입고 나타나곤 했었죠

    그애가 살아있었을 때는 자주 안아주곤 했었지만

    그애가 죽은 이제는 선을 그어야만 했지요

    내 사랑 클레멘타인이?얼마나 그리웠던지

    그 후 그애의 어린 여동생에게 키스하고 난 후에야

    내 클레멘타인을 잊을 수가 있었죠


    'My Darling Clementine' 로저 와그너합창단

    엄마엄마 우리엄마 - 강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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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엄마 우리엄마 나 떠나면 울지마


    뒷산에다 묻지 말고 앞산에다 묻어 주


    눈이오면 쓸어 주고 비가 오면 덮어주


    옛친구가 찾아 오면 나 본듯이 반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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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엄마 우리엄마 나 떠나면 설워마


    음지에다 묻지 말고 양지에다 묻어 주


    봄이오면 꽃잎따서 가을오면 단풍따서


    무덤가에 뿌려주고 내 손한번 잡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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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 아가 우리아가 부디부디 잘 가라


    고통없는 세상으로 훨훨 날아 가거라


    가도가도 끝없는 길 어디에서 머물꼬


    좋은세상 만나거든 다시 태어 나거라


    좋은세상 만나거든 훨훨 날아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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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cafe.daum.net/niegroup - Foster. S. C? - 첨부이미지





      *고통으로부터 자유*♡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통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고통의 원인을 없앰으로써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고통의 근본 원인은 무지와 욕망과 미움입니다.
      이것들은 마음의 세 가지 독약으로 불립니다.

      - 달라이 라마의《행복론》중에서 -

      * 세 가지 독약...
      사람을 무너뜨리는 무서운 것인줄 알면서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들입니다.
      명상 등을 통해 그 독약들을 조금씩 씻고 닦아내면
      무지가 변하여 지혜가 되고, 욕망은 나눔으로,
      미움은 사랑으로 바뀝니다. 고통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 어느 어머니의 일기 *♡

      미안하구나, 아들아.
      그저 늙으면 죽어야 하는 것인데
      모진 목숨 병든 몸으로 살아 네게 짐이 되는구나.



      여기 사는 것으로도 나는 족하다.
      그렇게 일찍 네 애비만 여의지 않았더라도
      땅 한평 남겨 줄 형편은 되었을 터인데
      못나고 못 배운 주변머리로
      짐 같은 가난만 물려주었구나.



      내 한입 덜어 네 짐이 가벼울 수 있다면
      어지러운 아파트 꼭대기에서 새처럼 갇혀 사느니
      친구도 있고 흙도 있는 여기가 그래도 나는 족하다.



      내 평생 네 행복 하나만을 바라고 살았거늘
      말라 비틀어진 젖꼭지 파고 들던 손주 녀석 보고픈 것쯤이야
      마음 한번 삭혀 참고 말지.
      혹여 에미 혼자 버려 두었다고 마음 다치지 마라.
      네 녀석 착하디 착한 심사로 에미 걱정에 마음 다칠까 걱정이다.



      삼시 세끼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있으니 에미 걱정일랑은
      아예 말고 네몸 건사 잘 하거라.



      살아 생전에 네가 가난 떨치고 살아 보는 것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은 없다.



      행복하거라, 아들아.
      네 곁에 남아서 짐이 되느니 너 하나 행복할 수만 있다면
      여기가 지옥이라도 나는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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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셔온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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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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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서 있는 그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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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자십회(朱子十悔) *

    열 가지 모든 일에는 항상 때가 있고, 때를 놓치면 뉘우쳐도 소용없음을 강조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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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해도 이미 늦으니,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2.
    불친가족소후회(不親家族疏後悔)
    가족에게 친하게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뉘우친다.
    가까이 있을 때 가족에게 잘해야지, 멀어진 뒤에는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3.
    소불근학노후회(少不勤學老後悔)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
    젊음은 오래 가지 않고 배우기는 어려우니, 젊을 때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는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과 같은 말이다.?

    4.
    안불사난패후회(安不思難敗後悔)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 뉘우친다.
    편안할 때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거안사위(居安思危)와 같은 뜻이다.?

    5.
    부불검용빈후회(富不儉用貧後悔)
    재산이 풍족할 때 아껴쓰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에 뉘우친다.
    쓰기는 쉽고 모으기는 어려우니, 근검절약해야 한다는 말이다.?

    6.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뉘우친다.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이 되어도 거둘 곡식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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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불치원장도후회(不治垣墻盜後悔)
    담장을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뒤에 뉘우친다.
    도둑을 맞고 난 뒤에는 고쳐도 소용없다는 속담
    '도둑맞고 사립 고친다'와 같은 말이다.?

    8.
    색불근신병후회(色不謹愼病後悔)
    색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뉘우친다.
    여색을 밝히다 건강을 잃으면 회복할 수 없으니 뉘우쳐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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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취중망언성후회(醉中妄言醒後悔)
    술에 취해 망령된 말을 하고 술 깬 뒤에 뉘우친다.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니 항상 조심하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10.

    부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
    손님이 왔을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대접하지 않다가,

    가고 난 뒤에 후회해 보았자 이미 늦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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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카페의 회우여러분.. 개인적으로 정말 힘 들었던 지난 3년간이었습니다.?

    쉬어야 할 때 쉬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이제?얼마간의 휴식을?취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여러분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하여 행복하였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여러분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반드시 말입니다..

    수처작주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입처개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고 싶을 것입니다.. 아주 많이......., 애병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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