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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을 다녀오다.
오늘은 청뫼산악회에서 천성산을 가는 날이다. 요즘 몇 일간 봄비가 계속 내려 마음도 울적하였었고, 우리가 정기 산행을 한지도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이 계절이면 각종 모임이 많다. 좋은 날을 잡아 시집, 장가를 가기도 하고, 각종 학교들마다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동창회며 체육대회 등을 여는 호시절이다. 그래도 우직한 우리 선배님과 동료, 그리고 후배 산악회원들은 만사를 젖혀놓고 그리운 산을 찾기 위해 휴일 아침의 여유로움도 마다하고 서둘러 버스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매달 진행되는 일이지만 산행대장과 총무들은 회원들의 인원점검과 먹거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오늘 같은 날은 집안의 경조사니 동창회니 하는 행사들로 많은 회원들이 참석이 힘들 것이다. 그래도 20여명의 회원님들이 참석했다. 한사람, 한사람의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그래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회원이 무슨 일로 참석이 어려울까? 생각해 보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이렇게 참석해준 회원님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부산방면을 향하여 아침 길을 나선다.
우리가 가고자하는 천성산은 가지산도립공원 구역 내에 있는 해발 922m의 산으로서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또한 경치가 빼어나 소금강산이라 불리었다. 동쪽으로는 양산시 웅상읍, 서쪽으로는 양산시 상북면에 접해 있고, 산 아래 서북쪽에는 내원사, 그리고 남쪽으로는 원효암 등 많은 암자들이 위치해 있다.
천성산에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화엄 늪과 밀밭 늪이 있어 희귀한 꽃과 식물, 다양한 곤충들의 생태가 아직 잘 보존되어 있어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또한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꽃이 피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가을이면 긴 억새가 온산을 뒤덮어 환상의 등산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이곳 정상은 한반도에서 동해의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여, 전국에서도 해돋이 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코스는 웅상읍을 접어들어 옥청정사를 접어들어 법수계곡, 미타아암을 거쳐 철죽군락지를 거쳐 천성산 제2봉을 올랐다가 화엄늪을 거쳐 흥룡폭포를 지나 대석저수지를 내려오는 코스였다.
버스가 양산을 지나 웅상읍을 접어들어 우리가 진입할 산 밑으로 다가가자 한적한 시골풍경과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교차하였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한발자욱이라도 산 가까이 접근하고자 노력하지만 집입로가 좁아 여의치 못하다.
차에서 내려 한참동안 마을을 거쳐 올라갔다. 이윽고 등산로 입구에 다다르자 많은 등반 객들이 산을 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열을 갖추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경사가 70∼80도가 됨직 하였다. 까마득히 산 상단부에 비타암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길은 매우 가파르고 갈지자 형태로 수없이 좌우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내가 친구를 하기로 한 초딩생 회원의 얼굴이 맑았다가 흐르지기를 계속했다. 그래도 험산산을 따라다니는 그 용기가 대단하다.
오월의 다소 무더운 열기가 온몸을 엄습해 온다. 그래도 우리 대원들은 평소 잘 훈련(?)된 탓으로 낙오자 없이 중반능선까지 도착했다. 시원한 계곡바람이 불어온다.
드디어 미타암에 다다르자 초파일에 등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있고, 사찰관계자들과 등산객들이 전구를 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 사람당 10개를 빼어야 이곳을 통과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일거리를 도왔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사찰의 일을 돕는 다는 것도 축복받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산을 오른다. 이젠 능선을 오가는 코스라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다. 날씨도 좋고 철쭉이 피기 시작하는 시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가고 있었다. 누군가 이쁜이 총무가 뒤쳐질까봐 찾는데 암자에서 아이스크림 세개를 먹고선 벌써 날듯이 앞질러 가버렸다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의 위력인가? 아니면 몸이 풀렸나?
우리는 활짝 핀 철쭉 군락지에서 자신을 철쭉에 동화되어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꽃속에 우리 예쁜 회원들이 묻어드니 사람이 꽃인가? 꽃이 사람인가? 카메라 촛점을 어디에다 맞추어야 할지를 모를 지경이다. 그저 아름답고 평화스럽다는 표현을 할 수 밖엔...
나는 점심을 먹을 장소를 정해진 곳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회원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 그 옛날의 천성산에 대한 추억에 잠겼다.
나는 천성산에 대한 몇 가지 추억이 있었다. 예전 20대 총각시절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해 봄날, 우리는 지역에서 사회활동을 하시던 분들과 버스를 빌려 내원사 근처로 야유회를 가기로 하였었다.
내원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사찰로서 부산근교에서는 제법 유명한 사찰로 이름이 나 있었고 또한 비구니선원이라 나는 솔직히 당시 친구 누님이 비구니가 되었던 기구한 사연도 책에서 보고 해서 그러한 사찰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자가용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드물었을 뿐더러 지금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단체 여행을 많이 다니지만, 그때는 그나마 버스를 대절하여 단체관광을 하는 것도 남들이 부러워하던 시절이었었다.
우린 아침부터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하여 설레이는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모두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산사와 주변의 자연 가운데서 하루를 즐긴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었다.
시내를 벗어나 통도사를 향하여 차가 달리기 시작하였었다. 한참을 달려 통도사에 조금 못 미치는 지점에서 내원사로 올라가는 산길도로가 나왔었고, 비포장이고 굽은 길이라 차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었다. 고난 끝에 사찰 조금 아래에 위치한 주차장에 도착하였고 우리들은 우선 짐을 챙겨 차에서 내렸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려는 순간 누군가 “어 어∼스톱, 스톱”하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다보았더니 글쎄 우리가 타고 왔던 버스가 후진을 하다가 뒤에 있는 승용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낭떠러지 끝으로 밀어 버린 것이 아닌가?
'어휴! 세상에 또 무슨 이런 일이...' 모두들 간이 조마조마 하였었다. 낭떠러지에 반쯤 걸린 승용차가 아래로 떨어지는 날에는 우린 모두 죽었구나 생각하니 야유회고 뭐고 생각이 없어졌었다.
그래서 결국 그날은 그걸 수습하느라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 버렸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 다음 언제이었든가? 또 다시 예전 일을 만회하려는 듯 기분 좋게 그 곳을 찾았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한참 버스가 올라가다 주차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장소에서 타이어가 펑크가 나버렸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사고가 나면 연락도 하기 전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재빠르게 달려오는 구조용 차들이 있지도 않았고, 휴대전화라도 있었으면 다른 방법을 취해 보았으련만 그 당시엔 별다른 방법이 없을 수밖에...
하는 수 없이 버스 타이어를 빼내어 두 사람이 산 아래로 들고 내려가서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양산(통도사 입구)까지 가서 빵구 집을 찾아 타이어를 수리한 다음 다시 택시로 산 입구에 도착하여 그 가파르고 먼 산길에 타이어를 밀고 올라오는 눈물겨운 촌극이 벌어지고 말았었다.
지나고 나니 우스운 일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이건 뭐 야유회가 문제가 아니고 사고 수습하는데 시간을 다 허비하고 만 것이었다. 웃고 말 사건이었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우리 산악회가 운영되면서 나는 천성산을 가자고 추천한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예전의 그 웃지도 못할 추억도 되새겨 볼 겸하여 진행된 일이었다.
그러나 출발 하루를 앞두고 부산에서 갑자기 비보가 날아들었다. 누님이 쓰러지셨다는 전화였었다. 허급지급 직장에 휴가를 내고 버스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결국은 그렇게 누님을 먼 곳으로 보냈고. 나는 내가 추천한 천성산에 대한 안내도 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천성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 슬픈 추억이 떠올랐다.
그 외에도 경부고속철도 건설과 관련하여 천성산 구간의 원효터널 공사로 인하여 한동안 언론에 오르내렸던 곳이다. 천성산에는 앞에서와 같이 늪지가 있고 많은 동식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당시 내원사 산감이었던 지율스님과 환경보호단체에서 터널공사의 문제점을 제기하였고, 결국엔 도룡뇽을 원고로 하는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소송이 진행된바 있었다.
생각하면 그깟 도룡뇽 따위...환경이 파괴되면 그 얼마나 될 소냐?하고 가볍게 생각해 버릴 수도 있고, 또한 지금은 누구의 주장이 더 옳고 유익한지를 떠나서 어째든 산악인의 한사람으로서는 적어도 그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에는 감사할 따름이다.
회원님들이 가져온 반찬은 너무나 푸짐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산에 오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돼지족발이며, 돼지머리 누른 것, 가오리 삶은 것, 두릅과 상추, 그리고 각종 해산물과 산나물들, 그리고 수없이 많고 맛있는 여러 가지 반찬들...
항상 그들의 배려에 고맙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배불리 먹고도 언제나 남아 뒤처리까지 고민을 해야 할 정도이니 행복한 고민일수 밖에 없다.
점심을 먹고 천성산 제2봉을 향하여 길을 떠난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여유롭게 산길을 가노라니 정말 마음이 아늑하였다. 살아가면서 이런 시간이 정말 많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약간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천성산 제2봉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을 한동안 돌아내려와 천성산 제1봉을 향하여 오른다. 이제껏 편한 길을 다니다 오르막을 오르려니 조금은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은 군사지역이 있어 철조망이 처져있다. 지뢰지대라는 표식도 있고 하여 약간은 기분이 스산하였지만 별다른 혐오스런 마음은 들지 않는다.
얼마간 능선을 오르자 눈앞에 탁 트인 개괄지가 나타난다. 넓디넓은 천성산 억세 밭인 것이다. 그런데 더우기 좋은것은 억세 밭 사이사이로 철쭉 군락지가 펼쳐저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산들은 철쭉 군락지 이거나, 억세 밭 이거나 한 종류의 식물이 무성하기 마련인데 이곳은 특이하게 두 가지의 식물이 병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면적도 매우 방대하다. 특히 희귀한 것은 이곳은 습지가 많아 도롱뇽이 있다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곳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우리는 광활한 개괄지안의 많이 펼쳐진 억새밭과 그 가운데 듬성듬성 나 있는 철쭉을 보면서 정말 시간이 영원히 정지되어 버리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마지막 하산지점에서 한동안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가져간 음식물과 남은 소주며 동동주를 나누어 먹었다. 어느 회원님이 다슬기를 삶아 뒤꽁무니를 자른 것을 내어 놓았다. 귀하고 짭잘한 그 맛에 모두의 손이 간다.
그런데 오늘따라 평범한 단어인 '빤다'는 단어가 왜그리 다른 의미를 느끼는지...
"그만 빨고 내려갑시다."
내 놓은 음식과 여러가지 술들을 모두 비운 뒤 하산을 계속했다. 하산 길은 비교적 평탄하여 기분이 좋았다.
하산을 하니 우리가 타고 왔던 붉은색의 버스가 기다리다 반갑게 맞이한다. 우선 배낭을 버스에 옮겨둔 뒤 버스에 준비된 음식을 가지고 개울가로 향했다. 물가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땀을 식히며 잠시 동심에 젖어들어 물장남을 하기도 하고 재미있게 하산 세레머니를 시작하였다.
두부며, 묵은 김치, 그리고 동동주...우리는 한동안 정겨운 술잔을 주고받았다. 고생을 같이한 뒤의 아름다운 마음을 나눔은 격어 보지 아니한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돌아오며 마음을 같이하고 앞날에도 우리들이 좋아하는 산에 대하여 공동관심사를 갖기로 다짐했다. 힘들 때 끌어주고 밀어주는 산악인의 그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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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이 약간 민둥산 같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