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전주(全州)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成)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렸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900년(효공왕 4)에 견훤(甄萱)이 무주(武州: 光州)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983년(성종 2)에 12목 가운데의 하나인 전주목이 설치되었으며, 993년에 승화(承化)로 개칭하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를 두었다. 995년에는 강남도(江南道) 관하의 전주순의군절도사(全州順義軍節度使)가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고,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주로 강등되고, 1355년(공민왕 4)에는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全州府)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전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전주군으로 개편된 이래 1935년 전주면이 부로 승격하여 독립하고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성씨의 역사
전주추씨(全州秋氏) 시조 추엽(秋饁)은 송(宋) 고종 때 사람으로 1141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관직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그는 고려 인종 때 가솔(家率)을 이끌고 함흥(咸興) 연화도(蓮花島)에 정착하여 우리나라 추씨의 시조가 되었다. 추엽의 10세손 추수경(秋水鏡)은 중국 오현군(五賢郡) 출신으로 1591년(선조 24) 명(明)의 무강자사(武康刺史)가 되었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황제에게 간청하여 조선 파병을 결정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을 따라 부장(副將)이 되어 아들 5형제 추노(秋蘆), 추적(秋荻), 추국(秋菊), 추지(秋芝), 추란(秋蘭)을 데리고 원병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곽산(郭山), 동래(東萊) 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명으로 돌아가지 않고 함께 참전한 아들들과 전주(全州)의 추동(秋洞)에서 살았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전주싸움에서 전사하여 사후에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추봉되었다. 완산(完山)은 전주의 옛 이름으로, 후손들이 추엽을 시조로 하는 함흥추씨(咸興秋氏)에서 분적하여 전주(全州)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분적종 및 분파
추씨(秋氏)는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등에 개성(開城), 강화(江華), 파평(坡平) 등 47본(本)까지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 세거지명으로 한 뿌리이며 현존하는 본관은 전주(全州), 추계(秋溪) 두 본(本)이다.
주요 세거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충청북도 보은군 일원
충청남도 보령군 오천면 원산도리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충청남도 보령군 남포면 일원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현 문신리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부여두리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와우리
전라남도 나주군 일원
전라남도 무안군 일원
광주시 일원
경상남도 거제군 일원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전주추씨는 841가구 총 2,670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