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면 성산리 고려태조 왕건의 고려개국 1등공신 복지겸 사당과 묘역을 둘러본다
사당인근에 조선시대 버려진 골정저수지를 축조하고 아름다운 정자를 지은이가 서울 계동사는 조선시대 이용후생의
실학자이자 명문장가(열하일기,호질,허생전저자)인 박지원(1737~1805)이 정조임금으로부터 면천군수(1796,6~1800,7)를
제수받아 시행했던것
방향을 돌려 천주교 대전교구 신리 성지로 향한다
신리성지는 조선시대 천주교 초기부터 형성된 교우촌으로 신자들이 많았던 만큼 1839년박해후 대원군의 1866년 병인박해때 제5대 조선교구장 프랑스인 다블뤼 주교와 위앵신부,오매트로신부,황석두주카,손자선 토마스가 순교하하였고 후에 성인으로 추존했던것
성 다블뤼 주교관과 기념관을 둘러보니 숙연해지는 마음
다블뤼(1818~1866)신부와 함께 신학공부한 구노(1818~1893)가 작곡한 불후의 명곡 아베마리아가 다블뤼신부 순교를 추모하여 작곡했다는데 이설이 있으나 감미롭고 거룩한 곡에 이런 슬픈사연에 눈물이 난다
합덕연호축제 무대인 합덕제는 후백제 견휜(867~936,재위892~935)이 고려왕건과 겨루며 성동산성 주둔군사 군마에 물을 먹이기
위해 쌓았다는데 찰흙과 나뭇가지,나뭇잎을 켜켜이 쌓아 만든 우수한 제방이 유네스코 세계관개 시설물 유산에 등재(2017,10,10)
되었다는것
현재 7만평 연꽃저수지를 원래면적 30만평 저수지로 복원할 계획이라는것
인근 합덕성당은 1890년 설립,현 로마네스코양식 건물(1921~1929신축)은 성가정의 성당으로 모든 가정의 모범이자 그리스도 공동체의 원형으로 이곳 내포에 복음이 시작된 1784~85여사울(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105)출신 이존창(루드비꼬)에 의해서 1791신해박해 시작으로 1846 병인박해 이르기까지 조선에서 가장 많은 교우와 순교자를 배출했고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천주교는 2개의 본당인 공세리(아산군)성당,합덕리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합덕 성당(성소의 못자리,사제 30명,수녀 54명,수사5명 배출,충남 기념물 제145호,종탑이 쌍탑으로 전주 전동성당비슷)으로 발전했다는것
당진 성지순례길로 합덕성당~신리성지~솔뫼성지(김대건신부 생가)를 연결하고 성당에 인접한 합덕제 연호 축제와 결합 거룩한 관광 명소로 거듭나기를 기원해본다
특히 전성기 25,000여 합덕인구가 9,000명선으로 줄어들면서 구획정리된 토지가 오랫동안 방치되는등 지방행정 소멸 위기감을 느끼면서 관광명소와 연관 지역경제의 활성화가 이루어지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