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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교과서 ‘바하사 찌아찌아(찌아찌아族의 언어)’를 살펴보자. 손(手)은 찌아찌아 말로 ‘을리마’로 표기한다. 발(足)은 ‘까께’, 우산은 ‘빠우’로 쓴다. 감사합니다는 말은 ‘따라마까시’로 쓰고, 사랑합니다는 ‘인다우뻬엘루이소오’, 용서하세요는 ‘모아뿌이사우’, 예는 ‘움베’, 아니오는 ‘찌아’로 쓴다.
찌아찌아족 말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 방식으로 쓰며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쓰였던 순경음 비읍(ㅸ) 같은 문자를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현재 지구상에는 5600여 종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문자로 적을 수 있는 언어는 겨우 1%인 40여 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글은 가장 뛰어난 문자로 꼽힌다.
훈민정음은 명칭과 함께 처지가 몇 번은 변했다. 예를 들어 첫소리(초성) 17자 가운데 ㅿ,ㆁ,ㆆ은 사라졌고 중성 11자 중에서 ‘가운뎃점(·)’도 사라졌다. ‘이응’을 순음 아래 이어 써 순경음(ㅸ,ㅹ,ㆄ,ㅱ)을 만든 것이나 까다로운 중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글자를 변형하던 방식도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이기남 이사장이 세계에 보급 중인 한글은 현재 우리가 읽고 쓰는 한글이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문자다. 왜 한글 대신 훈민정음을 보급하려는 것일까.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우리가 현재 쓰는 한글은 외국어를 표기하거나 발음하는 데 제한이 있지만 훈민정음은 아무리 까다롭고 복잡한 외국어 표기도 완벽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훈민정음은 어떤 소리도 표기할 수 있도록 창제됐다고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록돼 있어요.”
훈민정음 창제 당시 세종은 이미 사용하고 있던 재래의 문자를 개량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도의 언어학적 원리에 따라 실제 언어의 음운을 정확하게 분석해 서로 체계적인 관계를 가진 자음과 모음을 새롭게 만들어 냈다.
세종은 창제과정에서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및 몽골어를 꼼꼼히 분석, 새로운 한글 자모를 창안하고 창제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 과정에서 세계 제국을 건설한 원나라의 ‘파스파 문자’에 영향을 받은 점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적인 문자, 훈민정음

컬럼비아대 레드야드(Ledyard) 교수는 한글 字體(자체)에 1269년 몽골(元)의 쿠빌라이 칸이 ‘파스파’ 라는 티베트의 명승을 시켜 제작한 파스파 문자의 본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 당시 成三問(성삼문)·申叔舟(신숙주)로 하여금 랴오둥반도에 귀양 와 있던 중국의 음운학자 黃讚(황찬)을 열세 번이나 찾아가 상담케 했다는 설이 남아 있다. 창제 과정에서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언어체계를 깊이 있게 연구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국역사문화연구원의 李成茂(이성무) 원장은 “세계 제국을 운영한 원나라가 서로 다른 언어와 문자를 하나로 통일하려는 발상을 가졌었다”며 “티베트 문자의 계통을 잇는 파스파 문자는 원 제국 지배하에 있던 여러 민족의 공통된 언어를 만들려는 원 세조에 의해 1269년에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말이다.
“원이 망하고 나서도 이 글자에 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됐는데 황찬이란 사람이 요동에서 그 연구진의 한 사람이란 주장이 있고, 또 원이 망해버렸기 때문에 그 흔적이 훈민정음 연구에 영향을 준 것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분석합니다. 물론 성삼문·신숙주가 황찬을 만난 사실이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고급문화가 흘러들어 오면 그것을 우리 역량에 따라 흡수해 새롭게 만드는 것이 문화의 본질 아닙니까. 당시 원나라는 세계 초유의 국가였습니다. 국제정세로 볼 때, 주변국 문자를 통일하려는 발상이 나올 수 있지요. 그러니 한글 창제 과정에서 세종이 학자들을 동원해 파스파 문자의 장점을 흡수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 아닐까 추론해 볼 수 있어요.”
훈민정음이 외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세종의 창제 의미나 독창성이 훼손될 수는 없다. 세종의 천재성과 훈민정음의 위대함은 가능한 한 자료를 모두 찾아 비교·분석하고 이를 주변국 문자의 장점과 유산을 수렴한 뒤 간결하고 과학적인 문자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이것이 세계적 문자로 손색없는 훈민정음의 자랑이자 ‘우리글 수출’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또 이기남 이사장이 훈민정음을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글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그러나 古語(고어)나 다름없는 훈민정음을 다시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에 대해 훈민정음학회의 산파역을 한 원암문화재단 李文浩(이문호·48) 이사장의 설명이다.
“주시경 선생이 훈민정음 중에서 몇 자를 정리해 ‘한글’이라고 부를 당시 한민족의 생활환경에 맞춰 불필요한 자모를 과감히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민족이 쓰는 단어와 언어환경이 다양해졌어요. 각종 외래어도 많아졌어요. 그러니 보다 원음...
李基南
⊙ 1934년 대구 출생.
⊙ 경북여고, 경북대 가정교육과 졸업(1기), 단국대 대학원(교육학) 수료, 경북대 명예박사.
⊙ 경북대 사범대 부속중 교사, 경북대 총동창회 부회장, 한국여성유권자연맹 부회장,
한국·이스라엘 상공회 회장(1995~1998) 및 이사장(1995~2008), 원암문화재단 이사장(2003~2008),
㈜안아개발 대표이사 역임.
⊙ 現 훈민정음학회 이사장.
<참고>
월간조선 2009년 9월호 내용
사람들] 李基南 훈민정음학회 이사장
無文字 나라에 한글 수출, ‘한글 세계화’ 초석 마련
사진 : 훈민정음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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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동남부 부톤섬에는 찌아찌아족 12만명이 오순도순 산다. 지역 토착어(찌아찌아어)를 쓰면서도 문자체계가 없어 학교에서 모국어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소식을 접한 훈민정음학회 대표단이 지난해 6월 현지를 찾아가 교사들에게 한국어 연수를 하고 교재를 개발했다.
이 박사는 “無文字(무문자)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며 “한글 세계화의 최일선에서 고생한 학회 교수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그녀는 경북대 사범대학장을 역임한 음성학자 故(고) 이규동 선생의 둘째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