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사 북쪽에 장사지내다 / 전효공왕릉
신문왕릉에서 동해남부선 철길을 건너 마을 모퉁이를 돌사서면 산 기슭의 아늑한 노송 숲 속에 오롯이 자리잡은 고분이 보인다. 전효공왕릉이다. 경주에는 왕릉이나 절터의 위치가 잘못 전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것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왕릉의 위치를 기록하면서 사찰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후대에 왕릉의 위치가 뒤바뀌면서 역으로 사찰의 위치도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전효공왕릉>
이 능은 1730년대에 지정된 11기의 김씨 왕릉 가운데 하나인데 효공왕릉이라는 증거는 없는 실정이다. 양식으로 볼 때 900년을 전후한 시기의 능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효공왕릉이 「사자사의 북쪽에 장사지냈다」(葬于獅子寺北)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곳이 효공왕릉으로 지정되면서 역으로 마을의 동쪽에 있는 절터가 사자사터가 된 것이다.
<전사자사터삼층석탑>
이 절터에는 9세기 중엽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있었는데 현재는 경주역 광장에 옮겨졌다. 이 탑은 황오동 삼층석탑 또는 배반동 사자사터 삼층석탑으로 불려지는데 대체로 신라 말기의 탑으로 보인다. 도심의 매연에 시달려서 인지 검게 그을린 채로 찾는 이 없는 모습이 퍽 안타깝게 느껴진다. 하루 빨리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 같다. 유물은 제자리에 두고 그곳에 그 유물을 세운 그 시대 사람들의 심리와 역사성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전사자사터불대좌>
경주는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기왕의 잘못된 자료를 통하여 또 다른 잘못된 이해를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유물의 보존상 박물관으로 옮기는 경우가 가끔 있으나 현장에 두고도 얼마든지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이미 제자리를 떠난 유물이라 할지라도 지역민들이 보존할 수 있는 능력과 관리의지가 있으면 제자리로 반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