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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정기법문은 우 담마간다 스님께서 설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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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정기법회_길상경 45
지금 게송은 「길상경」의 서문을 제외하고 길상을 나타내는 게송 중에 10번째 게송이고, 이 게송에 포함된 길상이 31번째 길상부터 34번째까지입니다. 지금 32번째, 청정범행 길상brahmacariya maṅgala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원래 청정범행은 여러 번 설명 드린 대로 보시나 지계 등의 여러 선법, 혹은 음행 자체를 삼가는 것, 혹은 부처님의 교법 전체, 이러한 것을 다 포함하는 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앞에 여러 길상을 통해서 이러한 것들을 언급했기 때문에 32번째 청정범행 길상에서 청정범행은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 평온, 즉 여러분들이 자비희사라고 알고 있는 거룩한 머묾 네 가지를 뜻한다고 했고, 지난 시간까지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을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평온upekkh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의미
빠알리어로 upekkhā라고 합니다. 그러나 평온upekkhā이라는 단어는 네 가지 거룩한 머묾 중의 하나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어느 한 쪽을 따라가지 않고 균등하게 바라보는 성품입니다.
❒ 어원 ← upapattito(일어나는대로) ikkhati(본다)
‘upapattito일어나는 대로 ikkhati살펴본다. iti tasmā그래서 upekkhā평온이다’라고 단어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upapattito일어나는 대로’란 ‘적절하게, 균형 맞추어’라는 의미이고, ‘중립적으로’라고도 표현합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맞추어 바라보는 성품이 평온입니다.
❒ 종류 열 가지
이렇게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에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주석서에서는 이 평온을 열 가지 종류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열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➀ 여섯 구성요소 평온chaḷaṅgupekkhā (중립 마음부수)
➁ 거룩한 머묾 평온brahmavihārupekkhā (중립 마음부수)
➂ 깨달음 구성요소 평온bojjhaṅgupekkhā (중립 마음부수)
➃ 정진평온vīriyupekkhā (정진 마음부수)
➄ 형성평온saṅkhārupekkhā (통찰지 마음부수)
➅ 느낌평온vedanupekkhā (느낌 마음부수)
➆ 위빳사나평온vipassupekkhā (통찰지 마음부수)
➇ 중립평온tatramajjhattupekkhā (중립 마음부수)
➈ 선정평온jhānupekkhā (중립 마음부수)
➉ 두루청정평온pārisuddhupekkhā (중립 마음부수)
각각의 평온을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➀ chaḷaṅgupekkhā여섯 구성요소 평온 (중립 마음부수)
여섯 구성요소 평온이란 여섯 문에서 여섯 대상이 다가올 때 좋은 대상에 대해서도 탐욕을 일으키지 않고,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성냄을 일으키지 않는 등으로 균등하게 바라보게 하는 성품입니다. 법체로는 중립tatramajjhattatā 마음부수입니다. 이것은 아라한들이 갖춘 특별한 덕목입니다. 아라한들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고도 좋은 대상에 대해서도 탐욕이 생겨나지 않고, 좋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도 성냄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번뇌를 다 제거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아라한이 갖춘 성품이긴 하지만 위빳사나 수행자들도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했을 때 아무리 좋은 대상이 생겨나더라도 너무 빠져서 좋아하지 않고, 아무리 싫은 대상이 생겨나더라도 싫어하지 않고 평온하게 균형 맞춰 관찰되는 모습을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➁ brahmavihārupekkhā거룩한 머묾 평온 (중립 마음부수)
이것이 32번째 길상인 청정범행 길상에서 말하는 거룩한 마음가짐으로서의 평온이고, 뒤에 자세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➂ bojjhaṅgupekkhā깨달음 구성요소 평온 (중립 마음부수)
일곱 가지 깨달음 구성요소에 포함되는 평온입니다. 일곱 가지 깨달음 구성요소 중 제일 마지막이 바로 평온 깨달음 구성요소입니다. 법체로는 마찬가지로 중립 마음부수입니다. 깨달음 구성요소란 깨달음을 얻게 하는, 깨달음을 얻는 데 필요한 법을 구성하는 요소를 말하는데, 이러한 법들이 균형 맞추어 매우 힘이 강해야 깨달음이라는 도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중 깨달음 구성요소로서의 평온은 자신과 함께 생겨나는, 자신과 결합된 법들을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너무 지나치지도 않게 균형을 맞춰 도와주는 성품입니다. 법체로는 중립마음부수입니다.
특별히 깨달음 구성요소가 될 정도로 발전되었을 때 생겨나는 중립 마음부수를 평온 깨달음 구성요소라고 합니다. 이것도 실제로는 생멸의 지혜 정도에 이르렀을 때 깨달음 구성요소 법들을 수행자가 분명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➃ vīriyupekkhā정진평온 (정진 마음부수)
정진평온은 법체로는 정진입니다. 너무 지나치게 애쓰는 것도 아니고 너무 느슨한 것도 아닙니다. 너무 지나치게 애를 쓰면 산란에 빠지고 들뜹니다. 반대로 정진이 너무 모자라면 졸립니다. 해태, 혼침에 빠집니다.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생겨나는 정진입니다.
➄ saṅkhārupekkhā형성평온 (통찰지 마음부수)
➆ vipassupekkhā위빳사나평온 (통찰지 마음부수)
다섯 번째 형성평온과 일곱 번째 위빳사나평온을 같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형성평온은 위빳사나 수행을 잘 해서 대상이 저절로 잘 드러나서, 그리고 그 대상을 무상, 고, 무아라고 저절로 잘 관찰하기 때문에 특별히 관찰하도록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관찰이 되는 성품입니다. 대상을 억지로 관찰하지 않아도 대상이 저절로 드러나는 성품이 형성평온입니다. 『청정도론』에서는 뱀을 잡아서 독사임을 알고 ‘이것은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버리려고 항상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잡고 있기 때문에 잡으려고 하는 것에 더 이상 애를 쓰지 않는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형성들을 잡는 데 평온한, 애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잘 잡히는 것입니다. 생멸의 지혜부터 시작해서 형성평온의 지혜에 이르게 되면 몇 번만 ‘부푼다, 꺼진다’라고 관찰하면 저절로 부풂, 꺼짐이 저절로 대상으로 드러나서 관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잡는 데 애쓰지 않고 저절로 관찰이 되는 성품이 형성평온입니다.
위빳사나평온은 무상, 괴로움, 무아라고 특별히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무아라고 잘 관찰이 되는 성품입니다. 이것은 조사하는 데 평온한 성품이라고 『청정도론』에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뱀을 잡을 때 모르는 사람은 처음에 ‘이것이 독사인가, 어떤 뱀인가’라고 조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뱀의 모습을 보고 이미 독사라고 아는 사람은 독사인지 조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형성평온은 잡는 것 자체에 무덤덤하게 된 것이고, 위빳사나평온은 조사하는 것에 무덤덤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대상이 드러났을 때 ‘이 대상이 무상한가 무상하지 않은가, 괴로움인가’라고 관찰하고 조사하는 데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아는 성품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형성평온은 대상이 드러났을 때 저절로 관찰이 되는 것이고, 위빳사나평온은 관찰할 때마다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이 저절로 드러나서 아는 성품입니다. 형성평온과 위빳사나평온은 법체가 통찰지, 지혜입니다. 평온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법체로는 지혜를 뜻합니다.
➅ vedanupekkhā느낌평온 (느낌 마음부수)
느낌을 세 가지 종류로만 나누면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인 무덤덤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upekkhā vedanā라고 합니다. 법체로는 느낌입니다.
➇ tatramajjhattupekkhā중립평온 (중립 마음부수)
이것은 마음부수로서의 중립tatramajjhattatā입니다. 실제로 이 중립평온은 아름다운 마음, 선한 마음과 함께 생겨납니다.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수행할 때 생겨나는 마음부수들이 각각 자기 역할을 잘 하도록 균형 맞춰주는 성품입니다. 보시하고 계를 지킬 때 그리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이 중립 마음부수는 불선업을 일으킬 때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불선업을 행할 때는 들뜸이 항상 포함되어 있어서 마음부수들이 고르게 생겨나지 못합니다.
➈ jhānupekkhā선정평온 (중립 마음부수)
마음부수로는 중립 마음부수입니다. 사마타 수행을 해서 제3선정(네 가지 선정으로 나누었을 때) 때는 희열을 떨쳐버리고 행복이 매우 분명합니다. 보통의 행복이라면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빠지지 않게 해 주는, 그 행복조차도 균형 맞춰서 잘 바라보게 하는 성품이 선정평온입니다. 이것은 제3선정과 결합한 중립 마음부수입니다.
➉ pārisuddhupekkhā두루청정평온 (중립 마음부수)
제4선정과 함께 생겨나는 평온입니다. 제4선정은 아예 행복조차도 없고 느낌도 평온한 느낌과 함께 합니다. 선정을 무너뜨리는 반대법들을 가라앉히는 데 특별히 애쓰지 않고도 그대로 선정을 유지하게 하는 마음부수입니다. 법체로는 중립 마음부수입니다.
복잡하시면 upekkhā라는 단어가 여러 종류로 쓰인다는 정도만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 거룩한 머묾으로서의 평온 upekkhā
❏ 의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32번째 길상인 청정범행 길상에서 말하는 평온은 거룩한 머묾 평온입니다. 중생들에 대해, 아니면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특별히 애써서 바라거나, 고통에 처한 중생들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라거나, 행복한 중생들이 그 행복을 그대로 잘 누리기를 바라는 성품이 아닙니다. 행복한 중생이든 괴로움에 처한 중생이든 모든 중생들에 대해서 균등하게 고르게 ‘업만이 각자의 진정한 재산이다’라고 반조하면서 평온하게 바라보는 성품입니다. 법체로는 중립 마음부수입니다. 중생들에 대해서 ‘업만이 각자의 재산이다’라고 바라보는 성품입니다.
❒ 특질(DhsA.238)
특징은 중생들을 중립적인 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대상이든지 싫어하는 대상이든지, 아니면 행복에 처했다든지 괴로움에 처했다든지 이러한 상태로 보지 않고 중생들에 대해서 중립적인 상태로 보는 특징이 있습니다. 중생들을 동등한 상태로 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중생들에 대해서 적의paṭigha=싫어함도 제거하고 찬사anunaya=좋아함을 제거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 성품이 있으면 중생들을 좋아하는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싫어하는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평온하게 바라보게 하는구나’라고 수행자의 지혜에, 지혜가 예리한 사람에게 드러납니다. 업 자산 정견이 가까운 원인입니다. ‘업만이 각자의 진정한 재산이다’라고 잘 관찰하고 반조하는 것이 거룩한 머묾으로서의 평온을 생겨나게 하는 가까운 원인입니다.
❒ 가까운 적과 먼 적
가까운 적은 무지의 평온, 먼 적은 애욕과 적개심
평온의 가까운 적은 무지의 평온, 즉 지혜가 포함되지 않은 평온입니다. ‘나하고는 관계없어’라고 그냥 내버려 두는 성품입니다. 평온이란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성품이라고 말씀드리면 여러분 중 일부는 “아, 모르겠어. 나하고 관계없어”라고 내버려두고 모른척하는 성품과 같은 것 아니냐고 하는 분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평온의 가까운 적입니다. 진정한 평온은 ‘업만이 각자의 진정한 재산이구나’라고 선업을 행해서 좋은 결과를 받고 불선업을 행해서 나쁜 결과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확신, 지혜를 동반해서 평온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경전상으로는 세속적인 평온이라고 합니다. 법문을 전혀 듣지 않으면서 ‘업만의 각자의 재산이다’라고 말하는 사람 있습니까? 잘 없습니다. “난 몰라. 나하고 관계없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세간적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평온이 아닙니다. 어리석음입니다.
먼 적은 아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입니다. 다른 성품이기 때문에 먼 적이라고 합니다.
❏ 평온 바라밀
좀 전에 10가지 평온을 살펴봤는데 “스님, 왜 이런 평온도 있는데 언급 안 하십니까?”라고 질문 안 하십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평온인데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평온이 있습니까?
10가지 바라밀 중 마지막인 평온 바라밀upekkhā pāramī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평온 바라밀은 자기를 잘 못 대하거나 비난, 비방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고, 자기를 찬사하고 칭찬하는 사람에게도 우쭐거리거나 기뻐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성품이라고 설명하십니다. 평온 바라밀이란 자기를 잘 대해주는 중생과 잘 못 대해주는 중생에게 평온한 성품이고, 거룩한 머묾으로서의 평온은 모든 중생들을 평온하게 바라보는 성품이라고 구별해서 알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밍군 사야도나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중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평온 바라밀의 평온은 거룩한 머묾으로서의 평온에 포함된다고 알아야 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평온 바라밀은 어쨌든 중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거룩한 머묾으로서의 평온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알면 되겠습니다.
❒ 닦는 법
그 동안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을 사마타 수행 주제로 닦는 방법과 일반적으로 유용한 주제로 닦는 방법으로 나누어서 설명 드렸습니다. 평온도 마찬가지입니다.
❍ 사마타 주제/ 132가지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 각각을 닦아서 제3선정까지 얻을 수 있는데 평온은 이것만 닦아서 선정을 얻을 수 있는 법이 아닙니다.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 각각을 전부 다 닦아서 제3선정까지 닦은 수행자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마타로 닦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번영하기를 계속 바라는 마음은 거칠다. 평온한 상태가 좋다’라고 반조하면서 앞에 닦았던 제3선정의 허물을 보고 뒤에 생겨날 평온의 이익을 보고, 그렇게 제3선정에서 나와서 제4선정을 닦는 것입니다.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을 통해서 제3선정을 닦은 사람이 각각 그것의 허물과 제4선정의 이익을 보고 난 뒤에 닦는 것입니다.
자애는 존경하는 사람을, 연민은 고통에 처한 사람을, 같이기뻐함은 행복한 사람을 먼저 대상으로 해서 닦는다고 했지만 평온은 무덤덤한 어느 한 중생을 먼저 기본으로 해서 ‘중생들은 각자 업만이 진정한 재산이다’라고 그 중생에 대해 계속 마음을 보내 제4선정을 닦습니다. 그 다음은 좋아하는 사람, 매우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순으로 각각 제4선정을 닦습니다. 그 다음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한계가 없이, 동등하게 바라볼 정도로 한계를 부순 다음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에서 설명해드린 대로 모든 중생들, 모든 생명들, 모든 존재들, 모든 개인들, 몸을 가진 모든 이들이라고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보냅니다. 이렇게 비한정 방법으로 보내는 방법이 5가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한정해서 모든 여성들, 모든 남성들, 모든 성자들, 모든 범부들, 모든 천신들, 모든 사람들, 악처에 떨어진 모든 이들이라고 7가지로 닦습니다. 한정하지 않은 방법 5가지와 한정한 방법 7가지를 합쳐서 12가지가 있고, 이 12가지에 대해 다시 열 가지 방향으로 보내는 방법이 120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의 12가지와 합하면 모두 132가지 방법이 됩니다.
❍ 유용한 주제/(일화: 법구경 게송 161)
이렇게 사마타 주제로 닦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평온은 매우 유용한 주제입니다. 중간 중간에 잘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평온에 마음을 잘 기울이면 평온을 닦지 않았을 때 생겨날 수 있는 허물도 제거하고 마음의 평안도 얻을 수 있습니다. 선업도 생겨나게 할 수 있고, 생겨난 선업도 더욱더 늘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언급하자면 일부러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니고, 고통에 처한 중생들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니고, 행복한 중생들이 그대로 잘 행복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닙니다. ‘중생들은 각자 업만이 진정한 재산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다. 그 중생이 선업을 행했으면 그 중생이 선한 결과를 받을 것이고, 그 중생이 나쁜 업을 행했으면 그 중생이 나쁜 결과를 받을 것이다’라고 닦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누가 죽든지, 누가 고통을 당하든지 나만 아니면 돼. 이런 마음 아닙니까? 나쁜 마음 아닙니까?”라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평온은 항상 닦는 것이 아닙니다. 사마타 수행주제로 닦을 때도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을 닦은 다음에 제4선정을 얻기 위해서 닦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세간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다른 이들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을 통해 할 수 있는 만큼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어떤 중생에 대해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이라고 자애도 계속 보내고, 고통에 처했으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이라고 연민도 계속 보냅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하면 ‘건강하고 행복한 대로 유지되기를, 번영하기를’이라고 같이기뻐함도 계속 보냅니다. 하지만 어떠한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찌할 수 없구나. 업만이 각자의 재산이구나’라고 잘 알면서 그 중생에 대해서 마음을 기울일 때, 이때 써야 합니다. 이 평온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마음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족이나 회사 동료에게 자애를 보냅니다. 자애를 보내지만 중간 중간에 자식이나 배우자, 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아니면 고통에 처했을 때 그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어찌할 수 없을 때, 다시 말해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을 보내도 어찌할 수 없을 때 ‘업만이 각자의 재산이구나’라고 마음 기울여야 합니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바라밀의 마지막도 평온 바라밀이고, 네 가지 거룩한 머묾의 마지막도 평온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기가 매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친척이나 가족, 친구 중의 어떤 사람이 범죄 행위로 법적조치를 당했다고 합시다. 그 일과 관련하여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벗어나도록 최선을 다해 애써야 합니다. 하지만 법정에서 범죄가 분명하게 밝혀져서 판결이 났다면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으로 해결할 기회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럴 때 ‘자업자득이다’라고 마음 기울이는 것만 남았습니다. 혹시 억울한 판결을 당한 경우라도 지금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과거 여러 생에서 행했던 불선업들이 있었기 때문에만 이런 형벌을 당하는 것이다’라고만 마음 기울여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과 관련된 일화가 법구경 게송 161번 일화입니다.
(일화: 법구경 게송 161)
부처님 당시 사왓티 성에 마하깔라라는 수다원 청신사 한 명이 있었습니다. 수다원이면 항상 부처님 법 수행하기를 즐기는, 선법을 행하는 것을 즐기는 성품이 있습니다. 이 청신사가 제따와나 정사에서 포살을 준수하고 법문을 들으며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 일찍 정사를 떠나 제따와나 정사 근처의 한 우물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 도적떼가 어느 부잣집에 침입해서 물건을 훔쳐 달아나자 사람들이 쫓아왔습니다. 그 도둑들이 도망가다가 세수하고 있던 마하깔라 옆에 훔친 물건을 놓고 도망갔습니다. 뒤쫓아 오던 사람들은 도둑맞은 물건이 마하깔라 근처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도둑이라 생각하고 심하게 두들겨 팼습니다. 그 상처로 인해 마하깔라는 죽어 버렸습니다. 마하깔라는 수다원이고 수행도 잘 했지만 억울하게 맞아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많은 비구 스님들이 “마하깔라는 포살을 준수하고 정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법문을 듣던 진짜 참사람이었습니다. 도둑이라 오해받아 죽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라고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현재 상황만으로 보면 적당하지 않더라도 그의 과거 업에 따라 살펴본다면 적절한 원인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적절한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하깔라는 어느 생에 산적들이 출몰하는 한 숲에서 그곳의 입구를 지키는 군인이었습니다. 숲을 지나려는 여행자들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위험이 없이 안전하게 지나가도록 보호하면서 안내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매우 용모가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마차를 타고 그 숲 입구로 왔습니다. 날이 아직 어둡지 않아 충분히 그 부부가 숲을 지나가도록 해 줄 수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비는 그 사람의 아름다운 아내를 원해서 자신의 집에 하룻밤 묵게 했습니다. 그날 밤 비싼 보석을 그 여행자의 수레에 숨겼습니다. 다음날 그 사람이 다시 여정을 떠나려고 할 때 “보석이 사라졌다. 이 사람이 의심스럽다”라고 하면서 그 여행자를 수색하고 조사했습니다. 그 전에 자신이 넣어 둔 보석을 발견하자 그 여행자를 보석 도둑이라고 몰아가서 결국 죽게 만들었습니다.
마하깔라의 과거생이었던 이는 여인에 대한 애착 때문에 사실이 아닌 허물을 덮어씌워서 다른 사람을 죽게 한 과보로 다음 생에 무간지옥에 태어났습니다. 무간지옥에서 벗어난 뒤에도 아직 업이 남아 있어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백 생 동안 계속해서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무고하게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과거 생에 잔인하게 행했던 자신의 악행, 불선업에 따라 말하자면 마하깔라가 이번 생에 수다원 성제자라고 하더라도 받아야 할 업이 남아있다면 도둑이라고 오해받아 죽어야 하는 것은 매우 합당한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설명하시면서 게송 161번을 설하셨습니다.
이번 생에 산산조각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건이 무르익었을 때 언젠가는 산산조각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 악행을 삼가야 합니다. 이전에 행한 악행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불선업이 과보를 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만큼 선업을 많이 닦아야 하고, 가장 좋은 것은 수다원이 되어 더 이상 사악처에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마하깔라처럼 이번 생에 과거 불선업의 영향으로 맞아 죽는 과보를 받는다 하더라도 다음 생에는 더 이상 사악처의 고통이 없습니다.
레디 사야도는 범부들의 상태를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위태하게 매달려 있고, 나무 아래에는 이리떼, 승냥이떼들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새끼 다람쥐와 같은 상태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수다원이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보금자리에 편안하게 있는 상태입니다. 범부들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지만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상황입니다. 이리떼, 승냥이떼는 여러분이 이전 생에 행한 무수한 악행들을 말합니다. 어디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사악처에 떨어지기만 하면 그것들이 계속 악처에만 계속 태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악행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적절하게 관찰하지 않는다면 ‘억울하다, 그럴 수 없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번 생, 과거 생에 그 사람이 행한 업 때문에 그 사람이 받는 것이다’라고 잘 마음을 기울이면 여러 허물도 생겨나지 않고 마음도 잘 가다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아무런 이유 없이 죽는다면 너무도 억울할 것입니다.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자기가 탄 차를 다른 차가 들이받는 등의 이유로 갑자기 죽는다면 진짜 억울할 것입니다. 그러면 선업, 불선업도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업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근본원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과거 생의 업이라는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기울여야 성냄, 화냄 등의 허물에 빠지지 않고 마음도 평온하게 잘 다스릴 수 있고, 선업도 잘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경전을 많이 읽고 수행도 열심히 해서 수행으로 생겨난 믿음을 통해서 ‘업만이 자기의 재산이구나’라는 확신이 생겼을 때 이렇게 마음을 잘 기울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미얀마의 어떤 큰 스님이 법문을 하시고 내려오셨는데 스님의 슬리퍼가 없어졌습니다. 옆에 있는 거사님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자 그 거사님이 큰 소리로 “스님 슬리퍼가 없어졌답니다. 누가 훔쳐갔습니까?”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그 거사님에게 조용히 찾으라고 일렀습니다.
“스님, 왜 그렇습니까? 훔쳐간 것 빨리 알려서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거사님,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누군가 제 물건을 훔쳐갔다는 것은 과거 생에 제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서 지금 그 과보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조용히 찾으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는 큰 스님인데 누가 감히 슬리퍼를 훔쳐갔어?”라고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누가 왜 훔쳐가는 것인가’라고 억울해 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잘 기울이면 성냄도 생겨나지 않고 마음도 평온하게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판사나 높은 직책에 있어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고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하는 분들은 특히 평온을 잘 갖추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잘못이 있는데도 잘못이 없다고 한다거나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잘못이 없는데도 잘못이 있다고 판결내리면 안 됩니다. 원함에 잘못따름, 성냄에 잘못따름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업자득일 뿐이라고 평온하게 관찰하여 사실대로 법에 따라서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사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평온은 판결을 내리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업이 각자의 진정한 재산이고, 업이 각자의 근본원인이다’라고 마음 기울이기 때문에 얻을 수 없는 상황을 기대하며 바라는 것도 사라집니다. 조금 불편한 것이 있어도 ‘업에 따라서이다’라고 숙고하고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또한 천신이나 범천, 조물주 등에 빌거나 매달리지 않고 번영과 행복을 위한 바른 길인 행위만 의지하고 행할 것입니다. 이렇게 행위하기 때문에 현생에도 번영과 재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 숙고해야 함 경 아빈하숫따 Abhiṇhasutta」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방법대로 숙고하도록 지도하셨습니다.
❍ 아빈하숫따(A5:57)
게송 함께 독송해보겠습니다.
업이바로 자기재산 상속자요 근본원인
권속이며 의지처라 선악따라 과보받아
모든중생 업만이 각자재산이구나
‘업만이 각자의 진정한 재산이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시겠습니까? 『가르침을 만나다』 제8장 수행의 정견에 해당되는 부분을 살펴보시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살생을 많이 하면 이번 생에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수명이 짧고, 살생하지 않고 자애를 많이 보내면 장수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괴롭히면 병이 많고 괴롭히지 않으면 건강하고, 화를 내면 용모가 추하고 화내지 않고 인욕하면 용모가 수려하고, 질투하면 주위에 사람이 없고 같이 기뻐하면 주위에 사람이 많고, 인색하면 가난하고 많이 베풀면 부유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손하지 않으면 저열한 가문에 태어나고 다른 사람을 잘 공경하면 고귀한 가문에 태어납니다. 질문하지 않고 배우는 데 애쓰지 않으면 지혜가 둔합니다. 혹은 과거 생에 지혜가 너무 예리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올바른 법인데도 자기 견해에 따라서 잘못됐다고 비판하면 그것이 장애가 되어서 다음 생에 우둔하게 태어납니다. 조심하십시오. 반대로 질문하고 법문 듣고 수행하면 현명합니다. 다른 사람 탓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나쁜 행위를 행하면 나쁜 결과를 받고, 좋은 행위를 행하면 좋은 결과를 받는다’라고 잘 반조해서 아는 것이 업 자기재산 정견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자애를 보낼 수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행복한 대로 행복하기를 바랄 수도 없는, 도저히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그런 분에 대해서는 ‘아, 내가 어찌할 수 없구나. 업만이 각자의 진정한 재산이구나’라고 잘 마음 기울여서 마음속에 성냄, 억울함 등이 생겨나지 않고 마음 평온하게 해야 합니다.
자애, 연민, 같이기뻐함, 평온을 바탕으로 마음을 부드럽고 안정되게 해서 보시, 지계, 특히 위빳사나 수행을 잘 실천하시어 차례차례 위빠사나 지혜가 향상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생, 이번 몸, 이번 부처님의 가르침에 모든 사악처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거룩한 성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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