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대 순교성지, 역사문화공원 조성 바람직... 근린공원에 현양비만 세워져 접근성이나 정체성 떨어져... 토지사용 승낙, 국고지원 등 선행돼야 할 과제 산적... 역사적 의미 살린 세계 속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길 지난 2008년 12월 4일, 서울시는 문화체육관광부ㆍ코레일과 더불어 서울시 중구 봉래2가 122 일대 5만 5826㎡ 부지에 대한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 기본구상(안)'을 공동 발표한 바 있다. 개발구상은 "3개 기관이 상호 협력해 21세기 신산업 성장 동력인 국제컨벤션센터를 유치하고, 근대문화유산인 서울역사를 보존해 시민소통 광장으로 조성하는 등 서울역을 문화ㆍ역사ㆍ관광ㆍ교통의 편리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다기능 복합 문화업무 공간으로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소식이 한 가지 더해졌다. "구 서울역사와 어울리는 8개 광장 조성, 서소문공원과 연계"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사업 전망이 그것이었다. 그 안엔 "사업대상지 내엔 문화광장과 역사광장 등 구 서울역사와 어울리는 8개 광장을 조성하는데, 특히 기존 철도선로를 복개 데크화해 공원으로 만든 후, 활용도가 낮은 서소문공원과 연계함으로써 서울역이 역사 문화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순교성인 103위 가운데 44위, 하느님의 종 125위 가운데 21위를 낸 서소문 밖 순교성지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 순교성지가 아닌가! 아울러 이 곳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한 분들을 기념하기 위한 현양비가 있는 서소문 공원이 재개발된다니! 사실 서소문공원은 도로와 철로로 사방이 단절돼 장소 접근성이 열악하고, 근린공원인 관계로 교회에서도 적극적 관심이 미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서소문 밖 순교성지는 교회사적 위상과는 달리 점차 사람들에게 외면되던 터다. 그러니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과 연계된 서소문공원 재개발 소식은 돌이켜봐도 너무나 큰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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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수정 주교 |
#서소문 밖 순교성지, 근린공원이라는 한계 어떻게 극복하나
하지만 서소문공원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데도 염려가 뒤따랐다. 1976년 개장된 이래 서소문공원은 1992~96년 대규모 재조성 사업이 이뤄졌고, 최근 2009년에도 한 차례 재정비 사업이 시행됐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이 장소가 갖는 역사적 의미와는 전혀 별개였다. 한 마디로 장소 정체성의 부재가 만들어 놓은 결과였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돼 왔지만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부연해본다.
우선 가톨릭 신자 대부분이 폭넓게 이해하는 서소문 순교성지, 정확히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한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현양비가 세워진 서소문공원의 법적 지위는 '근린공원'이다. 1만 7340㎡(5250평)에 국유지 11필지, 구유지 8필지로 구성돼 있으며, 국유지도 국세청과 기획재정부ㆍ국토해양부로 소유권자가 제각각이다. 구유지 8필지는 중구가 소유권자다. 다소 불편한 진실(?)일지 모르지만, 이 곳 서소문 근린공원에 순교자 현양비가 우뚝 세워져 있고, 서소문 밖 순교성지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252호 중림동 약현성당이 그토록 오랜 세월 이곳 주인을 자처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단 한 평도 교회 땅이 아니다. 때문에 이 거룩한 장소에 1996년 지하 4층 규모 공영주차장이 들어서고, 1999년 지하 3층 규모 재활용 처리장이 들어서도 마땅히 이를 제지하려 하는 움직임은 상상하지도 못하던 곳이다. 최근까지도 이 지하공간을 청소차 차고지로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돼 왔다.
따라서 서소문공원 재개발은 이에 앞서 선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또 다시 역사를 외면한 공원계획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으로 서울대교구는 지난해 12월 8일 중구와 함께 (사)서울문화사학회 창립25주년을 기념해 '조선시대 서울 한양도성 서소문과 천주교 박해'라는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서소문 근린공원의 역사문화공원 조성을 위한 기본방향을 공론화하고, 역사적 고증도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아래 글은 당시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나섰던 한국실학학회장인 조광 교수와 서울문화사학회 이원명 교수의 발표에서 핵심 내용들을 차례로 엮은 것이다.
"조선후기 이래 천주교 신앙은 사회에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사조를 통해 낡은 사상체계를 바꿔보려던 사람들의 움직임이었으며, 신분제 사회의 질곡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던 사람들에게 꿈을 부여한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천주교가 성행했던 사실은 조선후기 민중들이 각성하게 된 중요한 현상을 드러내주기도 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는 비단 특정종교 사건에만 그치지 않고, 전체 한국사 발전에 기여한 사건으로 오늘날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서소문은 이와 같이 역사적 장소이며 동시에 교회사적 장소가 된다. 그 문의 명칭이 의로움을 밝힌다는 소의문(昭義門)이었듯이 이곳에서는 많은 천주교도들이 자신이 신봉하는 천주의 정의를 증거하기위해 목숨을 버렸던 곳이다. 그러므로 서소문은 조선후기 사회에서 천주교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면서, 그 사건들을 가장 집약적으로 응축시켜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됐다."(조광,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와 서소문')
"서소문 밖 길거리는 참수형을 집행하는 행형지(行刑地)였다. 1914년께 일제 도시계획에 의해 서소문이 철거되고, 1928년 서소문로와 의주로는 확장되었다. 현재 서소문터는 왕복 8차선 서소문로가 조성됐고, 단지 표석만 언덕 위 중앙일보 주차장 구석에 설치돼 있다. 당시 형장 터로 보이는 임광빌딩 앞 남문광장(현 서대분구 미근동 267번지) 아래 네거리는 서울역에서 문산역까지 이어지는 경의선이 무심히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절 이 서소문 밖 만초천(蔓草川)변 하천부지가 한국 최대 천주교 순교지 역사현장으로서 19세기 조선시대 유교사회의 격변을 상징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과 관련해서는 현재 50m 정도 떨어진 서소문공원 내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비'(2008)를 통해서나 알 수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이원명, '조선시대 서울 한양도성과 4소문(小門)-서소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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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서울역사와 어울리는 광장조성 계획. |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조성 및 과제는
현재 서울대교구는 향후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과 연계해 진행될 서소문공원 재개발이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곳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조 500년 동안 새남터ㆍ절두산과 더불어 국가의 공식 처형지였다. 그래서 서소문 밖 순교성지는 신유(1801)ㆍ기해(1839)ㆍ병인(1866)박해를 통해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피를 흘려 자신의 신앙을 증거한 땅이 됐다. 특별히 조선후기 역사 전개 과정에서 천주교 박해가 보여주는 한국사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면 이 장소가 주는 역사적 교훈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하지만 이 서소문 근린공원이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되기까지는 그 과정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 서소문공원의 지상ㆍ지하 개발을 통한 역사문화공원 조성을 위해서라면, 무엇보다도 이 사업에 관한 토지 소유기관의 토지사용 승낙이 선행돼야 한다.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내 기념건물 건축을 위한 국유재산관리법에 따라 국유토지에 대한 사용승낙은 재경부 소관이다. 토지소유관청의 지상ㆍ지하 공간 사용승낙을 얻은 뒤라도 지하 공영주차장은 2015년 6월 현재의 무상사용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시설 사용중지 및 철거가 가능하다. 또 지하에 있는 재활용처리장도 대체부지 확보 및 시설 이전 이후라야 개발이 가능한 경우여서 그 과정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작부터 쉽지 않지만 이조차도 말 그대로 시작일 뿐이다. 역사문화기념건축물에 대한 국고 지원을 필요로 할 경우에는 문화재 관리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협조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서울시 도시계획사항 변경고시가 필요할 경우에는 국토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토해양부와 서울특별시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일이 가능할 경우에라도 지속적 행정지원을 위한 기초자치단체의 도움은 필수다.
서소문 근린공원의 역사문화공원 조성을 위한 법률적ㆍ정책적 지원과 함께 거의 동시에 해나가야 할 일이 있다. 다름 아니라 차후에 있게 될 실질적 건축행위와 관련한 일들이다. 기본적 공간계획(Space Program)과 아이디어 공모ㆍ설계 공모 등을 진행시켜야 하고, 이에 따른 부수적 일들을 꾸준히 살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일을 위해 서울대교구는 조만간 정식으로 운영위원회ㆍ전문가 자문위원회ㆍ법률 및 정책지원단을 갖출 계획으로 있다. 기초자치단체를 비롯한 광역자치단체와 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일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이 비단 한국천주교회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에도 보람과 기쁨이 되도록 하는 일에 지혜를 모아주었으면 하고 기대한다.
혹자는 벌써부터 이 서소문 역사문화공원에 거는 다양한 기대를 털어 놓는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근대사 전시 혹은 연구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기대한다. 그리고 천주교와 유교의 만남, 박해에 이어 맞이한 신앙의 자유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 '종교사연구소' 내지는 '박물관'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비치기도 한다. 서소문 밖 순교성지가 한국을 넘어 세계 속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 와서야 듣게 된 이야기이지만, 서울역 종합개발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안창모 경기대 교수(건축학)는 가까운 지인에게 "서울역 북부역세권 역사부문을 총괄ㆍ조정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서소문 성지에 대한 배려가 많이 아쉬웠는데,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일이 비로소 시작돼 다행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비로소 시작"이다. 서소문 밖 순교성지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 순교성지이다. 서소문 근린공원 안에 세워져 있는 순교자 현양탑이 오늘도 변함없이 그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비단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장소가 아니다. 조광 교수 말대로, "이곳은 전근대적 질곡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을 품으며 최후를 마쳤던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장소접근성이 떨어지고, 장소정체성이 부재해 이 모든 기념비적 일들이 그저 과거에 묻힐 뻔했다. 서소문 근린공원의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이 103위 순교성인들과 125위 하느님의 종의 전구로, 또한 하느님의 돌보심으로 잘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염수정(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