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시사저널 1997-7-31
캄보디아 내전 현장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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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센 승리로 사실상 종결…화해 내세우며 국민 선무, 새 정부 구성 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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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 1997년 07월 31일 (목) |
프놈펜·이창주 (모스크바 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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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내전은 훈센측 병력이 앙코르와트 사원이 자리하고 있는 제1총리 노로돔 라나리드의 최종 전략 거점 시엠리프를 점령하면서 사실상 훈센 제2총리의 승리로 끝났다.
현재 프놈펜 표정은 평온하며 훈센 제2총리는 자신감을 갖고 새 정부 구성에 들어갔다. 훈센은 라나리드 세력을 회유하고 압박하는 양동 작전을 전개해 정치 세력 대부분이 내전의 정당성을 지지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라나리드의 골수 친위 세력을 제외한, 피신 중인 정치인의 복귀를 허용하고 있다. 왕궁에 숨어 있던 ‘로열 패밀리’도 무사하다.
훈센은 쿠데타가 성공 분위기로 접어들자 제1총리를 서둘러 선출하려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30명 이상 해외로 탈출하거나 피신한 탓에 성원이 부족해 국회를 열기가 불가능하자 민족연합전선 소속 의원들에게 프놈펜으로 복귀하라고 종용하며 신변 안전을 약속하고 있다. 한편 해외로 피신한 정치인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귀국했거나 귀국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훈센이 정권을 장악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후진국의 전통적인 권력 투쟁 형태인 의회 해산이나 헌정 중단을 택하지 않은 점이다. 의회는 형식적이지만 내년 총선까지 제1당의 실체와 연정의 틀이 된다. 훈센은 쿠데타 핵심 이슈를 라나리드 제1총리를 축출하는 데 맞추었는데, 이 전략은 유엔이나 국제 사회의 개입을 자제시켰다.
둘째는 라나리드 제1총리가 국제적 지원 세력으로 믿고 기대한 프랑스와 중국이 라나리드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개입을 거절한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중국은 훈센의 절대 지지 세력인 베트남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 때문에 캄보디아 사태 개입을 꺼리고 있다. 이것은 라나리드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유엔 안보리의 중립 표명과 시아누크 국왕의 현실적인 태도도 한몫을 하였다. 초기에 상당한 우려를 표시하던 아세안(ASEAN)도 훈센 체제를 인정했고 이미 대표가 프놈펜에 들어왔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에서 가장 요란을 떨었던 국가는 일본이었다. 자국민 구출을 명분으로 전후 최초로 자위대 소속 수송기를 캄보디아에 파견하려 했으나 좌절되고 국내외 비난만 자초했다. 실제로 이곳 프놈펜에서는 일본이 캄보디아 사태를 빌미로 자위대의 해외 파병 선례를 만들기 위해 군용기를 보내려 했다는 비판이 높다.
제1총리를 선출하기 위한 국회가 7월28일 열린다. 훈센 제2총리는 국회 개원 전에 민족연합전선의 사무총장이며 제1국회 부의장인 로이 심을 제1당의 당수로, 울 하우트 외무장관을 제1총리로 하는 새로운 연정을 꾸릴 계획이다. 로이 심 총장과 울 하우트 장관은 합리적이며 훈센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민족연합전선의 중심 인물이다. 이번 내전 과정에서 훈센은 이들의 재산과 지위를 철저하게 지켜 주었다.
해외 투자가, 훈센 체제 환영
프놈펜 외교가는 이들이 훈센 체제의 들러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두 진영 간의 무력 충돌로 인한 혼란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번 사태가 수습되면서 민족연합전선은 로이 심 총장을 제1총리로 추천하였으나, 대외 관계를 의식한 훈센 제2총리는 국제통이며 아세안과 대미·대일 관계가 좋은 울 하우트 장관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를 바라보는 해외 투자가나 기업인은 대부분은 훈센 체제를 환영하는 기색이다. 더 이상 두 권력의 눈치를 보며 양쪽에 줄을 대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 때문이다. 현지 기업인들은 수시로 발생하는 무력 충돌 때문에 사업이 중단될까 봐 불안해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내전 종결을 반기고 있다. 훈센 제2총리는 앞으로 외국인에게 불편이 없도록 하겠으며 해외 투자가를 적극 보호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단 훈센 체제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캄보디아의 상징 시아누크 국왕 시대도 막을 내리고 있다. 세기 말 캄보디아의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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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훈 센 총리의 통찰력이 엿보입니다. 베트남때문에 중국도 캄보디아 내전에 간섭을 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 아래 쿠테타를 일으켜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고 지금까지 그 권력을 더욱 강화되어 있으니
그렇습니다.. 일단은 생존게임의 고수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역사적 평가는 전혀 다른 차원임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 기사는 아주 우호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해서 썼구만요... 우리 카페의 무서운 점이 바로 기록보존소라는 것이고.... 동시에,, 지식인들이 글쓰기를 조심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글은 죽은 뒤에도 남아서 그 저자를 평가하게 해줍니다.... 이 글에서 <내전의 정당성을 지지하도록> 부분은... 참 할 말이 없습니다.... 이 글을 한국인이 아니라 캄보디아인민당 당원인 크메르인 대학 교수가 썼더라도 아주 이상한 내용이 되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