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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할미봉~장수덕유산~삿갓재~무룡산~동엽령~백암봉~귀봉~못봉~대봉~갈미봉~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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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지 : 덕유산 (무주, 장수, 함양, 거창 일원)
♣ 일 시 : 2010년 5월 15일(토)~5월 16일(일) 무박2일
♣ 날 씨 : 최저9℃~최고25℃ / 맑음 / 한낮땡볕더움
♣ 인 원 : 대전바위산장 산님 49명
♣ 교 통 : 대전중부고속관광(대전~장수IC~육십령)
♣ 산행거리 : 약 33.31km
♣ 소요시간 : 약 17시간 30분(후미 기준 / 선두 10시간 30분)
♣ 종주코스 / 구간거리 / 통과시간
육십령(02:00)-[1,4km]-915봉(02:25)-[800m]-할미봉(02:40)-[4,65km]-덕유서봉(04:20)-[2,8km]-남덕유산(04:55)-[3,0km]-삿갓봉(06:00)-[700m]-삿갓재대피소(06:20)-[2km]-무룡산(07:20)-[4.1km]-동엽령(08:20)-[2.18km]-백암봉(8:58)-[2.3km]-귀봉(09:30)-[1.98km]-횡경재(10:20)-[1.1km]-못봉(11:00)-[2.3km]-대봉(11:50)-[1km]-갈미봉(12:10)-[1.6km]-빼봉(12:35)-[1.4km]-빼재(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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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대종주
'덕이 많은 너그러운 산' 덕유산(德裕山)
주봉인 향적봉(1,614m)에서 남서쪽 끝자락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 육십령까지
장쾌한 능선이 장장 30여km를 내달리는 산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둔중한 육산(肉山)
1,000m가 넘는 봉우리만도 20여개를 거느리고 있는 산
가진 자들의 산이 아니라
가지지 못하거나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산
고개마다 뿌리 뽑힌 민중의 한서린 이야기와
골짜기마다 피맺힌 빨치산 이야기도 있고
이성계가 산신제를 올릴 때 소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안개를 피워 왜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했다는 전설도 있고
옛날 이 골짜기에 성불을 이룬 이도 구천 명이 있었으나
산이 신비해서 그 터는 보이지 않는다고도 전하는 산
산산골골 구구절절 민중과 함께 살아왔고 살아갈 산
무주에서 거창까지 80리 산길
지리대종주에 버금가는 산행거리에
고봉준령을 여럿 힘들게 오르내려라야 하는 구간
시작은 좋았다
덕유산으로 오르는 남쪽 들머리 육십령(694m)
한밤중 육십령은 깊은 어둠과 침묵에 싸여 적막하다
하늘엔 소금을 뿌려놓은 듯 촘촘한 별들이 어둠을 감싸고 있다
이정표를 따라 푸른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정적 속에 숨소리만 발밑에 깔린다
육산다운 완만한 오름과 평지를 지난다
숨이 차오르며 송글송글 이마에 땀방울이 솟을 만큼 올라서니 915m봉
이어 헬기장을 지나 할미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오름길
정상부근 바위를 조심해서 올라서니
할미봉(1,026m)
어둠 속에 멀리 고속도로가 곡선을 그으며 환하게 빛나고
육십령 아래 산골마을 외등은 별빛이 내려앉은 듯 반짝인다
기암괴석 꽃암봉으로 백두대간의 꽃이라 불리는 산
이어진 능선을 두고 사람들은 외적으로부터 장수군 장계를 지키기 위해
어느 할머니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 쌓은 성이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또한 옛날 한 도승이 산 정수리의 바위모습을 보고
마치 수백명의 군사가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쌀이 쌓여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합미봉(合米峰)이라 부르다가 할미봉이 되었다고 하는 산
널따란 암반에 앉아 조망을 즐기기 좋은 곳일테지만
사위가 칠흑으로 싸여 있다
허나,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터
다행히 기억은 남아 산을 추억한다.
북으로 우람한 검은 두 봉우리 하늘금을 올려다 본다
어둠 속에 백두대간이 힘차게 꿈틀대며 오르고 있었다
장수덕유 덕유서봉과 남덕유산이다
할미봉을 뒤로 하고 조금 내려오면
대포바위(남근석) 갈림길
대간에서 벗어나 있어 우회하지만 민중이 구전한 이야기를 랜턴빛으로 읽는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육십령을 넘어가면서 바라보다
엄청나게 큰 대포가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에 놀라 남원방향으로 돌아가서
장계지역이 화를 면했다는 전설의 바위라는 이야기도 있고
또 옛날부터 사내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이 이 바위에 절을 하고
치마를 걷어올린 채 소원을 빌면 사내아이를 얻는다는 치성의 바위라는 이야기도 있고
이어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직벽에 가까운 암벽 내리막
로프는 미끄럼을 막으려고 매듭을 지어놓았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고맙다
고정로프를 따라 한 사람씩 내려선다
편안한 나뭇잎 깔린 등로를 따라
어둠 속에 장수덕유 서봉에 오른다
오름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여러 합을 치르는 전투처럼
한걸음 다가서면 한걸음 물러나는 듯한 느낌이다
대장님과 산님들 나누는 도란도란 구수한 정담과 웃음소리가
까만 어둠속 유난히 또렷하다
서봉오름길
동녘 서봉과 남덕유산 사이로 해오름의 진통이 어둠속에 붉게 번지고 있었다
남덕유에 선두선답자들이 어렴풋이 감지된다
몇 번의 오르내림에 교육원삼거리(1024m), 헬기장, 샘터표지막(1263m)을 지나
다시 암릉을 가파르게 올라서니 비로소 장수덕유 서봉(1,510m)이다
빨간색으로 서봉이라 음각된 정상석엔 1,492m로 새겨져 있다
사방으로 내려다 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동으로 남덕유산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있고,
남으로 지리백리 주능선이 구름위로 마루금을 긋고
그 앞쪽으로 백운산, 영취산, 깃대봉, 할미봉이
백두의 지맥을 따라 꿈틀대며 치달린다
그리고 북으로 덕유주봉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덕유능선이 장쾌하다
후미를 기다리는 동안 암반에 잠깐 누워 아침 산기운을 들이마신다
철계단을 내려와 남덕유로 가는 길은 안부까지 내리막
너덜지대와 몇 번의 오르막 지나 남덕유 갈림길(1398m)에서
남덕유(1507m)를 오르지 않고 곧바로 월성치(1240m)로 내려섰다
영구폐쇄 토옥동계곡과 거창 황점마을 바람골을 잇는 고개다
아침햇살 좋은 곳에 자리를 깔고 아침을 먹는다
대장님, 풍경소리님, 장미님, 그리고 나 이렇게 후미는 넷이다
김밥, 파김치, 밑반찬, 과일 등등 성찬이다
배낭 속에 바리바리 쌈지쌈지 챙겨 지고 왔을 산님들-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나누는 정이 담뿍 느껴진다
퀭하고 멍한 상태에서 걷기 위해 식은 밥 몇 술 떠넘긴다
삿갓봉(1418.6m)까지 1.9km 된비알이다
직전의 1,340m봉을 힘들게 올라선다
정상 좌측을 돌아 가다보니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가 보인다.
우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먼저 치고 올라간 대장님의 호출이 지엄하다
남덕유를 우회했으면 삿갓봉은 다녀와야 한다는 지론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니 삿갓재 대피소(1280m)
무주 원통골과 거창 황점마을을 잇는 고개
멀리 남령에서 가지친 월봉산 능선이 아름다운 대피소
텅빈 듯한 대피소, 정적이 감도는 넓은 테라스에 앉는다
취사장에 물이 없어 대장님이 물병을 걷어 손수 60m 아래 샘터로 내려간다
가뭄이라 물이 귀하다고 한다
힘든 건 다들 마찬가지인데 대원들 챙기고 배려하는 리더의 일면을 엿본다
잠시 한숨 돌리고 서둘러 무룡산으로 향한다
주능선에는 키 큰 나무가 없어 시야가 막히지 않아 전망은 좋으나 햇살이 따갑다
삿갓재를 지나 완만하게 오름을 올라서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는 정상 바로 아래 제법 긴 나무계단을 걷는다
레드 제플린의 불후의 명곡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을 떠올린다
무룡산(1,491.9m)
용이 춤추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는 산
덕유주릉 중간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산
옛날에는 불영봉으로 불리던 산
정상은 넓은 헬기장으로 정상석이 있다
멀리 월봉산 금원산 줄기와 비수를 꽂은 듯한 황석산도 보인다
동으로 가야산도 보이고 뒤돌아 보면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이
여전히 빙긋이 내려다보고 있으며
앞쪽으로 황적봉으로 이어지는 덕유 주능선이 손에 잡힐 듯 출렁댄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간다.
백암봉까지는 여름철 무성한 풀숲과 넝쿨나무들이 길을 막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등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돌탑이 세워진 봉우리를 지나 잠깐 봉우리를 올라섰다 내려서니 동엽령(1,260m)이다
무주 칠연계곡과 거창 병곡리를 잇는 고개다
백암봉의 거대한 봉우리가 병풍 처럼 앞에 버티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진행하니
칠연폭포 내려가는 동엽령삼거리(1312m)다동엽령에서 백암봉 가는 길은 험난했다
더위와 졸음과 체력부실로 오름과 암릉을 넘어서는 고행길이다
힘들게 송계사삼거리 백암봉에 오른다
백암봉(1,490m)
덕유산에서 가장 덕유산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곳
대간 종주길과 덕유산이 갈라지는 분기점
육십령에서 덕유 주능선과 함께한 백두대간은
향적봉이 보이는 백암봉에서 덕유산 주능선과 헤어진다
신풍령까지 11km, 동쪽으로 산길이 열려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하고 완만한 봉우리 몇 개만 보인다
뼈를 묻는 빼재까지 악어의 이빨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두는 향적봉까지 다녀와서 이미 하산했다고 한다
산에 드니 사람이 산이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산사람이란 그래서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향적봉으로 가서 곤돌라타고 내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풍경소리님의 넋두리도 한층 더해가는 구간
대간길은 우측으로 90도 틀어서 횡경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백암봉에서 급경사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고
완만한 능선과 숲 속을 지나 봉우리에 올라서면 상여덤
이어 상여덤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안부에서 점심을 먹는다
때가 지났지만 시장끼를 못느낀다
산에 와서는 잘 먹어야 한다는 대장님의 잔소리가 쟁쟁하다
점심 먹는 동안 바위 밑 그늘에 누워 풋잠에 빠진다
다시 봉우리에 올라서면 귀봉(1
,400m), 내려서니 싸리등재(1,300m)완만한 오르내림을 넘나드니 횡경재(1,247m)다
오른쪽은 경남 거창의 송계사로 왼쪽은 전북 무주의 백련사로 내려가는 길
길만 보이면 내려가고 싶지만 다행히 통제구간이다
구천동에 핀 흰 연꽃, 백련사
지난 겨울 폭설이 내려앉아 눈꽃이 화사하게 피었던 백련사의 정경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늘 없는 갈참나무 숲, 싸리나무 잡목지대 헤집고 지나
제법 높직한 두 개의 봉우리 중 첫번째 헬기장을 넘어서니 지봉 또는 못봉(1,342m))
멀리 중봉과 향적봉, 덕유평전의 산줄기들이 시원스럽게 트인다.
그 앞쪽으로 백암봉에서 귀봉을 이어오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줄기도 조망은 좋다
그/러/나
못봉에서 빼재까지의 대간길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못봉, 대봉, 갈미봉, 빼봉...
감추어진 봉우리까지 오르내림이 만만치 않았다
빼재까지 지루할 정도로 오르내림이 많다.
오름길에서는 막막함이
내림길에서는 허탈감이
갈참나무, 싸리나무 잡목에 몸을 묻고무념무상 한 걸음 본능적으로 내딛는 것 뿐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이건 미친 짓', '무모한 산행', '자책과 자학의 고행'이라는
푸념과 넋두리가 한숨과 함께 입가를 타고 터져 나온다
한참을 내려가더니 달음령에서 대봉으로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다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된비알을 치고오르니 대봉(1,263m)
고스락엔 넓다란 공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정표 옆 잔디쪽에 배낭을 내려놓고 후미를 기다리며 잠깐 졸음에 겨운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종일 졸음 속에서 해멘다
조망의 즐거움도, 디카의 추억도 잊은 듯하다
대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
갈미봉(1,210m)에 올라선다봉우리가 두개로 갈라지는 산이라고 한다
정상석은 있으나 잡목으로 운치와 조망은 떨어진다
멀리 빼재가 턱밑에 걸려있다
갈미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급한 내리막 내려서면 빼재 1km 지점,
완만한 능선을 무심으로 걷는다
여기서 다시 봉우리 네개를 더 오르내리며 진을 뺀다
마지막 빼봉, 진을 빼는 봉
푸르게 봄물이 오른 잡목사이로 삐죽 솟은 빼봉(1,039m)으로 가파르게 올라선다
아래에서 마중 나온 선답고수산꾼 외침이 들린다
막걸리 한 잔이 간절한데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
두 분이 여성산님 배낭을 둘러매고 서둘러 내려간다
다시 내려서서 능선을 따라 터벅터벅
마음을 비우고 눈은 풀린 채 걷는다
빼재 절개지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와 송신탑 돌아 산문을 나서니
드디어 빼재(873m)
17시간 반 동안 산중에서 나를 잊고 있던
뒤틀리고 몽롱한 의식이 제자리를 찾는다
아, 내사랑 빼재, 수령, 신풍령이여
수정봉, 호절골재, 덕유삼봉산, 소사고개,
초점산, 대덕산, 덕산재를 잇던 춘삼월 5차 대간산행길
잔설과 꽃샘바람이 살갗을 파고들던 그 고갯마루는
예나 지금이나 한적하다
빼재골 기슭에 수달이 기지개를 펴고 노닐 시간
빼재에 어둠이 깃을 치고 있었다
하산주 막걸리를 본능적으로 찾았지만 이미 후미몫은 없었다
허전함을 소주 반컵과 대둘팀이 건네준 생명수로 씻는다
간밤, 신열기로 힘들어했다는 아내의 걱정과는 달리
오늘 아침 의외로 몸이 가볍다
어제 그토록 간절했던 일상적인 커피 한잔도
오늘 아침 그 향이 입안에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다
담록으로 짙어가는 풀과 나무 하나하나에 눈길이 간다
지리종주보다 힘들고 지겨웠다는
나의 투정과 시기에 개의치 않고
덕유는 나에게 드러나지 않는 삶의 의미를 살포시 던져주고 간 것일까
덕유대종주
덕유를 나오니 덕유가 그립다
능선의 유려한 산세 탓도 있거니와
이른바 '구천둔곡'이라고 불리우는 덕유의 깊은 골과 풍요로움으로
'크고 넉넉한' 덕유의 마음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일게다
봄바람 일렁이는 어느날
여름이 오기 전에 시간이 되면
덕유와 바람나고 싶다
나 혼자만의 은밀한 중년의 외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