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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무쌍(國士無雙) 國:나라 국. 士:선비 사. 無:없을 무. 雙:쌍 쌍. 나라 안에 견줄 만한 자가 없는 인재라는 뜻으로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을 일컫는 말. 초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에 의해 진나라가 멸망한 한왕 원년(元年:B.C. 206)의 일이다. 당시 한군(漢軍)에는 한신(韓信)이라는 군관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초군(楚軍)에 속해 있었으나 아무리 군략(軍略)을 헌책(獻策)해도 받아 주지 않는 항우에게 실망하여 초군을 이탈, 한군에 투신한 자이다. 그 후 한신은 우연한 일로 재능을 인정받아 군량을 관리하는 치속도위(治粟都尉)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직책상 승상인 소하(蕭何)와도 자주 만났다. 그래서 한신이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안 소하는 그에게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무렵, 고향을 멀리 떠나온 한군은 향수에 젖어 도망치는 장병이 날로 늘어나는 바람에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 도망병 가운데는 한신도 끼어 있었다. 영재(英才)를 자부하는 그는 치속도위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하는 한신이 도망갔다는 보고를 받자 황급히 말에 올라 그 뒤를 쫓았다. 그 광경을 본 장수가 소하도 도망가는 줄 알고 유방에게 고했다. 그러자 오른팔을 잃은 듯이 낙담한 유방은 노여움 또한 컸다. 그러데 이틀 후 소하가 돌아왔다. 유방은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노한 얼굴로 도망친 이유를 물었다. "승상(丞相)이란
자가 도망을 치다니, 대체
어찌된 일이오?" "물론,
과인은 천하 통일이 소망이오." 이리하여 한신은 대장군이 되었다. 즉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 [유사어]동량지기(棟梁之器)
[출전]《史記》
군계일학(群鷄一鶴) 鷄 :닭 계.
群 :무리 군.
一:한 일.
鶴:학 학. [원말]계군일학(鷄群一鶴)
[동의어] 계군고학(鷄群孤鶴)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 위진(魏晉)시대,
완적(阮籍)
완함(阮咸)
혜강(瑞康)
산도(山濤)
왕융(王戎)
유령(劉伶)
상수(尙秀) 곧
죽림 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가 있었다. 이들은
종종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북동부에 있는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청담(淸談)을
즐겨 담론했다. 그런데 죽림 칠현 중 위나라 때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있던 혜강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그때 혜강에게는 나이 열 살 밖에 안되는 아들
혜소( 紹:?∼304)가
있었다. 혜소가 성장하자 중신(重臣)
산도가 그를 무제[武帝:256∼290,
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에게
천거했다. "폐하,《서경(書經)》의
〈강고편(康誥篇)〉에는
부자간의 죄는 서로 연좌(連坐)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나이다. 혜소가
비록 혜강의 자식이긴 하오나 총명함이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극결( 缺)에게
결코 뒤지지 않사오니 그를 비서랑(비書郞)으로
기용하시오소서." "경(卿)이
천거(薦擧)하는
사람이라면 승(丞)이라도
능히 감당할 것이오." 이리하여 혜소는 비서랑 보다 한 계급
위인 비서승에 임명되었다. "어제
구름처럼 많이 모인 사람들 틈에 끼어서 입궐하는
혜소를 보았습니다만, 그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우뚝 선 한 마리의 학[鷄群一鶴]'같았습니다." 그러자 왕융은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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