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그리스도 중심성
악마 또한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창조에 내재하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바탕으로 어떤 체계적인 개념 없이 형태를 취하지 않은 구마나 악마에 대해 언급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처음 접한 새로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를 들추어보려고 한다.
우리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창조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고, 그 잘못된 사고가 맞는 것처럼 마냥 받아들이고 있다. 다음과 같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신 뒤, 어떤 시험인지는 알 수가 없는 어떤 시험을 해보시기로 결정하셨다. 그 결과, 두 부류로 갈라졌는데 곧 천사들과 악마들이라는 것이다. 천사들은 천국이란 상을 받고, 악마들은 지옥이란 단죄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 어느 멋진 날 하느님께서 우주를 만드시고, 땅의 자원과 식물, 동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담과 하와는 지상 천국에서 하느님께 불순종하고 사탄의 말을 들음으로써 죄를 범한다. 이 부분에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파견하시기로 결정한다는 식이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며 교부들의 가르침 또한 아니다. 이런 개념의 천사의 세상과 창조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맞지 않는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요한 복음의 서문과 에페소와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서간에 있는 두 가지 그리스도 찬가를 읽어보라.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창조물의 우선이시며,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해, 그분을 고대하는 속에서 창조되었다.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것이냐는 신학적인 토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분이야말로 창조의 중심이시며 하늘의 창조물(천사들)과 지상의 창조물(인류) 등, 모든 창조물들을 당신 안에서 함축하신다. 하지만 원조들의 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특별한 사명인 구원자로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된다. 그분 행위의 핵심은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당신의 피로써 하느님과 천상(천사들)과 지상(인류)의 모든 것을 화해시키는 파스카의 신비가 담고 있는 내용으로 집약된다.
이런 그리스도 중심론의 전개는 모든 창조물의 임무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동정 마리아에 대한 관점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첫 번째 하느님의 창조물이 강생(降生)하신 말씀이었다면, 동정녀는 그 어떤 창조물보다도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생각 안에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고 강생은 동정녀를 통해 실현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유일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시각에 의해 이미 2 세기부터 동정 마리아를 “하느님의 네 가지 중의 네 번째 요소”라고 불려졌다. 이 분야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두 권으로 이루어진 엠마누엘 테스따(Emanuele Testa)의 마리아, 지상의 동정녀 (1986년 예루살렘 출판)를 참고하기 바란다.
두 번째 고찰은 그리스도께서 천사들과 악마들에게 끼치는 영향이다. 천사들에 대한 영향을 두고 몇 몇 신학자들은 천사들은 단지 십자가의 신비에 의해 하느님을 면전에서 볼 수 있도록 허락된 존재들뿐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교부들은 이에 대해 상당히 흥미 있는 정의들을 내리고 있다. 예를 들어, 성 아나타시오의 글을 읽어보면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구원되었기 때문에 감사드려야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복음은 악마들에 관해 많은 양을 할애해 기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를 통해 사탄의 왕국을 쳐부수셨으며 하느님의 나라를 시작하셨다. 단적인 예로 가다라 지방의 악마들린 사람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마태 8, 29) 라고 소리친다. 이 구절은 점차적으로 그리스도로부터 격퇴되는 사탄의 약해지는 힘을 분명한 어조로 전해주고 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묵시 12, 10) 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악의 힘은 지속되고 존재할 것이다. 이 부분과 구원이 선포되던 그 때부터 사탄의 원수인 동정 마리아에 대해 더 자세히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깐디도 아만띠니 신부님의 마리아의 신비 (1971년, 데오니아네, 나폴리)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스도 중심론 차원에서 하느님의 계획은 “그분을 위해, 그분을 고대하면서"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 원수이며 반대자인 사탄의 활동이 암시하는 것은 악과 고통, 죽음과 죄를 가지고 창조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의 활동으로 인해 하느님의 계획이 회복되도록 한다.
악마의 힘이 분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예수께서는 악마를 세상의 권력자(요한 14, 30) 라고 부르셨다. 성 바오로는 악마를 “이 세상의 신”(2코린 4, 4,) 이라고 했으며 요한 복음사가는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다”(1요한 4, 19) 고 하면서 하느님을 반대한 세상을 가리키고 있다. 사탄은 천사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지만 악마들보다 훨씬 더 악한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왜냐하면 악마들 또한 그들끼리의 엄격한 등급이 존재하고 있어서 이것은 천사들이었을 당시, 능품, 좌품, 권품 등의 등급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악마들의 등급은 미카엘 대천사를 위시한 천사들의 사랑의 등급과는 무관한 속박의 등급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활동은 사탄의 왕국을 파멸시켰고, 하느님의 나라를 회복한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예수께서 악마들린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화에는 특별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베드로 사도가 고르넬리오에게 다른 기적들을 예로 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사도행전 10, 38) 라고 그리스도의 업적을 요약해 보여준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그 첫 번째 권능을 사도들에게 주신 이유는 악마들을 쫓아내라는 것(마태 10, 1 참조)이며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마르 16, 17)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말은 믿는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께서 악에 빠진 천사들과 선조들의 죄로 인해 망가져 버린 하느님의 계획을 재정비하시고 새롭게 하신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악과 고통, 죽음과 지옥(혹은 영원히 끝이 없을 고통의 나락)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 번째에 해당하는 죽음과 지옥에 대해 언급해 보자. 어느 날인가 깐디도 신부님께서 구마를 하고 계셨다. 구마가 거의 끝나가고 있을 무렵, 신부님께서는 조롱 섞인 말로 악령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여기에서 썩 꺼져라. 주님께서 너를 위해 아주 뜨끈뜨끈한 좋은 집을 마련해주신 곳으로 꺼져버려라!” 그 때 악마는 “너는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그분(하느님)께서 지옥을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다니. 하느님은 지옥을 창조하시려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단 말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나한테도 일어났었다. 구마기도를 하다가 내가 쫓아내고 있는 악마도 지옥을 창조하는데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어 물어보았다. 그 때 악마는 “우리 모든 악마들이 지옥을 창조하는데 공헌했단 말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창조계획의 관점에서 본 그리스도 중심과 창조계획의 회복은 구원을 통해 도래하였고 인간의 목적과 하느님의 계획들을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다. 분명 천사들과 인간에게 지식과 자유가 본성적으로 주어졌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를 구하시고 누구를 멸하실 지(하느님의 예지와 구원예정설을 혼돈하면서)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구원을 위한 모든 노력은 소용없다’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 난 이렇게 대답한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고, 교의적으로 정의된 네 가지 진리가 그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려는 원의를 지녔다는 것, 그 누구도 지옥으로 대상 지워진 사람은 없다는 것, 예수께서 모든 이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은총이 모든 이들에게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성은 그분의 이름을 통해서야 비로소 구원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분의 이름을 통해서만이 구원의 훼방꾼인 사탄으로부터 승리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통상적으로 나는 악마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아주 위급한 상황의 구마를 끝낼 때,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그리스도 찬가(필립 2, 6-11)로 끝을 맺는다. 찬가를 드리면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라는 구절을 기도할 때면 나와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함께 무릎을 꿇는데 거의 매 번 부마자도 무의식중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 순간이야말로 엄청나고 놀라운 순간이다. 이 찬가를 드릴 때 천사 군단들도 마찬가지로 우리 주위에서 함께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인상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