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방문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문이 열리자 어둠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비릿한 온기가 몰려나온다. 볕이 들지 않는 골방은 축축하고 어둡고 적막하다. 여자가 오기 전 당신이 사용했던 방이다. 변한 것은 없지만 모든 것이 낯설다. 가래가 낀 것처럼 목 안이 답답하다. 당신은 어깨를 치키며 크게 숨을 들이 마신다. 방안을 떠돌던 여자의 체취가 당신의 폐부 깊숙이 빨려 들어온다.
비키니 옷장 하나와 이부자리 한 채가 전부인 좁은 골방에서 여자는 딱 일 년 반을 살고 떠났다. 형이 여자를 지워버린 뒤에도 반년을 견뎠으니 그녀로서도 오래 버틴 셈이다. 여자는 지금 어디까지 갔을까. 당신은 문득 궁금해진다. 충주호에 무사히 도착했을까? 물속에 웅크리고 앉은 여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간다. 허방을 짚듯 몸이 꺼져 내리는 느낌이다. 당신은 형광등 스위치를 찾느라 벽을 더듬거린다. 손바닥에 와 닿는 벽지의 감촉이 뱀허물처럼 눅눅하다. 전원 스위치 버튼을 힘주어 누른다. 톡,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형광등 불빛이 껌뻑거린다. 생명이 다된 형광등 불빛이 망막에 이물이라도 낀 것처럼 답답하게 사물을 비춘다. 위층에서 쏴아-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방바닥에 투툭, 물방울이 떨어진다. 당신은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주인집 하수관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누수로 내려앉은 벽지 위에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다. 거웃 같다. 물길로 찢어진 좁은 틈새까지 영락없는 여자의 음부다. 물방울을 뚝뚝 흘리는 천장을 바라보며 여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신은 생기가 없는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던 여자를 떠올린다. 무엇도 담고 있지 않아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처럼 불길하게 느껴졌던 깊은 눈매. 여자는 집안 곳곳에 자신의 체취만 허물처럼 벗어 놓은 뒤 몸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밀어냈다. 몸이 원하는 길이, 마음이 원하는 길보다 집요하다는 것을 당신은 형을 간호하면서 깨달았다. 갇혀있는 모든 것들은 제 몸을 담기에 적당한 공간을 찾아 탈출을 시도한다. 여자를 담고 있기에 형이 좁았듯 형을 담기에 집도 너무 좁은 것이다. 형이 집을 탈출해 마을을 배회하고 다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당신은 신발도 벗지 않고 여자의 방을 가로질러 비키니 옷장 앞에 선다. 방바닥에 또렷하게 발자국이 찍힌다. 비키니 옷장으로 손을 뻗는다. 팔뚝에 소름이 돋아 오른다. 여자의 몸을 가르듯 천천히 옷장 지퍼를 내린다. 무딘 칼날로 표피를 절개하듯 힘겹게 옷장 내부가 열린다. 옷장 안은 만물상 창고처럼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형이 여자를 위해 사들인 물건들이다. 라디오, 스웨터, 화장품 세트. 조잡한 액세서리와 양말과 스카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가격표조차 떼지 않은 그것들은 사들일 때 그대로 새것들이다. 당신은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 방바닥에 늘어놓는다. 신중한 눈빛으로 가판대나 옷집에서 그것들을 사 모았을 형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형은 자신의 정성이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알았다고 해도 형의 성격상 드러내고 표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착잡한 심정으로 물건들을 내려다본다. 부유물처럼 여자의 방을 채운 물건들은 물건이 아니라 완곡한 거부의 외침이다. 머저리, 쪼다. 당신은 투덜거린다. 비키니 옷장을 바닥까지 비웠는데도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당황한다. 분명, 여자의 방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물건이다. 당신은 방바닥에 엎드려 옷장 밑을 살펴본다. 아, 당신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옷장 밑 깊숙이 신문지에 둘둘 말린 종이 뭉치가 놓여 있다. 당신은 팔을 뻗어 종이뭉치를 잡아당긴다. 먼지가 부스스 일어난다. 목구멍이 답답하고 코가 매캐하다. 당신은 종이 뭉치 꺼내 바닥에 펼친다. 길이 10Cm짜리 짧은 단도다. 온몸에서 열기가 빠져나간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칼날을 문지른다. 버려진 시간의 더께만큼 붉은 녹이 진피처럼 쌓여 있다. 손바닥에 붉은 녹 가루가 묻어난다. 당신의 등줄기에 싸한 한기가 느껴진다. 미안해요. 칼을 든 채 방안을 서성였을 여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핏빛 살의가 방안 가득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것 같다.
과자 조각 하나가 툭, 발치에 떨어진다.
머리통과 날개를 떼어낸 땅강아지 몸통 모양이다. 땅강아지, 땅강아지, 땅... 강아지. 형의 낮은 노랫가락이 흡반처럼 당신의 등에 달라붙는다. 당신은 몸을 돌려 형을 바라본다. 형은 당신의 등 뒤에서 어두운 부엌을 향해 파리채를 드리우고 있다. 파리채를 들고 있는 손이 낚싯대를 움켜쥔 모양이다. 뱀장어의 낚시용 미끼로는 땅강아지가 최고란다. 당신은 언젠가 형이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땅강아지를 미끼로 써서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 놈만 있으면 장어를 낚는 것은 문제없지. 식탐이 강한 뱀장어는 싱싱한 미끼를 좋아하고 야행성이기 때문에 어둠이 깊을수록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했다. 형의 눈빛이 좌대에 앉은 낚시꾼처럼 잔잔해 보인다. 초점이 없어 더 고요하게 느껴지는 눈빛이다. 당신은 막막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볕이 들지 않는 부엌은 심해처럼 어둡고 조용하다. 지구상에서도 가장 깊은 해역인 필리핀의 해구가 베일에 싸인 뱀장어들의 산란장이라고 했다. 회유성 어류인 뱀장어는 심해에서 태어나 담수 생활을 하다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산란을 하고 죽는단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형은 뱀장어에 대해서만은 전문가 뺨치는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한 번도 관찰 된 적이 없다는 깊은 심해의 산란장, 그곳은 어쩌면 형이 살던 방 두 칸짜리 전세방과 비슷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칼 뭉치를 내려놓고 개수대 바닥에 쪼그리고 앉는다. 수챗구멍 옆에 쟁반이 덮인 플라스틱 대야가 놓여 있다. 첨벙, 플라스틱 대야에서 물소리가 들려온다. 인기척을 느낀 놈의 힘겨운 반응이다. 쟁반을 치우고 대야 안을 들여다본다. 뱀장어 한 마리가 몸을 둥글게 말고 바닥에 엎드려 힘겹게 지느러미를 흔든다. 어린아이 팔뚝만한 굵기에 700그램이 넘는 준수한 씨알이다. 깊게 파인 상처에 흰 진액이 가래처럼 달라붙어 흔들거린다. 잡히기 전까지 격렬히 몸부림을 치며 저항한 흔적이다. 과연... 저 놈을 감당 할 수 있을까? 당신은 당신에게 묻는다. 자신이 없다. 징그러운 몸뚱이와 진액으로 미끈거리는 표피, 작은 눈과 뾰족한 머리통이 뱀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당신은 꿀꺽 마른침을 삼킨다. 장어 타령을 한다기에 한 마리 잡아 왔어. 집주인이 뱀장어가 든 비닐봉투를 건준 것은 점심 무렵이었다. 한강으로 밤낚시를 가서 직접 낚아온 민물 뱀장어라고 했다. 11월에 뱀장어라니. 당신은 투덜거린다. 뱀장어의 출어기는 5월부터 10월초까지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뱀장어는 땅속을 파고 들어가 동면을 한다. 철도 모르고 차가운 물속으로 헤집고 다니던 눈 먼 뱀장어 한 마리가 집주인의 낚시 바늘에 걸렸던 모양이다. 장어 손질하는 법은 알지? 집주인이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당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거짓이었다. 당신은 생물을 손질해 본 적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돌려주고 싶었지만 집주인의 마지막 호의까지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관계가 껄끄러워지긴 했지만 당신이 지금까지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집주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아, 형은 이제 낚시나 다닐란다. 좁은 가게 앉아 열쇠나 복사하던 형이 민물낚시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당신이 대학을 졸업하던 해였다. 형은 어깨 위에 얹혀 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홀가분해 보였다. 어린 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여가 시간 한 번 가져 본 적이 없는 형이었다. 당신은 늦게라도 형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형은 낚시 광인 집주인을 따라 전국의 강가를 누비고 다녔다. 한 번 집을 나가면 일주일이 넘게 낚시터에 박혀 있을 정도였다. 낚시에서 돌아온 형의 어망 속에는 붕어나 잉어 따위의 민물어종이 가득했다. 당신은 물고기를 손질하는 형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낚시 이야기를 들었다. 어두운 수면위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가지고 싶은 모든 걸 건져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우연히 민물뱀장어 한 마리를 건져 올린 뒤부터 형은 뱀장어 낚시에 흠뻑 빠져들었다. 입질이 오면 단 번에 장어를 물 위에 띄어야 해. 놈이 돌 틈에 머리를 박거나 수초 속으로 들어가면 채비가 엉망이 되거든. 어찌나 힘이 좋던지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형이 잡아 온 뱀장어는 구렁이처럼 징그럽고 흉물스러웠다.
먼지와 해감이 가득한 대야 속에서 뱀장어가 꼬리를 치켜 올린다. 탈출하려는 심산이다. 당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쟁반을 들어 대야를 덮는다. 틱틱, 뱀장어의 꼬리에 부딪힌 쟁반이 힘겹게 들썩거린다. 수시로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형의 행동과 뱀장어의 탈출은 무척이나 닮아 있다. 당신은 뒷걸음질로 현관문을 나서던 형의 모습을 떠올린다. 당신이 방심하는 순간을 노려, 등으로 슬그머니 현관문을 미는 형의 행동은 다분히 계획적이며 기습적이다. 집에 대한 기억들을 지워버린 형은 존재하지도 않는 집밖의 집을 찾아 수시로 탈출을 감행했다. 거리를 배회하는 형을 찾기 위해 당신은 파김치가 되도록 동네를 헤매야 했다.
“장어를 잡아야 하는데.”
형이 중얼거린다. 김치찌개 냄새가 역하게 풍겨온다. 균열로 쩍쩍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에 찌그러진 찌개 냄비가 뒹굴고 있다. 재활용센터 직원들이 벌여 놓은 난장판이다. 집안을 차지하고 있던 가전제품들을 처리하기 위해 동네 재활용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가져가 봤자 팔리지도 않을 고물들이었으니 그들로서도 일손이 여물 까닭이 없었으리라. 이런 물건들을 처리하려면 쓰레기차를 불러야지요. 재활용센터 직원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쓰레기 차? 43년을 살아온 형의 흔적들이었다. 그것들마저 쓰레기차에 처박을 수는 없었다. 기름 값과 쓰레기처리 비용을 따로 챙겨주고 나서야 재활용센터 직원들의 투덜거림을 막을 수 있었다. 가전제품을 뺀 형의 물건들은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다섯 묶음으로 정리될 만큼 초라했다. 집을 비워주기로 약속한 마지막 날이었다. 돌려받은 전세금 전액은 형이 입원할 기도원 보증금으로 지불된 상태였다. 나도 더 이상은 방법이 없었어. 당신은 중얼거린다. 땀에 젖은 상의가 끈적거리며 살갗에 달라붙는다.
툭, 과자조각 하나가 다시 발치에 떨어진다. 형이 들고 있는 파리채가 당신을 겨냥하고 있다.
“씨발, 차라리 죽어.”
당신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 나온다.
“...곧 입질이 올 거야. 아가야 조금만 기다려.”
형의 초조한 음성이 당신의 귀전에 밀려들었다가 흘러 나간다. 모든 것이 뱀장어 때문이다. 당신은 뱀장어라고 중얼거린다. 형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당신을 바라본다. 단어 한 음절에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뱀장어에 대한 기억만큼은 아직 온전한 모양이다. 뱀장어만 아니었다면…… 이 모든 불행을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신은 부엌 구석에 놓여 있던 쓰레기봉투를 신경질 적으로 걷어찬다. 쓰레기봉지가 쓰러지면서 낡은 옷가지가 바닥으로 쏟아져 나온다. 형이 입던 구멍 난 내복과 헤진 팬티와 양말들이다. 병신 같이 이런 걸레 쪼가리나 걸치고……. 당신은 형을 노려본다. 형이 당신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린다. 당신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헤진 옷가지들을 다시 주워 담는다. 자기는 속옷이 걸레가 되도록 기워 입으면서도 당신에겐 비싼 옷만 사주던 형이었다. 절대 기 죽지 마라. 형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동전까지 탈탈 털어 당신 손에 쥐어 주었다. 돈이 아쉽긴 했지만 돈 때문에 곤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둘 다 죽을 수는 없잖아.”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당신은 ?, 하고 가래침을 뱉는다. 바닥에 떨어진 가래침이 몸속에서 터져 나온 농양 같다. 당신은 쓰레기봉투의 입구를 단단하게 조여 묶는다.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사흘 가까이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속이 울렁거려 음식을 씹어 삼킬 수가 없었다. 먹은 것이 없는데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조갈증이 심했다. 당신은 개수대의 수도꼭지를 돌려 벌컥 거리며 물을 마신다.
형과 당신은 어머니가 달랐다. 아이 딸린 가난한 열쇠 수리공에게 시집간 어머니는 형이 열다섯 살 되던 해에 당신을 낳았다. 당신의 아버지는 착했지만 술주정뱅이였고, 자식 공부도 시키지 못할 만큼 무능했다. 화재로 세상을 떠난 부모 대신 걸음마도 떼지 못하는 당신을 키운 것은 형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시직이긴 하지만 당신이 물류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을 때, 형은 우리도 이제 남들처럼 살아보자며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숨통 좀 트이게 되니... 형이 쓰러졌다.
나는 할 수 있어. 꼭 해내고 말거야. 당신은 시간을 확인하며 중얼거린다. 세 시 반이다. 형을 데려갈 기도원 봉고차는 다섯 시쯤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당신은 팔을 걷어 부치고 싱크대 밑에서 나무 도마를 꺼내 물을 끼얹는다. 두 번 다시 형을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당신의 바람은 딱 하나, 될 수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형이 죽어 주는 것뿐이었다. 당신은 이를 악물고 도마에 묻은 곰팡이를 박박 닦아 낸다.
당신이 출근한 동안 형은 잠긴 방문을 열고 탈출해 동네를 헤젓고 다녔다. 물류창고에서 분류작업을 담당하는 당신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형을 돌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형이 방안을 탈출할 때마다 집주인이 경찰서에 불려가 형을 찾아왔다. 그러나 그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다. 형을 기도원에 입원시키라고 권유한 것은 집주인이었다. 집주인의 친척이 운영하는 조용한 기도원이라고 했다. 당신은 집주인과 함께 기도원을 방문했다. 충청도의 인적이 뜸한 강가에 위치한 허름한 기도원이었다. 작은 교회 건물 옆에 입원실로 사용하는 조립식 건물 세 동이 딸려 있었다. 그 가격으로 이만한 보호 시설을 찾기는 힘들 겝니다. 기도원 관리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매달 40만원에 치매 환자의 간병과 숙식까지 책임지는 보호시설은 없었다. 당신은 관리자의 안내를 받아 형이 머물게 될 남자 숙소를 둘러보았다. 급하게 청소를 한 모양이었지만 방안에 배어있는 악취는 지독했다. 환자들은 초록색 운동복 차림으로 방바닥을 눕거나 기어 다녔다. 그들의 눈동자엔 하나같이 초점이 없었는데 초점 없는 눈동자는 심해로 통하는 구멍처럼 깊고 공허했다. 직원들은 불친절했고,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의 손길은 거칠었다. 환자분 한분 한분을 가족같이 모시고 있습니다. 원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가족을 내다 버리는 사람들의 양심이 듣고 싶어 하는 최소한의 위로였다. 망설이던 당신은 원장실 창밖으로 보이는 강물을 한참 동안 바라 보고나서 원장이 내민 입원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입원을 결정한 것은 원장의 사탕발림 때문도, 저렴한 입원비 때문도 아니었다. 짙고 푸른 강. 기도원에서 형이 도망칠 곳은 강물 속 밖에 없었다. 제발 좀 죽어줘. 당신은 중얼거린다. 형의 나이 43살, 입원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병에 차도가 없을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생을 마감하는 편이 모두를 위해 좋았다. 차라리 의식이 없는 전신마비 환자였다면 형을 무참히 내다 버릴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형의 유별난 결벽증이 문제였다. 형은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속옷을 갈아입을 때조차 방문을 잠그고 텔레비전 전원 버튼까지 누른 채 이불 속에서 부스럭거릴 정도였다. 기억을 지워버린 뒤 형의 결벽증은 정도를 더 해갔다. 목욕을 시키거나 기저귀를 갈 때, 사생결단 태세로 자기 알몸을 감추려는 형과 싸우려면 진이 빠질 정도였다.
“아직 시작도 안한 거야?”
부엌문이 벌컥 열리고 집주인이 들어온다. 그의 손에 야외용 그릴이 들려있다. 당신은 그릴을 받아 부엌 바닥에 내려놓는다.
“잘 생각한 거야. 자네도 살아야지.”
집주인이 당신의 어깨를 두드린다. 담뱃불로 지지는 것처럼 어깨가 화끈 거린다.
“몇 시에 온다고 했지?”
집주인이 당신의 안색을 살피며 미적거린다. 빨리 집을 비워달라는 재촉을 하기 위해서다. 새로 이사 올 사람들은 하루가 급하다고 했다. 당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집주인이 혀를 차며 부엌문을 닫고 나간다.
“미끼는 땅강아지가 최고야.”
형이 중얼거린다. 새우, 지렁이, 미꾸라지, 피라미……. 과자 조각을 바닥에 던지던 형이 당신을 바라본다.
“장어가 안 잡혀. 전부 바다로 간 건가?”
당신은 형을 외면한 채 도마에 묻은 물기를 행주로 닦아 낸다. 태어난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3,000킬로가 넘게 헤엄친다는 뱀장어. 그 먼 길을 가려면 힘들지 않을까? 언젠가 당신이 물었다. 그때도 형은 좁은 부엌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할복한 뱀장어 몸속에서 뼈를 도려내고 있었다. 기계처럼 정확하고 빠른 동작이었다. 쉬러 가는 먼 길은 힘들지 않아. 확신하는 어투로 형이 대답했다. 형의 손아귀에 잡힌 뱀장어가 꼬리를 떨고 있었다. 뱀장어는 비굴하리만큼 착하게만 살아온 형이 유일하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였다. 아무리 성질 사나운 놈도 형의 우악스런 손아귀에 걸리면 송곳에 머리가 박힌 채 똬리 한 번 틀지 못하고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뱀장어는 심해어거든. 심해어는 심해에서 죽는 거야. 굵은 왕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운 뱀장어는 기름이 흐르고 살점이 부드러웠다. 형은 제 살을 발라 먹이는 사람처럼 불가에 앉아 정성껏 장어 살점을 익혔다. 맛있어? 문턱에 쪼그리고 앉아 날름날름 장어구이를 집어 먹는 당신을 보는 형은 흡족하게 웃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장어를 잡아 배를 가르고 살점을 익혔지만 형은 장어를 먹지 않았다. 갯내가 싫다.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왜 장어가 안 잡히지?”
어두운 허공을 응시하는 형의 얼굴에 조바심이 가득하다. 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당신은 궁금해진다. 혹시 여자를 낚던 그믐날 밤처럼 충주호 좌대 위에서 입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까닭모를 분노로 가슴 한 구석이 시큰거린다.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떠난 벙어리 여자. 뱀장어낚시를 떠났던 형이 충주호에서 낚아온 여자였다. 내가 잡은 고기 중에서 가장 큰 월척이야. 여자를 데려오던 날, 형은 빈 어망을 내던지며 킥킥거렸다. 그런 형의 뒤에 물에 흠뻑 젖은 여자가 몸을 떨며 서 있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그믐밤, 호수 속으로 걸어가던 여자의 옷자락에 낚시 바늘이 걸렸다고 했다. 자살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착 달라붙어선 떨어져야 말이지. 거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겁먹은 눈으로 집안을 두리번거리는 여자를 돌아보며 형이 중얼거렸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벙어리 여자였다. 당신은 미간을 찌푸린 채 코를 틀어막고 여자를 노려보았다. 여자의 몸에서 종류를 알 수 없는 불쾌한 악취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여자가 눈을 껌뻑거리며 당신을 바라보았다. 블랙홀처럼 검게 뻥 뚫린 여자의 눈은 금방이라도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집안의 모든 것을 자기 몸속으로 빨아들일 것 같았다. 자, 이거라도 입어. 방에서 나온 형이 낡은 운동복을 건네주며 여자를 당신의 방으로 밀어 넣었다. 같이 살 거야? 당신은 형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보낼 곳이 없잖아. 쌀을 씻어 안치던 형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여자는 형이 미역을 사다가 국을 끓이고 밥상을 차릴 때까지 기척이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형이 당신의 방문을 열었을 때 여자는 젖은 옷을 입은 채 아랫목에 웅크리고 잠이 들어 있었다. 자궁 속의 태아처럼 여자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형은 한참동안 잠든 여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다 거실로 나왔다. 다음 날 당신은 회사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이 동네선 출근하기 힘들어서 그래. 그럴 필요까지 없다며 만류하는 형에게 당신은 그렇게 변명했다. 마흔 셋이 넘도록 장가도 못간 형이 늦게라도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형과 여자는 계속 각방을 썼고, 여자는 떠나기 직전까지 골방에 틀어 박혀 잠만 잤다. 그렇다고 형이 여자에게 애정이 없다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여자를 좆던 형의 끈적거리던 눈빛을 기억한다. 형의 집요한 눈길은 강장동물의 촉수처럼 여자의 방문을 휘감거나 더듬고 있기 일쑤였다. 형은 저 여자 어디가 좋아? 낚싯대를 손질하고 있던 형이 당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 나도 모르겠어. 그때도 집안은 여자의 몸에서 풍겨 나오던 비릿한 악취에 절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형의 집을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고 돌아왔지만 둘의 관계가 진척될 기미는 전혀 없었다. 응시하는 형과 돌아앉은 여자, 그 팽팽한 긴장과 살얼음판 같았던 일상은 형이 쓰러지던 반 년 전까지 계속 되었다. 여자와 함께 산지 일 년 만이었다. 낚시터에서 쓰러진 형은 빠른 속도로 기억을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형의 퇴행속도는 제동장치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 같았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압박과 긴장을 벗어 던지겠다는 듯 형이 가장 먼저 지워버린 것은 일상의 소지품들이었다. 볼펜을, 지갑을, 도시락 가방을……. 그때까지는 당신도 대수롭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건망증이야, 그럴 수 있어. 풀이 죽은 형을 위로하며 당신은 키득거리고 웃기까지 했다. 당신이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게 된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 하얗게 지워버린 형을 경찰서에서 인계 받은 뒤였다. 집에 가는 길을 모르겠어. 경찰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형이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초로기치매였다. 꾸준한 약물치료 밖에는 별다른 치료법도 없는 병이었다. 형은 43년 동안 자신을 둘러 싼 모든 것들을 야무지게 지워가기 시작했다. 동네와 일터와 알고 있는 얼굴들이 형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그렇지만 형이 여자를 지워 버린 것은 의외였다. 모든 기억을 지워 버려도 여자만은 지우지 못할 것이라고 당신은 확신했었다. 당신은 형이 여자를 지워버리던 그날 저녁의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를 바라보던 형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아줌마 누구세요? 놀라는 얼굴로 형을 바라보던 여자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지막 희망마저 꺾여 버린 절망감, 아니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출구를 확인한 환희였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일주일 전 당신들에게 올 때처럼 빈 몸으로 집을 떠났다. 나, 가요. 회사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이별 인사의 전부였다. 당신이 분류 잘못으로 책임자의 질책을 받고 있을 때였다. 여자가 벙어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구세요? 그녀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신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미안해요. 한참 뒤에 축축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퇴근한 당신이 서둘러 돌아왔을 때 여자의 방은 말끔하게 정리가 된 상태였다. 무엇이 미안했던 것일까? 당신은 가끔 여자의 마지막 인사에 대해 생각했다. 그게 없어. 그게 어디 갔지? 큰일 났네, 그게 없어졌어. 여자가 떠난 뒤, 형은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면서 집안을 뒤지며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부엌을, 창고를, 낚시 가방을……. 울상이 되어 집안을 뒤지던 형은 여자가 떠나 버린 지 이틀 만에 자신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 조차 지워 버렸다. 그리곤 허공에 낚싯대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당신은 종이뭉치를 개수대에 펼쳐놓는다. 미안해요. 칼을 든 채 방안을 서성이는 여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형을 죽여주지 못해서... 그날 여자는 이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 아닐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당신은 확신한다. 여자의 체취가 콧속으로 스며든다. 여자는 떠났지만 여자가 허물처럼 벗어 놓고 간 비릿한 악취가 집안 곳곳에 배어 있었다. 악취의 근원지가 그녀의 젖가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여자가 온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형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다가 무심코 욕실 문을 열었던 당신은 거울 앞에 서서 젖을 짜고 있는 여자를 목격할 수 있었다. 여자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텅 빈 눈빛으로 당신을 돌아보았다. 포도 알처럼 검고 굵은 유두에서 하얀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여자의 앞가슴을 적시던 알 수 없는 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문을 닫아야 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여자의 텅 빈 눈빛이 욕실 안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때 만약 부엌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여자의 몸속 깊숙이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늦었지, 미안하다. 삼겹살 좀 사오느라고. 작업복 차림의 형이 아이처럼 밝은 표정으로 부엌 문 앞에 서 있었다. 형의 손에 여자에게 먹일 삼겹살이 든 검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 당신은 뒤로 물러섰고, 여자가 욕실 문을 닫았다. 여자가 떠나버릴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든 것은 그때부터였다.
“달도 없는 적막한 그믐밤, 세상은 온통 먹빛이란다.”
형이 중얼거린다. 당신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형의 의식이 떠내려간 먼 어둠속의 파장에 귀를 기울인다. 수초에 부딪치는 물소리가 찰랑찰랑 들려올 것 같다.
칼을 물속에 담근다. 물속에 붉은 녹물이 번져가기 시작한다. 쇠가 흘리는 핏물은 형의 절규처럼 붉은 빛이다. 미쳐 버릴 것 같아, 동생아. 형이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여자가 들어 온지 석 달 만이었다. 술에 취한 형은 미쳐버릴 것 같다는 말만 되뇌었다. 형의 술주정을 받아내면서도 당신은 이유를 물을 수가 없었다. 형의 입에서 튀어나올 대답이 무서웠다.
등신, 머저리. 당신은 중얼거린다.
“등신, 머저리.”
형이 파리채를 흔들며 당신의 말투를 흉내 낸다.
맞아, 등신하고 머저리지. 당신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형이 쓰러진 곳은 충주호였다. 집주인의 말로는 민물뱀장어를 건져 올리다가 낚싯대를 움켜잡은 채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날 형이 건져 올리고 싶었던 뱀장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당신은 숫돌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는다. 음식국물이 말라붙은 숫돌에 물을 한줌 뿌린다. 허리가 움푹 팬 숫돌에 물 자국이 번져간다. 당신은 오른쪽 발바닥으로 숫돌을 고정시킨다. 쓱쓱, 칼날이 숫돌에 스칠 때마다 붉은 녹이 피고름처럼 번져 나온다. 좁은 부엌바닥이 붉은 녹물로 흥건해 진다. 청계천 주물상회에 찾아가 특별히 맞춘 칼이다. 뱀장어낚시를 즐겼던 형을 위해 준비한 장어 손질 전용 칼이다. 칼은 미끄러운 표피를 저미기에 적당한 몸체와 잔뼈를 절단 내기에 알맞은 무게감을 갖고 있다. 최고다, 손에 딱 맞아. 형은 칼이 마음에 꼭 든다며 활짝 웃었다. 당신은 칼에 묻은 녹을 행주로 말끔하게 닦아낸다. 칼날의 적의가 망막 속을 헤집는다. 현기증이 느껴진다. 당신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린다.
“정신을 집중해!”
형이 소리친다. 당신은 몸을 돌려 형을 바라본다. 형이 굳은 표정으로 당신을 노려본다.
“이놈들은 끝까지 포기 하지 않아!”
당신은 심한 갈증을 느낀다. 몸뚱이가 타들어가는 것 같다.
“가장 힘든 놈이야!”
형의 고함소리가 커진다. 당신은 장갑을 끼고 플라스틱 대야를 끌어당긴다. 뱀장어가 힘겹게 지느러미를 흔든다. 대야 위에 도마를 올려놓는다. 당신은 대야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놈의 머리를 움켜잡는다. 놀란 뱀장어가 몸을 활처럼 구부리며 당신의 손목을 칭칭 감는다. 신속하게! 형이 외친다. 당신은 놈의 머리를 도마 위에 대고 송곳으로 힘껏 내리찍는다. 송곳은 놈의 머리를 관통해 도마 위에 박힌다. 뱀장어가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꿈틀거린다.
“단숨에 해 치워!”
형이 옆으로 다가와 당신을 응원한다. 당신은 뱀장어 머리 아래로 칼을 쑤셔 넣는다. 칼끝에 뭔가가 걸려 칼날의 진행을 가로 막는다. 형이 손가락으로 뱀장어의 살집 속을 헤친다. 굵은 낚시 바늘 한 개가 뼛속에 박혀있다. 형이 낚시 바늘을 꺼내 손바닥에 내려놓는다. 핏물과 진액이 뭉쳐있다. 뱀장어의 몸속에서 부대낀 흔적이었다. 뱀장어가 몸부림을 칠수록 몸속에 박힌 낚시 바늘엔 농양이 쌓여 갔을 것이다.
형이 임포텐스(impotence)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여자가 떠나기 직전이었다. 대변 범벅이 된 형을 씻기는데, 형이 자기 사타구니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이게 안 돼. 당신은 못 본 척 샤워기를 들고 대변이 짓이겨진 형의 엉덩이를 씻겼다. 형이 지우고 싶었던 것은 기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은 이를 꽉 물고 뱀장어 등을 따라 살집을 가른다. 하얀 살점에 핏물이 번진다. 칼날로 살점을 긁어 내장과 핏물을 빼낸다. 붉은 핏물에 섞인 내장조각들이 도마로 밀려 나온다. 송곳에 박힌 뱀장어 대가리가 꿈틀거린다. 제 몸에서 도려낸 내장에 얼굴을 묻고 있는 뱀장어의 모습은 처연하다. 당신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뱀장어의 몸속으로 칼을 밀어 넣는다. 뼈를 도려내기 위해서다. 살집은 표피보다 수월하게 칼이 먹힌다. 뱀장어의 통증이 미세한 경련으로 당신의 손바닥에 전해진다. 뼈를 발라내고 물을 뿌린 뒤 핏물을 닦아낸다. 손질이 끝난 뱀장어는 누더기가 되어 있다.
“좋은 곳이야. 친구도 많고, 호수도 있어.”
당신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형이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주억거린다. 당신의 머릿속에 형이 들어가게 될 기도원 숙소가 떠오른다. 30평정도 넓이에 창마다 창살이 달린 방. 어이없게도 그곳의 입구엔 형의 방문과 똑같은 원형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그릴에 숯을 넣고 불을 피운다. 석쇠 위로 틱틱, 불꽃이 인다. 당신은 손질한 뱀장어를 석쇠위에 올려놓고 소주병을 따 술잔을 채운다. 뱀장어 냄새를 맡은 형이 당신 곁으로 다가와 쪼그리고 앉는다.
“자, 장어는…….”
형의 미간에 주름이 생긴다. 무엇인가 떠올려 보려는 힘겨운 몸짓이다.
“강에서... 바다로 갈 때, 색깔이 은백색으로 변한대.”
머릿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기억일지도 모른다. 형은 이미 자신이 떠나야 한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이건... 내가 갖고 갈게.”
형이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뱀장어 몸속에서 나온 낚시 바늘이다.
당신은 노릇하게 익은 뱀장어 한 조각을 집어 형의 입속에 넣어준다. 형이 입을 크게 벌리고 뱀장어 살점을 받아먹는다.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형의 모습이 환영처럼 시야를 스쳐간다. 열쇠 수리공 출신의 형이 기도원 숙소의 원형손잡이 잠금 쇠를 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여자가 돌아간 물속에서 형 또한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하길 바랐다.
탕탕탕, 누군가 대문을 두드린다. 형을 데리러 온 기도원 직원들일 것이다. 몽둥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의식이 멍해진다. 당신은 형을 바라본다. 형이 뱀장어조각을 씹는다. 지워져가는 여자에 대한 기억을 씹어 삼키려는 듯, 아귀에 힘을 모으고 천천히 턱을 움직인다. 형의 비틀린 입술을 비집고 육즙이 흘러나온다. 형의 눈 꼬리에 자잘한 경련이 인다. 형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맛있다!”
형이 활짝 웃는다. 당신은 현기증을 느끼고 눈을 감는다. 몸이 휘청거린다.
달도 없는 적막한 그믐밤, 세상은 온통 먹빛이다. 어두운 수면 위로 물무늬가 번져간다. 당신은 온몸으로 물결의 파장을 읽는다. 당신의 몸을 스쳐간 수많은 결들은 시계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만큼 밀려나간 뒤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당신은 수면을 응시한다. 당신의 머리 위에서 케미라이트 불빛이 물결의 움직임을 따라 출렁거린다. 몸뚱이에 감겨오는 수초의 감촉이 부드럽다. 당신은 나른한 평온 감을 느끼며 몸을 뒤척인다. 물속 깊은 곳에서 흙탕물이 인다. 바닥에 가라앉은 쓰레기더미들이 흙탕물과 함께 탁한 수면 위로 부유한다. 당신은 진흙 속을 비벼 구멍을 뚫는다. 쉬고 싶다는 갈망이 당신을 재촉한다. 당신의 입속으로 흙탕물이 스며든다. 갈증에 시달리던 당신은 벌컥거리며 흙탕물을 삼킨다. 그 순간 당신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갈고리가 날아와 박힌다. 당신은 몸부림을 친다. 몸부림을 칠수록 갈고리는 더 깊숙이 당신의 살갗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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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분 심사평- |
2인칭 서술기법·의인화 돋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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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들을 심사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발견했을 때는 더할 수 없는 뿌듯함과 포만감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족관, 이끼’는 생선의 습성과 횟감에 대한 치밀하고도 전문적인 묘사가 문장을 살아있게 한다. 하지만 세밀함이 장점인 만큼 그걸 받쳐주는 서사구조가 어지럽고 부산스럽다는 게 문제였다. 소설의 모든 요소들을 보다 유기적으로 묶는 훈련을 강화했으면 한다.
‘맹방에서 오는 길’은 독자를 흡인하는 이상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부부의 갈등이라든지 그 갈등을 털어내고 귀가하는 가장의 발걸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난함에 대한 반발이 언급됐다. 소설이 마냥 쉽고 만만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절벽 아래서’는 노숙자를 상대로 한 어린아이의 독백 형식으로 엮은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다. 그런데 아이의 아빠에게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명확하지 않으며 노숙자에 대한 실체성도 떨어지는 문제가 지적됐다.
‘개’는 버려진 개와 자신의 처지를 대비시킨 솜씨가 우선 돋보인다. 미칠 수밖에 없고, 물어뜯을 수밖에 없는 개의 속성이 설득력 있다. 단 두어 줄의 문장이나 대사 한 토막으로 사건을 풀어내고 이해시키는 문장의 힘도 강렬했다. 하지만 얘기가 거기서 그칠 뿐 외연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못해서 소품처럼 여겨지는 불만이 컸다.
당선작 ‘뱀장어 낚시’는 많은 매력을 지녔다. 휴식을 위해 심해를 찾아가는 뱀장어의 생태에 빗대서 뱀장어 낚시꾼인 형의 얘기를 의탁한 솜씨라든지, 또 다른 뱀장어 의인화로 형의 낚시에 걸린 여인을 등장시킨 수법, 결말에 이르러 동생이 뱀장어로 치환되는 장면 등이 놀라웠다. 뱀장어가 곧 형이고, 형이 곧 동생이며 이윽고 동생이 뱀장어로 순환하는 이 고리를 위해 작가는 2인칭 서술기법을 쓰고 있는데 이 형식미 하나가 동생의 지위를 객관화하는 요소로 멋지게 작용하기도 한다. 독서의 일이 이만하면 즐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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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당선소감 - 박미경 |
인간에 대한 이해 몰두하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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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가족 두 분의 장례를 치렀다.
상실감보다 무력감이 고인들이 떠난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나서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들의 소소한 크기를 짐작 할 수 있었다. 고인들의 몸에 새겨 진 세상과의 힘겨운 투쟁의 흔적들이 날카로운 창끝으로 심장을 위협한다. 죽음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무언의 진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막막했다. 현실과 가상의 괴리감, 당신들의 삶이 눈앞의 진실이었으며, 내가 그린 세계는 거짓에 불과했다. 나는 다급했고 위태로웠다. 굽은 허리로 당신들이 통증을 호소하던 순간에도 나는 모색하고 있었으며 탐구했으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 길이 과연 당신들의 아픔을 공유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나, 나를 향해 묻는다. 죄송스럽게도 그때는 그랬다. 인간에 대한 이해, 당신들이 숙제로 남겨주신 이 엄청난 수수께끼들을 추적해 나가는 것을 유일한 죄 사함의 방법이라 믿을 것이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이제 시작이다. 무엇도 담고 있지 않아 모든 것을 담고 있던 것처럼 보였던 당신들의 눈빛을 빚으로 기억하며 살겠다. 아프지 않고, 엄살 피우지 않고 당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 몫으로 주어진 내 앞의 생과 싸워 보겠다. 작가에게 소설은 삶의 전부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 박범신 교수님과 나의 종교이신 부모님, 든든한 배경이자 아군인 가족들 모두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약력>
1966년 용인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2006년 제1회 디지털 작가상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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