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선생님의 제자들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다룬 명화 한편을 보게 되었다. Dead Poet’s Society(죽은 시인의 사회) 이래로 거의 19년 만에 이러한 감동은 정말 오랜만이다. 요즘 주말의 명화니 명화극장이니 하는 것들은 간판에 불과할 뿐, 1970년대 어린 시절 흑백 TV앞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던 그러한 영화들은 이제 오락영화에 파묻혀 더 이상 상연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Les Choristes(합창자들)”라는 원제의 "코러스"라는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감동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음악이라는 매개체가 더해져 그 감동은 더욱 커져 오랜만에 마음의,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만약 이 영화를 놓쳤더라면 평생 후회 했을 것이다. HD가 아니라서 녹화는 안 했지만, 다시 앙코르방송이라도 한다면 주저 없이 녹화버튼을 누를 것이다.
갑작스럽게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가진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던 중학교, 고등학교 까까머리 시절… 나에게도 그러한 훌륭한 은사님이 계셨던가? 다행히 나에게도 자랑스러운 은사님들은 존재했었다. 그 분들이 아니었으면 오늘날의 나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분들 중 우뚝 오철환 선생님이 계시다. 스승의 날에 한번도 찾아 뵙지 못하고, 전화 한 통 드린 바 없는 몹쓸 제자이지만, 내 마음 속에는 항상 존경과 고마움, 죄송함이 공존하고 있다. 어제 오후 오철환선생님께서 대림미술관을 찾으셨다. 그 곳에서 도록의 서문을 직접 적으셨단다. 몹쓸 제자의 전시회를 기념하기 위해 글을 남기신 것이다.
칠판에 Boston이라는 그룹 명을 적으시기 전, 나는 선생님의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것도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서.. 그날 수업시간, 책을 드시고 교실을 돌아다니시다가 선생님은 내 옆에 멈추어 서셨다. 내 가방 가운데에는 음반이 가득 담겨있었는데, 그 것을 보시고 멈추어 서신 것이다. 나는 꾸지람을 하실 것으로 예상하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 때 “너 오늘 우리 집에 가야겠다!”라는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그 후 나는 선생님 댁에 자주 놀러 가게 되었다. 당시 선생님 댁에는 월남 전 참전 때부터 모으신 음반들이 셀 수 없이 쌓여 있었다. 국민학교 교사이셨던 사모님께서는 늘 웃으시면서, 취미가 같은 제자를 기꺼이 반겨 주셨지만, 아마 나의 방문은 달갑지 않으셨을 것이다. “우리 집에 늘어나는 것은 판하고 빚뿐”이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이번 스승의 날에도 나는 선생님께 식사대접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도 못해 드렸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 속으로 외쳐본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내년 서울교육대학에서 정년 퇴임하시는데, 내년 스승의 날엔 한일관에 꼭 모시고 가서 갈비탕도 사드리고, 카네이션도 달아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오철환 교수님(선생님이 더 정감있네요.^^)을 한 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계간 아트록에 실린 글들을 보며 오철환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대충은 짐작이 갑니다. 그런 스승님이 계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행복입니다. 교사인 저도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영광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