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끊임없이 진화해온 닌텐도의 비밀 수공예 화투 제작에서 완구·게임기까지 기본에 충실하고 능동적으로 변화 최근 일본 산업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이슈는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대표이사 사장의 타계다. 지난 13일 닌텐도는 사토루 사장이 지병인 담관암으로 11일 사망했다고 밝혔다. 작년 6월 담관암 투병 사실이 전해지긴 했지만 조기 발견과 성공적인 수술로 빠른 시간 내에 경영 일선에 복귀했고, 지난달 열린 주주총회에서 1시간에 가까운 질의응답을 거뜬히 소화할 만큼 건강에도 이상이 없어보였기에 그의 부고는 더욱 충격적이다. ◇닌텐도, 부활의 기로에서 리더 부재 암초 사토루 사장의 부재는 닌텐도에게도 뼈아프다. 닌텐도는 현재 4년만의 적자에서 간신히 벗어나 과거의 영광을 다시 누릴 수 있느냐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닌텐도는 사토루 사장 재임 중 최고의 시절을 누렸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등 쟁쟁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위기에 몰렸던 2002년 닌텐도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사토루 사장은 '고객 중심의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모토로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와 가정용 게임콘솔 '닌텐도 위'다. 2007년 닌텐도는 시가총액 10조엔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고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5552억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2009년 최고의 기업으로 닌텐도를 꼽았다. 구글, 애플 등 대형 IT 기업들도 닌텐도의 영향력을 넘지 못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닌텐도는 또 다시 시련에 직면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게임업계도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됐지만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몇 번의 터치로 애플리케이션만 다운받으면 되는 편리함에 고객들이 대거 이탈했고 엔화 강세까지 겹치며 실적은 급격히 악화됐다.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는 373억엔의 영업손실로 1981년 이후 30년만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2011년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3DS', 2012년 가정용 게임기 '위 유'를 연이어 출시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2년부터 닌텐도를 이끌었던 이와타 사토루 대표이사 사장이 지병인 담관암으로 지난 11일 사망했다. 기업 개혁으로 재기를 노리던 닌텐도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사진은 지난 200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E3에 참석한 사토루 사장의 모습. (사진/뉴시스·AP) 그로부터 4년 후 닌텐도는 과감한 결정을 했다. 엔저 흐름 속에서 포켓몬스터 오메가 루비,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마리오 카트8 등 블록버스터 게임들이 선전한 덕분에 2014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 247억엔의 영업이익을 보이며 적자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를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수익 개선으로 끌고 가기 위해 사토루 사장은 몇 가지 승부수를 띄웠다. 스마트폰 게임 시장 진출과 헬스케어, 테마파크 부문으로의 사업 다각화 등 기업 개혁에 속도를 높이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3월에는 소셜네트워크 게임업체인 DeNA와 자본 제휴를 선언했고 5월 실적 발표 자리에서는 유니버설 파크스 앤드 리조트와 캐릭터 부문 협력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사토루 사장은 신개념 게임기인 NX를 내년 중 선보이겠다고 약속하며 영업이익을 1000억엔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이 같이 중요한 시점에서 수장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닌텐도는 성명을 통해 다케다 겐요 이사와 미야모토 시게루 이사가 임시로 사장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들이 사토루의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행할 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혁신을 요하는 기술산업계에서 60대라는 나이는 다소 많은 편이라고 보고 있다. ◇화투 만들던 100년 역사 기업 닌텐도가 중차대한 변곡점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앞날을 회의적으로만 보기에는 닌텐도가 걸어온 지난날을 과소평가 하는 것일 수 있다. 슈퍼마리오와 게임보이 등을 앞세워 전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것은 20세기 후반이지만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닌텐도의 기원은 188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교토에 설립한 '닌텐도 곳파이'다. '하나후다'라는 이름의 일본 전통 화투를 수공예로 제작·생산하는 1인 기업으로 출발해 대중의 큰 인기를 얻자 직원을 늘리며 몸집을 키웠다. 후사지로에 이어 야마우치 세키료(사위), 야마우치 히로시(증손자)가 이끄는 닌텐도는 1953년 플라스틱 화투 제작, 1959년 디즈니 캐릭터를 담은 카드 제작 등으로 영역을 넓혀 일본 최대의 카드 제작사로 승승장구 했다. 이를 발판으로 1962년 오사카증권거래소에 상장도 했다. 증시 입성으로 많은 실탄을 확보하게 된 닌텐도는 사업 다각화에 착수했다. 히로시 사장이 디즈니와의 계약 체결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카드산업이 규모도 작고 성장 여력이 제한적이란 사실을 깨달은 영향이다. 택시회사, 러브호텔, 즉석밥을 만드는 식품회사 등 연관성이 없는 사업들을 닥치는대로 벌였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카드 놀이에 대한 수요까지 줄어 닌텐도의 주가는 900엔대에서 60엔 수준으로 수직 하락했다. 그야말로 분위기 반전을 위한 '한방'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닌텐도는 이를 기업의 본질에서 찾았다. 닌텐도를 존재하게 했던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무언가'를 돌파구로 삼은 것이다. 반다이, 토미 등 기존 업체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지만 히트작을 하나만 만들어내면 승산이 있다는 일념으로 그 해 크리스마스 특수를 겨냥해 제품 개발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닌텐도가 내놓은 제품은 '울트라핸드'라는 집게형 완구다. 가제트 팔 처럼 자유롭게 늘었다 줄어드는 이 상품은 100만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초대박을 쳤다. 야구공 피칭머신 '울트라머신', 잠수함 잠망경 모양의 '울트라스코프' 등 후속작이 나타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단순 완구 사업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자 닌텐도는 부가가치가 더 높은 전자 완구 개발에 눈을 돌렸다. 샤프와 파트너십을 맺고 개발한 레이저 광선총 등이 대표적이다. 1974년 전세계를 강타한 오일쇼크로 닌텐도는 또 한번의 변신을 했다. 극심한 불황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탓에 완구 판매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던 아타리사의 TV게임 '퐁'에 주목해 주력 아이템을 바꿨다. 모두가 알고 있는 닌텐도가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이다. ◇뿌리는 깊게 가지는 유연하게 닌텐도가 몇 번의 곡절을 겪고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생존의 법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닌텐도는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범주를 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제품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했다. 전체적인 안정 속에서 유연성을 보인 것이다. 이는 <살아있는 기업(The living company)>의 저자 아리 드 게우스의 주장과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게우스는 장수하는 기업의 특징으로 ▲사업 환경과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 ▲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짐 ▲과도하게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직원들의 다양한 경험과 독특한 행동에 관대함 ▲재무적으로 보수적 태도를 취함 등 4가지를 꼽았다. 닌텐도를 여기에 대입해 보자면 카드, 완구, TV게임으로 이어지는 엔터 산업 트렌드 변화를 적절히 포착해 기민하게 움직였다. 잠깐의 외도를 통해 '닌텐도는 재미 있는 일을 추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든다'는 분명한 정체성도 확립했다. '동키콩', '슈퍼마리오' 등 인기 게임의 탄생은 하드웨어와 엔지니어 중심의 개발 관행을 깨고 디자이너 출신의 미야모토 시게루를 발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가족경영에 집착하지 않았던 점도 닌텐도가 장수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닌텐도의 4대 사장이었던 이와타 사토루는 야마우치가(家) 세습을 끊고 처음으로 외부인을 전문경영인으로 발탁한 사례다. 닌텐도의 외주업체인 HAL연구소에서 프로그래머로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인 그에게 회사의 운명을 맡긴 것이다. 가족경영이 장수기업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의견과도 상통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인 일본의 니시야마 온천 게이운칸과 같이 52대를 이어오며 전통을 지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태국의 경우 가족경영을 선택한 기업 대부분이 3세대 이내에서 몰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대로 갈 수록 성공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고 관리자적 소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보인다는 설명이다.
<자료출처 뉴스 토마토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570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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