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계작가선 31
수필가 백금태의 『김치와 고등어』 서지 정보
판형 15cm× 21cm 신국판 248쪽 , 정가 12,000원
ISBN 979-11-85448-28-2 03810
발행일 2016년 9월 9일
발행처 / 수필세계사
출판등록 2011. 2. 16(제2011-000007호)
41958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 23길 2
TEL (053)746-4321 FAX (053)792-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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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개
백금태
경북 경산 출생
전북중앙신문 신춘문에 수필 당선
계간 수필세계 신인상 수상
수필세계작가회 회장
한국에세이포럼 회장
■ 차례
책머리에
삼형제의 덤이 되다
제1부
포옹
포옹 14
시선 20
김치와 고등어 26
별이 내리다 32
양보 36
버들낭자 40
꽃다발 45
중년 48
청통형님 51
공작 56
제2부
방파제
방파제 62
풍선놀이 67
어머니의 보따리 72
천짜기 77
홍시 80
행운다방 85
샅바 89
살맛나는 세상 93
잡초도 친구가 된다 96
연극 101
제3부
자매
자매 108
직박구리의 슬픔 113
엄매 119
제祭보다 젯밥 122
어물전 126
횡재 130
호접난이 웃다 134
내일은 멀다 138
동반자 141
빈 방 144
우산 147
제4부
손을 잡다
손을 잡다 152
연줄 156
염낭거미 159
양말 164
꽃분이 167
내버려 둬 172
해와 달이 본 세상 176
아름다운 웃음 179
찐빵 184
싹 188
낙오자 193
제5부
어처구니 없다
어처구니 없다 198
주먹에는 주먹으로 200
동백꽃 205
목걸이 209
흔적 213
우렁이 217
미납 고지서 220
고집불통 224
잣대 231
뺨에 붙은 밥알 236
나누다 240
발문 홍억선 244
■ 작가의 말
삼 형제의 덤이 되다
백금태
보름달이 정수리를 비껴나고 있다. 벌써 삼경이 지나가고 있다. 뜰의 잔디위에 앉은 삼 형제의 머리도 내린 이슬로 희끗하다.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가 달빛에 젖어든다. 삼 형제는 자주 만난다. 만났다 하면 밤이 새는 줄도 모른 채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하시던 어머님을 꼭 빼닮은 모습들이다.
어머님은 이야기를 좋아하셨다. 춘향전, 심청전, 옥루몽 등의 줄거리에다 어머님 특유의 유머와 익살을 보태어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시곤 하셨다. 어머님의 유전자가 자식들 세포 속속들이 스며들었는지 그들의 입심은 대단하다.
오늘도 큰 형님이 손수 끓이신 추어탕을 안주 삼아 삼 형제의 이야기는 끝을 모른 채 밤이 깊어가고 있다. 집집마다의 가정사가 이어진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어김없이 실천한다. 어릴 적 방앗간 집 뒷방 좁은 공간에서 무릎을 맞대며 나눴던 형제들의 우애의 불꽃은 지금까지 활활 타오른다.
가정사가 바닥을 보일 때쯤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문학으로 옮아간다. 여든을 훌쩍 넘긴 큰아주버님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맏형답게 단연 돋보인다. 큰아주버님은 수필가시다. 단정하고 방정한 큰아주버님의 말씀 한 마디, 한 구절이 삶이고, 수필이 된다. 유머가 철철 넘치는 둘째 아주버님은 어떤가. 둘째 아주버님은 시조를 쓰신다. 그러니 흥얼흥얼 읊조리는 시구가 시조 한 가락으로 태어난다. 이순을 지난 나이건만 형제들 앞에서 톡톡 튀는 막내의 입에서는 삼빡한 시 한 수가 흘러나온다. 막내는 시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세 형제는 필연이기라도 하듯 모두 교단에서 국어 선생으로 지냈다. 그리고 갈래는 다르나 문학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우애를 누려왔으니 이는 한 나뭇가지에 나고 자란 이파리들의 닮음과도 같지 않을까.
수필과 시조와 시가 어우러진 한밤의 우애는 서늘한 달빛에도 식을 줄 모른다. 하지만 작가와 독자로 만나면 형과 아우의 관계는 사라진다. 열기는 냉기로 뒤덮인다. 우애는 사나운 발톱이 되어 서로의 글을 찢어 놓은 채 흠을 찾으려 눈에 심지를 높인다. 인정머리 없는 매정한 형제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글이 여물어가고, 형제들의 우애는 더 돈독해진다.
막내의 아내인 나는 결혼하면서 삼 형제가 수십 년 동안 파놓은 우애와 문학의 연못을 바라보며 살아 왔다. 어깨너머로 넘실대는 물결이 좋았다. 나도 그 물결에 휩쓸리고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수필을 들고 그 연못에 서서히 발을 담그고 있었다. 삼 형제의 덤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삼 형제의 덤이 되어 수필을 쓴 지도 한참이 되었다. 삼 형제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썼다. 하지만 세상에 내놓으려니 부족하고 부끄러운 글뿐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내보낼까 한다.
2016년 가을 초입
백 금 태
■ 발 문
일상의 재현, 그 표정들
홍억선
모두冒頭에 남의 집 내력을 들추게 되어 송구스럽기가 그지없으나 우리 문단에 이런 문인 가족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수필가 백금태의 남편은 대구문인협회장을 지낸 공영구 시인이다. 그 공 시인의 형 되는 분이 전 창원문인협회장 공영해 시조시인이다. 다시 공 시조시인의 형 되는 분은 영남수필문학회 회장을 지낸 공진영 원로수필가이다. 삼형제가 한 길의 문단에 서 있다. 더구나 이들 삼형제는 모두가 중등학교 국어 선생을 지냈고, 백금태 수필가 역시 초등학교 교사로 현직에 있다. 참으로 범상치 않은 인연으로 짜여진 가문이다.
공 씨 삼형제는 오래 전에 ‘방앗간집 아이들’이라는 공동문집을 발간한 바 있다. 어린 시절 삼형제는 방앗간집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방앗간집 아이들’이라 불렀다. 세월이 흐르고 이 호칭은 책 제목이 되었다. 문집의 표지 제자와 그림은 방앗간집의 두 딸인 홍규 씨와 한예 씨가 맡았다. 이 정도면 텔레비전 아침마당에 나와 남다른 가족사와 운명처럼 엮인 그들 사이의 문단이력을 세상에 알릴 만도 하지 않겠는가.
세월이 십 년 쯤 흘러 2011년에는 두 번째 공동문집 ‘방앗간집 아이들’이 나왔다. 거기에는 새로 합류한 백금태의 수필이 보태어졌다.
막내의 아내인 나는 결혼하면서 삼형제가 수십 년 동안 파놓은 우애와 문학의 연못을 바라보며 살아 왔다. 어깨너머로 넘실대는 물결이 좋았다. 나도 그 물결에 휩쓸리고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수필을 들고 그 연못에 서서히 발을 담그게 되었다. 삼형제의 덤이 된 것이다.
백금태는 첫 수필집 자서自序에 이렇게 적었다. 그의 문학적 토양이 바로 삼형제에 있으며, 이제 그들의 덤이 되었다는 겸손한 고백이다. 겸손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만만한 작가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와 십 수 년 동안 문우가 되어 교유하면서 각고의 정진을 익히 보아왔던 터이다. 그는 수필공부 이태 만에 신춘문예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무원문예대전에서는 삼년 동안 수필과 동화로써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니 일신日新의 걸음으로 수필의 중심에 들어선 무서운 내공의 문사文士이다.
무엇보다 백금태는 수필의 본성에 충실한 작가다. 수필은 일상의 문학이다. 체험의 기록이요, 기록의 재현이다. 재현을 오늘에 해석하고, 그 해석을 내일에 적용하는 삶의 문학이다. 그는 이 수필의 원론에서 조금도 벗어나는 법이 없다. 그러기에 그의 수필집 50여 편의 글들은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에서 시작한다.
다시 한 번 살펴 보건데 그의 글에 산과 강과 바다와 같은 자연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다. 그는 묘사를 위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그런 서정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수필은 세상사 만물상을 담은 인간학이다. 오로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긴장과 이완 그러니까 기쁨과 슬픔, 그리움과 기다림, 아픔과 안타까움이라는 서사적 구조에 주목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비로소 수필의 길이 따로 있고, 시의 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필이 의뭉스럽게 변죽을 울리면서 느린 작법으로 가는 것은 종내에 독자의 입에서 딱 한 마디의 느낌으로 다가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그의 수필은 흥미진진하다. 천일야화의 하룻밤과 같은 반전의 묘미가 장치로 걸려 있다. 그의 수필은 애초에 화려한 수사적 기교를 무기로 삼지 않는다. 새로운 소재를 들고와 독자에게 느닷없는 신비로움을 안기지 않는다. 깊은 교훈적 깨우침이나 심오한 사유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생활의 문학인 수필에서 굳이 우선적으로 건드려야 할 과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의 수필은 철학이나 종교를 아우르는 진한 감동의 성찰이 있다. 봄날 움트는 새싹 같은 아이들의 미소가 있고, 슬픔의 강물에 발을 담그는 이웃, 비를 맞고 가는 짠한 뒷모습이 있다. 참으로 솔직하여 때로는 허방을 딛고 사는 자신의 민낯도 보인다.
나이 들어 귀가 어둔 시누이 ‘청통형님’의 토라진 투정에는 늙어서 서러운 내 할머니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던 어머니의 말만 믿고 덩달아 욕을 거들었다가 질책을 당한다는 ‘김치와 고등어’는 인간 심리의 묘한 이중성을 깨우치게 한다. 내 교실의 대책없는 말썽꾸러기가 허리 뒤에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내미는 ‘포옹’에서 독자는 눈물이 핑 돌 수도 있다. 남편과의 연애사인 ‘행운다방’은 우리 모두가 건너왔을 절절한 청춘사랑을 기억하게 하고, ‘방파제’, ‘어머니 보따리’에서는 가없는 부모의 애정을 공감하게 한다. 어린 제자가 막무가내로 내 우산을 돌려달라는 ‘우산’의 장면은 가끔씩 인생살이가 난감하다는 것도 알려준다.
백금태의 수필에는 참으로 다양한 표정들이 있다. 우리를 웃게도 울게도 서럽게도 처연하게도 아득하게도 만든다. 그의 수필은 눈으로 읽는 것도, 머리로 헤아리는 것도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