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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동문학인협회
2016년 2/4분기 우수작품상 선정 결과 발표
수상 작품
○ 동시 부문: 「여우에 대하여」 (권영상 작, 『오늘의 동시문학』 봄·여름호)
○ 동화 부문: 「얼룩말 무늬를 신은 아이」 (윤미경 작, 『어린이책이야기』 봄호)
심사 위원
○ 예심 위원: 권영상, 한상순, 손기원, 안선모
○ 본심 위원: 박혜선, 강숙인
○ 시상 내용: 상패와 기념품
○ 시상식: 2017년 정기총회 시
심사 경위
○
2016년 2/4분기 우수 작품상 심사는 『어린이와 문학』 3월호, 『어린이와 문학』 4월호, 『어린이와 문학』5월호,
『아동문예』 3·4월호, 『아동문예』 5·6월호, 『열린아동문학』 봄호, 『시와 동화』 봄호, 『오늘의 동시문학』 봄·여름호,
『아동문학평론』 봄호, 『어린이책이야기』 봄호, 『창비어린이』 봄호, 『월간문학』 3월호, 『월간문학』 4월호,
『월간문학』 5월호에 실린 회원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하였다.
○
이번 분기부터 『월간문학』이 심사 대상 잡지로 추가되어 작품 수가 훨씬 늘어났다.
2016년 2/4분기는 동시 심사 대상 작품이 70편이었고, 동화는 20편이었다. 동시 심사 대상 작품이 1/4분기보다 많이 늘었다.
그 이유는 『오늘의 동시문학』 봄·여름호에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등단한 동시인의 신작이 기획 특집으로 실렸기 때문이다.
예심을 통해 동시 8편, 동화 3편이 본심에 올라오게 되었다. 동시와 동화 모두 예심에서 올라온 작품들의 중복 추천이 있었다.
동시는 예심 심사 위원 권영상 선생님의 작품이 뽑혔다.
다른 예심 심사 위원이신 한상순 선생님께서 예심에서 뽑으신 작품 중에 섞여 있었고,
본심에서 우수 작품상으로 뽑히게 된 것이다.
발표 전에는 누가 예심 위원인지 서로 알지 못하며 심사 위원의 작품이라서 배제하는 일은 없다.
이점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
우수 작품상 운영진은 항상 심사 위원의 심사를 전적으로 존중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바쁘신 중에도 심사 마감일 전에 결과를 보내주신 예심, 본심 심사 위원들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린다.
심사평 - 동시 부문
힘을 빼면 힘이 느껴진다
잊고 있던 여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다.
담담한 어조로 흘러가고 있지만 ‘아주 옛날….’이라는 말을 통해 과거를 떠올리게 되고
그 속에 인간과 삶을 공유했던 여우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시인은 시에 힘을 들이지 않았지만 독자의 시선을 오래오래 붙잡아
시 속에서 상상하고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시의 힘을 느끼게 한다.
문학작품에서 여우의 이미지는 변신과 권모술수에 능한 사악한 동물로 늑대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이 땅에 남겨진 여우에 관한 무수한 말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바라본 여우를 생각하게 된다.
아니, 여우를 통해 우리 조상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혜롭고 신성하며 부지런한 여우. 여우볕, 여우비라는 말 속에서는 부족함의 아쉬움보다는
고만큼이라도 그저 반갑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우리 조상들의 긍정적이고 소박한 삶을 만나게 된다.
시인도 이 마음으로 시를 쓰지 않았을까?
시에서 지나치게 큰 목소리는 독자의 귀를 막게 하고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독자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며
지나치게 자기 말만 하는 시인의 시는 독자가 먼저 등을 돌린다.
가장 좋은 시는 읽은 이가 스스로 생각에 빠져 시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시다.
2016년 2/4분기 우수작으로 담담하지만 오래오래 시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
「여우에 대하여」를 만날 수 있어 기쁘다.
- 심사 위원 박혜선
심사평 - 동화 부문
환상을 통한 트라우마 극복
이번 분기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세 편이었다.
세 편 다 주제와 형식이 다른 작품이었는데 그중 이혼 및 재혼 가정 아이의 고민과 심리를 환상 기법으로 그린
윤미경의 「얼룩말 무늬를 신은 아이」를 우수 작품으로 뽑았다.
이 작품은 일곱 살 때 동물원 얼룩말 우리 앞에서 엄마와 이별한 기억,
또는 그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소년이 얼룩말과 관련된 환상적인 사건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요즘은 워낙 이혼이 많은지라 이혼 가정 아이를 다룬 동화 또한 흔하기는 하지만
잔잔한 심리묘사와 신기한 힘이 있는 얼룩말 무늬 양말이라는 발상이 흥미로웠고,
자칫 허황되어 보일 수도 있는 판타지를 현실에 녹여내고
이혼한 엄마를 이해하고 새엄마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져 있어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기를 기대한다.
- 심사 위원 강숙인
2016년 2/4분기 우수 작품상 - 동시 |
여우에 대하여
권 영 상
아주 옛날, 여우는
숲에서 태어나 마을을 오가며
부지런히 살았다.
그간 자식도 여럿 두었다.
벵골여우, 검은여우, 모래여우, 은여우, 삼손여우, 티베트여우……
그러면서도
제 임무를 충실히 다 했다.
그 결과 여우는
이 땅에 이런 말을 남겼다.
여우비, 여우볕, 여우사이, 여우오줌풀, 여우콩……
여우에 홀리다,
여우 같다,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
♣ 동시 수상 소감
‘2/4분기 동시 우수 작품상’ 예심을 부탁하기에 택배로 보내 주신 작품을 읽고 다섯 편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러고 며칠 후, 제 작품이 동시 우수 작품상에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너무 당혹스러웠지요.
내 작품을 올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당선될 수 있을까!
담당자에게 급히 전화를 드렸더니 저 말고 예심을 본 분이 또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한숨을 돌렸습니다.
선정 동시 「여우에 대하여」는 『오늘의 동시문학』 봄·여름호에 실렸습니다.
여우는 오랫동안 교활한 들짐승으로 낙인 찍혀 왔습니다.
인류가 제 입맛에 맞게 붙여 놓은 낙인이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여우는 오직 주어진 생애를 충실히 살았습니다.
이만큼 살아 보니 처음부터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다는 걸 압니다.
혹 이건 나쁘네 악하네 하며 살았다면 이제 남은 건 그 죄를 용서받는 일입니다.
여우의 생애를 보니 주어진 목숨을 참 치열하게 살았다는 걸 알겠네요. 무엇보다 여우에게 기쁨을 전합니다.
권영상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동시집 『구방아, 목욕 가자』, 『엄마와 털실뭉치』 등 10여 권을 출간했으며 새싹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2016년 2/4분기 우수 작품상 - 동화 |
얼룩말무늬를 신은 아이
윤미경
“형, 이 양말 사.”
공원 앞에 펼쳐진 벼룩시장이었다. 학원에 가고 있던 나를 누군가 불러 세웠다.
‘무늬를 팝니다.’
꼬마가 양말을 펼쳐놓고 파는 중이었다. 손에 얼룩말 무늬 양말을 들고 있었다. 들여다보니 모두 동물 무늬가 새겨진 양말들이다.
“유치하게 동물 무늬 양말을 신으라는 거야?”
“이 얼룩무늬가 형아를 부르는데? 그러니까 형아가 데려가.”
“이왕이면 사자가 부르지 웬 얼룩말이 날 불러?”
그래, 왜 하필 얼룩말이야. 얼룩말 소리도 지겨운데 이번엔 무늬가 날 부른단 말이야?
“사탕 두 알만 줘.”
당돌한 녀석이었다.
“어떻게 알았냐? 나한테 사탕 두 알 있는 거.”
나도 모르게 사탕을 녀석의 손에 쥐어 줬다. 양말 받을 생각은 없었다.
“양말은 딴 사람한테 팔아.”
“안 돼. 무늬도 따라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거야.”
꼬마는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양말을 내 손에 올려놨다.
사탕 두 알에 양말 한 켤레 책임지는 거야 밑지는 일은 아니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양말을 가방에 쑤셔 넣고 학원으로 갔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다.
오늘 아침, 양말 서랍을 다 뒤져도 마땅한 양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줌…!”
새엄마를 부르려다 그만두었다. 내가 부르면 새엄마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할 것이다. 목구멍에 걸린 말을 도로 삼켰다.
가방 속 얼룩무늬 양말이 떠올랐다. 달리 방법이 없다. 양말은 보기보다 길었다. 신고 보니 무릎까지 올라오는 길이였다.
“뭐야. 영락없는 얼룩말 다리가 되었잖아.”
다리가 간질거렸다. 그러는 사이 학교 갈 시간이 넘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청바지로 덮어 가리고는 학교로 향했다.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수업 후에 남아서 청소를 해야 했고 또다시 학원에 늦었다.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학교 문 앞을 막 나설 때였다. 어디선가 얼룩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때보다 훨씬 요란했다. 얼룩말 울음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돌았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내가 동물원 안을 뛰어가고 있다!
다리가 나를 동물원으로 데려왔다. 학원에서 몇 정류장 떨어져 있는 동물원을 날듯이 달려온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곳은 얼룩말 우리였다.
얼룩말 우리는 절대로 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미안해, 태하야. 엄마도 어쩔 수가 없어.”
엄마가 했던 말이 얼룩말 울음소리와 섞여 어지럽게 굴러다녔다.
갑자기 다리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이라니, 망할.
멈출 수가 없었다. 얼룩말 두 마리가 다가와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쿡쿡대며 웃었다.
“그 얼룩무늬, 이제 형아가 책임져야 해.”
양말을 들고 돌아서는 나에게 꼬마가 했던 말이 퍼뜩 떠올랐다.
“혹시 이 양말 때문에?”
날뛰는 다리를 달래고 달래 겨우 양말을 벗을 수 있었다. 거짓말처럼 뛰던 다리가 잠잠해졌다. 양말을 벗자 옆에서 뛰던 얼룩말 두 마리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양말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가만히 바라봤다.
다시 양말을 신었다. 온몸의 신경을 발가락에 모으고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하야, 빨래거리 있으면 줄래?”
새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냉큼 양말을 세탁기에 던져 넣어 버렸다.
다음 날 깨끗하게 빨아져 서랍에 있는 얼룩말 양말을 집어 들었다. 양말을 신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학교에 도착한 후 오전 내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내가 예민했던 걸까? 양말 따윈 잊었다.
체육 시간이었다.
“오늘은 두 편으로 나눠 축구 시합을 한다!”
오랜만의 축구 시합이라 들떠서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그때였다. 또다시 얼룩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순간 다리가 날아갈 듯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쏜살같이 뛰어가 축구공을 단숨에 빼앗아 골대로 향했다.
슛! 총알처럼 빠른 공이다.
“저 자식 왜 저래?”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얘들아, 태하 잡아!”
아무도 나를 잡지 못했다.
3:1, 세 골을 내가 넣었다. 문제는 그 중 두 골을 우리 편에 넣었다는 거다. 자살골이었다. 우리 편 아이들에게 몰매를 맞을 뻔했다. 축구 경기가 끝나고도 운동장을 뛰던 내 다리는 양말을 벗고 나서야 멈췄다.
다시 책상 위에 얼룩무늬 양말을 올려놓고 노려보았다. 가위로 잘라 버릴까 하다가 양말을 신었다. 양말에 뭔가 비밀이 있다. 얼룩말 울음소리는 양말을 신으면 들려왔다. 그리고 양말은, 내가 뛰기 시작하면 요동을 쳤다.
그거다!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달리기 시작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양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무작정 뛰고 또 뛰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얼마를 뛰었을까. 드디어 얼룩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에서 소리치는 듯 우렁찼다. 발굽 소리까지 들렸다. 환청이 아니었다.
빗줄기 사이로 얼룩말이 뛰고 있다!
커다란 얼룩말이 아닌 새끼 얼룩말이었다. 얼룩말을 쫓아갔다. 얼룩말은 약을 올리는 건지, 같이 놀고 싶은 건지 혼자 뛰어가 버리지 않았다. 내가 올 만큼 시간을 주고 기다렸다가 다가서면 저만치 달아났다.
뛰어서 얼룩말을 잡는 건 불가능했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앞에 나타났다는 건 얼룩말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것이다. 역시 예감이 맞았다. 저만치 뛰어가던 얼룩말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본체만체 딴청을 피웠다.
“내 무늬 돌려 줘.”
“뭐라고?”
귀를 의심했다. 지금 얼룩말이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얼룩무늬 돌려 달라고.”
그러고 보니 얼룩말이 좀 이상했다. 몸은 얼룩말인데 다리에 무늬가 없었다. 하얀 맨다리로 서 있는 얼룩말은 우스웠다.
“네 무늬를 왜 나한테 달래?”
“네가 갖고 있잖아.”
얼룩말이 하얀 다리로 내 양말을 가리켰다.
“설마…, 이 양말의 얼룩무늬가 네 거라는 거야?”
얼룩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꼬마한테 사탕 한 알 받고 얼룩무늬를 팔았어. 난 사탕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거든.”
얼룩말은 애처로운 얼굴로 말했다.
“뭐? 사탕 한 알, 꼬마?”
벼룩시장에서 본 꼬마가 틀림없다. 이런, 난 사탕 두 알 주고 양말을 샀는데. 역시 당돌한 녀석이다.
“어림없어. 이건 내가 산 거야. 그러니까 이젠 내 거라고.”
“원래 주인이 아니면 무늬가 몸살을 할 텐데…….”
며칠 동안 양말이 한 짓이 떠올랐다. 오늘 축구 시합 때 친구들한테 받은 야유가 생각나 울컥했다.
“니들끼리 해결하지 네 무늬는 왜 나까지 부른 거야? 꼬마가 그랬어. 얼룩무늬가 날 부른다고.”
“그건 네가 알지. 너한테 얼룩말 울음소리가 들려. 내 무늬가 그래서 착각을 했을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그게 너희한테도 정말 들린다는 거야?”
“잘 생각해 봐. 네가 얼룩말 소리를 어디서 담아 왔는지.”
생각났다. 그날, 동물원 얼룩말 우리 앞에서 엄마가 그랬다.
‘태하야, 미안해. 엄마가 좀 멀리 떠나야 해. 기다리지 마. 아주 오래 걸릴 거야.’
얼룩말들이 유난히 시끄럽게 울어 댔다. 얼룩말 울음소리는 말 울음이라기보다 개가 컹컹거리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새벽, 엄마가 떠났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에 일곱 살 나는 어렸다. 기다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아주 오래 기다렸다. 엄마를 생각하면 얼룩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새엄마를 모시고 집에 오던 날, 나는 오줌을 쌌다. 새엄마는 아무 말도 않고 오줌 싼 나를 안아 주더니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혔다. 밤마다 창 너머에서 얼룩말이 울어 댔다. 그리고 밤마다 이불에다 오줌을 쌌다. 새엄마는 한 번도 야단을 안 쳤다.
“쉿~! 비밀이야.”
말없이 새 이불을 갈아 주며 속삭였다.
“태하 엄마가 재혼을 했다네. 자네는 이제 태하만 신경 쓰시게.”
고모가 새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은 후, 얼룩말 울음소리가 달라졌다. 숨죽여 킁킁대며 울었다. 낮게, 그러나 날카롭게.
“제발 돌려줘. 무늬가 없으니 친구들이 자꾸 놀려. 너한테는 아무 쓸모도 없잖아.”
혹시나 새어 나갈까 꾹꾹 누르던 그 울음소리를 듣고 진짜 얼룩말이 내 앞에 나타났다. 순순히 돌려줄 순 없다. 그렇게 소중한 걸 사탕 한 알에 판 얼룩말도 책임을 져야 한다.
“나한테는 뭘 줄 건데?”
“뭘 원하는데?”
얼룩말이 귀를 쫑긋 세웠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하늘에 별이 총총 떠올랐다.
“데려다 줘. 내가 담아 온 얼룩말 울음소리를 달랠 수 있는 곳에.”
다시 얼룩말 울음소리가 들려온 건 며칠 후였다.
방과 후, 양말을 신은 발이 바빠졌다. 나는 그냥 양말이 시키는 대로 걸었다. 양말이 올라타는 버스를 타고 양말이 내리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얼룩무늬 양말은 부지런히 걸었다. 양말이 멈춘 곳은 작은 아파트였다.
“여기가 어디야?”
양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목소리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얼룩말 울음소리가 귀를 찢을 듯 목청을 높였다. 얼른 몸을 숨겼다. 엄마가 유모차를 밀며 오고 있었다. 유모차 안엔 아기가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기다리지 말라더니, 엄마는 정말 올 마음이 없었나 보다.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도 교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아빠와 새엄마가 손을 잡고 끌어도 한참을 버텼다. 얼룩말이 날뛸 때마다 가슴이 얼룩말 발굽에 치여서 아팠다. 언젠가 엄마가 돌아와 얼룩말을 달래 줄 거라고, 기다리지 말라고 한 거지 아주 안 온다는 건 아니었다고 그렇게 믿었다.
발걸음을 돌렸다. 눈물이 나려는 걸 억지로 꿀꺽 참았다. 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에고, 우리 아기 배고프구나. 태하야, 들어가서 엄마가 맘마 줄게.”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아기 이름이 ‘태하’라고?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집으로 돌아와 양말을 빨았다.
“네가 왜 손빨래를 해. 엄마가 해줄게 이리 줘.”
새엄마는 내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양말 하나쯤은 제가 빨아도 돼요, 엄마.”
내가 ‘엄마’라고 부르자 새엄마의 눈이 빨개졌다. 엄마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잘 마른 양말을 들고 다시 운동장을 찾았다. 열두 바퀴쯤 돌았을 때야 얼룩말이 찾아왔다.
“헉헉, 왜 이제야 나타나는 거야. 힘들어 죽겠는데!”
“미안, 무늬를 잃어버린 후 방향감각이 무뎌졌어. 네 엄마 찾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얼룩말이 푸르르 입술을 떨며 얼굴을 흔들어댔다.
“이제 사탕 한 알에 무늬를 파는 짓 다시는 하지 마!”
얼룩말에게 양말을 돌려주었다. 얼룩말은 양말에 발을 집어넣었다. 물론 내가 도와주어야 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 꼬마가 무늬로 양말을 만들어 버릴 줄 진짜 몰랐어.”
얼룩말은 징징거리며 양말을 신었다.
얼룩말이 양말을 신자 무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양말이 사라졌다. 양말이 사라진 자리에는 거짓말처럼 무늬가 돌아가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얼룩말의 다리는 네 개다. 앞다리는 무늬가 돌아와 있었지만 뒷다리는 여전히 무늬가 없다.
“뒷다리 무늬도 팔아 버린 거야? 이제 더 이상 양말도 없는데, 뒷다리는 어쩔 거야?”
“사탕이 너무 맛있어서 마저 팔았어.”
풀죽은 얼룩말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안녕, 이제 또 떠나야지. 나머지 얼룩무늬를 찾으러.”
얼룩말은 인사를 남기고 따가닥따가닥거리며 떠났다.
그 후로 나는 사탕 두 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언제 어디서든 꼬마아이를 만나면 얼룩말 뒷다리 무늬도 되찾아 줄 수 있게. 하지만 이번에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얼룩말이 무늬뿐만 아니라 울음소리도 가져가 버렸나 보다. 이제 더 이상 얼룩말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걸 보면.
♣ 동화 수상 소감
한동안 많이 아팠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병원 산책길을 걸었던 것이 올해 내가 맞은 봄의 전부였습니다.
많이 넘어져 봐야 일어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했던가요.
주변 지인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의지하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지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마음을 다잡는 순간 수상 소식이 날아들었어요.
언젠가 꼭 한 번 받고 싶었던 영광스러운 상을 수상하게 되다니…….
들뜬 마음이 한동안 진정되지 않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딸이 벗어 둔 동그랗게 말린 줄무늬 양말이 이 글의 모티브가 되었어요.
줄무늬 양말무늬를 얼룩말이 신고 다가닥다가닥 달려오며 수상 소식을 물고 왔네요.
어딘가를 향해 갈 때,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은 아주 큰 행운이겠지요.
그 큰 행운을 잡았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나머지 길을 걷겠습니다.
다시 돌부리에 걸리기도,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그 또한 축복이라 감사히 여기며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부족한 작품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윤미경
2012년 황금펜 아동문학상, 2014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었으며 2015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동화 부문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Red』, 단편동화집 『달팽이도 멀미해』 등이 있으며, 순천미술대전 추천 작가(수채화)로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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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우수작품상 보며 창작에 대한 불씨를 다시 일깨워 봅니다 ㅎㅎ
아... 저도.. 작품 더 열심히 써야 겠어요.
축축축축~~~ 축하드립니다!! 7월의 첫날 기쁜 소식 듣고 저도 활짝! 웃어봅니다~~축하드려요~~
축하축하...
축하합니다. 멋진 작품 덕분에 꾸무럭거리는 날씨가 개이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창밖에 햇살이 나와있네요.
축하드립니다 ㅎ 부럽습니다...저도 작품 잘 써서 받고싶습니다 ㅎ
작품 발표 기대하겠습니다. ^^
짝짝짝~~^^ 박수소리 들리시죠 무한박수로 축하드립니다
아... 여기까지 소리가 들립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7.01 11:18
권영상 선생님! 윤미경 선생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선작이 정말 좋아요.^^
짝짝짝~
두 분 선생님
우수작품상 수상
축하 축하드립니다!!!
권영상, 윤미경 선생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우수상 수상하신 두 분께 축하 박수 보냅니다!
잘 읽었습니다. 축하드려요!!!
두 분 선생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너무 기쁘고 영광스러운 수상이에요.
더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권영상, 윤미경님 축하합니다
권영상 선생님, 팔방문학 윤미경님 축하드립니다^^
두 분 선생님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ㅉㅉㅉ!
저도 축하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권영상 시인, 윤미경 작가 축하합니다. 더욱 좋은 글 많이 쓰세요.
권영상 선생님, 윤미경 작가께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작품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자극 많이 받습니다.
좋은 작품 심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상자 두 분께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