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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심을 물리치라
누가복음 12장11-21절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몸은 죽여도 그 후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하나님이 참새 한 마리도 기억하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또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12:11-1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그들을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있는 자 앞에 끌고 갈 때 어떻게 대답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1절). 이 말씀은 제자들이 당할 고난 중 죄인으로 법정에 서게 될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회당'이 유대인의 법정을 뜻한다면 그 외의 것은 이방인의 법정을 뜻한다고 볼 수 있고, '회당'이 종교로부터의 핍박을 뜻한다면 그 외의 것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핍박을 뜻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동족과 이방인, 종교와 정치 세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종류의 핍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나, 성령께서 함께 하는 한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격려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엄한 산헤드린(Sanhedrin) 공회나 로마에서 파송된 총독의 법정 앞에서 스데반 혹은 바울 등이 담대히 진리의 증거자로 설 수 있었던 것도 성령께서 함께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행 7:2 ff.;24:10-21).
‘대답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로게세스데'는 전문적 법률 용어로 '법적으로 자신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는 발언을 하다'는 뜻이며 본절이 법정에 서게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뒷받침 하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두 가지 의미에서 자신들을 변호해야 할 것입니다. (1) 자신들의 육체적 안전을 위해 무죄함을 변호해야 하고, (2) 자신들이 선포하고 행하는 사역의 정당성을 변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여 법정의 심판관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마땅히 할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그들에게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12절). '곧 그때에'라는 표현은 제자들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성령의 도우심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해 줍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을 위기 상황으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출해 준다거나 방해 세력을 분쇄한다고 말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말을 가르치신다고 하신 점에 유의해야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결코 기적이나 무력을 사용하기 보다는 제자들을 무력한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그리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게 하며 위기의 상황조차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는 정공법(正攻法)을 채택하신다는 것을 암시 합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베드로(행 4:8-12), 스데반(행 6:10), 바울(딤후 4:17) 등에게서 실제로 성취되었습니다.
2.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12:13-15)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13절) '무리 중에 한사람'은 앞 부분(1절 ff.)과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하며 관심의 대상을 제자들로부터 무리들에게로 바꾸어 넣는 도입구의 역할을 합니다. 상속에 대한 규례는 율법에 명시되어 있으며(민 27:1-11; 신 21:15ff.), 법규에 따라 분배가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랍비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찾는 이 사람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찾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정당한 몫의 유산을 받지 못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그가 예수님을 율법 선생으로 곡해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말씀하십니다(14절). 예수님께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권위나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문제에 관여하기를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몇가지의 설명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은 그런 문제에 관한한 당국의 권위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은 유산을 나누는 정도의 일을 훨씬 능가하는 영혼 구원의 소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예수님은 소유 자체 보다는 소유에 대한 태도에 관심을 유도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2),(3)의 설명이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물질을 관리하는 일을 넘어서는 깊은 차원의 것으로 특별히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일이며 단순히 물질을 공정하게 분배하논 차원을 넘어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근본적으로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의 몫을 요구하는 이 사람은 그 심성 속에있는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그의 몫을 받는다 해도 아무런 만족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그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대 있지 아니하리라”(15절).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요청을 거부하신 것은 그 사람이 당면한 문제 배후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었으며, 그것은 한 사람 개인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즉 '저희에게'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탐심'은'더 많은'의 뜻을 가진 '플레온'과 '소유하다'의 뜻을 가진 '혀시아'의 합성어로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지적되는 것은 단지 '물질'에 대한 탐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모든 종류의 죄악된 성향(性向)을 총칭한다고 보아야 합니다(시 39:6; 합 2:9; 골 3:5; 딤전 6:9-11).
소유의 넉넉함으로 인간의 진정한 삶이 영위되거나 보존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생명'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에'는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가리킵니다. 오히려 넉넉함을 추구하는 탐심은 생의 목표를 진리가 아닌 것에 두게 하여 결국에는 멸망으로 이끌게 할 뿐입니다.
3. 탐심의 결말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16-21)
예수님은 한 부자의 비유를 들어서 탐심의 결말이 어떤지 설명하십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16절). 예수님께서는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예증하기 위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는 그가 부자였다는 간단한 사실만 언급될 뿐 부 자체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부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시켰다고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 그는 무절제나 방황에 빠지지 않고 오직 재물 모으는 일에만 전심전력(全心全力)하였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그가 재산의 노예로 보일 정도로 물질에 집착하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부자는 심중에 생각하여 이릅니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17절) 밭의 풍성한 소출은 부자에게 고민을 안겨줍니다.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다는 것이 그의 고민입니다. 이 고민은 그가 상당한 부자임을 말해줍니다. 아울러 이는 욕망의 무한성 곧 재물로써 채워질 길 없는 깊은 영혼의 갈증을 보여줍니다. 원문상 '곡식'이 '내 곡식'으로 되어있어 자기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을 잘 나타냅니다.
부자는 곡식을 쌓아 둘 창고의 건축 계획을 세웁니다.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18절). 그가 궁리한 끝에 내린 결론은 곡간을 더 크게 확장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곳간'은 신약의 여러 곳에서 '창고'의 의미로 사용되며(24절; 3:17; 마3:12; 6:26; 13:30), 여러가지 물품을 취급하는 '대형 상점을 또는 매우 큰 '상점'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이 부자는 대농(大農)일 뿐만 아니라 상인의 역할도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부자는 창고 건축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말합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19절). 그의 총체적 실존이 지향하는 삶의 자세는 물질에 의존하여 물질로 말미암아 쾌락을 즐기는 것일 뿐, 진리를 추구하는 의미의 문제나,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이나, 그에게 풍성한 소출을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피 땀흘려 부를 축적한 자에게 있어 그 부를 이용하여 안락하고 풍족한 세월을 구가해 보고자 하는 보상 심리는 본능적 욕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이라는 존재 자체가 흘러가는 구름처럼 덧없는 것임을 자각했어야 옳았습니다(사 51:6).
예수님은 부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0절). 자신의 삶에 대해 용의주도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부자에게(18,19절) 하나님은'어리석은 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정신없는 자', '무분별한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이 생명의 근본이심을 거부한 사람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시14:1) 이러한 물질주의적 가치관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뿌리가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를 부인하다시피 하는 유물론(唯物論)에 박혀 있음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중시되는 소위 개인의 자유 역시 오직 자본 곧 물질을 확보하는 일에 집착되어가는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물질이냐 영혼이냐 세속주의냐 하나님 중심주의냐 하는 이 근본적인 가치 선택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논제임에 분명합니다.
부자는 '여러 해'를 계획했으나 하나님은 '오늘 밤'에 그의 영혼을 가져갈 것입니다. '오늘 밤'은 그의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감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의 재물은 그의 생명을 단 하루 밤도 지속시키는 힘을 갖지 못합니다. 여기서 '영혼'은 생명을 뜻하고 '도로 찾으리니'는 인간의 생명이란 하나님께 대여 받은 것으로 언젠가는 되돌려져야함을 말해주며, 생명에 관한한 하나님이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같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21절).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부유함과 하나님께 대한 빈곤을 대비시킴으로써 부자의 삶의 목표가 어디에 두어져야 하는가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고(33절;마6:20),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마25:31-46).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생명과 재물이 하나님께 근거한 것임을 알고 겸손히 봉사해야 한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질 때에만 가능합니다(벧전 4:10).
적용: 탐심을 물리치려면
예수님은, 자신에게 와서 자기 형과의 재산분배를 부탁하는 청년에게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시면서, 탐심 많은 부자 농부의 비유를 통해 그의 결말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말씀하십니다, 탐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 이상의 것을 바라는 욕구입니다. 이런 탐심에 빠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물질 만능주의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탐심은 우상숭배이라고 말씀합니다. 탐심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물질로 향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금욕주의자들은 물질을 악하다고 판단하여 금욕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물질 자체는 선한 것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물질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물질을 선하게 얻고 선하게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그러나 물질을 선하게 얻고 선하게 사용하려면 우선순위를 바로 정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마 6:25), 그런 것들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말씀하시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마 6:33). 예수님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물질이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구해야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영적인 것을 먼저 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물질을 얻으려고 애쓰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기에 힘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따라 물질을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물질을 사용할 때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어야합니다. 우리의 지출계획을 세울 때에도 우리는 먼저 그 지출이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주는가를 먼저 생각해야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물질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탐심을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