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기를 다정하고 마음이 여리며 타인과 잘 지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
이들은 관계에서 기버(giver : 베푸는 사람) 역할을 자처하며,
내가 속한 관계나 집단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이나 결핍의 해결사 노릇을 하게 돼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내 주변에 이러한 기버들이 있다면,
나도 그들의 호의에 보답하면서 기브 앤 테이크를 할 테고,
호의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정이 넘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죠.
그 이유는 받기만 하고 되돌려주지 않는 프리라이더들의 존재 때문입니다.
바로 테이커죠.
기버와 테이커 : N극과 S극
센터에 찾아오시는 기버 분들의 인간관계 양태를 살펴보면,
항상 모든 스트레스의 중심축에는 테이커의 존재가 있습니다.
연인, 배우자, 부모, 자녀, 직장상사 등등.
의아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왜 기버들은 테이커들을 경계하지 못하고 얽혀들게 되는 것일까?
기버와 테이커가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 섥히게 되는 데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심리적 세팅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걸 알지 못한다면,
나도 모르는 새 테이커들에게 포섭당해 평생 빨대를 꼽히게 되는 신세가 되는 것이죠.
내가 테이커에게 끌린다고? 같은 기버가 아니라??
기버들이 좀처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명제이지만 사실입니다.
기버끼리는 의외로 서로 끌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
호의를 받을 때의 리액션이 테이커들처럼 호쾌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기버는 주는 데 익숙하지 받는 데는 서툰 편입니다.
게다가, 타인에게 호의를 받게 되면,
그 호의를 되갚을 때까지 "빚진 마음"이라는 부채감에 시달리게 되므로,
최대한 빨리 상대방에게 보답을 하려 하죠.
즉, 호의를 주고 받는 과정 자체가 마음이 오고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보다는
일종의 과제나 일처럼 돼 버리기 일쑤인 겁니다.
반면, 테이커들은 기버의 호의를 받아주는 리액션이 굉장히 맛깔스럽기 때문에,
(공짜로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는 일이야말로 테이커들에게는 최고의 소득이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주는 기버 입장에서도 저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주는 행위에 대한 보람감이나 성취감을 느끼게 돼요.
즉, 주는 기쁨의 질 자체가 같은 기버끼리보다는, 상대가 테이커일 때 훨씬 더 높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관계에서 착취의 전제조건은 착취하려는 자가 착취당하는 자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기버가 테이커를 진심으로 좋아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지만 기버의 마음속에 본인의 베품 행동을 자발적인 것으로 포장하게끔 유도할 수 있고,
이 과정을 통해 테이커가 착취라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면죄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해 달라고 그랬어? 다 네가 원해서 한 일들 아냐??
이제와서 왜 날 가해자 취급해? 너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테이커에게 기버는 굉장히 중요한 자원입니다.
조별과제에서 나의 프리라이딩을 가능케 해 주는 착한 조장 같은 존재니까요.
따라서 테이커는 관계 초반에 기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 마음이 여리고 다정한 기버는 테이커의 마음이 진심이라고 믿으며 관계에 몰입하게 돼요.
기버들의 마음 자체가 처음부터 진심이었기 때문에,
퍼 줘도 내가 좋아서 한 일이 되고,
테이커에게 의심이 들 때도 그러한 마음을 먹은 것에 대해 괜히 죄책감을 느끼게 되죠.
테이커들이 처음에 나에게 잘 해준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결국 테이커와의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버는 어떻게 테이커들을 탐지하고 걸러낼 수 있을까?
단순합니다.
최소 3년 이상을 만나보면 돼요.
인간은 상대방이 완전히 내 사람이 됐다고 여기게 되면,
마음을 놓고 가면을 벗은 채 진면목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은 기버가 온 마음을 다해 테이커에게 헌신하면서
테이커로 하여금 이제는 완전히 내 것이 됐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가면을 벗게 만들기 충분한 기간이죠.
또한, 내 연인을 내 친구나 가족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서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막상 당사자인 나는 여린 마음과 애증, 죄책감, 자존심, 내가 바보였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심리 등으로 인해,
흐린 눈을 하면서 이 관계를 지속하고자 할 수도 있거든요.
나의 내면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의 내 연인에 대한 평가가 왜곡된 나의 마음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끌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기버는 반드시 상대방의 성격과 인성, 태도 등을 따져보고, 그 사람이 테이커인지 여부를 판별해야만 합니다.
N극과 S극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력의 생리처럼,
내가 정신차리고 있지 않으면, 어느샌가 당신은 테이커를 사랑하고 있을 지도 모를 테니까요.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항상 크게 배웁니다. 감사드립니다^^
좋은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