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 <금강>1.2.3 (솔출판사, 2016)
책을 읽기도 전에 이리 설레고 콩닥여 본 적이 참 오랜만이다.
死대강 사업의 삽질로 신음하고 있는 이제나, 김홍정 작가의 대하역사소설 <금강>의 무대가 된 저제나 유장하게 굽이쳐 흘러온 천 리 금강의 물줄기는 온갖 간난과 횡액과 핍박과 굴욕의 역사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도도하게 이어져온 이 땅의 참된 주인이고 창조자인 민초들 삶의 거룩한 은유이고 상징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엊그제 햇볕 맑고 바람이 푸른 날, 공주 곰나루 어귀 대설 <금강>의 마지막 들보를 올려놓는 상량식에 불려나가서 작가와 인사를 나누고 오래고 샛된 인연의 글벗들과 더불어 새벽녘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금강 물줄기처럼 유장하게 흘러갈 대설 <금강>의 앞날을 기원하고 돌아왔다.
이제 떨리고 설레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정갈한 자세로 앉아 책의 첫장을 펼쳐 연다.
"병신년(1596년,선조 29년) 유월 그믐.
강물이 불었다. 전막 들판을 채운 물들이 쌍신들과 도토뱅이를 거쳐 귀산 들판으로 밀려들더니, 관골을 지나 수촌들을 채우고 정안천에서 몰린 물들과 합세하여 모랑 들판까지 누렇게 출렁거렸다. 촛대봉과 무성산, 정지봉 봉우리만 남기고 강줄기를 따라 펑퍼짐한 들판은 모두 물에 잠겼다. 이는 공산성만의 일은 아니었다. 노성천을 따라 이룬 상월과 계룡의 들판도 물에 잠겼고, 백강의 물을 담던 딴펄도 넘실대는 물결로 세상은 온통 물바다가 되어 그득했다. 참으로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문장이 소리 가락처럼 구성지고 찰지다. 강물의 굽이처럼 곡진하고 유장하다. 과연 듣던 대로다. 한동안 <금강>에 잠겨 살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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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홍정의 장편역사소설 『금강』1,2,3(솔, 2016)을 읽고
권덕하 / 시인 문학평론가
김홍정 작가가 오랫동안 구상하고 공부하고 답사하고 궁리했던 일을 『금강』으로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있고나서부터입니다. 참기 힘든 슬픔과 분노를 글로 옮겨 그는 2년 동안 육천여 매의 글을 완성한 것입니다. 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전력 질주하듯 글을 쓰게 만든 것일까요. 그것이 이 장편소설 『금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김홍정의 장편대하소설 『금강』은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통해 권력 독점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나 사욕에 눈 먼 권력자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지 고발하는 한편 백성의 몸과 마음은 어디에 있으며 백성들이 진정으로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정서와 마음씀씀이와 사람 사는 것이 금강에 담긴 오백 년 전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기에 이 진실에 기대어 작가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고 현실을 통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소설은 그래서 질문하는 책이 됩니다. 현실과 진실에서 동떨어진 이야기, 현실을 단순화하고 왜곡해서 조잡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기만하며 사람들의 편향에 영합하는 무늬만 문학인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김홍정 작가는 통찰력 있는 문체로 난세를 살아가는 백성들의 슬기와 힘을 보여주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캐묻습니다. 그리고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교사, 사업가, 상인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문학은 인간과 인간 세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최상의 예술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문학이 인간과 인간 세상을 이루고 있는말과 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과 글은 생명질서의 표현이며 인간 정신과 정서가 작용하여 뜻을 기리고 가치를 담는 “인본과 천리”가 살아 숨 쉬는 소리이기 때문에 말과 글의 타락은 곧 문학의 타락으로 이어져 인간과 인간 세상의 도리와 살길이 가로막히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 문화는 여러 착각과 편향을 강화하고 탐,진,치를 부추기며 소유감각에만 길들게 하는 죽음의 문화를 반복합니다. 삶의 도리와 살림의 순리를 도외시하고 역사적 통찰을 상실한 문학과 문화는 비극적인 사건을 되풀이 하게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현한 금강은 문약한 한국 문단에 경종을 울리고 현실과 사실을 기만하는 문학을 향해 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연과 환영을 기교적으로 가공한 요설의 와중을 뚫고 출현한 김홍정의 『금강』은 역사적 필연을 읽는 통찰의 문장을 통해 예나지금이나 변함없는 살림살이의 진실을 말할 뿐 아니라 백성의 몸과 마음자리를 어루만지며 백성의 힘이 제자리를 찾게 하고 백성이 주인이 되어 이루어야 할 공동체적 삶과 너나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현실화하려고 합니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임우기 형이 말한 “살림의 문학”의 한 전형을 구현하고 있는 진정한 대설, 『금강』은 이 시대 우리가 거듭 겪고 있는 상황을 근본에서 역사적으로 총체적으로 직시하게 합니다. 작가가 말했듯이 “백성들과 더불어 실천한 삶의 질서요 예법이고 마음의 정화인” 예악의 근본과도 같은 문학의 제자리로 돌아가 묻고 있는 김홍정 작가의 질문에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작가는 금강 유역, 아니 이 땅의 하늘에 떠 있는 구름떼가 우리 백성들의 혼백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 곧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어른을 공경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서로 도우며 땀 흘려 살고 경우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으려 애쓰며 알뜰살뜰 법 없이도 평화롭게 살아가는 백성이었고 그런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가치와 근본을 지닌 세상을 이루려” 죽음 앞에서조차 당당했던 어른들이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들과 한 핏줄로 살고 있으며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원 이돈, 양지수, 송사련, 연향, 미금, 부용, 장수, 채선, 한 별장, 조실, 한산수, 이창, 장쇠,은우 등 그리고 숱한 무명의 발품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문구 선생의 『관촌수필』, 권정생 선생의 『한티재 하늘』처럼 금강은 제 삶을 뒤돌아보게 하고 잊고 살던 가치를 일깨워 주었으며, 독자지만 저도 한 인물이 죽임을 당할 때마다 작가처럼 슬퍼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때를 지켜 할 말을 다하고 제 길을 간 어른들, 그 가없는 백성의 마음이 심금을 울린 것입니다.
나이 들어 읽은 책 중에서 저를 울린 책들이 몇 권 있습니다. 이제 『금강』도 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시로서 신동엽 시인의 『금강』이 있다면, 이제 우리에겐 역사소설로서 김홍정 작가의 『금강』이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교사로서 바쁜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여러 사회운동,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서 참여해오고, 특히 지난 2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금강』을 집필한 김홍정 작가의 노고와 열정에 문우로서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큰 고마움을 느끼며 축하하는 바입니다.
- 『금강』 출간 기념식에서
첫댓글 소포로 책을 받긴 처음입니다!
김홍정 소설가님! 감사드립니다!
시골에 가져다 두고 주말마다 읽고 있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안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