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 박! 제발 입 좀 다물어라. 그 입은 일요일도 없나? 좀 쉬어라, 쉬어.
제발!"
하루라도 이 소리를 듣지 않으면 나는 학교에 온 것 같지 않습니다. 선생님
역시 내가 없다면 좀 심심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떠들기는 해도 좋
은 점도 많으니까요.
나도 모범 어린이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난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기보다
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형태로든 말할 거리를 찾으려고 애를 씁니
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못하는 사람일 거라고 지레 짐작을 해서는 곤란합
니다.
나는 글쓰기라면 자신 있습니다. 수학도 박사 정도는 아니라도 석사 정도는
되고요, 토론 수업에는 내가 없으면 재미가 없지요.
우리 모둠은 여자 셋, 남자 셋, 모두 여섯 명입니다. 여자만 소개해볼게요.
먼저 새침데기 이소영, 머리를 두 갈래로 예쁘게 묵고 빨간 리본을 자주 매
고 다니다 나에게 여러 번 빼앗겼지만 여전히 리본을 매기를 멈추지 않는
빨간 머리 앤입니다. 주근깨가 눈가에 몇 개 박힌 것이 흠이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보람이, 하얀 얼굴에 통통한 볼이 귀여워 꼬집어주고 싶
다는 생각으로 가까이 갔다가 되려 내 안경이 떨어져 박살이 나버린 적이
있는 와일드 1호입니다. 나의 짓궂은 장난에 아직 까지 한 번도 눈물을 보이
지 않는 의지의 여왕이며 별명은 람보입니다.
오늘 첫째 시간이 끝난 후였습니다. 수업을 마치는 반가운 음악 소리가 울
려 퍼졌습니다.
나는 스케이팅 왈츠에 맞추어 운동장으로 튀어나갔습니다.
"와, 쉬는 시간이 없다면 난 절대로 학교에 오지 않을 거다."
공을 들고 뒤따라온 석기에게 공을 빼앗아 하늘로 '펑' 소리 나게 차면서
내가 말했습니다.
얌전하던 명호도 떨어진 공을 이어주며 참견했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시작을 알리는 음악소리는 장송곡 같이 들렸습니다.
느릿느릿 교실로 들어가는데 보람이가 보였습니다.
"야, 람보야! 네 엉덩이에 뭐 묻었다!"
"어디, 어디?"
"메롱!"
"야! 거기 안 서!"
난 힘껏 뛰어와 내 자리에 털썩 앉습니다.
보람이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하얀 얼굴이 울긋불긋 단풍든 가을
산 같았습니다. 공부할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날 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
러나 난 거들떠보지도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척 했습니다. 제 풀에 화가 풀
릴 때까지 절대 건드려서는 안됩니다. 람보의 신형무기인 꼬잡총으로 사정없
이 박살을 내면 한동안 난 꼼짝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자 떠들이, 나의 단짝 오! 혜진입니다. 내가 남자로 떠들이 1
호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여자 떠들이 왕입니다. 혜진이와 나는 이야기
에 취해 손바닥까지 맞추며 웃다가 선생님께 들켜 엄청난 벌을 받기도 했답
니다.
그 벌은 두 손을 상대방의 귀를 잡고는 코를 맞추는 겁니다. 세상에! 내가
은근히 혜진이를 좋아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렇게 심한 벌을 주시는 선생
님이 좀 원망스러웠답니다.
그런 자세로 3분이 지나면, 다음 벌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참을 인(忍)
자를 백 번 쓰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칼을 꼽는다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아프겠니? 그런 마음으로 참는
공부 좀 해라."
먼저 칼 도 刀를 쓰고 그 밑에 마음 心자를 적었습니다.
마음도 아팠지만 중지 손가락도 무지무지 아팠습니다. 마디가 톡 튀어나오
기까지 했답니다. 한 열 번은 그렇게 마음을 닦으며 썼습니다. 혜진이는 얼
마만큼 썼나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슬쩍 곁눈질을 해 보았지요. 혜
진이 역시 내 마음과 같았나 봅니다. 둘이 눈이 마주쳤습니다. 우린 쿡쿡 거
리며 웃었습니다.
"떠들이와 제발!"
천둥이 치는 줄 알았습니다.
머리끝에서 번개 불까지 번득거렸습니다.
"너희들 지금 반성하는 거냐? 장난하는 거야?"
"참을 忍을 열심히 쓰는 중입니다."
혜진이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난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장난하면서 반성하고 있다는 거지?"
"그게 아니고 선생님!"
난 양 쪽 뺨에 걸쳐지게 입술을 올렸습니다. 미소를 띄운 거지요.
'웃는 얼굴엔 침을 못 뱉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
런데 평소의 모습과 달리 선생님은 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날씨처럼 검은 구름을 잔뜩 품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오고 계시는 선생님의 다음 동작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어깨를 들어올리고 목을 바싹 어깨 쪽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푸른 꽃무늬 슬리퍼가 내 발 옆에 놓이고, 선생님의 오른 손이 뒷덜미를 슬
슬 어루만지면서
"자, 네가 좋아하는 무당벌레 놓고 가마."
하시며 엄지와 검지로 뒷덜미를 살짝 집고는 교탁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는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휴!"
언제 개였는지 먹구름은 물러가고 푸른 하늘에 해님이 활짝 웃고 있었습니
다.
다음 날 멀티비전으로 사회과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모두 화면에 나타난 내용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
다. 나도 처음에는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고장의 모습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다
가 곧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굴 건드려 볼까?'
둘러보았습니다.
'흠, 빨강 머리 앤! 소영이 오늘은 하얀 리본이라!'
소영이의 머리에는 면사포처럼 하얀 망사 리본이 곱게 묶어 있었습니다.
나는 떨어뜨린 연필을 줍는 듯한 자세를 취해 보았습니다. 아무도 날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 나는 내 짝 뒤로 가서 소영이의 머리채를 살짝 잡아당
겼습니다.
"야!"
의외로 터져 나온 소영이의 목소리에 놀라 벌떡 뒤로 자빠지고 말았습니다.
눈앞이 깜깜 했습니다.
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제발이 짓이구나."
선생님의 목소리는 들리는데 교실 천장이 밤하늘 같았습니다.
내가 드러누워 일어나지 않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장난 말고 어서 일어나 앉아!"
"선생님! 장난이 아닌 것 같아요, 제발이가 못 일어나요."
짝 혜진이가 말했습니다.
"뭐라고?"
선생님의 다급한 소리와 함께 나의 어깨가 들어올려지고, 나는 선생님의 품
안에 안겨있었습니다.
"떠들아! 야, 현민아 괜찮니? 정신 차려!"
선생님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젖어있었고 빨랐습니다. 곧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가늘게 한 쪽 눈만 살짝 떠보았습니다.
교실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보이고 선생님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선생님 품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이 녀석! 이젠 꾀병까지...... ."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에게
"간 떨어질 뻔했다.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하시며 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흐흐' 속으로 나는 웃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결코 먹구름이 될 수 없어, 예쁜 꽃일 뿐이라고.'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뒷꼭지가 좀 아려오는 것 같아 만져 보았더니 달걀
만한 혹이 볼록 나있었습니다.
"선생님! 저 양호실에 다녀와도 괜찮겠습니까?"
"양호실엔 왜?"
"내 머리에 작은 산이 생겼는데 화산 같습니다."
"머리에 화산이 생겼다고?"
"그렇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어디 보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가오시는 선생님께 나의 머리를 쑥 내밀었습니
다.
하얀 손으로 나의 머리를 군데군데 만져보신 선생님께서는
"꾀병은 아니었구나, 갔다 오렴."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꽃처럼 말입니다.
"제발...... ."
그 다음 말은 잇지 않으셔도 어머니 같은 선생님의 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23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