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수필·감상문·기타
2009-03-27 11:05:41
껌 씹기를 좋아하는 나는 늘 차 안에 자이리톨 껌을 비치하고 다닌다. 주로 담배를 많이 피워 입이 텁텁할 때면 하나씩 꺼내어 질겅질겅 씹는 것이 오랜 버릇이 되었다.
경험상 껌을 씹으면 치아 건강에도 좋다. 더욱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식후에 양치질을 할 형편이 안되면 껌이라도 씹어 주면 입안의 오물을 뽑아 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난 껌을 씹을 때면, 잇몸의 오물이 묻어 나오게끔 껌을 잇몸 사이 사이에 밀어 부쳤다 떼었다 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늘 껌을 씹다 보니 껌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없을 수 없다.
고등학교 동기 중에 서 모씨란 놈이 있는데, 이 놈 예기가 걸작이다.
늘 껌을 질겅거리며 씹고 다니는 나만 보면, ‘야! 도다라 나도 껌 하나만 도~!’ 하며 얻어 씹곤 하더니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하루는 사무실에서 입이 텁텁하여 껌 생각이 나더란다. 그래서 사무실 여직원에게 하나 얻어 씹을 심산으로 ‘미스 킴, 껌 있으면 하나만 도~!’ 라고 해야 할 것을
“미스 킴, 도다리 있으면 하나만 도~!”
라며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예기를 자기도 모르게 뱉어 버린 것이다.
여직원이 채 반응도 하기 전에 혼자 컬컬컬 웃으며,
“아! 아! 그기 아이고, 껌 하나만 달란 예기다.”
하고 껌을 얻어 씹긴 했지만, 두고 두고 혼자 되씹으며 속 웃음을 많이 웃었단다. 날 씹고 싶은 건지, 껌을 씹고 싶은 건지.
껌과 관련한 또 다른 고교 동기 중 또 다른 서 모씨의 에피소드도 배꼽 잡을 만 하다.
이 친구는 부산 지역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하다가 수 년 전 경기도 지역으로 전근을 오게 되었다. 나이 50 줄이 되도록 경상도 지역만 돌아 다닌데다가 고쳐 보려고 애 써 본 적도 없으니, 경상도 말 밖에 안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학기 초에 아이들을 하나 하나 불러 면담을 하는데, 그 아이가 반에서 무얼 맡고 있는지 헷갈려서,
“니, 이 반에 머~꼬?”
하고 물었더니, 잠시 머리를 갸우뚱하던 학생 대답이 쥑인다.
“껌인데요”
“머어 ? 껌이라꼬 ? ……!! 우~ 히히히히히히”
우리 학창시절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곤 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껌을 씹는 것이 불량끼가 약간 있는 것으로 이해되던 시절. 수업시간에 껌을 씹는 무례를 범하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하였지만, 한 친구가 수업 시간에 껌을 씹다가, 이런 꼬라지를 죽어도 못 보는 깐깐한 선생님에게 걸리게 되었다.
“야! 니 입안에 머~꼬?”
놀란 학생이 껌을 바닥에 뱉어 발로 밟아 버리고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섰는데……
선생님 다음 말이 놀랄 만 하다.
“주우 무우!”
껌값이란 말이 싸구려 혹은 비용이 얼마 들지 않는다는 말로 통용되고 있지만, 이 ‘껌값’이란 말이 생겨난 배경이 참 재밌다. 믿거나 말거나……
70년대 후반 우리가 대학 다닐 시절, 종로는 대학생들이 많이 몰려 드는 거리였다. 요즘이면 홍대앞 정도거나 대학로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당시 종로 거리를 걷다 보면, 껌팔이 같지도 않은 멀쩡한 사내 혹은 아주머니가 껌 한 통을 들이 밀며, 백 원이면 될 것을 천원을 달라면 쫓아 붙는 경우가 있다. 사람 봐 가면서 말이다.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비싼 껌 한 통을 그래도 사는 사람이 있는지 종종 이런 장면을 목격하곤 하였는데……
인물도 나처럼 준수했고, 체격 또한 훌륭했던 내 친구 중 하나가 어느 날 우연히 종로에 나갔다가 그 비싼 껌 한 통을 사게 되었다.
그러자, 당시에는 보기 드문 기사 딸린 검정색 승용차가 바로 다가 오더니 껌을 팔던 아주머니와 몇 마디 건네고는, 승용차에 타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타라고 유혹하더라나.
긴가 민가 하면서도 멀쩡한 대낮에 무슨 일이야 있겠냐는 생각을 하며 차에 타자, 나이 지긋한 기사가 성북동에 갈 것이라며 두 시간 후에 다시 이리로 모셔다 드린단 예기로 안심을 시키고, 간단한 사정을 예기하곤 안대를 건네며 눈을 가리란다. 갑자기 불안한 맘이 엄습하였지만, 껌값에 뭔가 엄청난 횡재를 할 것 같은 예감에 하잔 대로 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물론 혹시나 해서 안대 아래 틈새로 도다리 눈을 하고 어디로 가는지 소상히 살피면서 가긴 하였단다.
크락숀이 울리자 육중한 대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기사가 다 왔다며 문까지 열어 주고는 2층으로 안내를 한다. 넓은 정원, 스위스 별장 같은 2층 석조 건물, 고급 목재로 벽과 계단……
기사는 문 앞에까지 데려다 주고는 이미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가슴이 콩닥콩닥 피가 솟구치는 걸 억지로 참으며,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아이구야……’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기이~가 찬 미모의 여인이 속이 훠~니 피치는 잠옷을 걸치곤 태연히 이 친구를 맞이 하더란다.
전혀 익숙치 않은 상황에 어쩔 줄 몰라 멍히 선 친구에게 샤워부터 하라곤 안방으로 자리를 비킨다.
‘히야~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단 말이가!’
…………
그렇게 기분 째~지는 시간을 보내고 자리를 일어서니, 침대 맡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두툼한 봉투를 건넨다.
다시 안대를 매고 20여 분을 달려 두어 시간 전에 탓 던 곳에 내려섰다.
꿈인가? 생신가?
돈 봉투가 든 주머니가 불룩한데……
친구는 껌을 싸게 씹었는데…… 저쪽은 무얼 씹었는지 디기 비싸게 씹었네.
2009. 3. 27 도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