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요리를 좋아하세요
어서 오세요. 블라인드 레스토랑*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하시는 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카스피해산 철갑인어가 최상품입니다. 가격이 부담되신다면 중국산으로 준비해드립니다. 국산은 초고추장처럼 새콤달콤 화끈하고, 일제는 보다 부드럽고 순하지요. 네? 영계요? 아, 치어 말씀이시군요. 18년차 이하의 치어 판매는 불법이라 매장에서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원하신다면 포장해서 모텔로 배달해드립니다. 치어는 비린내가 많이 나죠. 적당히 숙성된 25~30년차를 권해드립니다.
인어를 맛있게 드시려면 쭉 뻗은 두 팔은 앞니를 이용하세요. 톡톡 끊어 먹을 수 있어요. 두 개의 가슴은 빨대를 꽂고 쪽 빨아올리세요. 몽글몽글 멍울들이 젤리처럼 목을 넘을 거예요. 엉덩이나 뱃살은 지방이 좀 많아서 느끼할 수 있어요. 그래도 살살 녹는 맛은 일품이지요. 아, 조심하실 것은 요리를 삼키는 동안 어둠속에서라도 인어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겁니다. 그 슬픈 눈을 보면 입맛이 싹 가실 수 있어요. 인어의 눈알은 디저트로 먹어야 제 맛이죠. 입안에서 굴리다가 어금니로 두둑 터뜨리면 미더덕처럼 짠물을 쭉 빼지요.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인어의 꼬리를 드시는 법입니다. 살아있는 채로 회를 뜨니까 간혹 고통에 파닥거리는 지느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때 입안에 침이 확 고이지요. 싱싱한 살 한 점을 피와 눈물로 숙성시켜 만든 소스에 찍어 비명을 살짝 얹어 씹으면… 아, 이제 벌어진 입을 다무세요.
포장을 원하시면 미리 말씀하세요. 성대를 제거해야 하거든요. 목소리를 잃은 인어들은 대신 미끈한 다리를 얻지요. 요즘은 저렴한 보급형 인어가 베트남에서 많이 들어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싸 가신 것은 익히지 말고 날로 드세요. 손님. 그럼, 맛있게 드세요.
*시각이 배제된 상태에서 후각과 미각 때로는 촉각에 의존해 순수한 음식의 맛과 재료를 음미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영업하는 식당.
파티에 맞는 얼굴을 팝니다
턱 선이 날렵한 당신. 수술자국은 턱 안쪽에 있어 안전합니다.
1번 김태희
2번 황신혜
3번 송혜교…
2번을 선택한 당신. 2번 얼굴이 after와 before를 비교하며 거울 앞에서 잠시 고민하는 것을 들여다봅니다. 꺼져있던 이마가 볼록, 주걱턱과 튀어나온 앞니는 사라졌습니다. 완벽한 황신혜입니다. 저절로 입꼬리가 귀밑까지 올라갑니다. 순간, 웃음까지 꿰매버린 의사를 어금니로 질근 씹어봅니다.
오늘밤 book party를 위해 차라리 1번 김태희가 될 걸 그랬다고 잠시 후회합니다. 가벼운 머리에 톱밥을 꾹꾹 채워 넣는 당신. 뽕으로 빈 머리를 채우는 일이 지겹다고 진저리를 칩니다. 그래도 파티에는 황신혜가 더 낫다고 위로합니다. 약간 유행이 지난 얼굴이지만 조명아래서는 조각 같은 얼굴이 더 빛납니다. 지퍼를 닫자 기브스 한 듯 목이 빳빳해집니다. 앞가슴이 파인 이브닝드레스를 입으며 두 개의 식염수 덩어리가 두근거립니다. 변신완료!
한 블록을 걸어가는 동안 벌써 세 명의 황신혜를 만났습니다. 유사품의 범람이 늘 문제입니다.
거미의 날개
날개옷은 뱃속에 있다. 투명한 그의 날개. 아무도 그가 공중에 떠있는 일을 비상이라 부르지 않는다. 새 날개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그의 비행은 썩어버린 기둥사이에 몸을 거는 것.
지난 밤 달은 잔뜩 알을 슬었다. 밤새 묵직해진 날개. 아침이 돋고 부화를 시작하는 이슬알. 그가 공중에 매단 날개에서 하루가 부화한다.
꽁무니로 낳는 날개옷. 오늘도 처마 끝에 날개 한 벌을 내다건다. 올 하나를 풀자 바람이 끈적한 날개의 앞섶을 만지고 간 후, 햇살로 뼈대를 세우고 서풍을 팽팽히 당긴다. 개망초의 목을 잡고 시계방향으로 몸을 푼다. 그가 길들인 허공이 날개 한 올을 기와에 얹어준다. 그럴 때면 풍경소리가, 출렁, 튕겨나간다.
얇게 저며진 까치울음이 날개옷 사이를 빠져나가는 사이, 배를 날개에 바짝 붙이고 하늬바람에서 샛바람으로 갈아탄다. 손바닥만 한 그의 비행, 지루한 한낮의 풍경 한 장.
들쥐가 쪼르르 달려가고, 앞질러가는 도둑고양이. 우거진 잡풀사이 허름한 발자국이 길 한 올을 끌며 땅거미를 몰고 온다. 켜켜이 접혔던 정적을 헤집고 기울어진 문이 삐걱, 한때 그 집의 주인이었던 사내가 빈집을 들어선다. 순간, 집 한 채가 긴장한다.
밤을 주세요
둥근 알약이 떴어요. 나는 해를 한 알 마셔요. 물 한 컵에 갑자기 세상이 환해지죠. 한 알의 태양을 삼키는 순간 내 머리에 하루가 켜져요. 빛 한 점 뜨지 않는 날, 나는 커튼 뒤에 숨어요. 하루 전의 나를 드래그하고 복사해줘요. 내가 간절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뜨거운 기운에 의지하는 일. 휘발성 강한 하루에 나는 중독되었어요.
오늘밤은 반쪽짜리 잠이 처방되었군요. 상현이든 하현이든 토막잠이기는 매 한가지. 한 달에 한 번만 온전한 한 알을 삼킬 수 있지요. 들쑥날쑥한 조제법이 나를 지배해요. 별빛을 탈탈 털어 삼키지요. 저녁과 낮이 동시에 처방되었군요.
언제부턴가 한 알, 두 알, 세 알, 네 알…… 밤이 끝나지 않아요.
무중력의 안쪽으로 나를 조금만 밀어주세요. 해가 두 번 뜨는 행성으로 나를 데려가주세요. 내게 많은 밤과 많은 꿈을 처방해 주세요. 아홉 개의 행성 사이 불안한 처방전이 흘러 다녀요.
최근발표작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