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魏--) 범수(范睡)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부하(部下)로 있을 때
제나라(齊--)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억울(抑鬱)한 누명(陋名)을 쓰고
수가(須賈)의 미움을 사서 죽을 처지(處地)에 있었다.
범수(范睡)는 옥(獄)에 갇히었으나
간신히 탈옥(脫獄)에 성공(成功)했다.
그리고 마침 위나라(魏--)를 왔다가 돌아가는
진나라(秦--) 사신(使臣) 왕계(王季)의 도움을 받아
장록(張祿)이란 이름으로
진나라(秦--)에 망명(亡命)을 하게 되었다.
왕계(王稽)는 진나라(秦--) 왕(王)에게
「위나라(魏--) 장록(張祿) 선생(先生)이란 사람은 천하(天下)에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진나라(秦--)의 정세(情勢)는
지금 달걀을 쌓아 놓은 것보다 위태(危殆)롭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나라(秦--)가 자기(自己)를 받아들인다면
진나라(秦--)는 평안(平安)을 유지(維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內容)을 알릴 길이 없다기에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여 범수(范睡)는
진나라(秦--) 왕(王)에게 대외정책(對外政策)을 진언(盡言)하는 등
크게 활약(活躍)하고 공(功)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