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미리 가계(家系) 여주이씨(驪州李氏) 그 역사의 바코드
세종대왕께서 적자(適子) 양녕대군의 따님, 즉 사랑스런 질녀를 우리 여주이씨
11세(世) 돈녕공(敦寧公) 자(孜)의 배위(配位)로 특명하여 재령군주(載寧郡主)로
삼았으며, 고려
충절(忠節)의 표상(表象)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집안에서도
그분의 증손녀를 우리 여주이씨(驪州李氏) 집안에 시집 보냈고,
영상(領相) 학역재(學易齋) 정인지(鄭麟趾)가 여주이씨 며느리를 보았으며,
세조(世祖)의 장자방(張子房)인 한명회(韓明澮)가 우리 이문(李門)의 외손이며,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손녀와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증손녀가
우리 여주이씨 집안으로 시집 왔으며,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사위와
실학(實學)의 태두(泰斗)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의 어머님이 우리 여주이씨란
사실이 “여주이씨 세보(驪州李氏 世譜)”에 나타나 있다.
이는 조선조 최상류의 혼맥(婚脈)이자 로열페미리 가계도(家系圖)인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 실학의 대가들이 한 핏줄임을 세보는 묵묵히 말해주고 있는데,
선비정신으로 무장해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우리 이문의 뿌리는 바로 이 나라
역사의 중심적 바코드임에 틀림이 없다.
반계는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아버님이신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매산(梅山)
이하진(李夏鎭)과 학문을 교류했는데, 성호의 증조부 이지완(李志完)의 따님이
반계의 어머님이시니, 반계와 성호는 내재종간(內再從間-6촌)이다.
한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우리 여주이씨인 금대(錦帶) 이가환(李家煥)의
외삼촌인 매형 이승훈(李昇薰), 맏형의 처남인 광암(曠庵) 이벽(李檗-최초 천주교 신자)
등과 함께 천주학을 공부했으며, 다산은 실학의 중조(中祖)인 성호 이익의
학문을 사숙하면서 “百世師-백세의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다짐하셨다.
다산은 성호를 조종(祖宗)으로 하는 성호학파와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등의 북학파와 폭 넓은 교류를 통해 조선 후기의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이자
진보적 개혁 사상가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관향인 덕수이씨(德水李氏) 시조(始祖)의
배위(配位)가 또한 우리 여주이씨란 사실을 아시는 분은 다 알고 계신다.
현대에 와서 오산(五山) 학교 설립자며 독립운동가 남강(南崗) 이승훈(李昇薰) 집안의
역사학자 이기백(李基白) 교수, 밀양 족문(族門)의 역사학자 이우성(李佑成) 교수는
우리 한국사(韓國史)의 최고 권위자이며, 두 분 문하의 제자들은 좌. 우 양 진영을
막론하고 현대 이 나라 정치, 사회, 언론, 학계 등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어사 박문수(朴文秀)와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관향인 고령박씨
(高靈朴氏) 중시조의 손부(孫婦: 손자 박세영-朴世英의 배위)가 우리 여주이씨(통합 還貫
이전에 일부 사용했던 고령이씨)이며, 현 이명박(李明博) 대통령 취임 직후
그의 증조모가 여주이씨 경주 여강파(慶州 驪江派)란 사실도 언론에 보도 되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그런데 누락된 분이 엄청 많으신데요..
예, 그렇겠지요.
누락 되신 분들
잘 정리하여 게재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
잘 알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