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학교에서 뮤지컬을 보러갔다. 우리 선배중에 뮤지컬 기획하는 사람이 있어서 홍보때문인지 우리에게
'카르멘'이란 뮤지컬을 VIP석에서 공짜로 볼 수 있게 배려를 해줬다. 친한 동생과 나는 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처음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나와 그 동생은 특별히 동아리 활동이나 소모임에도 참석을 안해서
학교 다니기 참 각박하다고 생각해서 둘이서 의지하며 살기로 도원결의는 아닐지라도 교정을 거닐며 맹세했었다.
요즘은 출석부도 제대로 안나오고 해서 수업도 제대로 안해서 너무 일찍 끝나니 시간이 붕떠버려서
7시까지 정동의 문화일보홀까지 가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동생들은 다 서울 사는데
나는 서울에 연고도 없고 잠깐 보자고 하면 비오는데 미쳤냐고 인연을 끊자고 할 것 같고...... 그래서 밤새 알바를 해서
눈이 퀭해 있는 엽기동생을 데리고 교보문고에 갔었다. 나,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만 살고 처음에 고등학교 때
동인천 처음 나가보고 어지러웠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서울에서 약속을 정하고나 놀 일이 없었다. 그래서 교보문고가 초행이었다.
맨날 베스트셀러 소개할 때 잠깐 나오는 그곳만이 교보문고가 아니었다.
신세계 백화점 영풍문고도 참 크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건 댈 것도 아니었다. 서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좀 더 양질의 문화공간이 있다는 것에 서울애들에 대한 부러움을 다시금 느꼈다.
그래서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암튼 모르는 길, 갓 상경한 순이처럼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두리번 찾아보니 문화일보홀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노숙자처럼 쓰러지러는 엽기동생을 간신히 달래고 우리반 과대를 만나서 표를 받았는데
맨 앞줄은 앞줄인데 구석탱이었다. 스피커 바로 앞이었다. 그래도 뮤지컬이 시작하니 앞에 거슬리는 것도 없고
1부가 끝나고 가운데로 옮겼으니 이래저래 잘 된 것이다.
연극의 출연자들은 단 한 사람뿐이 알 수 없었다. 채국희라고 채시라 동생으로 CF도 찍고 그런 여잔데 워낙 채시라가 예뻐서
동생은 언니만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등장한 그녀는 너무나도 멋졌다. 빨간색 꽃과 빨간 드레스,
폭파인 드레스로 살짝 드러난 가슴과 남자를 유혹할 때 치마폭을 들어 보이는 긴다리-난 변태 아니다. 여잔걸...-
정말 정열적인 카르멘의 모습이었다. 목소리도 멋지고 나중에 눈물을 흩트리며 홀로 춤을 출때는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그중 미카엘라라고 카르멘의 연인 돈호세의 전 애인으로 나오는 여자가 있는데 이름이 김/선/미 였다.
역시 김선미들은 목소리가 예쁘고 노래를 잘 하는가보다. ㅋㅋㅋ
남자들은 또 어떻고? 돈호세로 나오는 남자는 정말 멋진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연극인 아니고 일반인 대 일반인으로 만나고 싶었다.
에스까미오로 나온 남자는 유준상 닮았는데 분위기를 살려주는 역할이었다. 목소리도 멋지고 얼굴도 되게 쪼그맸다.
대체적으로 다 그랬다. 내가 바로 앞에서 봤는데 다 주먹만했다.
그리고 이게 '캣츠'나 '렌트' 이런 것처럼 외국의 원작 공연을 해석해서 한 것이 아니라 오페라 '카르멘'과 소설 '카르멘'을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만든 창작 뮤지컬인 것이다. 한층 높아진 우리 뮤지컬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으며 노래는 별로겠지
했는데 노래도 다 훌륭했다.
뮤지컬을 감동적으로 보고 난 후 사인회를 한다기에 냉큼 줄을 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인을 받는 거였다.
그동안 줄서는 거 귀찮아서 어렸을 때도 사인같은 건 안 받았었다. 4명 중 한 명한테 받아야 한다면 누구한테 받지?
라고 고민을 했는데 네명한테 차례로 다 받는 거였다. 물론 그 많은 사람들 일일이 다 싸인을 해주려면 힘들고 짜증이 났겠지만
그들은 웃는 얼굴로 그리고 때로는 얘기도 해가며 싸인을 해줬다.
내가 첫 사인을 받은 사람은 미카엘라로 나온 김선미인데 이름을 묻길래 "저도 김선미예요. 성도 이름도 똑같아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에스까미오에게 "이분도 김선미래." 이러며 무지 반가워 했다. 그러며 사인하며 특별히 "반가워요."
라고 써줬다. "착할 선에 아름다울 미예요?"라고 다른 김선미가 물었다. "네, 저도 그 한자 써요."
그녀와 동질감을 느끼며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살짝 결심했다. 다른 김선미들이 이름을 드날리고 있듯이
나도 언젠가 내 이름 석자를 내 분야에 드날릴 날이 올거라고......
에스까미오와 돈 호세에게는 와락 안길까 생각도 해봤지만 혹시 사복경찰이라도 있을까봐 자제했다.
4명한테 다 '저도 김선미예요.'라고 돌아다녔더니 마지막으로 돈호세가 '오 그래요? 오 미까엘~라.'라며 익살을 부렸다.
너무 행복했다. 금새 덮으면 사인이 번질까봐 들고 호호 불고 다녔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면 정말 이래서 좋다.
아무리 재밌는 영화를 봐도 배우의 침튀기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날리는 먼지를 마셔보는 연극, 뮤지컬을 보는 재미에
비할게 못된다. 20배는 더 재밌는 것 같다.
인천까지 돌아오는 길은 너무 힘들지만 좋은 연극, 공연을 볼 수 있다면 뭔들 마다하랴......
내 친구들은 이런거 귀찮아서 이러고 돌아다니는 나를 특이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기회만 있으면 열심히 다니련다.
잘 관람한 공연하나 열 남자친구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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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첫댓글 너무 재밌었겠다.. 나도 레미제라블 공연을 봤을때 그 푸른눈의 마리우스랑 눈이 마주친순간 사랑에 빠져서 한동안 자리를 못뜨고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것에 한을 품었었는데...결혼을 했다고 한다..ㅠㅠ 가슴아픈 기억이 문득 나면서 ..담에 뮤지컬 같이 보자...알았지...약속..^^
우리 담엔 '토요일밤에 열기'보러갈까? 거기 남자 주인공도 신인인데 큭큭큭~~~ 아주 쌈박하더라고...... 남자를 보기위해 공연을 보는 건 아니지만 뉴페이스를 찾는다는건 아주 즐거운 일이야 그치? 내가 건명오빠를 찾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