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이번 후반기(8월)에 출판될 종보에 투고한 내용이다.
과학기술이 나라를 살린다. (延李敎授 6인회 소개)
판사공파 29세손 李時雨
포항공대 교수 (1986-2015)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공대설립 초대학장, 2016-2022)
延李敎授 6인회는 2018년 겨울쯤인가 첫 모임을 갖게 되었다. 서울공대에서 화학공학(응용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에 교수로 있는 연안이씨의 모임으로 사진 앞열 중앙에 계신 이화영 교수님의 제안으로 구성되었다. 뒷열 좌측의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 교수님, 중앙에 고려대 이관영 교수님, 우측에 서울공대 화학생물공학부 이윤우 교수님, 앞열 좌측에 본인, 그리고 우측에 서울공대 화학생물공학부 이정학 교수님 등 6인이다. 이화영 교수님과 이관영 교수님은 月沙公(월사, 李廷龜) 자손, 나와 이정학 교수는 동기로 충정공 (忠定公, 묵재 默齋, 李貴)의 자손이다.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이상엽 교수님은 부사공파이고 나머지 5인은 판사공파이며 세종~성종 연간의 명신 연성부원군 저헌공(樗軒, 이석형)의 후손이다. 아래 가계도에서 보면 이윤우 교수님은 이기의 동생 이징(가주공)의 후손이고 이정학 교수님은 연평부원군의 아들 판관공 이시응의 후손이다. 본인은 연평부원군 충정공(忠定公)의 삼남인 연성부원군 충정공(忠靖公, 서봉 西峯, 이시방)의 4남 안분재공(安分齋公, 이준)의 후손이다. 이화영 교수님은 月沙公의 후손으로 특히 사도세자의 사건과 관련된 삼정승 중 영의정 진암공(晉庵公, 李天輔)의 직계 후손이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사도세자의 평양 원유 사건에 대하여 영조가 그 진위를 확인하는 하문을 하자 사실을 고하면 세자를 해치게 되고 거짓을 고하면 불충이 되는 난감한 상황에서 3정승이 순차로 자결하는 것으로 하문의 대답을 대신하였다 한다. 그 당시 좌의정으로 있었던 貞翼公(정익공, 이후)도 함께 자결하여 연안이씨의 충절과 책임 의식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정익공은 영의정 연양부원군(조암, 이시백)의 5대손이다.
본인의 15대조 연평부원군 충정공께서는 아들과 조카 등 가솔들을 모두 참여시키면서 인조반정을 주도하고 반정 후 국정을 안정적으로 정상화한 인물로서 정사공신 1등으로 책훈되셨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겪고 온 나라가 피폐해진 상황에서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고 만주족의 침략을 예견하여 국방 강화에 온 힘을 기울이면서 미래에 닥쳐올 환란을 대비하고 희망찬 새 나라를 만들고자 노심초사하였는데 공의 이와 같은 노력은 이충정공장소 300여 편, 이충정공비어방략, 묵재일기 등의 자료로 남아 있어 당시 시대 상황을 연구하는 중요자료로 평가되고 있다(참고, 묵재 이귀의 경세와 개혁사상, 2025, 도서출판 문진). 공이 서거한 후 3년이 지나 병자호란 때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인조는 평소에 공의 상소를 가볍게 본 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한 우리 선조들의 폐정계혁(弊政改革)의 의지는 국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속되었다. 충정공의 호패법 시행, 그의 장남 청백리 연양부원군 충익공(조암, 이시백)과 삼남 연성부원군 충정공(서봉, 이시방)의 대동법 시행 등은 3부자가 국정의 중심에서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고 백성들의 안정적인 삶을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이 모두가 그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미래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 것을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안분재공의 12대 종손이신 큰아버지(李鐸)는 3.1운동 전에 태어나셔서 서당교육을 받으시고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평생을 공주 검상동 선영과 조상님들 제사를 모시며 사셨다.
주변 가계도
부친(大安公 李銓)은 차남으로 집안에서 현대식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학교 교육을 받게 되어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셨다. 나는 부친의 교육과 지도 덕으로 역시 서울공대를 졸업하였다. 1970년에 공대에 입학했을 때 우리나라는 100억 불 수출에 개인 소득 천불 시대를 열자고 산업화에 열중하던 때였다. 당시 용산에서 출발하는 경춘선 신공덕역 근처에 있었던 서울공대는 나라의 살림이 궁핍하여 조선총독부라고 새겨진 화학천칭을 실험실에서 쓰고 있었고 열악한 우리의 대학에 비추어, 공부하려면 해외 유학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설립된 카이스트 2기 생으로 졸업한 나는 병역의 의무를 마친 후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이라 하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MIT에 유학하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인재가 모여든 대학에서 문화적인 충격과 치열한 경쟁 속에 학위를 마친 나는 제철보국(製鐵保國)에서 시작하여 인재보국(人材保國)을 천명하며 포스코가 설립한 포항공대에 부임하였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경쟁력이 높은 제철소 포스코는 많은 돈을 벌었고 지방에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을 세워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인재를 양성하여 국가의 은혜(포스코 설립에 대일청구권 자금이 투입되었음)에 보답하겠다는 철학으로 대학을 세운 것이다. 30여 년간 포항공대에서 70여 명의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유학하며 배운 정보기술 분야(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에너지 분야(태양전지 등)에 쓰이는 하드웨어 관련 소재, 화학공정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몰두하였다. 70여 명의 제자들은 학계, 연구소, 기업체에서 열심히 활약하고 있으며 그중 한 명은 작년 말에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표이사가 되어 회사는 물론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산업협회를 이끌어 가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물리치고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함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 포항공대를 퇴임할 즈음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공과대학을 신설할 계획으로 포항공대에 협조를 요청해 와 나는 초대 학장으로 초빙이 되어 공대 설립에 참여하게 되었다. 숙명여자대학교는 1906년에 나라의 여성들을 교육한다는 목표로 조선황실에서 세운 명신여학교로 출발하여 내년에 설립 120주년을 맞는다.
이공계 인재의 양성은 국가의 중요한 사안이며 인구가 줄어들고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여성 공학도의 양성이 중요해졌다. 30여 년 전 이화여대와 숙명여대에 공과대학을 세우라고 정부가 제안하였으나 숙명여대는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6년에 설립된 숙명여대 공대는 설립 당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건물도 짓고 400여 명의 학생을 매년 받아 교육하는 공과대학으로 급성장하였으며 신생공대의 틀을 만들고 교수도 충원하는 등 이에 기여하게 되었다. 참고로 숙대에는 여대 처음으로 ROTC(학군단)가 설립되었고 몇 년 전에는 공군학생군사교육단도 창설되었다. 이제 국방도 그 짐을 같이 져야 하는 상황이다. 조상님들이 조선왕조에서 녹봉을 받아 가며 헌신하신 것을 생각하면 민족의 사학이라는 숙명여대에서 6년 봉직한 것도 보람이라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상 첫 번째 산업혁명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위대한 물리학자인 뉴턴의 운동법칙에서 시작하여 석탄과 철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증기기관의 발명이 그 촉진제가 되었다. 물을 끓여 작동하는 증기기관은 기차와 기선의 발명으로 교통 혁명을 일으켰으며 기계를 이용한 제품의 생산은 대량생산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두 번째 산업혁명은 1870년 무렵에 시작하였다. 석유 등의 액체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내연기관의 발명으로 자동차, 비행기 등이 출현하였으며 전기의 발명으로 또 한 번의 혁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학문이 발전되면서 반도체 소자가 탄생하였고 1970년대부터 시작된 세 번째 산업혁명에서는 PC, 휴대폰 등 정보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을 이용하며 여러 산업이 태동하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기억하는 부분과 사물을 판단하는 부분이 있고 시각, 청각 등 5감을 느끼는 각종 센서, 배우고 판단하는 지능을 갖고 있다. 인공지능은 반도체 소자를 활용하여 인간의 지능을 보완 내지는 대신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인간의 두뇌와 같이 정보를 기억하는 기억소자,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해 주는 시스템 반도체 소자가 있다. 우리나라는 기억소자 분야에 있어서 세계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다. 반면에 대만의 TSMC는 휴대폰 등에 필요한 시스템 반도체의 60% 이상을 독점 생산하는 회사이다. 한마디로 대만과 한국이 없다면 정보전자 제품을 제대로 만들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술 패권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테크노폴리티컬(technopolitical) 지도가 언론상에 보도되었다. 1950년 미국의 서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되었던 우리나라. 당시 우리나라를 둘러싼 지정학적(geopolitical) 구도를 보면 중국, 러시아, 일본이 대치하는 현실에서 미국이 우리나라를 그들의 방위선 바깥으로 배치함으로써 북의 공산 세력이 중국, 러시아와 연합하여 남을 침범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였다. 현재의 방위선은 반도체 소자의 기술적, 경제적 비중이 중요하여 자유세계가 이를 반영하여 그은 것을 나타낸다.
대만 국민은 그들의 TSMC 반도체 회사가 호국신산(護國神山), 즉 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 부를 정도로 국가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고 중국 공산주의의 침략을 막아줄 것으로 믿고 있다. 과학기술 외교가 강대국의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패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이제 메모리 반도체보다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휴대폰의 AP(application processor), PC의 CPU, GPU에 이어 자동차 반도체(자율주행), 로봇용 반도체(physical AI), AI server 용 반도체 등 새로운 기술과 시장이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에 대비해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 산업단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전 국토가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 이차 전지, 방산, 조선, 원자력 발전 등 산업단지로 변모하고 동시에 문화강국이 된다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통일 조국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는다. 세상에 나와 보니 대한민국 국민이요, 연안이씨요, 또 어떤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안다는 것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문중을 위해 결국은 나라를 위해 세계를 위해 어떠한 기여를 하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현재의 세계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과거 조상님들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는데 이제 우리에게는 그 길이 훨씬 많고 넓어졌다. 연안이씨 교수 6인회는 산업 일꾼을 양성하는 데 평생을 바쳐왔으며 이제 문중의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과학기술이 나라를 구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아래 사진은 포항공대에 만들어진 좌대로 미래에 한국 과학자상을 올려놓기 위해 미리 만들어진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