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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ano 섬에서의 결혼식Anne Kim ( 김아자 )
결혼은 성숙한 남녀가 부부관게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으로 결혼식, 혼례식 혹은 화촉지전이라 한다. 결혼식에는 현대혼례 와 전통 혼례식이 있다. 전통혼례는 사모관대를 한 신랑과 원삼 쪽두리를 한 신부가 신부집 마당에서 예식을 치르었다. 육이오 사변이후 서양물이 급 격 히 들어오면서 흰 치마 저고리에 면사포를 썼던것이 신랑은 양복(턱시도) 신부는 흰드레스에 면사포를 쓰고 혼례를 치루는 수입문화가 우리의 생활이 되고 문화가 되었다 . 얼마전 지난 대통령 아들이 결혼할때 축의금이 백억이 넘게 들어 왔 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렇게 축하객이 얼마나 많이 오 고 축의금이 얼마나 들어왔느냐에 그 집안의 가치와 지위를 따지는것이다. 요즈음은 한국에서 친구 하객들을 모으는 하객알바도 있다고 한다. 식에 참석하고 밥도 먹고 3만원을 받는....
어느날 KBS 아침마당프로 에서 여자 성우는 결혼 씨즌이 되면 누가 결혼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성우 List을 보고 청첩장이 오는 웃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니 이런 풍습은 고쳐져야 되고 부주도 여간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 란다. 축의금을 부주라고도 한다. 부주는 부조에서 온 말이다. 부조는 사전을 찾아보니 1. 남을 도와줌 2.잔치집이나 상가등에 물건 이나 돈을 보내는 것이라고 써 있다.
8월 어느날에 결혼식을 Galiano섬에서 한다는것이다. 이 섬은 빅토리아 섬으로 가기 전에 위치해 있는 작으마한 섬이다. 우선 간다고 약속을 하기 보다는 많은것이 석연치 않았다 . 누가 올것이면 식은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니까 신부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하는 말이 신랑 신부 둘이서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신랑집이 St .Catherine(온타리오주의 한 도시)인데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모든 식구 그리고 친척 들이 참석하러 이곳으로 온다는것이다. 신부에게 이메일로 이것저것 궁금함을 묻고 싶으나 실례가 될것 같아 캐빈과 훼리만을 예약하고 주중이라 나는 휴가를 받았다 .그동안 지도를 펴 놓고 그 섬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인터냇에서 나 다름데로 찾았다. .
우린 첫 훼리를 타기위해 새벽 부터 법석 을 하고 결혼식에 가서 입을 옷이랑 또 저녁 준비를 맡았기 때문에 짐이 그런데로 많았다..Tsawwassen에 설래는 마음으로 훼리 터미날에 가서 기다리는동안 결혼식에 가는 신부 신랑 그리고 하객들을 만나게 되엇다. 휴가가는 기분으로 훼리를 타고 꼬불거리는 시골길을 달려 섬 끝꼬리 어느 리조트에 도착을 했다.
그곳에는 일곱 채의그런데로 큰 집 이 여기 저기 있었다 . Main Cabin 에는 운치 있는 통나무로 지어져 있고 우리가 거처할 캐빈의 번호를 받아 가지고 찾아와 보니 역시 이집도 통나무 집으로 농가의 Barn (광)같 은 스타일였고 지은지 몇십년이 된듯하나 깨끗하게 고쳐져있고 베란다 에는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 더 신기한것은 집 모퉁 이에 키위나무에 키위가 주렁 주렁 달려 있는것이 열대 지방에 온 기분이고 신록이 풍요롭고 평화스러운것이 어느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아래층은 거실과 부엌 ,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고 좀 삐걱거리는 층계를 오르면 이층에는 방이 세개와 화장실이 있었다. 이 캐빈은 신부 의 연노하신 양할머니 할아버지 , 우리 내외 , 뉴욕에서 온 신부의 이웃 사촌 언니 , 신부엄마 그리고 동생이 사용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리고 식품들을 실은 차들이 빈번히 들이 닥쳤다. 저녁이라고 전갈이 와서 메인 캐빈에 가니 넓직한 홀이 그새 예쁘게 단장이 되어 있었고 테이불마다 이름표와 앙징스러운 야생초꽃들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은 신랑 엄마와 이모가 요리한 샐몬(연어) 디너로 감칠 맛있는 영국 과 불란서 식의 메인 코스인데 감자, 채소 샐러드 그리고 디져트로는 각종 케익과 차 로 깔끔하고 푸짐하게 차려 놓았다. 나는 양배추 샐러드가 아주 맛있게 먹다가 문득 내일 저녁을 우리가 준비를 해야 했으므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저녁이 끝나고 캐빈옆에 작으마한 연못가 에는 촛불들이 손들을 잡고 황홀하게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결혼식 전야제이었다. 우린 서로 만남의 인사를 했다 신랑의 이모 ,삼촌들 사촌들 그리고 친구들이 었고 할아버지 는 내일 첫 훼리로 오신다는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왜 섬에서 결혼식을 할려고 한 의도를 알게 되었다. 결혼식겸 오래만에 친척들이 만나는 Reunion이 었다. 나는 갸우둥하던 것이 이제 하나 하나 풀리고 역시 계획과 목적을 하고 사는 젊은이 들이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다음날 아침은 신부 신랑 의 친구들이 양식으로 간단하게 아침 를 준비 했고 늘 뒷 처리는 그들이 했다. 결혼식에 초청이 된 하객들이 아침이 되자 모여 들고 있었다. 결혼식에 가기 위해 메인 캐빈 과 여러캐빈을 지나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통나무 의자가 있었고 친구들이 아늑하게 결혼식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 산등성이 아래서 신랑과 신부가 다정히 손을 잡고 정답게 걸어 오는 그 모습은 하나의 그림 같았다.얼마후 신부는 칼라꽃부케를 들고 심풀 한 흰드레스에 숄을 걸치었고 신랑은 말끔한 양복 차림이었다. 그들은 하객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인사을 하고 더 높은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식을 하는 그 곳에는 신랑 부모님 , 신부엄마와 동생 , 주례와 증인이 될 사람만이 참석을 했다. 얼마후 결혼식이 끝나고 모두 내려와서 사진을 찍고 축하를 하고는 산등성을 내려오는 길에는 저 멀리 태평양 바다와 하늘이 더 파아랗게 넓게 보이고 여기 저기 산새 들이 지저귀고 들섶에 꽃들도 마냥 반기고 있었다. .연못옆 등나무 밑에 칵텔 파티가 준비 되어 있었고 캐터링한 시후드(Seafood) 었다.하객들은 한 50여명었다.
우린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바베큐 , 김치 ,김밥. 캘리포니아롤, 유부 초밥 그리고 미소 슾과 과일 이었다. 이 메뉴는 백인신랑 과 1.5세 신부의 요청이었다. 특히 1.5세 신부와 카나디언인 신랑은 한국 음식을 했으면 하는 부탁에 시간도 그렇고 여름철이고 해서 바베큐로 마련했다. 안심으로 도톰하게 썰어서 양념을 한 고기를 굽는 그 냄새는 축제분위기와 시장기를 돗구는것 같았다. 식사후 홀에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천정에 줄줄이 달려 있었던 카드를 하나씩 신부와 신랑이 읽기 시작 했다.
그 카드는 부모님 친척 그리고 하객들의 글이 었다. 그 글을 읽을때 마다 신랑 신부 어렸을때의 모습, 품성 그리고 학창시절, 연애시절의 모습들이 눈에 선하고 필림처럼 지나 갔다. 신부 아빠 없은 자리에 안스러운 마음 그리고 힘들었던 그녀의 십대시절, 이곳의 양할아버지 할머니의 극진한 사랑의 돌봐주심을 눈물로 답하는 그 모습은 우리를 울리고 말았다. 가족 친지 그리고 친구들의 유모있는 글에 배를 잡기도 했다. 예술적인 집안인 신랑의 가족은 성악가삼촌의 축가를 시인은 자작시로 연극인은 연극으로 신랑 신부 그리고 하객을 즐겁게 해 주었다. 신부의 엄마의 능란한 피아노 솜씨는 그날에 파티의 휘날래를 장식하고 모든 사람을 흥겨움에 감돌게 했다..
신부엄마는 한국교회식구들을 다 초청을 못했다고 집에 돌아온 후 어느 중국집 레스트랑에서 모두를 초청을 해 신부와 신랑을 소개하고 서로의 축하도 받고 나누었다. 세상이 이렇게 많이 변했다 .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카나다에 젊은이 들은 1900년도 통색적이고 수입한 문화에 한국적인 강박하고 고정관념으로 살고 있지 않다. 이곳에서 낳고 자란 자녀들은 생긴 모습이 한국인이지만 사는 문화가 다르다. 그들은 그들 시대에 맞게 살고 있다. 결혼식도 당사자들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양쪽 가족과 한 두명의 친한 친구랑 하와이로 아니면 어느섬으로 가고 싶은곳에 가서 그들만에 오붓하고 행복한 시간을 갖고 멀리 떠나지 않터라도 분수에 맞은 장소와 그들 취향에 이벤트를 만든다. 결혼식의 옷도 꼭 면사포를 써야 한다는 규정는 없다 안 썼다고 하객이 적게 왔다고 흉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객도 당사자들의 친분이 있는 사람 부모와 친한 사람들을 초청을 해서 오게 되고 당사자들이 모르는 초청객이 그리고 초청하지 않은 객이 오는것은 퍽 실례가 된다. 신부에게 선물도 Bridal Shower 라 해서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피티를 해줄때 가지고 오고 신부 신랑에 이름으로 Wedding Registry라고 당사자들이 마음에 드는 백화점에 Registry 을 해 놓으면 축하객은 거기 가서 목록을 보고 자기에 분수에 맞게 선물을 해 주고 싶은 것을 골라서 사 주고 또 그것을 하지 못한 하객은 선물이나 금전을 피로연에 가지고 오기도 한다.
얼마전 이곳에서 낳고 자란 딸의 결혼식을 하고 나서 한국적인 관념의 결혼식이 아닌 식을 끝낸 엄마은 한국에서 온 친척들에게 그리고 주위에 친분있은 분들에게 볼 낯이 없은 그 아프고 초췌한 마음을 친구에게 울고 호소했다는것이 글이 되어 신문에 난 것을 읽었다. 그 글에는 하나의 설교도 첨부 되어 있었다. “ 앞으로 결혼을 앞둔 모든 신랑 신부님들은 의논을 하여 결정하는 어머니와 또는 가족과 대화하며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는 부탁의 말도 있었다. 꼭 교회에서, 성당에서, 절 그리고 예식장에서 식을 해야하고 면사포를 써야 하고 온 동네을 다 초대해야 한다는 법규도 기준도 없지 않는가? 결혼식은 어떤식, 어떤방법으로 어디서 하든 어떤 옷을 입던 어떤 음식으로 대접을 하든 그것은 당사자들에 취향, 그들만의 행복한 행사 그리고 추억이 아닐까? 남을 보이기 위해서 하객을 동원하고 빚은 내서 예단을 하고 부담스런 예식을 해야 하는지는 그들 의 결정을 준중해야 하지 않을까?
Galiano Island에서 아름답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축복속에 결혼식은 아주 개성있고 화려하고 흐믓하고 서로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 넓고 파아란 하늘에 구름은 덩다라 둥실거리며 춤을추고 들꽃들과 새들이 여기 저기서 다소곳이 속삭여 주고 있다. 바닷가에는 철썩이면 밀려오고 밀려가고 모래사장에 나는 이렇게 썼다. " Sherry
와 Jay의 결혼을 축하 하면서 생에 늘 하나님의 가호와 무한한 축복이 있기를"........
첫댓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