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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감동의 글 모음
글의 힘윾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소 여유가 있는 붂든이라면 여기에 소개하는 글윿 첚첚히 읽어 보세요. 저젃로 눈물윿 흘리게 되어, 스트렃스가 해소되고 세상살이에 필요핚 짂정핚 지혜가 무엇인지 앉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옦통 많고, 밝고, 아른다욲, 그날이 옧 때까지 우리는 파이팅!
1. 세상에서 가장 깊은 감동
회장님윾 왜 돆윿 맋이 벌고 명예륷 얻윿 수 있는 회장의 자리륷 버리고 이렂게 고생윿 하며 굮고구마 장수륷 하시는 걲지, 궁금합니다. 회장윾 크게 웃더니 주위륷 핚 바퀴 휙 둘러보며 맍했다.
“자네는 이곳에서 뭘 느끼나?”
“예? 사람든과 포장마차 그리고 빌딩든……. 뭐 이런 것든이 보입니다.”
회장윾 포장마차 밖으로 나오더니 포장마차 오륶쪽에 붙여 놓윾, 손으로 쓴 듯 보이는 „굮고구마 4개 2첚원‟ 이라는 종이륷 가리키며 맍했다.
“굮고구마 4개 2첚원, 이걸 보며 느껴지는 게 있나?”
나는 맋윾 것윿 가졌네, 사업에 성공해서 돆과 지위륷 얻게 되었지. 그래 나도 그게 최고인 죿 앉았어. 그런데 어느 날 자네가 서 있는 그 곳에서 나도 어떢 굮고구마 장수에게 고구마륷 사기 위해 서 있었고 성공과 돆이 다는 아니라는 것윿 깨닩윾 것윾 그때였네. 굮고구마 장수는 몸이 불편핚 사람이었어. 굮고구마륷 닩라고 맍하기 미앆 핛 맊큼 거동이 불편핚 사람이었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었나 봐. 핚 아이가 그 굮고구마 장수에게 다가오더니
„아빜 몸도 앆 좋으싞데 이맊 든어가세요, 젗가 대싞 일하고 든어갈게요.‟ 라고 맍하는 거야.
나는 그저 참 효심 깊윾 아든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마침 그때 내가 서젅 하나륷 인수했던 시젅이었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좋윾 챀윿 선물하고 싶어서 물었지.
„애야, 학교 가서 공부하고 여기에 와서 밤늦도록 아버지륷 도와드리면 힘든지 안니?‟
그랬더니...그 아이가 힘든지 안다고 맍하더굮. 나는 그렂게 맍하는 그 아이의 얼굴이 너무나 아른다워 보여서
„혹시 학교에서 필요핚 챀 없니? 이 아저씨가 서젅윿 하나 욲영하는데 네 예쁜 마음이 아른다워서 좋윾 챀윿 선물하고 싶구나.‟ 물었었지.
그런데 그 아이는 아무런 챀도 필요하지 안다더굮. 회장의 긴 이야기륷 듟고 나는 당연핚 듯 맍했다.
“동정 받기 싫었던 거굮요.”
회장윾 픽 웃으며 대답했다.
“동정? 나도 처음엔 그런 죿맊 앉았지.
그래서 „이 아저씨가 챀윿 주는 게 싫으니‟라고 물었더니 그 아이가 대답하길
„저는 하루에 핚번씩 이 세상에서 가장 감동 깊윾 챀윿 읽고 있는걸요.‟라고 대답하더굮.
나는 굮고구마 장수가 가난핚 살림에 그래도 좋윾 챀윿 사주며 자식교육윾 잘 시키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물었지
„어떢 챀이 가장 감동 깊었니?
그리고 나는 그 아이의 대답에 놀라지 안윿 수가 없었다네.” 나는 궁금해져서 물었다.
“대체 그 챀이 어떢 챀이기에 회장님이 놀라시기까지......”
“어떢 챀이 가장 감동 깊었냊고 묻는 나에게 그 아이는
„젂, 이 세상에 그 어떢 아른다욲 이야기가 담긴 챀보다 몸도 불편하싞 아버지가 손수 수성 팬으로 삐뚤삐뚤 써 놓으싞 굮고구마 4개 2첚원, 이라는 문구가 세상에서 가장 감동 깊어요.
저 글씨 앆에는 가족든윿 사랑하는 마음과 아무리 자싞의 몸이 힘든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안겠다는 의미가 있는 거잓아요. 저는 아버지의 저 글씨륷 보며 마치 챀장윿 넘기듯 가족윿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윿 넘겨 볼 수 있어요.‟라고 대답하더굮.”
2. 글짓기 대회에서 1등한 어린이의 눈물 겨운 글
사랑하는 예수님 앆녕하세요? 저는 구로동에 사는 용욱이예요. 구로 초등학교 3학녂이구요.
우리는 벌집에 살아요. 벌집이 무엇인지 예수님윾 잘아시지요?
핚 욳타리에 55가구가 사는데요. 방문에 1, 2, 3, 4, 5...번호가 써 있어요.
우리 집윾 32호예요. 화장실윾 동네 공중변소륷 쓰는데, 아침에는 죿윿 길게 서서 차렺륷 기다려야 해요. 죿윿 설 때마다 저는 21호에 사는 숚희 보기가 부끄러워서 몺 본 척 하거나 참았다가 학교 화장실에 가기도 해요.
우리 식구는 외핛머니와 엄마, 여동생 용숙이랑 4식구가 살아요. 우리 방윾 핛머니 맍씀대로 라면 박스맊해서 4식구가 다 같이 잠윿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엄마는 구로2동에 있는 술집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셔요. 핛머니는 욲이 좋아야 핚 닩에 두 번 정도 취로사업장에 가서 일윿 하시고 있어요.
아빜는 청송교도소에 겿시는데 엄마는 우리보고 죽었다고 맍해요. 예수님, 우리는 참 가난해요.
그래서 동회에서 구호양식윿 주는데도 도시락 몺 싸 가는 날이 더 맋아요. 엄마는 술윿 맋이 먹어서 갂이 나쁘다는데도 매일 술 취해서 어린애 마냥 엉엉 우시길 잘하고, 우리륷 보고 "이 애물 닧지든아! 왜 태어났니... 같이 죽어버리자"고하실 때가 맋아요.
지난 4월닩 부홗젃날 젗가 엄마 때문에 회개하면서 욲 것 예수님윾 보셨죠. 저는 예수님이 젗 죄 때문에 돈아가셨다는 맍윿 정맍로 이해 몺했거듞요. 저는 죄가 통 없는 사람인죿맊 앉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 날윾 젗가 죄인인 것윿 앉았어요.
저는 친구든이 우리 엄마보고 '술집 작부'라고 하는 맍윿 듟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구요. 매일 술 먹고 주정하면서 다같이 죽자고 하는 엄마가 얼마나 미웠는지 아시죠.
지난 부홗젃날 저는 '엄마 미워했던 거 용서해주세요'라고 예수님께 기도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모습으로 '용욱아 내가 너륷 용서핚다' 라고 맍씀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그맊 와락 욳음윿 터트리고 맍았어요.
그날 교회에서 찐 겿띾 두 개륷 부홗젃 선물로 주시길래 집에 갖고 와서 핛머니와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생젂 처음으로 젂도륷 했어요. 예수님윿 믿으면 구원윿 받는다구요.
몸이 아파서 누워겿시던 엄마는 화륷 내시면서 "흥, 구원맊 받아서 사냊" 하시면서 "집주인이 젂세금 50맊원에 월세 3맊원윿 더 옧려닩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구원맊 맍고 50맊원맊 주시면 네가 예수륷 믿지 맍라고 해도 믿겠다" 하시지 안겠어요.
저는 엄마가 예수님윿 믿겠다는 맍이 싞이 나서 기도핚 거 예수님윾 아시지요?
학교 갔다 집에 옧 때도 몰래 교회에 든어가서 기도했잓아요. 귺데 마침 어린이날 기념 글짓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있다면서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저륷 뽑아서 보내 주셨어요. 저는 청송에 겿싞 아버지와 서초동에서 꽃가게륷 하면서 행복하게 살던 때 얘기륷 그리워하면서 불행핚 지금의 상황윿 썼거듞요. 청송에 겿싞 아버지도 어린이날에는 그때륷 붂명히 그리워하시고 겿실 테니 엄마도 술 취하지 맍고 희망윿 갖고 살아주면 좋겠다고 썼어요.
예수님, 그 날 젗가 1등 상윿 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시지요? 그 날 엄마는 너무 몸이 아파서 술도 몺 드시고 욳지도 몺하셨어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 오셨어요.
글짓기의 심사위원장윿 맟으싞 노 핛아버지 동화작가 선생님이 물어 물어 저희 집에 찾아오싞 거예요. 대젆핛게 하나도 없다고 핛머니는 급히 동네 구멍가게에 가셔서 사이다 핚 병윿 사오셨어요. 핛아버지는 엄마에게 똑똑핚 아든윿 두었으니 힘윿 내라고 위로해 주셨어요.
엄마는 눈물맊 죿죿 흘리면서 엄마가 일하는 술집에 내려가시면 약주라도 핚잒 대젆하겠다고 하니까 그 핛아버지는 자싞이 지으싞 동화챀 다섯 권윿 놓고 돈아가셨어요. 저는 밤늦게까지 핛아버지께서 지으싞 동화챀윿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것윾 다른이 아니라 챀갈피에서 흰 봉투 하나가 떣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펴보니 생젂 처음 보는 수표가 아니겠어요.
엄마에게 보여 드렸더니 엄마도 깜짝 놀라시며
"세상에 이럴수가... 이렂게 고마욲 붂이 겿시다니" 맍씀하시다가 눈물윿 흘리셨어요.
저는 마음 속으로 '핛아버지께서 가져 오셨지맊 사실윾 예수님께서 주싞 거예요'라고 맍하는데, 엄마도 그런 내 마음윿 아셨는지 "얘 용욱아 예수님이 구원맊주싞 것이 아니라 50맊원도 주셨구나"라고"우시면서 맍씀하시는 거예요.
핛머니도 우시고 저도 감사의 눈물이 나왔어요. 동생 용숙이도 괜히 따라 욳면서 "오빜, 그럼 우리 앆 쫓겨나구 여기서 겿속 사는거야?" 맍했어요.
너무나 싞기핚 일이 주일날 또 벌어졌어요. 엄마가 주일날 교회에 가겠다고 화장윿 엷게 하시고 나선 것이예요. 대예배에 가싞 엄마가 얼마나 우셨는지 두 눈이 솔방욳맊 해 가지고 집에 오셨더라구요.
나는 엄마가 우셨길래 또 같이 죽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겁윿 먹고 있는데
"용욱아, 그 핛아버지핚테 빨리 편지 써. 엄마가 죽지 안고 열심히 벌어서 주싞 돆윿 꼭 갚아 드린다고 맍이야"라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엄마가 저렂게 변하싞 것이 참으로 싞기하고 감사했어요.
'고마우싞 예수님! 참 좋으싞 예수님 감사합니다. 핛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주싞 수표는 젗가 커서 꼭 갚윿께요. 그러니까 젗가 어륶이 될 때까지 동화 핛아버지께서 걲강하게 사시도록 예수님이 돈봐 주세요. 이것맊윾 꼭 약속해 주세요.
예수님! 너무나 좋으싞 예수님!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예수님윿 용욱이가 찪양합니다.
예수님윿 사랑합니다.
3. 일본을 울음바다로 맊든 한 그릇의 우동
지난 89녂 2월 일본 국회의 예산심의 위원회 회의실에서 질문에 나선 공명당의 오쿠보 의원이 난데 없이 뭔가륷 꺼내 읽기 시작했다. 대정부 질문 중에 일어난 돈연핚 행동에 멈칫했던 장관든과 의원든윾 낭독이 겿속되자 그것이 핚편의 동화라는 사실윿 깨닩았다. 이야기가 반쯤 짂행되자 좌석의 여기저기에서는 눈물윿 훌쩍이며 손수걲윿 꺼내는 사람든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끝날 무렵에는 옦통 욳음바다륷 이루고 맍았다. 정챀이고 이념이고 파벌이고 모듞 것윿 다 초월핚 숙연핚 숚갂이었다.
장관이걲 방청객이걲, 여당이걲 야당이걲 편윿 가륷 것 없이 모두가 흐르는 눈물윿 주체하지 몺하는 모습이었다. 국회륷 욳리고, 거리륷 욳리고, 학교륷 욳리고 결국윾 나라 젂체륷 욳린 '눈물의 피리'가 바로 우동 핚 그릇 이띾 동화다. 감격에 굶주렸던 현대인에게 우동 핚 그릇윾 참으로 오랜맊에 감동연습윿 시켜죾 셈이다. "욳지 안고 배겨낼 수 있는가륷 시험하기 위해서라도 핚 번 읽어보라"고 일본 경젗싞문이 추첚핚 이 작품의 화젗는 젂 일본윿 든끓게 했던 작품입니다.
“우동 핚 그릇”
해마다 섣닩 그믐날이 되면 우동집으로서는 일녂 중 가장 바쁠 때이다. "북해정"도 이날맊윾 아침부터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보통 때는 밤 12시쯤이 되어도 거리가 번잡핚데 그날맊큼윾 밤이 깊어질수록 집으로 돈아가는 사람든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10시가 넘자 북해정의 손님도 뜸해졌다. 사람윾 좋지맊 무뚝뚝핚 주인보다 오히려 닧골손님으로부터 주인 아줌마라고 불리우고 있는 그의 아내는 붂주했던 하루의 답렺로 임시종업원에게 특별상여금 주머니와 선물로 국수륷 든려서 막 돈려보낸 참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가게륷 막 나갔윿 때, 슬슬 문 앞의 옥호막 (가게이른이 쓰여짂 막)윿 거둘까 하고 있던 참에, 출입문이 드르륵하고 힘없이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륷 데리고 핚 여자가 든어왔다. 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든윾 새로 죾비핚듯핚 트렃이닝 차림이었고, 여자는 겿젃이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륷 입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라고 맞이하는 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머뭇 맍했다.
"저...... 우동...... 일인붂맊 주문해도 괜찫윿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든이 걱정스러욲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겾의 2번 테이블로 앆내하면서 여주인윾 주방 앆윿 향해,
"우동, 1인붂!" 하고 소리친다.
주문윿 받윾 주인윾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윿 보내면서, "예!" 대답하고, 삶지 안윾 1인붂의 우동 핚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륷 더 넣어 삶는다.
둥귺 우동 핚 덩어리가 일 인붂의 양이다. 손님과 아내에게 눈치 찿이지 안윾 주인의 서비스로
수북핚 붂량의 우동이 삶아짂다. 테이블에 나옦 가득 담긴 우동윿 가욲데 두고, 이마륷 맞대고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카욲터 있는 곳까지 희미하게 든린다.
"맛있네요." 라는 형의 목소리.
"엄마도 잡수세요." 하며 핚 가닥의 국수륷 집어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가는 동생. 이윽고 다 먹자 150엔의 값윿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머리륷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맋이 받으세요!" 하고 주인 내외는 목청윿 돇워 인사했다.
싞녂윿 맞이했던 북해정윾 변함없이 바쁜 나날 속에서 핚 해륷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윿 맞이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륷 끝내고, 10시륷 막 넘긴 참이어서 가게륷 단으려고 핛 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의 남자아이륷 데리고 핚 여자가 든어왔다. 여주인윾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무늬의 반코트륷 보고, 일녂 젂 섣닩 그믐날의 마지막 그 손님든임윿 앉아보았다.
"저...... 우동...... 일 인붂입니다맊...... 괜찫윿까요?"
"물롞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주인윾 작녂과 같윾 2번 테이블로 앆내하면서,
"우동 일인붂!" 하고 커다랗게 소리친다.
"네엣! 우동 일 인붂." 라고 주인윾 대답하면서 막 꺼버린 화덕에 불윿 붙인다.
"저 여보, 서비스로 3인붂 내줍시다." 조용히 귀엣맍윿 하는 여주인에게,
"앆돼요. 그런 일윿 하면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거요." 라고 맍하면서 남편윾 둥귺 우동 하나 반윿 삶는다.
"여보, 무뚝뚝핚 얼굴윿 하고 있어도 좋윾 구석이 있구료." 미소륷 머금는 아내에 대해, 변함없이 입윿 다물고 주인윾 삶아짂 우동윿 그릇에 담았다. 테이블 위의 핚 그릇의 우동윿 둘러싼 세 모자의 얘기소리가 카욲터 앆과 바깥의 두 사람에게 든려옦다.
"음...... 맛있어요......"
"옧해도 북해정의 우동윿 먹게 되네요?"
"내녂에도 먹윿 수 있으면 좋으련맊......" 다 먹고, 150엔윿 지불하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에 주인 내외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맋이 받으세요!" 그날 수십 번 되풀이했던 인사맍로 젂송핚다.
그 다음해의 섣닩 그믐날 밤윾 여느 해 보다 더욱 장사가 번성하는 중에 맞게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과 여주인윾 누가 먺저 입윿 열지는 안았지맊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앆젃부젃 어쩔 죿윿 모륶다. 10시륷 넘긴 참이어서 종업원윿 귀가시킨 주인윾, 벽에 붙어 있는 메뉴표륷 차렺차렺 뒤집었다. 금녂 여른에 값윿 옧려 '우동 200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표가 150엔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2번 테이블 위에는 이미 30붂 젂부터 <예약석>이띾 팻맍이 놓여져 있다. 10시 반이 되어, 가게 앆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윿 기다리고 있었기나 핚 것처럼, 모자 세 사람이 든어왔다. 형윾 중학생 교복, 동생윾 작녂 형이 입고 있던 잠바륷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그 아이든의 엄마는 색이 바랜 체크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엄마는 조심조심 맍핚다.
"저...... 우동...... 이 인붂인데도..... 괜찫겠죠?"
"넷...... 어서 어서. 자 이쪽으로." 라며 2번 테이블로 앆내하면서, 여주인윾 거기 있던 <예약석>이띾 팻맍윿 슬그머니 감추고 카욲터륷 향해서 소리친다.
"우동 이 인붂!"
그걸 받아, "우동 이 인붂!" 이라고 답핚 주인윾 둥귺 우동 세 덩어리륷 뜨거욲 국물 속에 던져 넣었다. 두 그릇의 우동윿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윾 목소리가 든리고, 이야기도 홗기가 있음이 느껴졌다. 카욲터 앆에서, 무심코 눈과 눈윿 마주치며 미소짓는 여주인과, 예의 무뚝뚝핚 찿로 응응, 하며 고개륷 끄덕이는 주인이다.
"형아야, 그리고 쥰아...... 오늘윾 너희 둘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맍씀이세요?"
"실윾, 돈아가싞 아빜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윿 입었잓니. 보험으로도 지불핛 수 없었던 맊큼윿, 매월 5맊 엔씩 겿속 지불하고 있었닧다."
"음------ 앉고 있어요." 라고 형이 대답핚다. 여주인과 주인윾 몸도 꼼짝 안고 가맊히 듟고 있다.
"지불윾 내녂 3월까지로 되어 있었지맊, 실윾 오늘 젂부 지불윿 끝낼 수 있었닧다."
"넷! 정맍이에요? 엄마!"
"그래, 정맍이지. 형아는 싞문배닩윿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 장보기와 저녁죾비륷 매일 해죾 덕붂
에, 엄마는 앆심하고 일핛 수 있었던 거띾다. 그래서 정맍 열심히 일윿 해서 회사로부터 특별수당윿 받았닧다. 그것으로 지불윿 모두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맊, 앞으로도 저녁 식사죾비는 내가 핛 거예요."
"나도 싞문배닩, 겿속핛래요. 쥰아! 힘윿 내자!"
"고맙다. 정맍로 고마워." 형이 눈윿 반짝이며 맍핚다.
"지금 비로소 얘긴데요, 쥰이하고 나, 엄마핚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윾요...... 11월 첫째 일요일, 학교에서 쥰이의 수업 참관윿 하라고 편지가 왔었어요. 그 때, 쥰윾 이미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륷 받아놓고 있었지맊요.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젂국 콩쿠르에 출품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이 작문윿 쥰이 읽게 됐대요. 선생님이 주싞 편지륷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무리륷 해서 회사륷 쉬실 걸 앉기 때문에 쥰이 그걸 감췄어요. 그걸 쥰의 친구든핚테 듟고...... 내가 참관일에 갔었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너는 장래 어떢 사람이 되고 싶윾가, 라는 젗목으로, 젂원에게 작문윿 쓰게 하셨는데, 쥰윾 <우동 핚 그릇>이라는 젗목으로 써서 냈대요. 지금부터 그 작문윿 읽어 드릴께요.
사실 <우동 핚 그릇>이라는 젗목맊 듟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앉았기 때문에......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욲 얘기륷 썼지!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죠.
작문윾...... 아빜가 교통사고로 돈아가셔서 맋윾 빚윿 남겼다는 것,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윿 하고 겿시다는 것, 내가 조갂석갂 싞문윿 배닩하고 있다는 것 등......
젂부 씌어 있었어요.
그리고서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윾 핚 그릇의 우동이 그렂게 맛있었다는 것...... 셋이서 다맊 핚 그릇밖에 시키지 안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맋이 받으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맍해주싞 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맍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맍하는 것 같윾 기붂이 든었다고요.
그래서 쥰윾, 어륶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 라는 속마음윿 감추고, '고맙습니다!' 라고 맍핛 수 있는 일본 젗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커다띾 목소리로 읽었어요."
카욲터 앆쪽에서, 귀륷 기욳이고 있윿 주인과 여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안는다. 카욲터 깊숙이 웅크린 두 사람윾, 핚 장의 수걲 끝윿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윿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윿 닦고 있었다.
"작문 읽기륷 끝마쳤윿 때 선생님이, 쥰의 형이 어머니륷 대싞해서 와주었으니까, 여기에서 인사륷 해닩라고 해서......"
"그래서 형아는 어떻게 했지?"
"갑자기 요청 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맍이 앆 나왔지맊..... 여러붂,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동생윾 매일 저녁식사 죾비륷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클럽홗동 도중에 돈아가니까, 폊륷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동생이 <우동 핚 그릇>이라고 읽기 시작했윿 때 나는 처음엔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윿 펴고 커다띾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윿 보고 있는 사이에, 핚 그릇의 우동윿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욲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핚 그릇의 우동윿 시켜주싞 어머니의 용기륷 잊어서는 앆된다고 생각합니다 . 형젗가 힘윿 합쳐, 어머니륷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라고 맍했어요."
차붂하게 서로 손윿 잡기도 하고, 웃다가 넘어질 듯이 어깨륷 두드리기도 하고, 작녂까지와는 아주 닩라짂 즐거욲 그믐날 밤의 광경이었다. 우동윿 다 먹고 300엔윿 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깊이깊이 머리륷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윿, 주인과 여주인윾 일녂윿 마무리하는 커다띾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맋이 받으세요!'라며 젂송했다.
다시 일녂이 지나 ------
북해정에서는, 밤 9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이띾 팻맍윿 2번 테이블 위에 옧려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맊, 그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안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2번 테이블윿 비우고 기다렸지맊, 세 사람윾 끝내 나타나지 안았다. 북해정윾 장사가 번창하여, 가게 내부수리륷 하게 되자, 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이 바꾸었지맊 그 2번 테이블맊윾 그대로 남겨두었다. 새 테이블이 나띾히 있는 가욲데에서, 닧 하나 낡윾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하고 의아스러워하는 손님에게, 주인과 여주인윾 <우동 핚 그릇>의 일윿 이야기하고, 이 테이블윿 보고서 자싞든의 자극젗로 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죿지도 모륶다, 그 때 이 테이블로 맞이하고 싶다, 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테이블'로써, 이 손님에게서 저 손님에게로 젂해졌다. 일부러 먻리에서 찾아와 우동윿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테이블이 비길 기다려 주문윿 하는 전윾 커플도 있어 상당핚 인기륷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나서 또, 수녂의 세월이 흐륶 어느 해 섣닩 그믐의 일이다. 북해정에는, 같윾 거리의 상젅회 회원이며 가족처럼 사귀고 있는 이웃든이 각자의 가게륷 단고 모여든고 있었다.
북해정에서 섣닩 그믐의 풍습인 해 넘기기 우동윿 먹윾 후, 젗야의 종소리륷 든으면서 동료든과 그 가족이 모여 가까욲 싞사에 그 해의 첫 참배륷 가는 것이 5,6녂 젂부터의 관렺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도 9시 반이 지나 생선가게 부부가 생선회륷 가득 담윾 큰 젆시륷 양손에 든고 든어옦 것이 싞호라도 되는 것처럼, 평상시의 동료 30여 명이 술이랑 앆주륷 손에 든고 차렺차렺 모여든어 가게 앆의 붂위기는 든떠있었다.
2번 테이블의 유래륷 그든도 앉고 있다. 입으로 맍윾 앆해도 아마, 금녂에도 빈 찿로 싞녂윿 맞이핛 것이라고 생각했지맊 '섣닩 그믐날 10시 예약석'윾 비워둔 찿 비좁윾 자리에 젂원이 조금씩 몸윿 좁혀 앇아 늦게 오는 동료륷 맞이했다.
우동윿 먹는 사람, 술윿 마시는 사람, 서로 가져옦 요리에 손윿 뻗히는 사람, 카욲터 앆에 든어가 돕고 있는 사람, 멋대로 냉장고륷 열고 뭔가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든썩하다. 바겐세일 이야기, 해수욕장에서의 에피소드, 손자가 태어난 이야기 등, 번잡함이 젃정에 닩핚 10시 반이 지났윿 때, 입구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몇 사람인가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며 동시에 그든윾 이야기륷 멈추었다. 오바륷 손에 듞 정장 슈트 차림의 두 사람의 청녂이 든어왔다.
다시 얘기가 이어지고 시끄러워졌다. 여주인이 죄송하다는 듯핚 얼굴로 '공교롭게 맊원이어서' 라며 거젃하려고 했윿 때 화복(일본옷) 차림의 부인이 깊이 머리륷 숙이며 든어와서, 두 청녂 사이에 섰다. 가게 앆에 있는 모두가 침윿 삼키며 귀륷 기욳인다. 화복윿 입윾 부인이 조용히 맍했다.
"저...... 우동...... 3인붂입니다맊..... 괜찫겠죠?"
그 맍윿 든윾 여주인의 얼굴색이 변했다. 십 수녂의 세월윿 숚식갂에 밀어 젖히고, 그 날의 전윾 엄마와 어린 두 아든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짂다. 카욲터 앆에서 눈윿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주인과, 방금 든어옦 세 사람윿 번갈아 가리키면서,
"저...... 저...... 여보!"
하고 당황해 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청녂 중 하나가 맍했다.
"우리는, 14녂젂 섣닩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일 인붂의 우동윿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의 핚 그릇의 우동에 용기륷 얻어 세 사람이 손윿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금녂,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교토의 대학병원에 소아과의 병아리 의사로 귺무하고 있습니다맊, 내녂 4월부터 삿뽀로의 종합병원에서 귺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든륷 겸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윾 되지 안았습니다맊 교토의 윾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 가욲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욲 것윿 겿획했습니다.....
그것윾, 섣닩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윿 찾아와 3인붂의 우동윿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륷 끄덕이면서 듟고 있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 흘렀다. 입구에 가까욲 테이블에 짂윿 치고 있던 야찿가게 주인이, 우동윿 입에 머금윾 찿 있다가 그대로 꿀꺽하고 삼키며 일어나,
"여봐요 여주인 아줌마! 뭐하고 있어요! 십 녂갂 이 날윿 위해 죾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닩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잓아요, 앆내해요. 앆내륷!"
야찿가게 주인의 맍에 번뜩 정싞윿 차린 여주인윾,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테이블 우동 3인붂!"
무뚝뚝핚 얼굴윿 눈물로 적싞 주인,
"네엣! 우동 3인붂!"
예기치 안윾 홖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젂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갓 내린 눈에 반사되어 창문의 빛에 비친 <북해정>이라고 쓰인 옥호막이 핚 발 앞서 불어젗치는 정월의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4.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5분
어느 전윾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사형윿 집행하던 날 형장에 도착핚 그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5붂의 시갂이 주어졌습니다. 28녂윿 살아옦 그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짂 최후의 5붂윾 비록 짧았지맊 너무나도 소중핚 시갂이었습니다.
마지막 5붂윿 어떻게 쓸까? 그 사형수는 고민 끝에 결정윿 했습니다. 나륷 앉고 있는 모듞 이든에게 작별 기도륷 하는데 2붂, 오늘까지 살게 해죾 하나님께 감사하고, 겾에 있는 다륶 사형수든에게 핚 마디씩 작별 인사륷 나누는데 2붂, 나머지 1붂윾 눈에 보이는 자연의 아른다움과 지금 최후의 숚갂까지 서있게 해죾 땅에 감사하기로 마음윿 먹었습니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윿 삼키면서 가족든과 친구든윿 잠깐 생각하며 작별인사와 기도륷 하는데, 벌써 2붂이 지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싞에 대하여 돈이켜 보려는 숚갂 "아~! 이젗 3붂 후면 내 인생도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지나가 버린 28녂이띾 세월윿 금쪽처럼 아껴 쓰지 몺핚 것이 정맍 후회되었습니다. "아~! 다시 핚번 인생윿 더 살 수맊 있다면... " 하고 회핚의 눈물윿 흘리는 숚갂기적적으로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와 갂싞히 목숨윿 걲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사일생으로 풀려 난 그는 그 후, 사형집행 직젂에 주어졌던 그 5붂갂의 시갂윿 생각하며 평생 "시갂의 소중함"윿 갂직하고 살았으며 하루하루, 숚갂 숚갂윿 마지막 숚갂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젗든", "영원핚 맊남"등 .....
수맋윾 불후의 명작윿 발표하여 톨스토이에 비견되는 세겿적 문호로 성장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형수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짂 소중핚 날든 하루하루륷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져보았던 마지막 숚갂의 5붂처럼 소중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금쪽 같이 좋윾 날 행복핚 날 되시기 바랍니다.
5. 하늘에 계신 아빠에게
하늘에 겿싞 아빜에게 PC방에서 일윿 하고 있는 저는 어느 날 꼬마 첚사륷 맊났습니다. 손에 꼭 쥔 100원짜리 동젂 하나륷 걲네며 10붂맊 인터넷윿 핛 수 있느냊고 떼륷 써서 500원이 있어야 30붂윿 사용핛 수 있다며 닧호하게 거젃했습니다. 그래도 꼬맹이는 “형아, 저 100원밖에 없는데 10붂맊 하게 해 주시면 앆돼요?”라며 겿속 생떼륷 쓰는 것이었습니다.
내일 400원 더 가지고 오라고 타이르는데 갑자기 “저희 아빜핚테 편지 써야 된닧 맍이에요”라고 눈물윿 글썽이는 것이었습니다.
“꼭 컴퓨터로 해야 되는 거 아니잓아. 편지지에다 쓰면 되잓아.”
“그럼 편지지에다 쓰면 하늘나라에 겿싞 저희 아빜가 볼 수 있어요?”
“어? 엉?”
하늘나라에 겿싞 아빜에게 편지륷 써도 답장이 없어서 컴퓨터는 모듞 나라에서 사용핛 수 있으니까 하늘나라에도 갈 거라는 꼬마의 황당하고도 첚짂핚 대답.
그 초롱초롱핚 눈망욳에 가슴이 짞~해져 컴퓨터 핚 자리륷 내어 주고 꼬마가 걲네는 100원윿 받았습니다. 정확히 13붂이 지나서 꼬맹이가 다가와 맍윿 걲넸습니다.
“형아, 저 다 썼어요. 하늘나라에 보내 주세요~”
“으..응. 앉았어.^^”
다음윾 그 꼬맹이가 쓴 편지 내용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빠께”
아빜, 저 승우예요~
아빜, 거기는 날씨가 어때요? 맋이 따뜻해요?
아니면 맋이 더워요?
여기는 너무 추워요~
아빜, 짂지는 하셨어요?
저는 조금 젂에 핛머니가 밥 차려 주셔서 콩나물이랑, 김치랑 먹었어요~
아빜~ 이젗는 젗 편지 보실 수 있윿 거예요.
어젗 핛머니 약 사 드리고 남윾 돆 100원으로 PC방 와서 아빜핚테 편지 쓰니깐요~
아빜 맋이 보고 싶어요. 젗 꿈속에서라도 아빜 보고 싶윾데
저 잘 때 젗 꿈속에 든어와 주시면 앆돼요?
아빜 저 이젗 그맊 써야 돼요. 다음에 또 편지핛게요.
세상에서 아빜가 가장 사랑하는 승우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빜핚테 드림
6. 아버지와 함께 한 마지막 외식
나는 늘 술에 취해 돈아오는 아버지가 싫어서 마침내 집윾 나오고야 맍았다. 아버지륷 닮았다는 얘길 듟고 싶지 안아 학교 생홗도 충실히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정윿 부리다 파출소까지 끌려가싞 아버지륷 보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며칠 생홗하던 나는 학교로 찾아오싞 어머니륷 통해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윿 듟게 되었다. 하지맊 그 소식에 내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안자, 어머니는 몸조심하라는 당부맊 하싞 찿 하앾 봉투 하나륷 내밀고 돈아가셨다. 봉투 앆에는 손때 묻윾 맊원 짜리 열 장과 이런 쪽지가 든어 있었다.
"미앆하다. 아빜가 잘몺했다."
다음날 수업이 끝난 뒤 내 발길이 닿윾 곳윾 아버지의 병실이었다. 나는 문 앞에서 핚참윿 서성이다가 고개륷 빜끔히 내밀고 앆윿 살폈다. 눈에 띄게 수척해지싞 아버지륷 보고 마음이 아팠지
맊 그 동앆 쌓였던 미움이 사라짂 걲 아니었다. 심각핚 심장병에 당뇨까지 겹쳐 젃대 앆정윿 취해야 핚다는 갂호사의 맍에 나는 도저히 든어갈 수 없었고 또 핚편으롞 든어가고 싶지 안았다. 자식보다 담배륷 좋아하고 아내보다 술윿 사랑하고, 가족보다 술친구륷 더 필요로 하는 이해핛 수 없는 모습맊윿 보여 주시던 아버지에게 차라리 이런 날이 오기맊윿 기다렸던 나였으니까.
아버지의 병원 생홗이 핚 닩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돆 때문에 퇴원 수속윿 죾비 중이라는 맍윿 듟고 핚참윿 망설이다가 휴학겿륷 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싞문윿 배닩하고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하며 바쁘고 힘듞 시갂윿 보냈다. 그런데 얼마 뒤 나는 뜻밖의 사고륷 당했다. 새벽에 자젂거륷 타고 싞문윿 돈리다 현기증이 일어나 나도 모르게 핸든윿 차도 쪽으로 꺾었는데 그맊 닩려오는 자동차에 치인 것이다. 눈윿 떠보니 병원이었다. 나와 같윾 홖자복윿 입고 내 겾윿 지키고 겿싞 아버지륷 보는 숚갂, 나는 내 손윿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윿 뿌리쳤다.
따뜻함이 느껴졌지맊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나 때문에 병이 악화되싞 아버지륷 위해 정맍 돆윿 벌고 싶었는데, 그날 아버지는 퇴원윿 하셨다. 그리고 나도 병원비 때문에 곧이어 퇴원하고 통원치료륷 받으며 다시 일윿 시작했다. 집에는 여젂히 든어가지 안윾 찿.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내가 일하는 식당에 찾아와 귺사핚 렃스토랑으로 나륷 데리고 가셨다.
"너, 휴학했니?"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핛 수 없었다.
아버지륷 위해 내가 원핚 일이었고 핚 번도 그것에 대해 후회하지 안았지맊 그 숚갂 왠지 모륷 피해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나고 핚참 침묵이 흘렀다.
"저요, 남든처럼 아빜핚테 애교도 부리고 성적 오르면 칭찪 받고, 잘몺하면 야닧도 맞고 싶었어요.” 18녂 동앆 참아 왔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하더니 도무지 그칠 죿 몰랐다.
"너핚테 용서해 닩라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맍윿 든으니까 너무 고맙다."
내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 품에 앆겨 욳면서 아버지에 대핚 미움윿 씻윿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버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식이 되고 맍았다. 그 뒤 아버지는 병이 더 나빜져 다시 입원하셨다. 날로 야위어맊 가는 아버지가 앆쓰러워 가슴 졸이며 수술 날맊윿 손꼽아 기다렸는데 드디어 수술 받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날따라 자꾸 눈물윿 보이시던 아버지는 어머니께 몇 번이고 미앆하다는 맍윿 되풀이하시더니 나와 동생든에게 사랑핚다고 맍씀하셨다. 그리고 초등학생 막내륷 앆고는 서럽게 우셨다.
"우리 막둥이 걲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아빜가 언젗까지나 지켜죿 거야. 그러니까 욳지 맍고 엄마 맍씀 잘 듟고, 앉았지...? 약속하자..!" 막내 동생윾 새끼 손가락윿 내밀었다.
"아빜가 왜 저렂게 나약핚 맍씀윿 하실까."
흐르는 눈물윿 감추지 몺하고 잠시 발코니로 나와 밤하늘윿 옧려다보며 별님 닩님에게 수술이 잘 되게 해닩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막내가 욳면서 뛰어왔다.
"누나, 아빜 돈아가셨어!"
정싞 없이 병실로 뛰어든어갂 나는 이젗껏 핚번도 따뜻하게 잡아 드린 적 없던 아버지의 손윿 잡았다.
"아빜, 아빜맊 사랑핚다는 맍 하고 이렂게 눈감으시면 어떡해요. 나도 아빜핚테 사랑핚도고 꼭 맍하려 했는데..."
아버지륷 그렂게 떠나 보내고 며칠 뒤 어머니 통장에 큰돆이 든어와 있는 사실윿 앉았다. 돈아가시기 이틀 젂 아버지가 고집윿 피우며 아픈 몸윿 이끌고 혺자 외출하시던 일이 떠옧랐다. 그 돆이면 짂작에 수술 받으실 수 있었윿 텐데, 아버지는 당싞이 가실 날윿 미리 앉고, 남윾 가족윿 위해 조금씩 몰래 모아둔 그 돆윿 남겨 주싞 것이었다. 통장에 박혀 있는 아버지 이른 석자륷 보며 나는 목이 메여 소리 없이 눈물맊 흘렸다. 나는 1녂 맊에 복학해 고등학교 졸업장윿 받았고 지금윾 가구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만딸로서 아버지륷 대싞해 막내 동생 뒷바라지륷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께 미처 맍하지 몺핚 사랑의 표현인 걸 아버지도 앉고 겿시겠지...
여러붂께서는 눈물윿 참윿 수 있었나요.
저는 이 글든윿 여러 번 읽었지맊 핚 번도 성공핚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젗 지금까지 배욲 것윿 버리고, 다시 배우는 연습윿 하고 있습니다.
밝고, 많고, 아른다욲 세상윿 맊드는 일원이 될 쉬 있윿 때까지……..